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8/84)

제2장 파멸안(破滅眼)

 주는 것 없이도 미워지는 놈인 운수대통 백산은 지금 비무대 위에서 온몸

에 시퍼런 기운을 발산하며 자신의 상대가 되는 혈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서 창살같이 서 있는 머리와 푸른 광채를 내뿜고 있는 그의 눈

은 마치 피를 갈구하는 한 마리의 야수를 연상시켰다.

 반면에 핏빛 가사를 입은 혈승은 무표정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

 "크크크! 이봐, 돌중! 네놈의 대가리하고 나의 철구하고 어떤 놈이 더 단

단할까? 생긴 것은 비슷하게 생겼는데 말이야. 한번 시험해 보자고, 킥킥킥

!"

 얼굴 가득 거북살스런 웃음을 흘리며 혈승을 자극하던 백산이 순식간에 거

리를 좁히며 오른발을 힘차게 휘둘렀다. 대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시퍼런 철

구들, 그의 말처럼 세 개의 철구가 혈승의 머리로만 집중되면서 날아들고

있었다.

 백산의 조롱에 기분이 상했는지 표정이 약간 붉어진 혈승이 곧장 뒤로 물

러나며 한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순간 혈승 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손 그림자. 불법을 통해서 모든 사악함을

 제거한다는 포달랍궁(包達拉宮)의 삼대 장공의 하나인 밀종대수인(密宗大

手印). 거대한 손바닥이 천천히 백산의 앞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아…! 밀종대수인이다."

 여기저기에서 관중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온몸을 덮치듯이 달려드는 거대한 손바닥을 지켜보던 백산이 거칠게 외쳤

다.

 "나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부숴버린다! 캬-악!"

 외침소리와 함께 그의 손발이 무질서하게 휘둘러지자 열두 개의 철구는 거

대한 손바닥의 각 결에 해당하는 부분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백산의 발놀림

과 손놀림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는 사뭇 달랐다.

 시퍼런 귀화를 뿜어내며 나아가는 그의 발놀림은 마치 엉기적거리는 원숭

이의 걸음걸이 같기도 했고, 뒤뚱거리는 거위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철구를 피하기 위해서 몸에 습득한 몸 동작으로 남들이 보기에는 무척 우

스꽝스러운 동작이지만 백산은 최고의 절세 보법이라 우기며 '천방지축팔방

무(天方地軸八方舞)'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보법으로 보기에는 자신도 이상했는지 건달들이 춤사위 같아 보인다는 아

부성 발언에 의해 무(舞)로 바꾸었던 것이다.

 백산의 이상한 몸놀림에 관중석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참 특이한 몸놀림이네요? 왜 저런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는 거죠?"

 백산의 우스운 몸놀림에 소운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풍신개에게 물었다.

 "보기에는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열두 개씩 되는 철구를 가지고는 저렇게

밖에 안 된다. 생각해 봐라. 열두 개의 철구를 내뻗고 그것도 전부 다른 방

향으로 다시 걷어들이면 그것들이 어디로 오겠느냐? 자신의 몸을 향해서,

더군다나 뻗어 냈을 때와 같은 힘으로 되돌아오는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는 저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되돌아오는 철구 전부를 동시에 다 관

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런 것은 나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구나. 아마도

 저 친구는 저 철구를 가지고 오랫동안 생활을 해서 이제는 자기 몸의 일부

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검을 잡은 사람과 비교해 신검합일의 경지에 들

었다고 보면 될 거야. 어쩌면 그 이상이 되겠지…. 하여간 대단한 친구군!

저 백산이란 친구는."

 풍신개 대신 철목승이 백산의 행동에 대해서 구소운에게 설명을 하자 곁에

 있던 풍신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이제야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 같군.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 녀석의 움직임을 우스갯짓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적어도 내 수준 이상

 되는 자라면 저 보법의 무서움을 알겠지."

 "왜 저런 실력이 있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행동했던 거죠? 처음부터 저렇게

 했더라면 운수대통이란 우스운 별호도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니에요?"

 "글쎄 모르지. 저놈이 무슨 속셈이 있는지…."

 관중들의 웃음과 야유 속에 비무대에서는 백산이 휘두르는 철구의 움직임

이 점점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새파란 기운을 머금은 열두 개의 철구는 사

방팔방에서 혈승을 압박하고 있었다.

