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무공
뇌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우뢰봉(雨雷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바
위 위에 통나무를 박아서 만들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백산이 살았던 오두막
과 거의 유사한 집이 한 채 서 있고, 그 안에 팽무도와 백산이 서로 마주한
채 앉아있었다.
"이제부터 무공을 익히도록 하자. 너는 아버지와 같이 사냥하러 다닌 덕에
기본적인 체력 단련은 되어있다. 그러니 일단 내공심법(內功心法)을 먼저
익히고 네가 배울 무공의 기초를 시작하도록 하자꾸나. 이미 내공심법은 전
수해주었으니, 처음엔 이 사부가 진기를 도인(導因)해주도록 하마. 가부좌(
跏趺坐)를 하고 앉아라."
"제가 언제 내공심법을 배웠죠?"
내공심법을 전수해주었다는 팽무도의 말에 백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도무지 내공심법 같은 것을 전해들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약수천(藥水泉)에 있을 때 가르쳐준 것이 사문의 내공심법이니라."
"예? 그럼 글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고 오백 자나 되는 그것이 내공심법(內
功心法)에 있는 글이라고요?"
백산의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 두어 달이 걸렸다. 그동안 사부로부터
글을 익혔던 것이다. 내심으론 글을 배웠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이 사
문의 내공심법이었다 한다.
"글은 나중에 필요하면 익히도록 하려무나. 일단은 내공심법에 있는 것만
알아도 무공을 익히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터이다. 굳이 배우고 싶다면
가르쳐주마."
말은 가르쳐준다고 하고 있으나 얼굴에는 싫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백산
또한 머리 아프게 글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무공을 익히는 데는
상관이 없다고 하니 굳이 배울 필요가 없을 성싶었다.
"그럼요, 글을 몰라도 지금까지 별로 불편함 없이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문
제없을 거예요."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나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가
르치는 것이다. 팽무도도 글을 가르치기 싫었고, 또한 제자라는 놈도 배우
기를 싫어하니 내공심법에 있는 글자만 해독해준 것이었다.
장점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글을 쓰면 깨끗하게 써지듯이 배움
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원래 내공심법에 있는 글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진 것
도 많고 상당히 난해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백산은 아예 아는 글이 거
의 없었기에 무공에 관련된 뜻만을 기억하면 되었다. 내용에 대한 선입견이
없기에 자연 글에 대한 이해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굉장한
사제지간(師弟之間)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럼 이 상태로 전에 일러준 내공심법을 운용하도록 해라."
백산이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팽무도는 백산의 뒤에 앉아서 백산의 명
문혈(命門穴)에 두 장심(掌心)을 밀착시키고 진기를 도인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혈도 이름이며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알려주어도 모를 테니 네 몸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힘의 경로를 기억하거라. 그리고 그 경로를 따라서
새롭게 생겨나는 힘을 움직이려고 해야한다."
구결에 따라서 진기를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신이 넣어주는 힘의 경로를
따라서 하라는 말이다.
몸으로 익히는 무공전수의 시작이었다. 훗날 몸으로 익히는 무공을 자신의
부하들에게 전수하는 그 방법이 팽무도에 의해서 처음 개발되고 있었다.
단지 가르치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해진 방법이었지만….
백산의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돌면서 단전으로부터 미약했지만 힘이 일어
나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운기(運氣)라는 것을 마친 백산의 몸은 온몸에서
힘이 넘치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문의 내공심법은 '혈풍뇌전심법(血風雷電心法)'이라 했다.
"우리 사문 무공의 첫 번째 단계를 공부하는 것이 바로 여기 있는 이것이
다."
사부가 가리키는 바닥에 두 개의 족쇄와 팔찌가 있었고 각각의 족쇄와 팔
찌에는 세 개씩의 어른 주먹만한 쇠뭉치가 직각으로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있었다.
"이것이 네가 배울 무공의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한 도구이다. 이것을
손목과 발목에 차고 그 끝에 매달려있는 쇠뭉치들이 네 수족과 같이 움직
일 때 그때가 바로 네가 배울 무공의 첫 번째 단계의 끝이다."
그날 이후로 백산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둥그런 철구(鐵球)는 백산
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하였다. 천천히 걸으면 앞에 있는 철구
가 다리 정강이를 때리고 뛰어가면 뒤쪽에 있는 철구가 장딴지를 때리고,
온몸에 피멍이 들면서도 먹고살기 위해서 나물을 캐고 나무를 하고 사냥을
해야했다.
나물을 캐는 것이나 나무를 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철구를 적당히 피하면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주식이 되는 동물은 그렇지 않았다.
