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작전 연장 (1)
동굴 밖으로 나와서 보니 과연 밖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진평이 서둘러 묻자 유굉 대사의 곁에 있던 모용국이 답했다.
“퇴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북쪽과 동쪽 산지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왔소. 그 직후에 적들이 빠른 속도로 덮쳐와서 이렇게 된 것이오.”
“적의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지금까지 드러난 숫자만 해도 최소 우리의 세 배 이상은 되는 듯하오. 종종 절정 이상의 고수들도 섞여 있는 듯한데, 대부분은 이류에서 일류 수준의 전력이오.”
정혼단은 최소한 일류 고수 이상에 절정 고수가 다수 포진된 정예들이었다. 적들의 수준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어, 숫자가 적더라도 어렵지 않게 적들을 상대할 만한 전력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용국은 난감함이 깃든 표정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골치가 좀 아픈 게, 적들이 목숨을 아예 도외시한 채로 우리 단원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오. 그래서 초반 교전에서의 피해가 생각보다는 높은 편이고…….”
정혼단의 전력을 유지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전력이 줄었을 때 보충하기가 까다로운 탓이다.
전력을 잃으면 또다시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와 세가들에서 차출을 해야 하는데, 그 수가 많아지면 그들에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저희들도 전투를 돕겠습니다.”
단유소의 지시를 받은 진평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유굉 대사가 반색하며 대꾸했다. 그 또한 이미 신룡대에 대한 소식을 들은 탓이었다.
“아미타불, 그렇게만 해준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네.”
유굉대사는 얇은 상의와 얇은 하의만을 걸친 상태였다. 원래 동굴 안에서부터 상의는 탈의한 상태였는데, 정협단주로서의 최소한의 체통은 유지해달라며 부하들이 억지로 걸치게 한 것이다.
단유소가 곧바로 적룡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곳에는 나와 우리 부조장이 있을 테니, 자네가 대원들을 통솔해줘. 빠르게 집결해서 다른 임무를 수행해야 할 수도 있으니, 대원들을 나누지 말고 함께 다녀. 절대로 적진 안쪽으로 진입하지는 말고.]
이미 혼원태극공을 세 차례나 썼다. 직접 싸우고 싶지만 지금은 진기를 안정시켜야 할 때였다. 그래서 적룡에게 부탁한 것이다.
적룡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단유소가 선화란에게도 따로 그 사실을 알리니, 그녀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윽고 신룡대원들이 빠르게 사라져가자 진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벽력탄과 재료들을 수거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는 하나, 그래도 적의 대처가 매우 빠른 편입니다. 인근에 적의 또 다른 거점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평이 단유소와 더불어 나누었던 이야기를 꺼내니, 정혼단의 지휘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국이 대꾸했다.
“우리도 그 이야기를 했었소.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곳을 조사할 전력을 따로 빼는 것은 무리요. 너무 위험하기도 하고.”
진평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유굉 대사에게 따로 전음을 보냈다.
[일단 전황을 보고, 안정권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 되면 저희들이 조사하러 가볼까 합니다.]
[아미타불, 위험할 공산이 크지만 자네들이 신룡대인 이상 말리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
경공을 펼치기 시작하자마자, 선두에서 달리던 적룡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선봉을 맡지. 그리고 창을 쓰는 그대와 그 옆에 있는 그대도.”
적룡이 말한 ‘당신’은 선화란이었고, ‘창을 쓰는 그대’는 서백풍이었다. ‘그 옆에 있는 그대’는 곽승추였다.
“예!”
서백풍과 곽승추가 동시에 대꾸했고 선화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황룡조의 부조장과 쌍검을 쓰는 그대는 중진을 맡는다. 황룡조의 부조장은 진형을 유지하는 쪽에 중점을 두고, 그대는 지원이 필요한 쪽을 지원한 후에 빠르게 중진으로 복귀한다.”
‘황룡조의 부조장’은 이검인, ‘쌍검을 쓰는 그대’는 연소운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대꾸했다.
“예!”
그러자 적룡이 또다시 한 사람을 호명했다.
“영목이 우리 조원들 세 명과 함께 후미를 맡는다.”
하영목(何楹木)은 적룡조의 부조장이었다.
“예!”
하영목까지 대답을 마치자 적룡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봉과 후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중진이다. 이상.”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신룡대원들이 누군가는 더 빨리, 누군가는 더 느리게 속도를 조절해가며 적룡의 지시대로 진형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선화란은 내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저 사람에게도 우리 조와 묵룡조는 처음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룡은 엽풍, 백운, 금추 등의 실력자들을 단번에 지목해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룡이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게다가 묵룡의 성격상 그들의 실력에 대해 따로 적룡에게 귀띔해줬을 리도 없었다.
적룡의 저런 모습을 보니, 문득 아까 단유소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상대가 적이든 아군이든, 고수를 알아보고 그의 경지와 정체를 빠르게 짐작해내는 것은 무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능력이야. 그래야 비로소 전체적인 상황을 본인이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거거든.”
과연 그 말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적룡이 딱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만약 자신이었다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는 걸 선화란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쳇.’
적룡이 짜증 나는 인간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그리고 그 순간, 신룡대는 어느새 전선에 다다라 있었다. 선두에 있던 적룡이 빠르게 보법을 밟으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휙! 촤악―
언월도의 시퍼런 날이 허공을 선회하더니 두세 명의 적을 동시에 갈랐다.
