귀환무관 6화.
“아이고! 내 다리!”
“아악! 코피가 안 멈춰!”
“팔이 반대로 돌아갔어! 끄아아악!”
개방도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그들 한가운데에 나겁개가 넋이 나간 얼굴로 서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무력으로 줄을 세운다면 호남성 분타는 중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만큼 강한 곳이었다.
그런 호남성 분타에 속한 인원 대부분을 끌고 왔다.
대등하게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백서휘에게 상처 정도는 입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개방도들은 백서휘의 옷깃도 건드리지 못했다.
오히려 백서휘가 장난치듯 가볍게 휙휙 뻗는 주먹과 발에 뻗어버리고 말았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때 백서휘가 주먹으로 우드득 소리를 내며 나겁개를 향해 다가갔다.
“다, 다가오지 마시오! 다가오면 내 주먹이 당신을 향해 날아갈지도 모르오!”
나겁개가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하며 뒤로 물러나다가 기절해 있는 개방도의 발에 걸려 자빠졌다.
백서휘는 잠시 걸음을 멈춰서서 허우적거리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본인이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는 것을 자각한 건지 나겁개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나를 감시한 이유가 뭐지?”
“감시를 언제 했…….”
“절름발이가 되고 싶은가?”
백서휘는 말을 하며 나겁개의 발목을 은근히 눌렀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점점 강해져 오자 나겁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겁이 많은 데다 다른 분타주들에 비해 무공이 그리 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분타주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보신경(步身輕) 실력 덕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에 장애가 생긴다면 분타주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가, 감시한 것 맞소. 인정하겠소.”
꾸우욱!
백서휘는 나겁개의 발목을 밟는 강도를 조금 올렸다.
“이, 인정했잖소! 왜 발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인정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 날 감시한 이유나 어서 말해.”
“흐, 흑사방에 혈사를 일으킨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해 자하무관을 감시하게 한 거요.”
“유력한 용의자? 그렇게 생각한 근거가 따로 있나?”
“하오문이 당신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그랬소!”
“하오문이 그랬다고? 그냥 살기 위해 되는 대로 말한 거면 너는…….”
“그, 그런 거 아니오. 진짜로 하오문이 당신이 혈사의 범인일지 모른다고 했소.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을 감시하지 않았을 거요.”
백서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남성 한정이지만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 1년 동안 살 수 없게 제한을 걸었었다.
그런데 하오문은 1년은커녕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개방에 정보를 팔았다.
‘다른 문파도 아니고 개방에 정보를 팔아?’
하오문이 사파의 정보 창구라면, 개방은 정파의 정보 창구였다.
개방이 알게 되면 다른 정도 문파가 아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다른 문파’가 알게 되면 ‘무림맹’과 ‘여러 암중단체’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있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 지금의 나와 수호문주로서의 나를 연결 짓지는 못할 거야.’
자신이 수호문주란 걸 알게 되어도 사실 상관은 없었다.
나쁜 일을 한 적도 없고, 어떠한 음모도 분쇄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화를 내는 건 귀찮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놈들이 방해할 수 있어.’
기분 좋은 일만 하면서 살아도 부족한 게 인생이다.
짧디짧은 인생을 쓸데없는 일로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쪽에 정보를 팔아먹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어.’
백서휘는 나겁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발을 저는 쪽이 비럭질할 때 더 좋은 편인가?”
“저, 저는 비럭질하지 않고 밑에 놈들이 가져온 걸 먹기 때문에 다리가 멀쩡한 게 더 좋습니다.”
“빌어먹는 거지로서 근본을 지키려면 다리를 저는 쪽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데…….”
“대, 대협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대협을 감시하지 않겠습니다.”
나겁개가 납작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그걸로는 모자라.”
“그,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다른 놈들한테 내 정보를 팔지 마.”
“그, 그건 방규(幇規)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역시 발목을 분질러놓는 편이 비럭질할 때 좋을 것 같다.”
“가, 가능하게 만들겠습니다.”
정보 제한을 걸게 했으니 이제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재밌는 그림’을 그릴 차례였다.
“좋아, 왼쪽 발목은 내버려 두지.”
“오, 오른쪽 발목은 그럼…….”
“내가 지금 부탁한 일을 해준다면 오른쪽 발목도 멀쩡히 놔두겠다.”
“부, 부탁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구걸 시작하고 반 시진이 지날 때마다 자하무관을 홍보하는 말을 하게 해. 참고로 모든 거지에 해당하는 일이니까 너도 빠지면 안 돼.”
“호, 홍보하는 말이요?”
“약장수처럼 말해도 좋고, 노래를 불러도 좋다. 뭐든 좋으니까 자하무관에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입관하게 만들면 돼.”
“끄응.”
“왜? 못 하겠나?”
“조,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명문거파 중 하나이고 저희를 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에…….”
“못하겠으면 오른쪽 발을 내밀어.”
백서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믿어주지.”
“가, 감사합니다.”
“배신하면 청사처럼 될 테니까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예? 청사처럼 된다니요?”
“그건 내일이 되면 알게 될 거야.”
백서휘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 * *
“내 말이 그렇게 우스웠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개방.”
청사는 백서휘가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해봐.”
“귀빈께서는 분명 다른 사람이 못 사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지.”
“그럼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나겁개에게 정보를 팔지 않았거든요.”
“팔지 않았는데 그놈이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있던 거지?”