 내밀어진 손으로부터 철구가 날아오고 철구를 피하면 주먹이, 주먹을 피하

면 팔꿈치가, 그것을 피하면 어깨가, 백산의 온몸이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

어 혈승의 전신을 노리고 있었다.

 백산이 사부라 칭했던 투귀(鬪鬼) 오구의 격투술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

는 순간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철구와 회수되는 모든 철구들이 혈승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던 것이다.

 철구들이 만들어낸 살기에 긴장한 혈승의 목 언저리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무공의 고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어제 종천수로부터 이놈이 제물로 선택되었다고 할 때만 해도 힘겹게 져주

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놈을 강력한 우승 후보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놈의 실력은 장난이 아니다. 아무리 광혈단(狂血

丹)을 복용하고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심으로 바짝 긴장한 혈승은 대충 져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파란 철구는 걸리는 것이라면 뭐든지 파괴시키고 있었다. 철구에

 의해서 비무대 바닥 여기저기에 파인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혈승을 향해서 파상적인 공격을 퍼붓던 백산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

다. 그리고 혈승을 향해서 거북스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봐, 땡중! 혹시 십여 년 전에 뇌산(雷山)에 간 적이 있나? 거기서 사냥

꾼 한 명을 살해한 적이 있냐고."

 별 뜻은 없었다. 지금이 투신전이니 이곳에 소속된 놈들이 많다고 생각한

백산이 스쳐 지나가는 투로 혈승을 향해서 물었을 뿐이다.

 앞으로 몇 번의 비무를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물어야 될 일이었

다.

 "뇌산(雷山)? 사냥꾼? 아! 그 덩치만 커다란 사냥꾼 녀석. 그래 간 적이

있지. 아마도 종천수랑 같이 갔을 거야. 오랜만에 했던 나들이라 아직도 기

억이 생생하군. 정말이지 오랜만에 맛보는 피 맛이었어. 그래 그놈과는 무

슨 관계지?"

 혈승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투신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거의 삼 년

간을 비무에 참가하지 못했었다. 몸도 쑤시고 하던 차에 마침 루주로부터

일을 받은 것이었다.

 사냥꾼 하나를 처치하는 간단한 일이었으나 거의 삼 년 만에 맛보는 즐거

움이었기에 기억에 오래 남았고, 원독에 찬 사냥꾼의 눈이 이따금 생각나곤

 했다.

 백산의 눈에서 살광(殺光)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버지를 해

친 놈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었고,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아버지의 얼굴마저도 희미해지려 한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냥을 하시겠다며 떠나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을 떠올리며 얼마나 다짐했던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도 아버지

의 유골을 모시지도 못한 채 방치해 두고 있지 않는가!

 자신에게는 커서 어떻게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단지 강구두가 멋있

어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북경으로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자신의 친지를 해한 인물들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

다는 것이 백산의 생각이었고, 목적 없는 그의 삶에 버팀목이었다.

 "그분이 내 아버지셨다. 네놈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해한 그분이 나에게는

 하늘같은 아버지였단 말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의 삶을 되돌려 받을 차

례다!"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인 백산의 몸이 서서히 혈승

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두 개의 철구들이 천천히 위로 솟아오르고 백산의 몸에서는 한층 진해진

 청광과 함께 주변을 태워버릴 듯한 진득한 살기가 묻어 나왔다.

 드디어 백산이 내공을 조금씩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필요이상으

로는 쓰지 않았던 것인데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살기로 인해 평소에 쓰던

것 이상의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백산 주위를 감싸고 있던 청광 속에서 혈광이 조금씩 비쳐 나오기 시작했

다.

 "네가 그놈의 아들? 그럼 지금까지는 우리를 찾기 위해서 무공을 속이고

있었단 말이냐?"

 자신이 생각해도 백산의 무공이 예사롭지 않은지 혈승이 당혹스런 표정으

로 백산에게 물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

기 시작했다.

 "그렇지. 네놈들을 찾기 위해서 십 년을 기다렸다. 이제 네놈을 시작으로

해서 이곳 만상투인루와 관련된 놈들은 모두 죽는다. 우리 사냥꾼은 말이야

 한번 노린 사냥감은 절대 포기를 안 해."

