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1/84)

제4장 쌍천사(雙天寺)

 휘이익! 스스스!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인지 수천 년의 세월을 머금고

만들어진 시커먼 동굴에서 악마의 숨결 같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

다.

 "그러니까 이곳에 그 마기의 근원 덩어리가 들어있고 깊이도 사백 장이나

된다 이거죠?"

 백산과 철목승이었다.

 갈태독과 비무를 끝낸 백산이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혈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이다.

 "정말로 같이 가겠소?"

 백산이 옆에 있는 철목승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인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무림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백산으로서는

 철목승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득도 없는 일에 왜 나서려고

 하는 것인가.

 누가 상을 주기를 하나 잘했다고 칭찬을 하기를 하나. 그냥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뿐인 것을 왜 굳이 힘든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지 도

통 알 수가 없었다.

 "물론이네. 자네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백산을 쳐다보고 있는 철목승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있었다.

 자신도 함께 마혈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갈태독이 극구 말렸다. 그곳에 있

는 마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유형마지가 마공을 익힌 사람에게

 있어서 성지임에는 틀림없지만 동혈의 끝에 있는 마기는 마공을 익혔다 해

서 모두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도 견디지 못하고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마기의 노예가 되어 백산을 해치는 불상사가

생길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수십 년간을 천하를 굽어보며 살아왔던 철목승에게 있어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했던 자신이 다른 이의 일을 방해하는 짐

덩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그, 싸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이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었고 온몸의 피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싸우고 싶다는 그의 뜨거운 감정을 냉철한 이성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 자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그래서 마혈은 들어가겠다고 했다. 허영이

라고 해도 좋고 자만이라고 치부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것마저 하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무인으로서 더 이상의 존재 가

치가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한 심정을 알기 때문에 갈태독도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철목승을

보내주었던 것이다. 자신도 무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들면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자, 들어가세!"

 철목승이 먼저 마혈로 뛰어들었고, 그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백

산은 철목승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혈(

洞穴) 안으로 몸을 날렸다.

 시커먼 암흑이 그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엄청난 곳이군…."

 먼저 내려왔던 철목승이 대충 동굴을 둘러보았는지 백산을 향해서 하는 말

이다. 동굴의 초입이고 초극의 고수인 그들의 눈에는 아직은 동혈의 벽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동굴을 따라서 보이는 정면은 오로지 암흑만이 존

재하는 무저갱 이었다. 수천 년이 지났을 천연동굴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만

져지는 촉감은 이끼 하나 없는 매끈한 벽면이다.

 "이거 이상한데요? 마치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 같잖아요."

 마치 인공으로 다듬어놓은 것처럼 평평했기에 백산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철목승을 쳐다보았다. 결코 인간의 흔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

아니던가. 갈태독 같은 초극 고수도 견디질 못하는 이런 곳에 인간의 흔적

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마기 때문이 아니겠나."

 그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황폐해진 계곡을 보았기에 이곳도 마기

의 영향에 의해서 이리 변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공의 흔적이 남아있

다는 것이 아니다. 이곳을 파괴하고 난 후에 어떻게 빠져나오느냐 하는 것

이 더 중요한 일이다.

 백산은 자신의 품속에 있는 열 개의 광천뢰를 가만히 만져보았다.

 이곳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져온 물건이다. 갈태독의 말에 의하면 이곳부

터 거의 직선으로 백장 정도 전진한 후에 다시 비스듬한 경사면이 삼백 장

정도 있고, 그 끝에 마혈의 근원이 존재한다고 했다.

 합이 사백 장이나 되는데 그 끝에 광천뢰를 던져 넣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명의 기운이 전혀 없어! 완전하게 죽어버린 세계야, 이곳은…."

 시커먼 암흑의 공간을 쳐다보며 철목승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곳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유형마지조차 아무런 생명

도 살지 못했는데 하물며 이곳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런 와중에도 두 사람의 발걸음은 계속해서 동굴의 끝을 향해서 움직였고

 수평으로 나있던 통로를 지나 경사면으로 이루어진 곳에 도착했다.

 아래로 삼백 장을 더 전진하게 되면 갈태독이 말한 곳에 도착하게 된다.

 "괜찮습니까? 철 대협."

 조금 전부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철목승을 향해서 백산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사실 백산도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면서 뭔지 모를 불쾌감이

 줄곧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괜-찮-네!"

 못마땅하다는 듯이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며 무엇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

처럼 철목승의 목소리는 버겁게 들렸다.

 "이곳에서 잠시만 쉬었다 가세!"

 백산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 가부좌를 하며 운공을 하기 시작

했다.

 외견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지금 철목승은 자신의 머릿속

을 지배하려는 극심한 심마(心魔)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동굴 속에 들어오면서부터 그 농도가 진해진 마기가 그의 몸으로 침투하자

 마음속 저 깊은 곳에 꼭꼭 싸두었던 파괴적인 본능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

이다.

 '너보다 강한 자를 죽여라. 그래서 다시 한번 네가 천하제일인임을 증명해

라!'

 마음속의 본능이 끊임없이 그를 충동질하고 있었다.