“나겁개 개인과 맺은 협약에 따라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청사는 ‘교환’이란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챙!
백서휘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검을 뽑아 청사의 목을 겨누었다.
“그런 말장난을 하러 이곳에 온 줄 아나?”
“귀빈의 정보를 팔지 않았으니 된 거 아닙…….”
청사의 목이 몸에서 깨끗하게 분리되었다.
푸하악!
잘린 단면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피가 솟구치며 방을 더럽혔다.
“죽기 싫으면 나와.”
문 뒤에서 은신하고 있던 사람이 다리를 절뚝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어 기억을 더듬어봤다.
‘지풍으로 허벅지를 꿰뚫은 여자였군.’
백서휘는 무심한 얼굴로 여자를 노려봤다.
“너 이름이 뭐지?”
“화, 화란이요.”
“화란? 네가 이제부터 하오문 호남성 지부의 지부장이다.”
“예?”
“말귀를 못 알아먹으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어.”
“아, 알아들었어요.”
“이번 일에 대한 배상은 어떻게 할 예정이지?”
화란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배상안을 짜냈다.
“트, 특급 정보를 제외한 모든 정보의 비용을 세 번에 한해 받지 않을게요.”
“그거에 하나 더 받아야겠다.”
“어떤 걸 더 받으실 건지…….”
“자하무관이 무공을 잘 가르친다고 은밀히 소문을 흘려.”
“그, 그거만 하면 될까요?”
“그래. 그거만 하면 돼.”
“자하무관의 관원이 늘어날 수 있도록 열심히 소문을 퍼뜨릴게요.”
무력을 확실하게 보여줘서인지 화란은 빠릿빠릿 행동했다.
“나는 이만 가보겠다.”
“사, 살펴 가세요.”
밖으로 나오니 해가 서쪽으로 꽤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백서휘는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학관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들이 남았을까?’
괜한 기우였다는 듯 학관 앞엔 아이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백서휘는 아이들의 손에 자하무관에 대해 적혀 있는 광고지를 쥐여주었다.
그러다 덩치가 크고 몸이 다부진 아이 셋이 왜소한 아이를 붙잡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백서휘는 무시하고 계속 광고지를 나눠줬다.
“아무리 봐도 저 새끼는 병신 같다니까.”
“그래도 저 병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당과 살 돈도 얻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골목으로 들어갔던 세 아이 중 하나가 돈주머니를 들고 흔들었다.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머지 두 아이가 배를 잡고 웃었다.
“당과 말고 춘화를 사는 거 어때?”
“그건 어른들한테나 팔잖아.”
“내가 책방 점원한테 물어보니까 돈만 충분히 주면 팔겠대.”
“정말?”
“그럼 이 돈으로…….”
“내가 제일 먼저 본다.”
셋 중 제일 덩치가 큰 아이가 말하자 나머지 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히 네가 먼저지. 그리고 그다음은…….”
“네가 정보를 알아온 거니까 너 먼저 봐.”
“좋았어.”
“대신 깨끗하게 봐야 된다.”
“당연하지.”
백서휘는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셋을 보며 속으로 욕을 했다.
‘어린놈들이 발랑 까져서는…….’
그때 골목 안에서 왜소한 체구의 아이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옷도 다 찢어지고 얼굴엔 상처투성이인 걸 보면 세 아이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좀만 꼬시면 넘어올지도 모르겠는데…….’
백서휘는 눈치를 보며 다가가 왜소한 아이에게 광고지를 건넸다.
왜소한 아이는 백서휘의 손을 치고 지나갔다.
‘허어!’
세 아이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자신에게는 반항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늦게 배우면 저놈만 손해니까.’
백서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외삼촌!”
“수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진짜 정수련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이러고 있어?”
“아버지는 시험 문제를 만들어야 해서 늦는다고 저보고 먼저 가라고 하셨어요.”
“혼자?”
“왜요? 혼자 가면 안 돼요?”
“위험해서 안 돼.”
납치를 당해본 데다 강호를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겪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아이가 혼자 다니면 위험했다.
그것도 예쁜 여자아이면 더더욱.
“위험하지 않아요! 나도 무공 쓸 수 있어요! 얍! 얍! 이얍!”
정수련이 열심히 주먹질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냥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그 정도 수준으로는 위험하니까 이제부터는 집에 갈 때 외삼촌이랑 가자.”
정수련은 썩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왜 별로야?”
“네.”
“뭐 때문에?”
“외삼촌이랑 가면 애들이랑 못 놀잖아요.”
“삼촌이 보는 앞에서 놀면 되지.”
“그건 싫은데…….”
“삼촌, 소꿉놀이도 잘하고 인형 놀이도 잘해.”
“정말요?”
“그렇다니까.”
“못 믿겠어요.”
“소꿉놀이 실력 보여줄까?”
정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아, 너 숙제 안 하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숙제하고 놀라고 했어? 안 했어?”
백서휘는 내공으로 성대를 조절해 백은하와 비슷하게 목소리를 냈다.
“이, 이건 엄마 목소리인데…….”
“당신도 어렸을 때는 숙제보다는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소?”
“이번엔 아빠?”
정수련이 눈빛을 반짝이며 묻자 백서휘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 따라 해볼까?”
“네!”
“듣고 싶으면 일단 같이 집으로 돌아가야 해.”
“빨리 집으로 가요!”
정수련이 백서휘의 손을 잡고 자하무관이 있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하하하.”
백서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정수련의 손에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