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61화 (161/200)

161화. 거점 타격 (6)

곽승추가 대꾸했다.

“예. 임무가 위험해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을 때에는 꼭 독한 것으로 챙겨 오거든요. 어차피 죽는 마당에 술이라도 한잔 마실 수 있어야죠.”

노인이 입맛을 다셨다.

곽승추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났다.

“어르신도 술 좋아하시는 모양인데, 감춰둔 게 있으실 것 아닙니까. 그거라도 한잔하십시오.”

“없다, 이놈아. 이곳에는 술 같은 거. 네놈이 봐도 이곳은 인화성 물질을 들일 수 없는 곳이 아니냐.”

“아하! 그렇군요. 제가 워낙 이런 쪽으로는 식견이 없어서 말입니다. 하면, 어르신께서도 한잔하시겠습니까?”

대머리 노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나눠주겠느냐?”

“어르신에게서 받은 은혜가 있는데, 제가 술이라고 못 드리겠습니까?”

대머리 노인의 안색이 환해졌다.

곽승추가 주머니의 마개를 닫더니 노인에게 던질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다시 생각해도 몹쓸 자들이군요. 어르신만 남겨두고 젊은 놈들끼리만 도주하다니. 어르신에게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그놈들을 따라가서 혼쭐이라도 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곽승추가 가죽 주머니를 던졌다. 가죽 주머니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느리게 날아갔다.

대머리 노인이 날아오는 가죽 주머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 팔을 뻗었다.

“이놈아. 어디긴, 저쪽…….”

거기까지 말하던 대머리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날아오고 있는 게 술병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쉭―

매우 은밀한 파공음이었지만 왕운생은 분명히 들었다.

그 파공음이 시작된 곳은 자신의 뒤쪽이었다.

곽승추가 던진 술병이 노인의 눈높이에 이르렀을 무렵, 무언가가 은밀히 노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던 것이다.

자신의 뒤쪽에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다.

이들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던 청년으로, 이름은 아직 모른다.

어쨌거나 왕운생이 안력을 돋워보니, 날아가고 있는 것은 기다란 하나의 검이었다. 그 검은 칠흑처럼 검은색이었다.

그런데 그 소검이 날아가는 속도가 경악할 수준이었다.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이니, 검(劍)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點)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응? 한 자루가 아니라 두 자루?’

왕운생이 자세히 보니 똑같이 생긴 검 두 자루였다. 한 자루가 앞에서 날고, 나머지 한 자루가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자루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대머리 노인이 이상함을 알아챈 건 그때였다.

“이런 고얀……!”

곽승추의 가죽 주머니를 낚아채려던 대머리 노인의 손에 강력한 기운이 담겼다. 왜소하고 꾸부정한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노인이 반응한 순간, 왕운생은 뒤쪽에서 한 줄기 미풍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직후, 누군가가 자신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실제로도 잔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

왕운생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여태껏 무인으로 살면서 봐온 누군가의 움직임 중에 가장 빠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빨랐던 탓이다.

즉, 자신의 뒤에 있던 청년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고수라는 뜻.

그런 고수를 여태껏 못 알아보고, 존재감이 가장 없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따라오십시오!]

엽풍이라는 청년의 전음.

그들은 이미 동굴의 한쪽 벽을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앞서 노인이 무심결에 밝혔던 또 다른 퇴로였다.

왕운생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무렵, 노인이 한 손으로 흑색의 소검을 쳐냈다.

태앵!

소검 한 자루를 막아낸 직후, 대머리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분명히 방어했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모양의 검 한 자루가 목 언저리로 날아들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머리 노인이 몸을 비틀어 방어 자세를 취하며 또다시 그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쳐내려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푸북―

나중에 날아간 흑색의 소검이, 막으려던 노인의 손을 관통하여 그의 어깨까지 관통했다.

단유소가 연달아 날린 소검에 담긴 힘을 완전히 다르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뒤에 날렸던 소검에 담긴 힘이 훨씬 강맹했다.

“큭!”

노인이 신음을 내뱉을 무렵, 또 다른 검 한 자루가 이미 노인의 복부에 닿고 있는 중이었다.

앞서서 곽승추가 포기했다는 듯 전방에 던져놓았던 검을 단유소가 발로 강하게 찬 것이다.

물론 던져놓을 당시에 곽승추가 검극(검신의 뾰족한 부분)을 노인 쪽으로 향하게 하고, 검병(검의 손잡이)이 단유소 쪽으로 향하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을 저곳에 던져놓았던 것도 미리 계획되었던 일이었다니……!’

왕운생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노인에게 가죽 주머니를 던져 그가 방심한 순간에 기습한 것도 그렇고, 이런 포석을 생각하여 미리 검을 던져둔 것도 그랬다.

푸욱―

“컥!”

검이 결국 대머리 노인의 복부를 관통했다. 흑색의 소검에 신경이 팔려 있었기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빌어…… 먹을……!”

대머리 노인의 신형이 천천히 무너졌다. 그러자 그가 들고 있던 호롱불이 자연스럽게 벽력탄이 들어 있는 상자 안으로 향했다.

저게 저대로 떨어지면 호롱불 안에 들어있던 기름과 함께 불길이 확 치밀 것이다. 그 불길은 당연히 심지들에 옮겨붙을 테니, 그 이후의 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단유소의 신형이 질풍처럼 상자 쪽으로 나아갔다.

“위험……!”

왕운생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상자로 다가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불 속으로 날아가는 불나방처럼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던 탓이다.