 끝없이 속삭이는 본능의 외침에 문득문득 살심(殺心)을 일으키고 있는 자

신을 발견했고, 그러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철목승아, 철목승아. 네가 겨우 이것밖에 되질 않더냐? 너보다 강하다고

그것을 시기하고 질시하고 있다니….'

 자신에 대한 자책과 연민으로 홀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백산이 부르는 소

리가 그를 깨웠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추악한 욕망을 발견한 철목승은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

다.

 이 상태로는 저 아래로 가기도 전에 마기의 노예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면 끊었지 정신을 잃고

노예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처럼 심리가 불안한 상태에서의 운공은 더욱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

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이 자리에서 머물고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운공을 시작한 철목승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주화입마에

들고 있는 현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백산은 그런 사정을 모른다. 주화입마의 현상에 대해서 상세하게

모르고 있다보니 철목승이 그러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묵묵히 쳐다보고

만 있었다.

 이런 백산의 무지가 철목승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백산도 철목승도 알지

 못했다.

 지금 철목승의 정신 속에서는 파괴적이고 사악한 본능과 이성적인 심상과

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철목승! 천하제일인이라고 떠받드는 강호인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

곳에만 해도 너를 이길 수 있는 자가 네 사람이나 있다. 갈태독이 있고, 뇌

룡현의 남궁세우와 팽무도, 그리고 그의 제자인 저 백산, 나이도 얼마 안

된 놈이 너보다 훨씬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그러고도 네가 천하제일

인인가? 죽여라! 너를 믿고 있을 때 죽여라!'

 '닥쳐라! 이 철목승을 보고 비겁자가 되란 말이냐?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니다, 철목승. 생각해봐라, 너의 외증조부인 패천신마 궁무독을. 그렇

게 믿었던 부하들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의 외증조부를 암살

한 그들은 어찌 되었나. 지금도 구마(九魔)란 이름으로 잘 살고 있지 않느

냐.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정직하게, 순리대로 산다고 누가 인정해 주느냐

. 살아남은 자만이 최고의 선이다. 살아남은 자만이 행복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죽여라! 하나씩! 우선 옆에 있는 어린놈부터….'

 철목승의 정신이 하나씩 부서지고 있었다. 지금껏 잊고 살았고 결코 들추

어내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비밀, 마음속 저 깊이 묻어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그 비밀이 사악한 본능 속에서 싹을 피우려하고 있었다

.

 파괴적인 욕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안 돼!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지? 내가 천하제일인이면 뭐가 달라지냐고.

구마들을 다 죽일까? 아니야, 내가 천하제일이든 삼류무사이든 바뀌는 것은

 없어. 아무 것도…나는 철목승, 철목승일 뿐이다.'

 필사적이었다. 거의 사라져서 보이지도 않는 그의 이성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파괴적인 욕망에 졌음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길이 없음을…

.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억이 있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우였던 무적신검(無敵神劍) 냉시우(冷始于)와 가장 사

랑했던 여인인 천봉(天鳳) 화연옥(華蓮玉), 두 사람의 결합을 인정하지 못

했기에 벌어진 결투. 그리고 냉시우의 죽음과 화연옥의 자결, 혼자 남은 핏

덩어리 냉추렴.

 '안 돼!'

 꺼져가던 이성의 심상이 불꽃이 타오르듯 되살아나고 있었다. 더 이상 그

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된다는 그의 결심이 이성을 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거의 다 장악하고 있는 파괴적인 욕구를 무너뜨리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그래! 다시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자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폭혈공(

爆血功)이란 무공을 익혔다.'

 결국 철목승은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미약한 진기만 있어도 자신의 몸을

터트릴 수 있는 자살 무공인 폭혈공. 친구인 냉시우를 죽이고 난 후 다시는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익혔던 무공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철목승이 폭혈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그의 대부분의 정신세계를 장악했던 파괴적 본능이 비명을 질렀으나 철목

승의 중얼거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고 있었다. 모든 미련을 포기하고 생의 집착을 버

리자 그의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한 것이다.

 '이것이 죽음이란 느낌인가? 의외로 편안하군….'

 철목승의 얼굴에 삶을 초월한 득도자의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철목승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백산이 깜짝 놀란 눈으로 이 장여를 물러

나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것은 그 영감이 펼쳤던 그것과 비슷하잖아."

 갈태독에게 호되게 당했던 혼돈지연, 그 혼돈지연과 비슷한 기운이 풍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담화(優曇華), 백산의 운공 중에 나타났던 우담화가 철목승에게

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갈태독의 혼돈지연도 우담화의 기운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백산에게 느껴지는 철목승의 기운이 비슷했던 것이다.

 다만 갈태독이 만들었던 혼돈지연이 검붉은 색이었던 반면에 철목승의 우

담화는 순백색의 투명한 꽃이었다. 꼭 닫혀있는 꽃잎 한장 한장이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죽은 듯이 감겨있던 철목승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살아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완벽하게 익혔다고 생각했던 천마심공(天魔心功)에 또 다른 경지가 존재하

고 있음을….

 자신을 포기하고 버리려했던 그 순간에 철목승은 또 다른 기연을 접한 것

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택한 불굴의 용기가 죽음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창조

를 꽃피웠다.