적들의 몸이 갈라졌다 싶은 순간, 언월도의 칼날은 또다시 허공을 선회하며 핏물을 털어냈다. 그와 동시에 칼날은 여지없이 다른 적들을 갈랐다.
휙휙휙휙―
적룡의 언월도가 허공에서 풍차처럼 회전했다.
다음 순간, 회전력이 실린 그의 언월도가 횡으로 공간을 넓게 베었다.
슈아악―
초승달 모양의 강력한 기운이 넓은 범위를 점하며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한 번에 열 명도 넘는 적들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전선에 투입된 후로 이제 겨우 반 각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적룡의 언월도에 쓰러져 간 적들의 숫자만 해도 벌써 수십 명이었다. 적룡의 언월도는 앞을 막는 모든 것을 베었다.
그렇게 신룡대는 전선을 이동하며 계속해서 적들을 베었다.
적재적소에 검을 찔러 넣는 와중에도 선화란의 시선은 부지런히 적룡의 자취를 따르고 있었다.
‘대단……!’
적룡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무인으로서의 그는 정말 대단했다.
그렇게도 무뚝뚝하고 냉정해 보이던 사람이, 전장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았다. 그 모습이 적룡이라는 그의 호칭과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룡과는 매우 다른 느낌의 전투 방식이었다.
묵룡이 전투를 펼치는 모습은 뭐랄까, 한마디로 단정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고고하고 선이 고운 느낌이다.
적룡이 전투를 펼치는 모습은 직관적이며 선이 굵은 느낌이다.
묵룡은 먼저 공간 전체를 장악한 후에 그 안에서 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느낌인데, 적룡은 적을 확실히 제압해가며 공간을 점점 와해시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묵룡은 군사(軍師) 같고, 적룡은 장수 같다.
어쨌거나 적룡의 무위를 보니 묵룡이 새삼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느끼게 된다. 적룡도 저렇듯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 묵룡은 그런 적룡보다도 훨씬 고수인 것이다.
신룡대가 전선에서 활약하는 덕분에, 전투를 치르는 정협단원들의 사기도 점점 치솟고 있었다.
산 중턱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전장을 주시하던 유굉 대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그의 시선은 전장 너머의 먼 곳에 향해 있었다.
“아무래도 적이……, 증원된 것 같소.”
유굉 대사의 음성이 심각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그가 말한 내용이었다.
“그런……!”
참모들의 시선이 유굉 대사의 시선을 좇았다.
과연, 대규모의 무리들이 적들의 뒤쪽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전장의 북쪽이었다.
“아아, 저럴 수가……!”
“저 정도 규모라면……!”
지휘관과 참모들이 안타까움 가득한 음성을 내뱉을 때, 모용국이 말했다.
“이렇게 되면 퇴각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재료들은 어쩔 수 없다손 치고, 벽력탄이라도 챙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팽야창이 모용국에게 말했다.
“이렇게 된 김에, 아예 벽력탄으로 저들을 처치하는 게 어떻겠소? 괜히 그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퇴각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결국 적들에게만 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잖소?”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벽력탄은 제조뿐만 아니라 사용까지도 국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모용국이 대꾸하자 팽야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고 있소.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잖소. 이대로 있다가는 결국 우리만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게 될 거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지 않겠소? 충분히 정상참작이 될 만한 상황이라 사료되는데. 게다가 저들에게도 본인들의 수법이 얼마나 악랄한 것이었는지 따끔하게 알려줄 필요가…….”
그 순간, 유굉 대사가 팽야창의 말을 끊으며 단호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것은 아니 될 말씀이오! 국법도 국법이지만 그 전에, 백도인인 우리가 어찌하여 저 무도한 무리들의 수법을 따라하려 한단 말이오? 그러고도 어찌 우리가 정과 의와 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러자 팽야창이 대꾸했다.
“소생이 하도 답답하여 다소 무리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때였다.
“한데 합류하려는 적들의 움직임이 약간 이상합니다.”
모용국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또다시 그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기도…….”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북쪽에서 적의 후방으로 합류하는 듯하던 대규모의 무리들이 갑자기 적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응? 적을 공격하고 있다니?”
“저게 무슨……!”
모두가 놀라서 외쳐댈 때, 유굉 대사가 황보균에게 물었다.
“혹시 맹에서 따로 들은 이야기는 없었소? 맹 차원에서 또 다른 전력들을 준비시켜두었다던가.”
아무래도 황보균의 형이 무림맹의 무상이다 보니 혹시 알고 있는 정보가 없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황보균이 답했다.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황보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투였다.
그때 진평이 입을 열었다.
“황보 대협께서 말씀하셨듯 무림맹에 소속된 전력은 아닐 겁니다.”
“하면 대체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물론 제대로 확인을 해봐야 명확해지겠지만, 저희들이 얻은 단편적인 정보를 토대로 짐작해보면 저들은 천마신교 측의 전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에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마교라니……!”
적어도 이곳에는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한시적인 동맹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림맹 장로회의에서 천마 혁련강을 면전에 두고 직접 동맹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천마신교가 무림맹을 돕고 있다고 하니 놀라운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