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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192화 (192/200)

192화. 결전 (3)

스겅―

검이 청강시의 다리를 가른 순간, 진평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랐다. 자른 것이다. 청강시의 그 단단한 피부를. 바로 자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묵룡조에서 청강시를 상대할 수 있는 조원은 연소운과 서백풍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자신이 청강시를 가르다니.

희열이 몰려왔다. 그 순간이었다.

[우리 부조장 대단한데?]

그 말이 들리자마자 진평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단유소가 후방 몇 보 뒤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엄지를 치켜세운 채로.

[조장님…….]

[방금 가보니 승추도 청강시를 가르고 있더군.]

진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자신보다 경지가 높았던 곽승추였다. 곽승추 또한 그간 피나는 수련을 했다. 자신이 청강시를 가를 수 있다면, 곽승추라 해서 못 가를 리는 없었다.

[무리하지 말고 선배들 협조 받아서 안정적으로 싸워. 알겠나?]

단유소의 말에 진평이 대꾸했다.

[무리는 조장님이나 하지 마십쇼. 요새 싸우기만 하면 쓰러진 채로 발견되시는 분이.]

[푸후훗. 그것도 그렇군. 그럼 이따 보자고.]

진평이 보는 앞에서 단유소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높은 벽을 넘었는데도 조장님의 경지는 여전히 짐작조차 안 되는구나……!’

단유소는 만족스러웠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곽승추와 진평의 성취가 대단했다. 저 정도라면 어디에서도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혈천맹의 본거지인 이곳에서도.

자신이 쓰러졌다가 깨어난 후로 한 달 하고도 보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숨어 지내며 신룡대와 흑풍대의 모든 인원들은 그야말로 피나는 수련을 했다. 진평과 곽승추는 그중에서도 특히 열심히 수련한 경우였다. 두 사람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수련하며 보냈다.

두 사람의 성취가 특히 두드러진 데에는 심소옥의 공이 컸다.

일전에 단기간 동안이나마 집중적으로 단련시켜 연소운을 크게 성장시켰던 그녀였다. 그러니 심소옥에게 있어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은 진평과 곽승추를 발전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시들을 처치하면서 돌아보니 진평과 곽승추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인원들도 모두 눈에 띄게 성장한 모습들이었다.

이미 이전의 신룡대와 흑풍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많은 청강시와 혈강시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신룡대와 흑풍대의 선배들도 현역에 있는 후배들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이후에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군을 지원하던 단유소의 눈동자가 한순간 가늘어졌다. 동시에 단유소가 지원을 멈추고 한 방향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한 그루의 나무 아래에 도착한 단유소가 즉시 도약하여 상단의 가지를 밟았다. 그러자마자 혁련강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도 이미 알아챘겠지만, 안채 안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 수백 개의 기척이 모습을 드러냈네.”

“예. 그중에는 위험한 느낌을 풍기는 고수들의 기척도 많습니다. 일전에, 제가 쓰러지기 전에 상대했던 자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고수들입니다. 그런 기척이 수십 개는 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적측의 강자들이 저 정도로 많다면 얘기가 크게 달라지네. 저 정도의 전력이 쏟아져 나오면 바깥채에서 싸우고 있는 아군이 너무 위험해질 텐데…….”

혁련강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안채에 있는 고수들이 등장하는 순간이야말로 적의 핵심 인사들이 빠져나가기에 가장 좋은 순간이다.

그렇기에 단유소, 백리우, 혁련강 등을 포함한 몇몇 극강의 고수들은, 그 순간에 안채로 진입해야 한다. 그 순간을 놓치면 혈천맹의 핵심 인사들을 영영 못 잡게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정마 연합 측의 초강자들은 무조건 안채로 진입해야 하는데, 그러면 바깥채 쪽의 아군이 너무 위험해진다. 적측의 전력이 저 정도라면, 바깥채 쪽의 아군은 오래지 않아 전멸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단유소 등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

고민에 빠져 있던 세 사람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한 방향으로 돌아간 것은 그때였다.

일단의 무리들이 바깥채의 높은 담장을 넘어 장원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입하자마자 아군과 합류하여 강시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는데, 계속해서 벽을 넘어온 수가 거의 백 명에 육박했다. 한데 더욱 놀라운 점은, 각각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을 살펴보던 백리우가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청성의 포원 대협이 보이는구나. 이름난 세력의 장문인들, 세가주들, 문주들도 모두 왔고.”

“때맞춰 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단유소가 대꾸하자 백리우가 말했다.

“더 힘이 되는 점은, 은거했다고 알려졌던 백도의 수많은 선배님들이 함께 오셨다는 사실이야. 그간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수소문하신 결과지.”

“하여간 백도는 이런 게 참 무섭단 말이야.”

혁련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릴 즈음, 방금 합류한 인물들 중 일부가 천무단주의 안내를 받으며 빠르게 다가왔다. 그러자 백리우가 단유소에게 말했다.

“선배님들이 오셨으니 나는 내려가서 간단하게나마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아우는 이곳에서 교주와 함께 안채 쪽의 상황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백리우가 바닥에 착지했을 때쯤, 포원을 비롯한 열 명 남짓의 인물들이 나무 아래에 다다랐다. 다가온 인물들은 대부분 매우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백리우가 노인들을 향해 공손히 포권하며 말했다.

“말학 백리우가 대선배님들을 뵈옵니다.”

그러자 노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오호라, 네가 바로 무림맹주라는 그 아이로구나.”

“무림맹주면, 백리 형님의 손자인가?”

“요사이 천하제일로 통한다는 바로 그 아이지?”

“보니까 과연 그렇게 불릴 만하겠구나. 백리 형님이 저 나이였을 때에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헐헐헐.”

“그나저나 이 아이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나 알까?”