 "가세!"

 힘차게 일어서며 철목승이 앞장을 섰다.

 이제는 유형마지(有形魔地)의 마기가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세계에 해당할 뿐이지 그들의 육체마저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동굴로 들어가면 갈수록 농밀해지는 마기는 거의 늪에 빠져있는

것처럼 질척했다.

 묘한 느낌이었다. 축축한 기분은 하나도 없는데 온몸을 옥죄는 이 느낌,

손으로 만져지는 것으로 보았을 때 분명 실체가 있는 것인데도 공기 중에

유영하고 있는 모양새가 귀신들이 모여서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고 검은

전분가루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공기조차도 통과하지 못하는 마기의 늪을 두 사람은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치며 전진해야만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 사방이 능히 오십 장 정도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광장이

었다. 그 광장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마기는 마치 늪 속에서 물체가 유

영을 하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저곳을 보게."

 철목승의 전음이 백산의 귓속으로 들려왔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오

장 크기의 구멍이 악마의 입처럼 검은 마기를 토해내며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철 대협, 이곳에서 경공(輕功)을 펼칠 수 있을까요?"

 저기 보이는 악마의 목구멍에 광천뢰를 던져놓고 도망을 가야하는데 마기

의 늪을 이룬 이곳에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좀 작게 말할 수 없나? 그건 전음이 아니라 음공(音功)이네, 음공!"

 처음 해본 전음이라 그냥 평상시 하던 대로 했던 백산의 목소리에 철목승

이 충격을 받았나 보다. 그래도 여유는 있어 보였다. 긴장된 순간임에도 불

구하고 그런 것까지 챙기는 것을 보니.

 '일단 내가 뒤쪽의 길을 뚫겠네. 자네는 전력으로 광천뢰를 저 안으로 던

져 넣게!'

 말과 함께 철목승이 자신들이 들어왔던 동굴 쪽을 향해 건곤(乾坤)을 가리

키던 두 손을 합쳤다.

 '천마파천수라무(天魔破天修羅武)!'

 그들이 내려온 곳이 거의 삼백 장이다. 그렇다면 처음 들어왔던 백장을 합

하면 총 사백 장이나 되는 지하에 와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전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철목승은 두 사람의 비무를 보고 땀 흘리던 그때의 철목승

이 아니었다.

 전륜나한을 향해 시전할 때와 차원이 달랐다. 그때는 천마파천수라무를 펼

치기 위해서 내공을 모으는 등 사전작업에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지

금은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시전이 가능했다. 이제는 경공을 펼치며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가볍게 시전할 수 있었다.

 철목승이 시전한 파천무는 마기의 늪을 소멸시키며 쾌속하게 공간을 가르

고 있었다.

 그 순간 백산도 광천뢰를 자신의 웃옷으로 싼 뒤 시커먼 동혈을 향해서 던

져 넣었다.

 '에게?'

 그러나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날아가서 터져야 할 광천뢰 덩어리가 허공

에 그대로 정지해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놀라운 눈으로 자신이 던진 광천뢰를 쳐다보고 있던 백산이 중얼거렸다.

 지금 이곳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하였고 동혈의 끝에서 터질 수 있도록 힘

을 조절해서 던진 것인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무

엇인가에 의해서 잡혀버린 듯 허공에 정지해 있었다.

 '윽!'

 멍한 눈으로 광천뢰를 쳐다보고 있던 백산이 안면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

에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어찌된 일인가?'

 동굴의 입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던 철목승이 되돌아와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자신의 뒤를 따라서 와야 될 백산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있소, 이곳에!'

 자신의 턱을 강타했던 것은 분명 인간의 주먹이었다. 아무런 기척도, 느낌

도 없이 공격을 당했던 것이다.

 '인간이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는 하고 있으나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

도 숨을 쉴 수 없어서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는데 이곳에 인간이라니….

 '확실한가?'

 놀라는 표정의 철목승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백산을 쳐다보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지난 백 년간 이곳에 들어간 인간은 소림의 마불신승이 유일하지 않던가.

더구나 동혈의 입구 쪽에 기거하고 있던 갈태독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퍽! 퍽!

 '으윽! 윽!'

 이번에는 백산과 철목승이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미 금강불괴(金剛不壞)를 넘어 웬만한 고통은 느끼

지도 못하는 두 사람이 뇌가 흔들릴 정도의 고통에 자신들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초극의 고수였기에 얻어맞는

다는 표현으로 이야기될 뿐이지 일반 무림인들 같으면 죽어도 벌써 수십 번

은 죽었을 것이다.

 호신강기를 최대한 운용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엄청

났다.

 그러나 명색이 강호 최고의 고수인 두 사람도 맞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둘 중 한 사람이 공격받고 있는 틈을 타서 자신들의 무공을 이용하여 마기

를 걷어내보려 시도했으나 유형마지의 근원이 바로 옆에 있어서인지 그곳에

서 흘러나온 마기가 순식간에 채워지고 마는 것이었다.

 백산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상대방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정

지되어 있는 마기라면 모를까 끊임없이 유영하고 있는 마기 속에서 자신을

향하는 기운을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가만! 이것은 영감이 사용했던 그 무공?'

