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47화 (147/200)

147화. 합동 임무 (6)

[녀석은 겁에 질려서 거의 울 것 같은 모습이었지. 그러던 어느 순간에 녀석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지는 듯하더니, 갑자기 맹렬하게 쌍검을 휘두르는 거야. 그런데 그때 펼친 녀석의 쌍검술이 정말 대단하더군. 감탄이 나올 정도였어. 대련이 끝나고 확인해보니 본인이 방금 전에 뭘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더군.]

[뭐야? 무아지경 같은 거야? 아니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자아?]

[나도 확실히는 몰라. 뭐, 그 비슷한 거겠지. 어쨌거나 녀석은 매사에 유독 긴장을 많이 해서, 실전에서는 가진 실력의 일이 할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거야. 지금은 거의 극복한 모습이지만, 근래까지도 그런 성향이 많이 남아 있었어.]

아까 장원에서 포위당했을 때 쌍검술을 펼치던 백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실로 훌륭한 쌍검술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치 뇌리에 각인된 것처럼 아까의 상황이 선명하기만 했다.

협공을 펼치다 보면, 순간마다 누군가가 꼭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거나, 내지는 누군가가 꼭 어떤 위치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훨씬 효율적으로, 유리하게 싸움을 이끌어갈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아까의 백운이 그랬다.

요소마다 늘 그가 있었다. 그렇기에 훨씬 안정적으로, 효율적으로 싸울 수가 있었다.

황룡조원들과 함께 싸울 때도 그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았던 적은 없었다. 백운과는 마치, 오랜 세월 함께해온 동료처럼 손발이 잘 맞았다.

그런 대단한 실력자가, 실은 턱걸이 후보생이었다니. 얼마 전까지도 신룡대원으로서 제대로 깜냥을 해내지 못했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고마워. 앞으로 신입을 차출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네.]

잠시 후에 선화란이 다시 말했다.

[애초에 조원들의 자질이 뛰어났다 해도, 그들이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역시 당신이 잘 이끌었기 때문이겠지. 조원들도 잘 키우고, 무공도 엄청나게 강하고. 합동 임무를 수행하면서 보니 작전도 잘 짜고. 상부에서 왜 당신을 최고라고 하는지 확실히 알 것 같네.]

단유소가 피식 웃어 보이자 선화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같은 대단한 무인이 나랑 같은 조장이라는 게 여전히 믿어지지는 않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그런 셈 칠게. 다만…….]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선화란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언젠가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되겠지? 어쩌면 직속상관이 될 수도 있을 거고.]

[글쎄.]

[아, 다른 뜻은 아니고. 오늘 보니까, 언젠가 당신이 내 상관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별로. 난 부담스러운 위치는 딱 질색이거든. 지금처럼 합동 임무의 총책임자인 것 자체가 별로고.]

그 말에 선화란이 웃어 보였다.

[앞으로 합동 임무가 지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잘 부탁해.]

[나야말로.]

단유소가 간단하게 대꾸하자 선화란이 돌아섰다.

[그럼 나도 들어가서 쉬어야겠어.]

단유소가 고개만 끄덕여 보이자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별채의 현관문에 다다른 그녀가 마지막 전음을 보냈다.

[듣기로 묵룡은 무뚝뚝하고, 다른 조와는 잘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더니, 내가 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네.]

그 말을 남긴 선화란이 별채 안으로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단유소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합동 임무 건으로 황룡조와 함께 문상의 집무실에 소집되었던 적이 있었다.

합동 소집이 끝난 직후에 문상 제갈윤과 잠시 독대를 했었다. 그때 제갈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룡대에 변절자가 생긴 것이 결국 우리의 관리 소홀 탓임을 부인하지 않겠네. 지금은 그나마 온전한 조가 적룡조, 황룡조, 묵룡조뿐이고, 운용 가능한 대원의 숫자도 열댓 명 남짓이지. 남아 있는 인원들에게라도 더 신경을 써줘야 마땅하나, 혈천맹의 일로 워낙 바쁜 탓에 지금은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일세.”

제갈윤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했었다.