단유소가 낮게 도약하자, 과연 상자 안을 빼곡하게 채운 벽력탄들이 보였다. 단유소가 상자 안으로 떨어지는 호롱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공섭물을 펼치기엔 거리가 너무 먼데……!’

왕운생은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저 청년이 대단한 경지에 있는 고수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그 능력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저 청년이 돌아서기엔 이미 늦은 마당이니까.

그때였다.

상자 안으로 떨어지던 호롱불이 둥실 떠올랐다. 그러더니 단유소가 뻗은 손을 향해 날아왔다.

“아아아아!”

왕운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두가 단유소 쪽으로 달려갔다.

“후우…….”

단유소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노인을 기습하기 시작한 이후로 혼원태극공을 총 세 번 썼다.

경지가 상승하여 혼원태극공을 두 번까지는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세 번까지는 솔직히 무리였다. 그럼에도 호롱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한 것이다.

약간 어지러웠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그 즈음 뒤쪽 벽에 박혀 있던 본인의 검을 챙긴 곽승추가 대머리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의 복부에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인은 생의 불꽃이 꺼져 가는 모습이었다.

곽승추가 말했다.

“쯥……! 어르신. 편안하게 보내드릴게.”

연민이 담긴 음성.

“고얀…… 놈…….”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대머리 노인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 속에서 어떠한 달관한 모습 같은 게 느껴졌다.

곽승추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에 바로 검을 내리쳤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던 중에 왕운생이 단유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대체…….”

그의 눈동자와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대머리 노인을 기습한 후로 그를 제압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단유소가 보인 신위는 그야말로 상상 초월이었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단유소가 포권하며 대꾸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왕 대협. 저는 문소(門嘯)라 합니다.”

단유소의 입장에서는 가명을 말한 것이지만, 왕운생은 그 이름을 속으로 계속해서 되뇌는 중이었다.

이검인이 서둘러 말했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이 벽력탄을 옮길 인원들을 대동하고 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이 노인이 말했던 통로로 나가보심이 어떤지요.”

서백풍과 곽승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단유소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었다.

“뭔가 이상합니까?”

곽승추가 단유소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단유소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동굴의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대머리 노인이 가리켰던 그 퇴로 방향이었다.

곽승추가 고개를 갸웃할 무렵, 서백풍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그 또한 단유소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곽승추가 서백풍에게 황급히 전음을 보냈다.

[형님, 뭡니까? 뭔가 있습니까?]

[응. 누군가가 있다.]

그러자 곽승추가 천천히 검을 고쳐 쥐었다.

그 즈음 단유소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 건가?”

단유소가 묻자 누군가가 구석진 곳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부진 체격에 청의를 입고 언월도를 든 사내.

그가 단유소를 향해 대꾸했다.

“긴가민가해서 말이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매우 무뚝뚝한 어조.

어지간한 단유소의 지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서백풍과 곽승추로서도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그 인물의 정체가 매우 궁금했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야? 맹에서 대기하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른께서 갑자기 이곳으로 가라고 해서 말이야. 동굴에 또 다른 퇴로가 있을지 모르니, 면밀히 조사하여 동료들을 지원하라고 하시더군.”

“나타난 방향을 보니 제대로 찾은 모양이군?”

“말도 마.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개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녔으니까.”

청의 사내는 특이했다.

하는 말마다 무뚝뚝했고 얼굴에도 표정이 없었다. 나타난 후로 단 한 번도.

단유소가 물었다.

“그쪽으로 혹시 적들이 나가지 않던가?”

“부하들과 함께 처리했지.”

“부하들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뒤쪽에 대기하고 있으라 했지.”

청의 사내가 그렇게 대꾸하더니 뒤쪽의 깜깜한 통로에 대고 외쳤다.

“전원 합류!”

그의 목소리가 어둠 속을 메아리치며 나아갔다.

단유소가 또다시 희미한 미소를 보인 채로 말했다.

“그 무뚝뚝한 성격, 여전하군?”

“자네는 그 전보다 더 강해졌더군. 대체 어떻게 된 인간인지.”

청의 사내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질렸다는 뜻.

단유소가 손을 펴서 왕운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른이 계신데, 인사부터 드리지. 무당파의 왕운생 대협이셔.”

청의 사내가 바로 왕운생을 향해 포권해 보였다.

“왕 대협을 뵈옵니다.”

단유소가 대신 청의 사내를 소개했다.

“제 동료입니다.”

“아……! 그럼 그도……?”

신룡대냐는 뜻.

단유소가 바로 대꾸했다.

“예.”

그러자마자 단유소의 귓전에 서백풍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말씀하시는 투를 보아하니 설마 그가…….]

[그래. 그가 바로 적룡이다.]

적룡조원 두세 명이 이곳에 있는 벽력탄을 알리려 바깥으로 나갔을 때, 단유소와 적룡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렇게 만나는 게 이 년 만인가?]

[그쯤 된 것 같군.]

주로 질문하는 쪽은 단유소였고, 대꾸하는 쪽은 적룡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룡이 먼저 물었다.

[황룡은?]

[조를 나눴지. 지금쯤 정혼단과 함께 동굴 밖에 있을 거야.]

[그녀는 어때?]

[미인인 것 같더군.]

단유소가 농담조로 대꾸하자 적룡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단유소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유소가 짐짓 움찔하는 척하며 대꾸했다.

[막내 조장이잖아. 실력은 아직 어설프지. 보니까 발전 가능성은 상당히 커 보여.]

그제야 적룡이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는 듯, 단유소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