 백산의 머리를 번뜩 스치는 생각, 갈태독이 펼쳐 보였던 무상신법. 이 늪

같은 곳에서 기척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무공은 그것밖에 없다.

 '그럼 저 사람은?'

 '철 대협! 혹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저자가 그 영감이 말했던 마불신승

이 아닐까요?'

 그것밖에 없었다. 무인이라면 더구나 초극고수라면 오감을 넘어서 육감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초극고수 두 명의 육감조차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공은 갈태독이 보여주었던 무상신법밖에 없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네. 조금 전 우리를 공격했던 무공은 분명 소림의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네!'

 말이야 그리 하고는 있지만 두 사람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숨을 쉴 수도 없고, 아무런 먹을 것도 없는 이곳에서 어찌 인간의 몸으로

백년 이상을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

이 살아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귀식대법도 한계에 왔는지 서서히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

인 것은 늪 상태에서 가해지는 충격이라 공기중보다는 그 위력이 반감된다

는 것이다.

 '공기가 있어서 바람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이 마기를 한 곳으로 모으는

것도 가능할 텐데….'

 혼자서 중얼거리던 백산의 얼굴이 일순 환하게 밝아졌다.

 '내가 바람인데 대기는 왜 찾는 거지?'

 지금껏 백산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있어야 광풍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바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여태껏 백산이 바람을

만들었던 방법, 자신의 내공을 이용해서 몸 주위의 대기를 변화시키는 것으

로부터 시작했다.

 일상적으로 가볍게 할 수 있었기에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이렇게 늪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유형물 속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이 없었다.

 일단은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상대를 찾아야 했다.

 백산의 몸이 그 자리에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외부의 물리적인 힘을 이용

하는 것이 아닌 내공을 이용해서 스스로 회전을 시작한 것이다.

 몸의 회전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백산의 몸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돌

아가자 마침내 주변의 마기가 조금씩 백산의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

력한 회전력이 질척한 마기를 감아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텅!

 강력한 충격파가 다가왔으나 백산의 몸이 만들어내는 회전력을 뚫지 못하

고 반탄 되는 소리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아가는 백산의 몸에는 더 이상 충격을 주지 못했다.

백산의 회전이 점점 더 거세질수록 그의 주변으로부터 시작하여 공간이 생

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혈로부터 흘러나온 마기가 급속도

로 빈 공간을 점유하며 메워버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놈의 마혈에서 나오는 마기가 너무 많아.'

 마혈에서 마기가 다시 메워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혈을 중심으로 회전을 하게!'

 철목승이 급하게 전음을 보냈다.

 '좋다, 얼마나 많은지는 몰라도 한번 해보자!'

 백산의 몸이 팽이가 돌듯이 회전을 하면서 마혈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잠시 후,

 거대한 장관이 이루어졌다. 오 장여 높이에서 회전하는 백산의 몸이 동혈

속의 모든 마기들을 빨아들이듯 감아올리며 마혈의 구멍을 막아버린 것이었

다.

 더 이상 마혈에서 마기가 나오지를 못하자 동굴 속의 전경이 나타났다. 지

금껏 겪어왔던 것과 같이 사방 벽이며 천장이 다듬어 놓은 것처럼 매끈했다

.

 다만 온통 검은색 일색인 인간 같은 형체가 그들의 앞에 있다는 것만 제외

하면….

퍽!

 시야와 호흡이 확보되자 철목승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마

기로 인해 당황하고 있었는지 검은 인영은 철목승의 장을 그대로 허용했다.

 과앙!

 "카아악!"

 전력을 다한 철목승의 공격에 괴인영이 이십여 장을 날아서 동굴의 벽에

깊숙이 박히며 내는 소리였다.

 그를 감싸고 있던 마기가 희미해지며 나타난 얼굴.

 백산의 예상대로 스님이었다.

 입고 있던 가사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헤어져서 가슴과 엉덩

이 부분만 조금 남아있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팔과 다리, 그것은 인간의 몸

뚱이가 아니었다. 건조한 사막에서 수백 년간을 묻혔다 발굴된 목내이(木乃

伊)처럼 뼈와 가죽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크르르!"

 마치 굶주린 야수의 울음소리 같은 음향이 마불신승이라 짐작되는 괴인영

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어떻게 저런 상태로 살아있을 수 있는 거지?"

 철목승의 경악스런 외침이었다. 아무리 기담과 괴사가 많은 곳이 강호라지

만 저것은 정도가 지나치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몸에 검은 동공만 남아

있는 목내이(木乃伊).

 "커억!"

 그 목내이의 공격이었다. 갈태독이 무상신법이라 칭했던 천고의 신법, 움

직임도 없는 것처럼 순식간에 철목승을 강타해버린 것이다.

 이어서 마불에게서 쏟아지는 소림의 무상 절기들, 백보신권(百步神拳), 용

왕유권(龍王柔拳),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 구련

조화인(九蓮造化印) 등등 백보신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절기들이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펼쳐도 엄청난 무공들이 공간마저 장악한 채 예비

동작도 없이 철목승의 몸에 그대로 작렬하고 있었다.

