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93화 (193/200)

193화. 결전 (4)

단유소 일행이 약간을 더 달렸을 때였다.

척가장주의 처소 즉, 본채로 통하는 대문을 끼고 십여 명의 적들이 넓게 포진한 채로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막아선 자들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그들 또한 엄청난 고수들인 것이다.

그들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송주가 빠르게 말했다.

“누가 봐도 시간을 끌려는 수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찰나의 시간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노리고 있는 자들은 잠깐의 시간만 주어져도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적룡이 말했다.

“이들은 저와 송 대주와 심 궁주가 상대하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가십시오.”

그러자 심소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송주와 적룡의 사이로 이동했다. 세 사람은 마치, 서로 간에 미리 약속이라도 되어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실상 지난 기간 동안 실력이 가장 크게 상승한 이들이 바로 송주와 적룡이었다. 단유소를 상대로 이 대 일의 수련을 지속적으로 해온 덕분이었다. 물론 심소옥의 실력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눈앞의 적들만 통과하면 척가장주의 처소인 본채였다. 송주의 말마따나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시간을 끌다가 불리해지면 바로 후퇴하게. 다들 알겠는가.]

혁련강의 전음이었다. 아까 백리우가 그랬듯, 혁련강의 전음 또한 모든 이들의 귓전에 동시에 날아들었다.

“명.”

“충.”

송주와 적룡이 조용한 음성으로 동시에 대꾸했다.

적들에게로 향한 심소옥의 얼굴에는 이미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숙부들이나 조심하세요. 이쪽 걱정은 마시고.]

백리우와 혁련강이 그랬던 것처럼 심소옥의 전음도 모두의 귓전에 동시에 들려왔다.

그 직후, 모두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적들을 향해 짓쳐들었다.

혁련강이 선봉에서 길을 뚫었고, 백리우와 단유소가 가까운 곳에 있는 적들을 향해 검강을 발출했다.

그 과정에서 적들 중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세 사람이 빠르게 저지선을 통과하자마자, 송주와 적룡 그리고 심소옥이 남은 적들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담장을 넘어 본채로 진입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 있는 다섯 명의 인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 한 명에 중년인이 두 명, 그리고 장년인이 두 명이었다.

“후.”

노인을 알아본 혁련강이 피식 웃을 때, 단유소의 전음이 들려왔다.

[몇 명의 인물들이 빠르게 본채의 뒤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백리우와 혁련강에게 동시에 들린 전음.

혁련강이 대꾸했다.

[저 늙은이는 내가 맡겠소. 귀하가 묵룡과 함께 어서 쫓아가시오.]

[저 늙은이만 상대하는 것이면 모르겠으나, 그 옆에 있는 자들까지 가세한다면 귀하 혼자서는…….]

백리우가 염려 섞인 어조로 말하자 혁련강이 짧게 대꾸했다.

[나, 천마요.]

[그랬지. 내가 실례했소. 미안하오.]

백리우가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대꾸했을 때였다.

콰아아아앙!

본채 뒤쪽의 담장 너머에서 강력한 폭음이 들렸다. 진기와 진기가 맞부딪친 소리였는데, 그 파동이 그야말로 엄청났다.

혁련강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 정도의 파동이라면 한쪽은 필경 예매일 것이오!]

장원의 뒤쪽에서 산으로 통하는 경로를 차단하고 있던 건 예교령을 비롯한 소수궁의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혁련강의 말마따나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동이 일어났다면, 한쪽은 예교령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엄청난 강자와 맞닥뜨렸다는 뜻이었다.

슈슈슈슈슈슈슉―

앞을 막아선 다섯 명을 향해 어느새 몇 줄기의 기운이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단유소가 견제의 의미로 몇 가닥의 검강을 쏘아낸 것이다. 견제의 의미라고는 하나 단유소의 경지에서 발출한 검강이었다. 누구라도 쉽게 대처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닌 것이다.