 주변의 대기를 찢어버릴 듯한 살기를 내뿜으며 백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백 공자의 행동이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않아요?"

 백산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밀하게 쳐다보고 있던 소운이 백산의 행동이 조

금 이상해졌다는 것을 느꼈는지 풍신개를 보고 물었다.

 "글쎄다. 갑자기 살기가 강해진 것 같구나. 지금까지는 인위적으로 만든

살기였는데 지금은 본심에서 나온 살기라고 생각되는구나. 무슨 일이 있기

는 있는 것 같은데 저 녀석이 도통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

 풍신개를 비롯한 일행도 백산의 주위에서 거세어지는 전율적인 살기를 느

꼈는지 약간 걱정스런 표정으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저번에 강구두의 부하가 했던 지천 참사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

 지천 참사를 얘기할 때 표정이 굳어지던 강구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이

오십이 다 된 그가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나도 네놈한테 져줘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잘됐군. 네놈

을 찢어버리고 루주한테 잘 말하면 되겠군."

 마음이 편해진 혈승이 미소를 지으며 내공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새카만 기운이 서서히 뿜어져 나와서 허리께로 모아진 그의 양손으

로 모였다.

 저주의 악마사사공(惡魔邪死功)을 운기하고 있었다.

 자신을 포달랍궁의 반도로 만들어버리고 일생을 도망자로 살게 한 무공이

고 또한 최고로 만들어주었던 그 악마사사공이었다.

 처음엔 커다란 구체 모양을 하고 있던 악마사사공의 기운은 점점 압축되더

니 어른 주먹 크기만큼 작아졌다. 새카맣다 못해 하얗게 보이는 악마사사공

의 구체는 마치 악마의 눈빛을 보는 것처럼 섬뜩했다.

 악(惡)-마(魔)-사(死)-혈(血)-무(霧)!

 혈승의 통렬한 외침과 함께 새카만 빛을 띤 악마의 눈동자가 주변의 대기

를 진공상태로 만들며 빛살 같은 속도로 백산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공간을 장악하고 있던 백산의 철구 중의 하나가 악마사사공(

惡魔邪死功)의 결정체인 악마의 눈동자와 거칠게 부딪쳤다.

 쿠-앙!

 격렬한 소리와 함께 맞부딪친 두 개의 구체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거칠게

튕겨나갔다.

 혈승이 놀란 표정으로 백산의 철구를 바라보았다. 그의 상식으로는 저 철

구가 가루가 되어 흩어져야 하는데 멀쩡했던 것이다.

 혈승은 굳어진 표정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백산의 몸놀림은 여전히 우스

꽝스러웠고, 혈승은 더욱더 강해진 수십 개의 강기 덩어리들을 동시에 뿌려

댔다.

 말보다 행동이 빨랐음인지 십여 개 이상의 강기 덩어리 구체가 백산을 향

해서 쏟아지고 뒤이어 혈승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악(惡)-마(魔)-사(邪)-사(邪)-공(功)!"

 스치기만 해도 온몸을 찢어버릴 듯한 암묵 색의 공포를 간직한 강기덩어리

들은 백산의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쏟아지고 있었다.

 사방 어디에도 백산이 나아갈 곳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백산의 손과 발이 상하 좌우로 기묘하게 움직였고, 열두 개의 철구가

 몸을 보호하듯이 온몸을 감싼 상태에서 백산의 회전이 시작되었다.

 소운에게 가르쳐주었던 그 방법인 것 같았다.

 새파란 청광을 사방으로 뻗어내며 회전하는 백산과 그를 향해 달려드는 새

카만 강기 덩어리는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백산의 회전력이 점점 거세어지며 주변의 바닥재들이 튀어올라 가루가 되

어 흩어지고 백산의 몸도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 순간이다. 저놈의 강기 덩어리가 내 몸 근처에 와서 회전하는 순간 그

한순간을 노려야 한다. 목표는 저놈이 내밀고 있는 장심(掌心)."

 백산은 발에 힘을 모으자 신발 아래에서 튀어나오는 하나의 비도, 각천비(

脚天匕) 중의 하나였다. 각천비 끝에서 혈광이 살짝 빛을 발하기 시작할 때

 백산은 양팔을 수평으로 폈다가 천천히 안쪽으로 오므리고 있었다.