 사라진 마기는 지금껏 두 사람을 괴롭히던 상대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

으나, 그 상대가 펼친 무공의 강도도 훨씬 강해져서 철목승의 전신을 강타

하고 있었다.

 호신강기를 이용해서 온몸을 감싸고 있다고는 하나 소림의 무상절기(無上

絶技)들이 주는 충격은 엄청났다. 동굴의 사방 벽에는 철목승의 신체가 만

들어놓은 흔적이 수십 개가 생겨나고 있었다.

 "철 대협, 저 괴물 같은 중을 제 앞으로 밀어붙일 수 있겠습니까?"

 보다 못한 백산이 철목승에게 전음을 날렸다. 육장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도를 이용하면 저놈의 몸을 자를 수 있을 것이다. 금

강불괴를 넘어선 갈태독의 몸도 잘라내었던 비도가 아니던가.

 그러나 철목승은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하자며 못할 것도 없지만 무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만

큼은 자신이 해결하고 싶었다.

 마도 서열 일위라는 천마심공(天魔心功)을 익힌 자신이다. 이 싸움은 마불

과 철목승의 싸움이기 이전에 정도의 최고라는 소림의 잊혀진 무공과 마도

최고무공과의 싸움인 것이다.

 갑자기 철목승의 몸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공간을 점유하니 어쩌니 해도 저것은 신법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눈에 잡히지 않는 신법일 뿐이다. 시선에 잡히지도 않는 자를 빠르기로 상

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철목승이 눈마저 감아버렸다. 백산이 갈태독과 비무 때 행한 것과 같은 방

법이었다. 어느 순간 자신의 턱 쪽으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파, 시작은

없고 끝만 있는 강기였다.

 철목승의 목이 그대로 꺾여졌다. 보통 사람들이 목을 뒤쪽으로 젖히는 그

런 모양새가 아닌 마치 부러진 것처럼 직각으로 꺾인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공격을 당해서 목이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철목승

의 다음 동작은 어떻게 인간의 몸이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놀라

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혼(死魂)!"

 고개가 꺾임과 동시에 철목승의 두 손이 비쾌하게 뿌려진 것이다.

 콰앙!

 "카악!"

 철목승의 장에 격중된 마불이 벽에 거칠게 부딪치면서 내는 비명소리였다.

 지금껏 일방적으로 당하던 철목승이 처음으로 상대방을 타격했고, 천고의

신법이라던 무상신법이 깨지는 소리였다.

 천축유가술(天竺柔加術), 달리 절골유가술(折骨柔加術)이라고 부르는 천축

 밀교(密敎)의 비전신공(秘傳神功). 온몸의 모든 관절을 자신이 원하는 대

로 조절할 수 있는 비공(秘功)이다.

 "멸혼(滅魂)!"

 더 이상 무상신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며

 나온 철목승의 외침이었다.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뒤쪽으로 날아가는 마불신승을 따라 붙으며 철목승

이 커다란 외침을 토해냈다.

 "무혼(無魂)!"

 퍼엉!

 천마장법의 삼초인 무혼에 격중당한 마불신승의 몸통이 동굴 벽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대…협! 나의 심장…을 꺼내…시…오! 그래…야 죽을 수…있…, 마…기…

를 흡입…하…면…다시 부…활…."

 전력을 다한 천마장법(天魔掌法)이었고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소림의 비전인 혜광심어, 전력을 다한 철

목승의 공격에도 괴물이 된 마불신승은 살아있었다.

 단지 희박해진 주변 마기 때문에 힘이 약해졌을 뿐이었다. 불문(佛門)의

고승이었던 마불신승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원은 물도, 공기도, 자

비도 아닌 바로 마기(魔氣)였던 것이다. 유형마지의 마기를 먹고, 마기로

숨쉬며, 비록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지금껏 백년을 그렇게 생존해 왔다.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철목승이 넋을 잃었다. 어찌 인간의 몸으로 마기

를 먹고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괴사였다. 그런 그를 더욱더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은 마불신승이 자신을 살아나게 할 수 있다고 했던 그

마기가 천장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백산의 회전력도 더 이상 마기를 잡아두지를 못하는지 넘치는 마기가 천장

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마불신승이 박혀있던 동굴 벽에서 두 줄기 시커먼 묵광이 죽 뻗어

 나왔다.

 '아차!'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철목승이 마불신승의 심장 어림을 향해서 전력의 수

강을 날렸다.

 카앙!

 "크악!"

 쇳소리와 괴성이 동시에 들리고 철목승의 목이 그대로 뒤로 꺾였다.

 순식간에 공간을 격하고 그를 공격한 것이다.

 "백 소협, 신승을 자네 쪽으로 보내겠네! 심장을, 반드시 심장을 잘라내야

 하네."

 결국은 철목승이 백산에게 그의 처리를 일임하고 있었다. 다시 마기에 의

해서 힘을 얻게 될 마불을 천마장법만 사용해서는 완전하게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혼(無魂)!"

 더 강한 무공을 두고도 천마장법만을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 철목승이나 백산이나 전력을 다해서 무공을 펼친다면 마불신승을 가루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지하 사백 장, 자신들이 빠져나갈 방

법이 없다.