마령호까지 잡겠다고 나선 사냥꾼인 백산이 그 작은 토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사부의 입맛 또한 까다롭기 이를 데 없었다. 멍이 든 짐승은 철 냄새가 나
서 싫다, 덧으로 잡은 짐승은 피가 굳어있어서 맛이 없어 싫다, 큰 짐승은
고기가 질기다는 따위의 이런 저런 이유로 백산이 잡아야 하는 사냥감은 이
른바 초식동물이면서 작고 날쌘 놈들, 토기나 다람쥐 같은 동물에 한했다.
철구를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려는 팽무도의 의도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으
나 힘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에고, 이거 무슨 수를 내야지. 으악! 이 다리 좀 봐 온통 피멍이네. 빨리
약수천(藥水泉)에 가야지."
백산의 팔과 다리 할 것 없이 온몸이 철구(鐵球)에 맞아서 멍들고 부어서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처음엔 백산도 그 좋은 머리(?)로 약수천 생각을
못 했었다.
그래서 온 산을 다 헤매고 다니며 약초를 채집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철
구로 콩콩 찧어 이겨서 붙이고 먹고 하여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면서 육
개월 정도가 지났을 즈음 사부가 지나가듯 슬쩍 흘리는 말이 있었다.
"나 같으면 말이다 약수천에 가서 두어 시간 몸을 푹 담그겠다. 머리 나쁜
놈은 수족이 고생한다더니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어요."
으아악!
"사부, 그것을 왜 이제서야 말해요. 예? 누구 죽일 일 있어요? 빌어먹을
영감쟁이 같으니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사냥을 못 하겠어요. 그러니 어제
먹다 남은 토끼고기 있죠? 그거 드세요."
백산이 온 얼굴에 있는 모든 주름을 팍팍 접으면서 사부를 향해 반항을 했
고 돌아오는 건 타혈법(打血法)을 가장한 사부의 구타였다.
"뭐시라? 이놈이 요즈음 허리도 시원찮고 해서 타혈법을 좀 등한시했더니
감히 하늘같은 사부한테 반항을 해?"
말과 함께 백산에게 날아오는 사부의 지팡이.
퍼억! 파악! 퍼버벅!
매섭게 내리치는 팽무도의 지팡이는 백산의 전신을 골고루 어루만지기 시
작했다.
"아아악! 그만, 그만 좀 해요. 사냥 갑니다, 간다고요. 가면 될 것 아니에
요."
백산은 사냥 간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사부의 지팡이를 피하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백산의 일천한 실력으로 자칭 천하제일인인 사부의 지팡이를
피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안 돼, 이놈아. 이 타혈법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한다는 것을 네놈
도 알잖느냐. 잔말 말고 빨리 끝내자. 그래야 너도 사냥하러 갈 것 아니냐.
"
그렇게 맞았다. 다른 것은 다 통제가 가능한데 그놈의 입은 자신의 마음대
로 제어가 되지 않는다.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사부를 도발하는 짓을 하
곤 하는 것이다.
백산은 지난 육 개월 간 사흘에 한번 정도를 이렇게 복날 개 잡듯이 맞았
다. 아무리 피하고자 해도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오는 사
부의 지팡이는 더 이상의 반항을 포기하고 타혈법(打血法)이 끝나기를 기다
리는 수밖에 없게 했다.
그나마 저번부터는 사부의 지팡이가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또 한 가지 백산의 피하는 동작을 완벽하게 묶어버린 것은 손과 발에 차고
있는 열두 개의 철구, 그놈들이 문제였다. 어느 정도는 철구에 익숙해져서
철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기는 하는데 저렇게 막무가내로 쳐오
면 철구를 차고 있는 백산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여차하면 자신의 철구에 맞아서 기절하는 사태가 생기곤 했다. 백산은 뻔
히 보이는 사부의 지팡이를 피하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백산의 무공 입문이 늦은 관계로 팽무도는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수법-몸
속에 있는 탁기(濁氣)를 몰아내고 상승의 경지로 빠른 시간에 도달하게 하
는-을 자신의 진력을 소모시켜 가면서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허허! 스스로 매를 벌어서 맞고 싶었던 게냐. 참으로 독하다, 네놈도.'
독하다는 말 한 마디면 족했다. 사부인 그가 무엇인가를 원하면 입으로는
불평불만을 쏟아놓지만 반드시 이루어놓는다. 아니 그가 원하는 것보다 더
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적응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노력과 집념의 집합체가 바로 백산이었다. 무공을 완전하게 익히기 위해서
는 자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피땀 어린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백산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한동안 타혈법을 하지 않자 일부러 사부를 도발하여 매
를 벌었던 것이다. 그런 제자의 모습이 대견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왠지 측은해지는 것은 자신의 위치가 사부라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측은한 눈으로 백산을 쳐다보던 팽무도가 기절해있는 백산을 들쳐 메고 약
수천(藥水泉) 속으로 집어넣었다.