적의 진형이 흐트러진 틈에 백리우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단유소도 백리우의 뒤를 따라 적들을 지나쳐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혁련강이 노인을 향해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오랜만이오.”

노인이 대꾸했다.

“허허! 얘기는 들었지만 내 평생에 실제로 무림맹주와 천마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먼.”

그러자 혁련강이 냉소하며 말했다.

“내심으로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귀하가 이곳에 있구려.”

“무림맹주와 자네의 등쌀에 내가 살 수가 있어야지. 궁지에 몰리니 뵈는 게 없더군. 그러니 평소에 적당히 좀 괴롭히지 그랬나.”

“거, 실없는 소리 마시오. 귀하가 궁지에 몰린 건, 사흑련 내에서 귀하가 가장 믿고 아끼던 수하들에게 뒤통수를 맞아서잖소.”

“허! 역시 천마신교로군. 아주 다 알고 있네. 다 알고 있어. 허허허!”

혁련강이 언급했듯, 노인은 사흑련의 인물이었다.

그저 사흑련에 소속되었던 인물이 아니라, 노인이 바로 사흑련의 수장이었다. 바로, 사흑련주 좌북리(左北理)인 것이다.

혁련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구려. 배신한 수하들을 응징할 생각으로 혈천맹에 붙었을 것이고, 귀하 옆에 있는 그 둘을 보아하니 아주 제대로 응징하신 모양이구려. 생강시로 만들어버리다니. 하!”

그랬다. 혁련강의 말마따나 좌북리의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중년인은 모두 생강시였다. 그 두 명의 중년인이 바로 좌북리를 배신한 수하들이었던 것이다.

좌북리가 두 중년인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놈들, 피눈물을 흘리며 내 발을 핥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지. 푸헐헐헐!”

혁련강이 입을 열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앞에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을 터인데. 혈천맹에서 회춘이라도 하셨나 보구려.”

“푸헐헐! 그렇게 보이는가?”

“아니면…….”

잠시 말을 멈춘 혁련강이 좌북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반투명한 검은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더니, 곧 그의 몸을 중심으로 세차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혁련강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입술이 열렸다.

“못 본 사이에 노망이 드셔서 내가 누군지를 잊으셨거나.”

* * *

바닥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예교령의 모습이 매우 힘겨워 보였다.

예교령의 온몸은 시커먼 재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격돌의 여파가 어찌나 강력했던지, 튕겨 나간 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른 것이다.

“아가씨!”

소수궁의 고수들이 일단의 무리들과 얽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예교령을 향해 빠르게 다가온 사람은 황 노파였다.

혼자서 일어서려던 예교령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았다. 황 노파가 예교령을 부축하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괜찮은 거예요?”

시커먼 재가 듬성듬성 묻어 있는 얼굴로, 예교령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것……, 같아.”

내뱉은 말과는 달리 예교령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입을 열자 그녀의 입가를 타고 한 줄기 핏물이 흐른 것이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이쪽에 좀 기대요, 아가씨. 그리고 말하지 말아요.”

황 노파가 예교령의 등을 근처의 바위에 기대게 한 채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누군가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허허! 그걸 맞고도 살아남았다? 손이 희게 변하는 걸 봤는데, 소수궁인가? 그래, 소수마공이라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 말로만 들었던 소수마공이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는 홍안에 백발이었고 풍채도 당당했다.

사실, 몇 달 전에 단유소를 도우러 나왔던 심소옥도 혈천맹을 상대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천맹이 소수궁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던 건, 심소옥이 양손에 묵린갑을 낀 채로 무공을 펼쳤던 탓이었다.

백발의 노인이 흥미롭다는 듯 예교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연 소수마공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게다가 네년은 예쁘기도 하고 말이야. 네년의 존재를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늦었구나. 지금은 이 어르신이 좀 바빠서 말이다.”

“하긴, 줄행랑치느라 정신이 없으시겠네요.”