 과앙!

 거대한 쇠 구슬 두 개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불신승이 백산이 회

전하고 있는 곳으로 튕겨져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백산은 무서운 속도

로 회전을 하면서도 철목승과 마불신승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저놈의 신법이란 것을 겪어보았다. 공간을 깨트린다는 그의 무공으로

도 완전하게 제압하지 못했던 가공할 신법, 갈태독이 펼쳤던 것과는 또 다

른 경지였다.

 갈태독의 경지는 아직 실체가 존재하는 곳 삼십 장 정도의 영향권 내에서

만 가능했지만 저 마불이란 중은 아예 그런 영향권이 없는 것 같았다.

 물러나고 다가섬이 너무나 자유로웠다. 자신의 호흡이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도 느끼질 못하는 것인지, 긴장된 표정으로 두

 사람의 결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갈태독과의 비무에서는 백산이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펼쳤던 무상신

법은 백산도 완전하게 깨트리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소림의 신승 하나를 제압하지 못해서 강호 무림의 최고 고수 두 사

람이 합공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으윽!"

 백산의 내부로부터 울려나오는 비명이다. 이제는 늪이 아닌 진흙처럼 엉겨

있는 마기를 회전시키는 것에 한계가 온 것 같았다. 수천비와 각천비를 자

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일반 무인들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그런 경지까지

발달한 그의 근육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에 백산의 몸이 견디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철목승의 전음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날아오는

마불의 동체가 희미하게 시야에 잡혔다.

 백산의 오른쪽 손목으로부터 수천비(手天匕) 세 개가 튀어나와 삼각형 모

양을 만들며 전면을 향해서 머리를 꼿꼿이 세웠다.

 '혈극폭(血極爆)!'

 내심으로 지르는 소리였다. 그도 전력을 다했는지 수천비가 붉음을 넘어서

 새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카카강!

 마치 쇠끼리 부딪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불신승의 심장 주위가 그대로

도려졌다.

 툭!

 완전히 검은색의 둥그런 물체가 밖으로 튀어나와서 구르고 있었다. 마불신

승의 심장이었다. 등쪽에서 관통한 백산의 수천비 세 개가 그대로 심장 주

위를 절개하며 마불신승의 몸과 함께 날려버린 것이다.

 둥! 둥! 둥!

 뛰고 있었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검은 심장이 계속해서 수축작용을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쓰러져 있는 마불신승을 향해서 조금씩 움직여간다는 것

이다. 마불신승과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뛰는 소리가 빨라지고 나아가는 속

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에잇, 이런 나쁜 놈!"

 마불신승을 향해서 움직여가고 있는 검은 심장을 새하얀 강기에 휩싸인 백

산의 발이 지그시 내리눌렀다.

 퍽!

 "캬아악!"

 마불신승의 피부보다는 심장이 더 약했는지 철목승의 공격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던 마불신승의 몸뚱이와는 달리 쉽게 부서졌다.

 "정말 믿지 못할 괴사 중 괴사로군! 몸에서 떨어져 나온 심장이 스스로 움

직이는 것도 모자라서 비명을 지르지를 않나,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백산의 발에 밟힌 채 비명을 지르는 심장을 쳐다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철

목승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나를 빨…리 저…쪽 마기가 적은 쪽으…로…."

 "흐익! 억!"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심장이 떨어져나가 죽은 줄 알았던 마불신승의 입에서 뜻밖에도 살아있는

인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아직도 살아있단 말이야?"

 백산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심장이 떨어져나간 인간이 살아있을 수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멍하니 서 있는 두 사람 중 먼저 정신을 차린 철목승이 마불신승의 몸을

안아들고는 마기가 약한 경사지 위로 몸을 날렸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살 수 있는 거요?"

 "갈 시주가 보내서 왔는가?"

 백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마불신승이 철목승 쪽으로 고개를 돌리

며 입을 열었다.

 탁한 목소리였지만 점점이 끊어지던 목소리가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왔는지

 알아듣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철목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궁금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숨

도 쉴 수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이런 지옥의 공간에서 백년씩이나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듣기만 하시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이윽고 마불신승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처음 이곳에 뛰어들 때부터 살아나간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자기 한 몸으로 이곳을 막아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자신을 이곳까지

 이끈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사형인 마료신승이 주었던 호신부 하나가 들어있었다. 바

로 항마불주(降魔佛呪),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역대 고승의 사리

로만 만든 염주로 가장 불심이 깊었던 사형이 백년 간이나 지니고 있던 물

건으로, 마혈의 위험을 감지한 사형이 자신의 신변을 걱정해서 쥐어준 것이

다. 마혈 입구에 도착한 마불은 경악했다.

 거대한 마력이 자신의 심령에 침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혈 입구를 막

는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유형의 마기와 대결이 시작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자신의 손에서 항마불주가 없어졌다고 느

끼는 순간 그는 마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마기를 먹고 마기로 숨쉬기 시작

했던 것이다.

 이성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마기의 늪 속을 헤매며 살아왔다.