“마침 합동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고 하니, 자네가 일단 황룡조부터 신경을 좀 쓰며 관리해줘야겠네. 신룡대 관리 강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시간 날 때마다 논의할 것이나,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말일세.”

다른 조까지 관리하라니.

차라리 더 힘든 임무를 수행했으면 했지, 그런 건 통 소질에 안 맞는다고 했었다. 재고해달라고 했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닐세. 자네가 묵룡조원들에게 해주는 것의 반의반 정도만 신경 써주게나. 그 정도면 된다네. 부탁하지.”

간곡히 부탁하는 어조였지만 그 또한 에둘러서 전하는 완곡한 명령이었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자신은 없다고 마지못해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윤은 그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만 했다.

어쨌거나 변절자 색출 건으로 인해 상부에서도 골치가 아프긴 아픈 모양이었다.

몇 년간 지켜본 바, 신룡대를 관리하는 사람은 맹주와 문상뿐이었다.

문상 아래에 실무진이 있긴 있겠지만, 실질적인 신룡대의 상관은 그 둘이라고 봐야 했다.

어차피 신룡대 전체가 모여서 임무를 수행할 일은 거의 없었으니, 대주나 부대주도 굳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각 조별로만 운용하면 되었기에 전체를 관리할 필요가 딱히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신룡대의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었던 것도 점조직과 유사한 특유의 운영 체계 때문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근래 혈천맹에 의해 매수된 대원들이 생기면서, 운영 체계상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맹주와 문상이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관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일단 이 일을 맡긴 걸 보니, 뭔가 자신을 중심으로 나중을 대비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눈치가 느껴지기도 했다. 독대할 때 제갈윤의 표정에 분명히 그런 분위기가 드러났었다.

‘송구하지만 안 됩니다, 이 이상은.’

혈천맹 사태가 끝나고 강호가 안정되면, 조장으로서의 복무 기한만 마치고 신룡대를 그만둘 것이다.

그 후에는 평범한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살 것이다.

혼외 자식으로 태어나 늘 조심하면서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스승님과 함께 오로지 무공만을 익히며 살았던 소년기와 청년기.

그렇기에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평화롭고 평범한 가정.

스승님은 본인이 무림맹에 빚진 게 있으니, 제자인 자신이 그걸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 빚을 갚았다 싶으면 바로 떠날 것이다.

“무슨 새벽바람을 그리 오래 쐬십니까?”

단유소가 이 층에 있는 묵룡조의 방으로 들어가자, 서백풍이 술병을 들고 그렇게 물었다.

거실을 제외하면 별채의 방은 총 세 개였다.

선화란과 호문혜가 여인끼리 가장 작은 방을 썼고, 나머지 황룡조원의 남자 조원들이 중간 크기의 방을 썼다. 묵룡조가 쓰는 방이 가장 넓었다.

조원들은 방에서 또다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 자겠다고 먼저 들어갔던 진평과 연소운도 다시 깨어 있었다.

안 봐도 빤했다. 서백풍과 곽승추가 더 마시자며 깨웠을 것이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코가 삐뚤어지게 마실 거냐면서.

“이 인간들아. 이미 해가 떴어, 해가. 이쯤 됐으면 적당히들 마시고 좀 쉴 것이지.”

단유소가 눈매를 찡그리며 그렇게 말하자 곽승추가 대꾸했다.

“으헤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조원들끼리 마무리 한잔은 해야죠.”

“마무리 한잔 같은 소리 한다.”

“에이. 말씀은 그리 하셔도 결국 저희들이랑 한잔 더 드실 거면서.”

곽승추가 넉살 좋게 대꾸하자 단유소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조원들의 곁에 가서 앉았다.

막내인 연소운이 얼른 단유소의 잔을 챙기더니 술을 채웠다.

술자리에서는 주로 이번 임무와 황룡, 그리고 그 조원들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다.

대강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서백풍이 말했다.

“우리도 신입은 여자로 좀 받죠.”

“고양이한테 생선 맡길 일 있냐?”

진평이 즉시 대꾸하자 서백풍이 말했다.

“에이, 참. 형님은 사람을 어떻게 보시고. 조원은 식구인데 설마 제가 식구한테도 그러겠어요? 제가 아무리 쓰레기여도 그 정도로까지 쓰레기는 아니라고요.”