 더 강한 회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회전하며 오는 강기 덩어리들이 백산의 몸과 충돌하려는 순간 백산의 팔도

 제 겨드랑이로 붙었고, 지금까지보다 몇 배 이상의 회전력이 발생했다.

 그의 몸과 충돌하려던 구체들이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에 의해서 약

간씩 밖으로 튕겨나갔다.

 바람의 소용돌이였고, 회오리바람이었다. 산발한 머리와 같이 돌아가는 백

산의 몸은 한줄기의 미친 바람(狂風)이었다. 원심력에 의해서 강기들이 튕

겨진 그 한 순간에 백산의 몸은 혈승에게 전진하며 오른발을 혈승의 장심을

 향해서 쭉 내뻗었다.

 자신의 장심을 향해서 날아오는 백산의 발을 바라본 혈승은 비웃음을 흘렸

다. 지금 그의 손은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다. 전력으로 발휘된 악마

사사공(惡魔邪死功)의 근원인 장심은 금강불괴 이상으로 단단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혈승이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백산의 철구였다.

 발을 차는 모양으로 보아서 철구는 그의 상체 쪽을 노리고 다가와야 한다.

 결코 아래쪽으로는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단전 부근에서 느껴지는 이 고통은 무엇이란 말인가.

 백산의 철구 중의 마지막 하나가 위에서 아래로 원을 그리며 혈승의 단전

을 쳐버린 것이었다.

 나직이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혈승의 악마사사공이 한순간 틈을 보였고 바

로 그 때 백산의 오른발이 혈승의 장심을 그대로 차버렸다.

 푸욱!

 발로 차버린 혈승의 장심에서 검이 박힐 때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발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혈승은 놀라운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

보았다.

 악마사사공의 근원이었던 자신의 단전과 장심이 동시에 파괴된 것이다. 죽

음을 예감했다. 그 두 곳이 파괴되자 백산의 몸을 장악하여 터지기 직전이

었던 강기 덩어리들이 그 자리에서 물방울이 터지듯이 소멸되어 버렸다.

 관중석의 관중들이 보기에는 백산이 휘두른 철구 중의 하나가 우연히 혈승

의 단전에 가서 맞은 것처럼 보였다. 혈승의 장심에 붙어있던 백산의 오른

발이 힘차게 뒤쪽으로 빠지자 그곳으로부터 피가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관중들은 백산의 신발 끝에 나와 있는 비도를 볼 수가 있었다.

 "우! 우!"

 다시 한번 백산을 향한 야유가 터져 나오고, 관중석을 향해서 지그시 살소

를 배어문 백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인했다. 지금까지의 백산이

보여준 행동과는 사뭇 달랐다.

 단전과 장심이 파괴되어 무방비 상태인 혈승의 온몸을 백산의 철구가 강타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피와 살점이 널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모진 것이 인간의 목숨

인가? 사지가 없어지고 내장이 터져서 뒹굴고 있는데도 혈승은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

 "빨리 죽여라. 무인이면 무인답게 죽여주라. 부탁이다."

 혈승은 애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는 고통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죽여달라고? 아니야 아직은 멀었어. 네놈과 같이 일을 저지른 놈들

이 똑똑히 보아야해. 그리고 느껴야해. 우리 같이 천한 놈들도 복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백산의 광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부서진 혈승의 몸을 또 부수고, 다시 잘

라내는 미친 야수 같은 행동은 계속되었다.

 "어르신! 풍신개 어르신!"

 관중석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백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풍신개를 향해

서 핏기가 가신 강구두가 헐떡거리며 뛰어왔다.

 "빨리 내려가서 좀 말려주세요. 저대로 놔두면 큰일납니다. 저 녀석이 폭

주하게 되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습니다. 큰 사고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서 좀 말려 주십시오."

 다급한 표정의 강구두를 본 풍신개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표정에

서 일의 심각함을 느끼고는 비무대를 향해서 몸을 날렸다.

 어찌 인간이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강호 생활이 벌써

오십 년이다. 전쟁터에도 가 봤고, 그 잔인하다던 백살마대의 살육도 보았

다.