 그에게도 의식이 돌아오는 때가 있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마혈

에서 솟아 나오는 마기가 현저하게 약해진 때가 있었던 것이다. 거의 하루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맑은 정신을 가진 하룻동안 그의 사고 능력

이 범인이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달되었던 것이다. 자신도 그 이

유를 알지 못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암기만 하고 있었고, 소림 역사상 아무도 익히지 못했다

던 무공들이 하나씩 깨달아지는 것이었다.

 마기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어야했건만 자살(自殺)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조금씩 깨달아가는 소림의 비전들, 용왕유권, 아라한신권, 관음청강수, 구

련조화인, 무상각(無上脚) 등 비법들을 수용하기에는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이곳을 나갈 수 없다는 것도, 무공을 깨달아 봐야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잊고, 새로운 무공을 탐닉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항마불주를 찾아서 들고 있다가 이성을 잃음과 동시에

 항마불주도 같이 사라진다.

 저 깊숙한 마음속에 있는 불심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는지 항마불주만

은 파괴하지 못하고 따로 두곤 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항마불주 때문에

불자의 마음이 남아있는지도 몰랐다.

 "바로 이곳입니다."

 마불이 백산이 걸터 앉아있는 바위 깊은 곳의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백산이 고개를 숙여 마불신승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자 손 하나 정도 들어

갈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고 그곳에서 희미한 광채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에 손을 집어넣어 그 광채 나는 물체를 꺼냈다. 손목에 차고 있으면

딱 좋은 정도의 크기에 은은한 자광이 나는 염주였다.

 사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인지 일정한 형태가 없이 각각이 서

로 다른 모양으로 된 특이한 염주였다.

 백산 또한 손에 쥐고 있으니 왠지 기분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손에서 놓기 싫다는 강렬한 감정을 뿌리치고 마불신승에게 항마불주를 내

밀었다.

 "아닐세! 항마불주와 나의 인연은 끝났네. 이제부터는 자네가 지니도록 하

게. 그것은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니네. 다만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

과 사기가 침입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네."

 마불신승이 고개를 흔들며 백산을 쳐다보았다.

 "시주는 이름이 무엇인가?"

 "백산이라고 합니다."

 정중한 대답이었다. 평소의 백산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

신도 왜 이렇게 공손하게 대답하고 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검은 바

다와 같은 신승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하얀 산이라… 눈 덮인 흰 산에는 검은색이 들어갈 틈이 없지… 모든 눈

이 녹아버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목소리로 홀로 중얼거리던 마불신승이 한층 강렬해진 눈빛으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운명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네? 아…! 네!"

 조금 전부터 이상한 소리만 하며 갑자기 물어오는 말과 마불신승의 알 수

없는 기도에 위축되었던 백산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순간 가만히 누워있던 마불신승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가죽밖에 남

아있지 않은 두 손으로 백산의 머리를 감쌌다. 이어서 들려오는 장엄한 울

림, 백산의 머릿속으로 마불신승의 음성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자네와 내가 만난 것은 부처님의 뜻이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그대에

게 주라는 계시인 게야, 거부하지 말게나.'

 백산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마불신승이 주입하는 것을 거부하려 하자 하는

말이었다.

 '앞으로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네. 운명으로 치부하지 말고 부디 세상에

자비를 베풀도록 하시게.'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마불신승의 머리로부터 수많은 지식들이 백산의 머

릿속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제령심연불법(制靈深淵佛法).'

 불가에서 내려오는 심법 중의 하나로 교화가 불가능한 마인이나 악인을 제

압하여 그들의 머릿속에 강제로 불심을 주입할 때 쓰였다는 사술 같은 불가

의 무공이다.

 그가 익혔던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을 비롯한 그동안 깨달았던 모든 무공

이 백산에게 주입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상대능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

던 자신의 최고 불력(佛力)인 '무상대법력(無上大法力)'을 백산의 백회혈을

 통해서 밀어 넣은 마불신승의 얼굴에는 온화함을 넘어선 숭고한 불심이 어

려 있었다.

 목내이 같은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철목승은

느낄 수 있었다. 부처님만이 지을 수 있다는 염화미소가 피어나고 있음을…

.

 "아미타불(阿彌陀佛)!"

 철목승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불호였다.

 "두 분 시주는 이만 나가도록 하시지요.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마불신승이 백산의 품에 있던 보퉁이를 빼앗아 들며 뒤돌아섰다.

 "신승!"

 백산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자신의 옷으로 감싸두었던 광천뢰가 없

어지자 허전해졌는지 정신을 차리며 마불신승을 불렀다.

 마혈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마불신승이 뒤돌아서며 두 사람을 쳐

다보았다.

 "백 시주! 제가 한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가시는 걸음걸음에 부처님의 자

비가 함께하기를…."

 백산만의 착각인지 걸어가고 있는 마불신승의 머리 위로 황금색의 아름다

운 빛 무리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아미타불! 신승께도 부처님의 가호가…."

 백산과 철목승이 경공을 전개하여 이미 피해있던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하

고 있었다. 광천뢰가 폭발하면 절벽이 무너질 것으로 보고 일행은 이미 저

멀리 피신해 있었던 것이다.

 쿠르릉! 쿠웅!