“허허헛! 맹랑한 계집이로다. 뭐, 아깝긴 하나 어쩔 수 없지. 이 어르신은 내가 갖지 못할 바에는 남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게 원칙이라서 말이다.”

그렇게 말한 백발노인이 가차 없이 예교령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예교령을 감싸고 있는 황 노파까지도 단칼에 해치울 기세였다.

예교령을 이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위력이 담긴 검이었다. 그 검이 떨어져 내리던 찰나, 황 노파의 허리춤에서 별안간 금빛이 번쩍였다.

콰아아앙!

또다시 폭음이 들린 순간, 백발노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이번에도 검이 막혀 있었던 것이다.

검을 막은 것은 두 겹으로 겹쳐진 끈 같은 물건이었다. 황 노파가 그것을 양손으로 벌려 잡은 채, 백발노인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끈이 아니라 금속 재질의 채찍이었다.

백발노인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의 측면으로 두 줄기의 날카로운 기운이 날아들었다.

슈슝―

백색의 기운 하나와 은색의 기운 하나.

두 개의 기운 모두 검강이었다.

검강에 담긴 힘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백발노인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공격을 피했다. 멀리에서 날아온 공격이었기에 회피 자체는 어렵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그 직후, 두 사람이 빠르게 다가왔다.

다가온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전투가 벌어지는 쪽으로 향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예교령과 황노파를 보호하는 형태로 백발노인의 앞에 섰다.

백발노인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이게 누구신가. 무림맹주가 아니신가.”

그러자 백리우가 백발노인에게 시선을 둔 채로 입을 열었다.

“어르신이 누구신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야 알아 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귀편나찰(鬼鞭羅刹) 선배님.”

그러자 백리우의 뒤에서 황 노파가 대꾸했다.

“흘흘. 역시 맹주는 맹주시우. 그나저나 그 호칭, 이 늙은이조차도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구려. 한데 그냥 황 노파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수. 그 호칭을 들으면 내 부끄러웠던 시절의 기억이 계속 떠올라서 말이우.”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발노인이 놀라며 말했다.

“귀편나찰? 허! 저 할망구가 그 귀편나찰이었단 말인가? 귀편나찰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고?”

“꼬마야. 맹주께도 말했지만 그 호칭은 쓰지 말아다오. 이 할미가 부탁하마.”

“꼬마? 푸허허허허허허!”

광소를 터트린 백발노인이 말을 이었다.

“뭐, 그래. 어쨌건 할망구가 그 귀편나찰이라면 이거, 그림이 참 묘하군. 내가 알기로 과거, 온 천하를 벌벌 떨게 했던 그 귀편나찰을 꺾은 게 바로 당시의 청년 고수 백리극이었다던데. 지금은 그 손자와 함께하고 있다니.”

“그래, 꼬마야. 네가 이 할미를 뭐라 부르던 그건 상관치 않으마. 이 할미는 과오가 많은 늙은이니까. 허나, 천무검신 백리 대협은 너 따위가 그렇게 함부로 함자를 막 입에 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시니라.”

“오호라. 천무검신 백리 대협이라?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관계가 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나?”

“흐이구. 저런 싸가지 없는 놈 같으니.”

그때 백리우가 전음으로 물었다.

[얼마 전에 동굴에 있을 때, 어르신께서는 당연히 할아버지를 알아보셨을 텐데, 할아버지는 어르신을 알아보셨습니까?]

[흘흘. 알아보셨더구려. 틈틈이 옛날 얘기도 하고 그랬수.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수.]

[그러셨군요. 다행입니다.]

백리우가 전음으로 그렇게 대꾸했을 때였다.

“맹주의 조부께서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분이시우. 복수심에 휩싸여서 미쳐 날뛰던 나를 멈추게 해주셨고, 내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끔 기회를 준 분이시라우. 내가 너무 늙어서 저 싸가지 없는 녀석을 직접 혼내줄 수가 없다는 게 그분께 죄송스러울 뿐이우.”