 그러나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인간이었던 혈승의 육신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머리털 하나 없는 머리 하나가 공포에 가득 찬 눈을 한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무대에 도착한 풍신개는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야, 이 녀석아! 이게 무슨 짓이냐? 그냥 죽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을….

"

 풍신개가 나무라며 백산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헉!"

 백산의 눈동자를 바라본 풍신개가 헛 바람을 삼키며 내밀던 손을 순간적으

로 멈췄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그저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 인간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투명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다시금 혈승의 머리 쪽을 향해서 돌아가고 백산

의 양손이 박수를 치듯이 합쳐졌다.

 퍼억!

 달려드는 철구가 머리밖에 없는 혈승의 양쪽 관자놀이를 동시에 치자 산산

이 부서져 흩어졌다. 그렇게 혈승의 육신은 조각조각 잘게 부서진 채 비무

대 바닥에 널려 있었다.

 또다시 혈승의 잔해를 분해하기 위해 찢어진 육편을 찾는 백산을 향해서

풍신개가 거칠게 고함을 질렀다.

 "갈…!"

 풍신개의 고함소리에 투명하던 백산의 눈빛이 점차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참상을 보고도 별 느낌이 없는지 그의 표정은 무심하

기 이를 데 없었다. 이미 한번 경험해본 일이다.

 분노에 휩싸이면 자신도 주체할 수 없다.

 "인간이 아니라 완전히 짐승이구먼."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백산의 얼굴이 침울하게 변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

어 자신이 행한 일 때문에 공포에 질린 채 이곳저곳에서 구토를 해대는 관

중들을 쳐다보았다.

 "그만 가자. 네가 왜 이렇게 변하는지는 모르겠다만 감정을 자제해라. 너

의 지금 이런 모습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어서 가자."

 침울한 표정으로 풍신개를 쳐다보던 백산이 비무대 바닥에 힘없이 무너졌

다.

 강구두가 묵고 있는 처소에 풍신개와 철목승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

다.

 "왜 말하지 않았느냐?"

 풍신개가 강구두를 향해서 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강구두가 흠칫 굳어진 표정으로 풍신개를 바라보았다.

 "저놈이 분노하면 이성을 잃고 살육을 전개한다는 것 말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놈의 눈은 전설로 내려오는 파멸안이다."

 파멸안(破滅眼).

 강호무림에 전설로만 회자되어 온 저주의 눈(眼).

 유리알처럼 투명한 동공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고, 그 상태에

서는 이성적인 판단능력도 피아(彼我) 구별도 없다고 한다.

 오로지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본능만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멸절시

켜 버린다.

 "형님! 그 친구가 파멸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까?"

 철목승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본 백산의 무공은 초일류를 이미

 넘어선 상태였다. 그런 그가 이성을 잃고 살수를 전개한다면 강호무림에서

 막아낼 수 있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파멸안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습니다만 과거 지천에서 보여준 녀석의 행

동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강구두가 풍신개와 철목승에게 십일 년 전에 일어났던 지천사건을

끄집어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조금 빨리 왔더라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었을 텐

데 하던 백산의 투명한 눈동자가 말입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한지 강구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풍신개와 철

목승의 표정은 더 할 나위 없이 심각해졌다. 강구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한 것 같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강호무림이 아니야. 무림이야 어떻게 되든지 이제는

상관도 없어.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육을 자행하는 저 녀석이 불쌍해서 그런

 것뿐이야. 그것만은 막아야 할 텐데… 철 아우! 자네 정도면 그 녀석을 막

을 수 있겠나?"

 답답한 마음에 풍신개가 철목승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물었다.

 "만일 백산의 무공이 지금 정도라면 제가 어떻게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이라면 저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녀석의 진실한 무공

수위를 파악할 수가 없더군요."

 "최대한 그 녀석을 따라다니면서 감시를 하는 수밖에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어. 어쨌든 두고 보자고. 이제는 우리도 알았으니 어떻게든 대처를 해야

지…. 네 말에 따르면 녀석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했을 때만 파멸안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혈승이란 놈에게 보여준 살기도 그렇고. 녀석을 말

리는 방법은 분노하지 않게 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만일 그런 일이 생

긴다면 그것이 단체이던 개인이던 사라지게 될 것이야. 그것도 가장 처참하

게 말이지."