 설봉산 전체가 울리는 듯한 떨림이 일더니 저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폭발

음이 들려오고 귀혼곡의 절벽이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허공에 떠 있던 백산과 철목승은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있는 귀혼곡을 바

라보고 있었다.

 평생을 무소유의 삶을 살며 부처님의 자비를 몸으로 실천했던 위대한 두

불자의 무덤자리가 생겨났다.

 빈 몸으로 왔다가 얻은 것이라고는 잿빛 가사 한 벌뿐, 무수한 선행과 불

심을 남겼고 쌍천불이라는 명예도 얻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 귀혼곡에서

자신을 버리고 구도자의 길을 걸었던 기인들.

 백산은 숙연해지는 마음에 가만히 합장을 했다.

 "이럴 땐 눈물이란 것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군요!"

 백산의 쓸쓸한 목소리가 나지막하니 울렸다. 네 살 때, 어머니와 동네 사

람들의 죽음과 함께 말라버린 눈물, 마음은 울고 있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 때도, 장 노인의 죽음 때도….

 "마음속으로 우는 것이 진정한 울음이라네! 자, 그만 가세!"

 그러한 백산을 위로라도 하듯이 철목승이 백산의 등을 두드렸다. 그도 몰

랐다. 백산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한을 태우고 또 태워서 재가 되고 그 재가 눈물을 막아버리면 그렇게 되

는 것이지….'

 완전히 무너져서 절벽이란 말조차 무색하게 된, 이제는 거대한 바위산이

되어버린 귀혼곡의 끝으로 두 사람이 내려섰다.

 "죽어서 영광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비석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손에 항마불주를 들고 있는 백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앞에

있던 십여 장 크기의 바위에 무엇인가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런 백산을 바라보던 철목승도 그 자리에 가부좌를 하며 사고(思考)의 사

념(思念)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혈 속에서 깨달은 천마심공의 또 다른 경지

, 그것을 정리하고자 함이다. 자살이라는 극약처방 속에서 얻어진 심득(心

得), 지금껏 천마파천수라무가 최고의 경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천마파천수라무는 시작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아직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

지만 그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가 존재했다. 단순한 강함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제는 백산의 수준에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당히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인지 백산의 작업은 지루할 정도로 오랫동

안 지속되었고, 거의 세 시진이 지난 후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철목승 곁으

로 내려섰다.

 철목승이 고개를 들어 백산이 만들어놓은 것을 쳐다보고는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거대한 우담화(優曇華) 두 송이였다. 십여 장 크기의 거대한 바위

가 철목승이 운공 중에 보여주었던 우담화의 모양으로 깎여있었던 것이다.

 마불신승이 백산에게 넣어주었던 무상법력을 운용하여 만들어놓은 우담화

에는 쌍천불이라 불리던 마료와 마불, 두 신승의 마음이 담겨있는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아름답군요!"

 언제 다가왔는지 갈태독과 조천영, 석숭 등이 다가와서 백산이 만들어놓은

 우담화를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군요… 이름을 새기는 것은 싫어하

실 것 같고.'

 백산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로부터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이곳을 지나다 꽃 모양을 한 두 개의 거대

한 바위를 발견한 사냥꾼에 의해서 우담화는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

하여, 쌍연암(雙蓮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고승이 쌍연암의 두 송이 꽃이 우담화인 것을 알아보고 암자를 세우

게 되니 묘하게도 그 이름이 쌍천사(雙天寺)였다고 한다.

*     *     *

 천장지옥마 갈태독을 포함하여 이제 이십삼 명이 된 일행은 설봉산을 넘어

 다음 목적지인 형산(衡山)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마차 길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소살우와 모사가 죽도록 고생했

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무림인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는지 아무도 보이

지를 않았고, 가끔씩 눈에 띄는 시체만이 비도 쟁탈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설봉산을 뒤로 하고 형산현(衡山縣)에 도착한 일행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구해 입는 일이었다. 이십 명이 넘는 일행 중 여자들을 제외한 남자들

의 옷은 그야말로 상거지 꼴이었다.

 조천영이 한 말도 있었지만 웬일인지 들어가는 돈은 있어도 나오지를 않는

다던 백산의 돈주머니가 열리며 광견조와 갈태독 등 전원에게 옷을 한 벌씩

 사주는 것이었다.

 "살우! 다 떨어진 옷은 왜 다시 챙기는 거냐?"

 소살우를 포함한 광견조 전원이 거의 넝마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옷을 버리

지 않고 다시 차곡차곡 개켜서 따로 보관하는 것을 두고 석두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직 입을 만한데요 뭘, 산에서 입어야죠."

 소살우의 말에 일행은 놀랐다. 다 떨어져서 입는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무

리가 있는 옷임에도 다시 입는다고 한다.

 저것은 절약이 몸에 배어서 나온 행동이 결코 아니다. 그만큼 힘들게 살았

기에 헤졌다 해서 바로 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분의 체면 때문에…."

 계속 넝마를 입고 있어도 괜찮은데 철목승의 체면 때문에 갈아입었다는 소

리였다.

 "지독한 놈!"

 소살우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갈태독이 백산을 쳐다보며 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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