“알겠습니다, 어르신. 대신 예매를 잘 부탁드립니다.”

“나 쌩쌩하다니깐 그러시네. 당장 오라버니들 술상 봐오라고 해도 문제없다니깐.”

육성으로 말을 마친 예교령이 곧바로 백리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 작자, 강해요. 조심해요, 백리 오라버니.]

백리우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발노인이 말했다.

“맹주, 그대는 졌네. 저 할망구와 한가하게 얘기나 나누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미.”

그러자 백발노인을 가만히 바라보던 백리우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소. 그러니까 당신의 말인즉,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미 이곳을 벗어났다는 뜻이겠구려.”

“이해가 빠르군. 방금 전까진 이곳에 있었거든. 사실, 장원을 빠져나올 때부터 포위망은 예상하고 있었다네. 그래서 내가 시선을 분산시키고 시간을 끄는 역할을 맡았지. 천하제일인인 그대 정도는 되어야 그쪽을 조금이나마 방해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그대를 잡아뒀으니 내 역할은 다한 셈이지.”

“당신이 단시간 동안 잠력을 폭발시키는 약을 복용한 것도 그를 빠져나가게 하기 위함이었겠군? 잠깐이라도 강력한 힘을 보여야 시선이 당신에게 집중될 테니까.”

“눈썰미도 좋군. 역시 무림맹주는 무림맹주야.”

그러자 백리우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당신들이 어느 세력과 연관되어 있는지는 충분히 밝혀낼 수 있소.”

“그러면 이 나라 조정에 곤란해질 분들이 많아지겠지. 사실, 그 꼰대들도 마음에 안 들었거든. 어차피 나는 상관없다네. 굳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당신의 아들, 즉 혈천맹주 척조강(戚兆康)만 살아남으면 된다?”

“그렇다네.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강하거든. 설령 그대라 해도 그 아이를 이길 수는 없다네. 이 강호에서 그 아이보다 강한 무인은 없다는 뜻이지.”

“아하.”

백리우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콰르릉! 콰아아아앙! 퍼버버벙!

별안간 거대한 폭음들이 들리며 지축이 울렸다.

백발노인, 척가장주 척천릉(戚天凌)의 눈매가 좁아질 때쯤, 백리우가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도 알 것이오. 이게 벽력탄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쯤. 그렇소. 이건 나보다 강한 고수들이 싸우며 진기가 격돌하는 소리요. 아마도 당신의 아들 실력쯤 되는 대단한 고수들이 한판 붙고 있는 모양이지.”

척천릉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도 백리우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는 것이다.

한순간 척천릉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그 직후, 척천릉은 진기의 폭음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던지 예교령과 황 노파도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슈악―

백색의 잔영이 척천릉의 앞을 막아선 건 그 순간이었다. 백리우였다.

척천릉이 빠르게 경로를 틀었으나 이번에도 역시 백리우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 모습이 두세 번 정도 반복되었을 때에야 척천릉이 멈춰 섰다.

놀란 표정의 척천릉을 향해 백리우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따위 이상한 약 좀 먹었다 하여 나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나 무림맹주 백리우가 그렇게 하찮게 보였는가.”

척!

백리우가 척천릉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척천릉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움직이려 노력해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백리우가 뻗은 양팔을 서서히 들어 올리자, 놀랍게도 척천릉의 몸이 허공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발바닥이 땅에서 한 자 정도 떨어졌을 때.

“끄으어어어억!”

척천릉이 입을 벌리고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자 벌어진 척천릉의 입속에서 자그마한 구슬 같은 것이 튀어나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빠진 어금니 대신 끼워져 있던 독환(毒丸)이었다. 본인이 원할 때 깨물어 쉽게 자진(自盡)하기 위한 용도의 독약이다.

백리우가 여전히 차가운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그대는 더 이상 살 자격도 없지만, 마음대로 죽을 자격도……,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