 한숨을 몰아쉬는 세 사람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우려의 기색이 역력했

다.

 파멸안(破滅眼), 그것이 백산의 운명을 또 어떤 곳으로 몰아갈는지….

*     *     *

 달무리가 걸려진 짙고 음습한 밤.

 "먼저 정천무룡(正天武龍) 백무천에 관한 건입니다. 청면혈마(靑面血魔)와

의 비무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었으나 현재 칠 할이나 팔 할 정도의 내공을

회복한 그의 무위는 이곳의 투신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이며 계속

해서 투신전에 참가할 것 같습니다."

 지하 사층. 만상루주의 밀실에서는 투신전의 상황에 대한 냉면살마(冷面殺

魔) 종천수의 보고가 한창이었다.

 "그자가 이곳에 있는 것은 저희가 수립한 계획에 차질을 가져올 것이 분명

한 바, 어떠한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자발적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야될 것

같습니다."

 "요불도 그의 상대가 안 되나?"

 "현재로서는 비등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가

익힌 금황신공이 바로 고금오천무(古今五天武) 중의 하나인 금황파천신공(

金黃破天神功)이라 합니다. 비록 십이성 화후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

당히 버거운 상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놈이 익힌 무공이 금황파천신공이라고?"

 만상루주의 말소리가 조금씩 떨려나왔다.

"역시 축복 받은 놈이라 이건가? 뭔지도 모르고 익힌 무공이 고금오천무라

고? 빌어먹을 천무맹 놈들."

 천무맹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만상루주의 주위에는 분노로 인한 살기

가 요동치고 있었다.

 "좋아, 그놈에게 비도의 존재를 알리도록 해라. 다른 곳이 눈치채지 못하

게 공동파를 통해서 은밀하게 전해지도록 말이야. 고금오천무의 하나라면

이곳에서 벌 수 있는 돈도 아깝지는 않겠지…."

 무림인의 속성이었다. 돈이나 명예보다는 강한 무공을 추구하는 무인의 습

성, 아니 본성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만상루주는 그런 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혈승은 죽었겠지?"

 혈승의 비무를 보지 않았음에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그 결과를 묻고 있었

다.

 "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한데 한 가지 이상

한 것은 혈승이 악마사사공을 전력으로 펼쳤다는 것과 그러고서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놈의…."

 백산의 무공이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말하려 하는 냉면살마를 만상루주가

손을 들어 제지시키며 빙긋 웃었다.

 "그놈은 더 이상 이곳에 필요 없어. 그래서 편법을 이용해서 제거한 것뿐

이야. 우리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거든."

 그랬다. 중원인이 아닌 서역의 포달랍궁 출신인 혈승은 처음부터 그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서역인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오만하고 자

신밖에 모르는 그는 결코 조직생활에 어울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강시에 관한 것까지 알고 있었다.

 "계획에는 차질이 없겠지?"

 "네, 루주님. 투신전이 끝나고 중원을 향하는 길은 비도와 강시로 인하여

혈로(血路)로 변할 것입니다."

 복면을 하고 있는 만상루주의 입에선 만족스런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구냐?"

 만상루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천장의 한쪽을 향해서 거칠게 손을 내

질렀다. 청색의 광망이 천장을 향해서 날아가고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한쪽 구석이 마치 짐승이 물어뜯어 놓은 자국처럼 찢겨져 나갔다.

 황급히 그곳으로 다가간 만상루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잘못 들었나?'

 "모든 일을 계획대로 추진하도록 해라. 만약 일이 잘못되면 너와 나의 목

은 없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부서진 천장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을 건넨 만상루주는 냉막한 표정으로 종

천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투신전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시작된다. 삼천(三天)은 사라지고 혈맹

(血盟)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최후에는 나만 남게 될 것이다. 나를 무시했

던 놈들, 괄시했던 놈들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다. 나를 그렇게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보다 내가 더 뛰어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줄

 것이다. 크 하하하!'

 지하 사층을 울리는 웃음소리만이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갔다.

 만상루주가 떠난 사층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찢어발긴 천장의 구석에서 시커먼 물체 하나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바닥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백산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혈랑에 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 왔었으나 저

번에는 만상루주라는 놈이 떠나지 않는 바람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래

서 다시 종천수를 미행해 이곳으로 왔던 것이다.