백리우가 대꾸했다.

“후배가 부족하여 몇 분은 알겠는데 몇 분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포원이 백리우에게 말했다.

“내가 간단히 소개함세. 이분이 검왕(劍王) 선배님이시고, 이분은 도제(刀帝) 선배님이시네. 이분은 창황(槍皇) 선배님 그리고 이분은 권신(拳神) 선배님…….”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 눈앞에 있는 노인들은 모두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강자들이었다.

포원처럼 전대 고수인 인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전대 고수들이었다. 전전대 고수들 중에는 심지어 백리극보다도 선배인 인물들도 있었다.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대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말씀을 나누고 싶으나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여 부탁 말씀부터 드려야 할 듯합니다.”

“헐헐. 무슨 부탁일지 이미 알 것 같구나.”

검왕이 안채 쪽에 시선을 두며 그렇게 말했다. 이미 기척들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검왕에 이어서 다른 노인들이 또다시 한마디씩 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이미 제갈가의 아이로부터 들었느니라.”

“이곳은 이 늙은이들에게 맡기고, 너는 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거라.”

“암, 그렇고말고. 저놈들은 곧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야. 이미 살 큼 살아서, 굳이 더 살고자 하는 미련마저 사라진 늙은이들의 진정한 무서움을.”

백리우의 귓전으로 단유소의 전음이 날아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적들이 안채의 담장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백리우가 바로 대꾸했다.

[신호하라고 일러.]

그리고 잠시 후, 척가장의 하늘 위로 화시 한 발이 솟아올랐다.

피유우우―

그러자마자 척가장의 담장 밖 이곳저곳에서 매캐한 연기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산자락에서 시작된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빠르게 산 위쪽으로 번져갔다.

높게 솟아오른 담장 덕분에 불길이 척가장의 담장 안쪽에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장원 바깥쪽의 산지를 태워버리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근래 건조했던 날씨 덕에 산 위쪽으로 번져가는 불길은 계속해서 거세어지는 중이었다.

정마 연합의 의도된 화공(火攻)이었다.

산지는 언제나 은밀히 도주하기에 용이한 지형이다. 그러니 아예 산을 잿더미로 만들어, 적이 은밀히 도주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적절한 시기에 산을 태워버리면 적측에 심리적인 압박을 가할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게 제갈윤과 마연문의 계획이었다.

높게 솟아오른 안채의 담장 위에 수많은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 순간, 그들이 일제히 담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깥채로 나온 그들이 정마 연합의 무인들을 향해 물밀 듯이 짓쳐들었다.

아직 청강시와 혈강시가 많이 남아 있어, 적들의 공격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정마 연합도 그들의 공격에 차분하게 대응해가고 있었다.

방금 정마 연합 측에 합류한 전전대 고수들과 전대 고수들이 강한 무공과 노련미로 적측의 고수들을 상대해준 덕분이었다.

그러는 동안 정마 연합 측 십여 명의 인물들이 구석진 곳에서 담장을 넘어 안채로 진입했다. 적측의 고수들이 곧바로 대응해왔다.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서 뚫고 지나가십시오. 저놈들의 발목은 저희들이 잡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선 이는 흑풍대의 부대주인 홍련이었다. 황룡인 선화란이 그녀의 옆에 서자, 서백풍과 연소운도 두 여인의 옆으로 이동했다. 흑풍대의 일조장과 이조장도 말없이 홍련의 옆에 섰다.

이곳을 책임지겠다는 뜻이었다.

상황을 따지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백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나선 여섯 명 모두, 지난 한 달 반가량의 시간 동안 큰 성취를 이루었다. 백리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버티기가 어려워지면 바깥채 쪽으로 피해야 한다.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 명령이다.]

백리우의 전음이 정마 연합 측 인원들 모두의 귓전에 동시에 파고들었다.

“충(忠)!”

“명(命)!”

구호는 달랐지만 어차피 같은 마음과 같은 뜻.

[죽지 마라.]

문득 들려온 짧은 전음은 송주의 목소리였다. 홍련이 곧바로 대꾸했다.

[존명.]

[아니, 명령 아니야. 약속해달라는 거다.]

송주를 바라보는 홍련의 눈동자가 점점 커져 갔다. 송주의 전음이 이어졌다.

[물론 나도 살아남을 것이다. 둘 다 살아남지 않으면 약속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버려서 말이다.]

홍련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홍련이 대꾸했다.

[그 약속,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킵니다.]

비슷한 시각, 선화란과 적룡도 전음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왜 그런 눈빛으로 봐? 또 애송이라며 한마디 해줘야 그 속이 시원하겠어?]

적룡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대견해서 그래. 그리고 이제 당신은 애송이 아니야. 충분히 훌륭한 동료 조장이니까,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돼.]

의외의 반응에 선화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선화란이 말했다.

[이 일 끝나면 술 한잔 사.]

적룡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화란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말이야.]

그 순간, 송주가 적진 한복판을 돌파하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적들을 향해 펼쳐내는 송주의 검법이 강맹하고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선화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뒤돌아서서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가는 채로,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는 적룡의 모습을.

백리우와 혁련강이 송주의 뒤를 쫓으며 검을 떨쳐내니, 가까운 곳에 있던 적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 뒤를 몇 명의 인물들이 따랐다.

진입조의 최후방에 위치한 인물은 단유소였다.

마지막으로 적의 방어선을 통과한 단유소가 고개를 돌렸을 때, 선화란과 홍련을 비롯하여 남은 이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미소 띤 표정.

서백풍과 곽승추가 단유소를 보며 오른손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대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조장님.]

서백풍의 전음이 들린 순간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달렸다.

그곳에 남은 인원들이 곧바로 주변의 적들을 향해 맹호처럼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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