'깨어나면 또다시 뛰고 달리고 하겠지? 좀 쉬어가면서 해도 된다, 이 녀석
아.'
아무리 약수천이라 하지만 상처는 치료해도 내부의 고통은 남아있다. 그런
데도 녀석은 다 나은 것처럼 또다시 산야와 들판을 달린다. 밤에도 거의 잠
을 자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내공심법을 연마한다고 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쉬라는 말도 소용없었다.
* * *
오늘도 백산은 그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하고 있었다. 목표물
은 저만치에서 알짱거리며 놀고 있는 토끼, 얼마 전부터 철구를 이용해서
짐승을 잡는 것이 가능해졌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목표물에 열두 개의 철구 중 원하는 수만큼의 철구
를 맞추는 방법을 터득했다.
백산은 조심스럽게 식사 거리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배운
사냥솜씨를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다. 토끼에게 자신의 냄새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맞바람을 안고 접근하던 백산은 사정거리에 들어온 토끼를 향해 가
볍게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웬걸 철구는 토끼를 살짝 비켜가고 이에 놀란 녀석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야지! 내가 덜 심심하지. 네 녀석을 바로 잡아버리면 재미가
없잖아. 실컷 도망쳐라. 나에게 산중생활의 즐거움을 선사해라, 토끼야. 으
하하하!"
나쁜 놈이 따로 없다. 제가 심심하다고 약한 토끼를 약 올리며 괴롭히고
있었다. 산중생활의 따분함을 견디고자 백산이 생각해낸 방법이다. 물론 자
신의 철구를 움직이는 데도 도움이 되고 무릇 일거양득이었다.
도망치는 토끼를 쫓아가는 백산의 몸도 비호같이 날쌨다. 그동안의 수련이
도움이 되었는지 백산의 달리는 속도는 웬만한 무림인의 수준은 되어 보였
다.
그러나 몸놀림은 약간 이상했다. 마치 달리는 자신의 앞을 무엇인가가 막
고 있는 것처럼 내뻗은 손을 몸 쪽으로 잡아당길 때 그의 손은 허리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깨 쪽으로 움직이고, 동시에 머리를 가볍게 숙이고 있
었다.
그의 다리 또한 평범하지는 않았다. 토끼를 쫓아서 달리는 그의 다리는 보
통의 경우처럼 직선으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은 발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회전을 시키듯 부드럽게 타원형을 그리며 나아가고,
한번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원을 그리듯 나아가고 있었다.
여섯 개의 철구가 자신의 몸에 맞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저절로 터득한 백
산만의 독특한 보법(步法)이다. 약간은 어색한 듯한 보법으로 백산은 자신
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철구로 쳐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이젠 그만 하자.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곱게 잡혀서 내 뱃속으로 들어
가라 요놈아."
외침 소리와 함께 백산의 오른쪽 발이 가볍게 앞으로 내밀어졌다. 케엥!
소리와 함께 도망치던 토끼가 붕 날아서 한쪽으로 떨어졌다.
'에이고 힘들어. 기절시키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더 힘드니 빌어먹을 영감
, 나이를 먹으면 입맛만 까다로워진다더니.'
백산이 어느 정도 철구를 사용하는 것에 능숙해지자 그의 사부는 이미 죽
어버린 고기는 몸 안에 있는 피가 굳어서 맛이 없다면서 살아있는 사냥감을
원했다.
오늘도 한 건 했다는 즐거움에 백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
다. 토끼고기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막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사부가 근엄한
목소리로 백산을 불렀다.
"제자야!"
백산의 얼굴 표정이 급속히 변했다.
불안감이다. 사부가 저런 목소리로 부를 땐 언제나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 타혈법(打血法)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살아있는 짐승
을 원할 때도 그랬다.
"그동안 수련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적막한 이곳생활도 그렇고… 그래서
말인데 이 사부가 너에게 특별휴가를 주도록 하마."
사부의 말은 뇌룡현(雷龍縣)에 있는 홍루(紅樓)로 가서 강구두를 찾으라고
한다. 백산이 강구두를 찾아서 무얼 해야하냐고 묻자 그냥 가보면 안다며
입을 닫았다.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으나 그 속엔 또 다른 뭔가가 있는
듯했다.
"계속 그 짓만 하면 무공이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사부의 마지막 말이 궁금했지만 무공이 늘지 않는다는 말에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어차피 가져갈 짐도 없으니 지금 바로 떠나라. 돌아오는 날짜는 강구두가
가르쳐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