 '혈랑에 관한 것 좀 알아보려 했는데 저번의 그 이야기만 또 들었네?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네?'

 종천수와 만상루주가 밀담을 나누던 이곳은 의자와 탁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미끈한 벽으로 이루어진 정방형의 밀실일 뿐이었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곳이 사실은 한결 더러운

곳이지. 완벽하게 깨끗한 것일수록 속으로 숨기는 것이 더 많은 법이거든."

 백산은 혼잣말처럼 주절거리며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온 사방

을 조사하기를 일다경, 하지만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스치는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내가 무엇 때문에 바람을 익힌 거야? 이럴 때 써먹어야 될 것 아냐. 이

멍청이.'

 자신을 타박하던 백산이 조용히 눈을 감고 공기의 흐름을 잡아가기 시작했

다. 오른쪽 벽에서부터 공기의 흐름을 느끼면서 천천히 왼쪽으로 살펴 나갔

다.

 '공기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꺾이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축조할 때 생긴

홈이나 충격에 의해서 생긴 것을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변화하면서도 굴곡이 있는 흐름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찾기

를 일 각여 만에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변하는 위치를 의외의 장소에서

찾아냈다.

 바로 출입구 옆이었던 것이다.

 그곳으로 다가가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육안으로는 거의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지풍(指風)을 미약하게 발사했을 때 생겨나는

그런 흔적이 보였던 것이다.

 '굉장한 기관이군. 출입구 바로 옆에다 비밀 문을 만들어놓은 발상도 대단

하지만 저 기관 자체도 손을 쓰지 않고 지풍을 이용해서 공기의 압력만으로

 문을 연다. 놀랍군 ….'

 혼자서 중얼거리던 백산은 벽면에 충격이 가지 않게 가벼운 지풍을 쏘아보

냈다.

 그으응!

 바닥을 밀치는 가벼운 소음과 함께 벽면이 스르르 밀려나기 시작했다. 경

이로운 표정으로 밀려나는 벽을 쳐다보던 백산은 천천히 걸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청색, 백색으로 된 세 개의 서랍장이 있고, 각 서랍장에는 위에서

 아래로 숫자가 쓰여져 있는 서랍들이 달려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입구에 있던 방의 구조와 별로 다를 바 없이 중앙에 탁자

와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붉은색 서랍장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그 서랍들을 열

어보았다.

 그곳에는 조금 전에 만상루주와 종천수가 말한 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곳에

서 온 첩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백산에게 중요한 것은 맹이니 혈맹이니 하

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부모는 중요한 사안으로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백산은 백색

으로 된 서랍을 열어보았다. 거의 다 비어있었고 맨 아래쪽 서랍 속에만 하

나의 두루마리가 있었다.

 그 두루마리를 빼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안쪽으로 손을 뻗던 백산은 서

랍의 안쪽에 하나 더 있는 고리를 발견하고는 놀라운 탄성을 내뱉었다.

 '호호! 이건 또 뭐야?'

 고리를 가볍게 잡아당기자 또 하나의 서랍이 나오고 그 속에는 얄팍한 책

자 하나가 들어있었다. 아무런 표식도 없는 그 책자 속에는 강호상의 각 문

파 이름과 그 아래에 몇 명씩의 이름이 나열되어 적혀있었다.

 "이거 상당히 중요한 것인가 보네? 가장 평범한 것 속에 비밀문을 만들어

따로 보관한 것을 보면."

 백산은 그 책자를 품속에 챙겨 넣고 처음 보고자 했던 두루마리를 펼쳤다.

 살(殺). 혈랑에 관하여 조사하는 자(者).

 -맹.

 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백산은 지그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찾기를 원했던 것이

바로 이곳과 관련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놈들을 죽여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복수를 하고 싶었

지만 참았다. 더 커다란 고통을 돌려주기 위해서 지금은 참아야 한다.

 '하나씩 하나씩 모든 것을 파괴해주마. 살인을 저지른 자(者)든 그 배후든

 모든 것을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도록.

그렇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야한다 …이 비무를.'

 백산의 눈빛이 투명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파멸안(破滅眼)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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