본인을 비하하는 서백풍의 농담에 모두가 웃었다.

사실 신룡대 내에서의 연애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본인들이 몰래 연애를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만.

서백풍이 다시 말했다.

“아시다시피, 뭐, 저도 원래는 여성 조원이 썩 달갑지는 않다는 쪽이었어요. 함께 지내면 아무래도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게 있잖아요. 게다가 여자 얘기도 마음 놓고 못 하고. 그런데 합동 임무 하면서 황룡조 보니까 나름 분위기가 좋아 보이긴 하더라고요.”

단유소가 보니 조원들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다들 불편할 것이라고 아우성이었을 텐데, 확실히 황룡조의 영향이 크긴 컸던 모양이었다.

“그래. 고려해보마. 단, 백풍 너, 여자 조원한테까지 찝쩍거리면, 그날로 선 조장의 그 친구 부를 줄 알아.”

단유소의 말뜻을 알아들은 서백풍이 화들짝 놀랐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라니까요. 아휴, 소름 돋아.”

서백풍이 양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감싼 채 부르르 떨자, 그의 과장된 몸짓에 모두가 또다시 웃었다.

잠시 후, 서백풍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데 조장님, 그때 휴가 이후로 표정이 좋지 않으셔서 억지로 이런 말씀은 안 꺼냈었는데…….”

“야, 야.”

서백풍이 어떤 말을 꺼낼지 알아차렸다는 듯, 진평이 낮은 목소리로 제지했다. 그럼에도 서백풍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에이. 어때요. 시간도 제법 지났고, 술도 거나하게 마셨으니 이런 때 제대로 알아봐야죠.”

그러더니 서백풍이 단유소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정말로 한 소저와는 진척 없이, 아무 일도 없이 끝난 겁니까?”

단유소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휴가를 마치고 사천지부로 복귀하자마자 조원들은 자신과 한설연 사이에 어떤 진척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었다.

한데 그때 마침 문상 제갈윤의 소집령이 있었다.

합동 임무 건 때문이었는데, 황룡조와 처음 대면한 것도 바로 그날 밤이었다. 물론 제갈윤에게서 황룡조원들을 신경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도 그날이었다.

소집이 끝나고 나서 숙소로 복귀하자 조원들이 조심스럽게 또 물었는데,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있으니 얼른 자라고만 말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며 먼저 이불을 덮어써 버렸던 것이다.

혈천맹에 관련된 임무는 위험도가 높아 집중을 요하니, 임무가 끝나고 밝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자신과 한설연이 잘되었다는 걸 알면, 조원들은 성향상 틈 날 때마다 그 얘기를 할 게 빤했다. 그러면 임무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원들이나, 자신이나.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연애에 관한 문제는 모든 것에 우선해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니까.

“아니, 저희들이 그렇게 밀어드렸는데, 게다가 두 분 사이에 오가는 분위기도 제법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도 잘 안 된 겁니까? 이유가 뭡니까?”

서백풍의 말이었다.

그는 아마도 지금 자신이 짓고 있는 미소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보아하니 서백풍뿐만 아니라 모든 조원들이 그렇게 받아들인 듯했다.

곽승추가 체념한 듯 말했다.

“어쨌거나 한 소저는 좋은 분이시니 그분에 대한 다른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정확한 사정도 모르고요. 다만, 이왕 틀어진 거라면 다른 대책을 세우시죠. 여자는 여자로 잊는 법 아니겠습니까, 조장님.”

“바로 그거지!”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듯 서백풍이 호응하더니, 짐짓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하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아까 보니 조장님을 바라보는 선 조장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황룡조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용모도 빼어난 것 같고, 몸매는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뭐, 간혹 무서운 말씀을 하시긴 합니다만, 그거야 거친 신룡대 생활을 하며 사내들을 통제해야 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죠.”

조원들이 공감한다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자 서백풍이 말을 이었다.

“제가 또, 여인 보는 눈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이 전문가의 시선에서 볼 때, 선 조장님의 등급은 상중(上中), 아니면 최소한 상하(上下)급 이상은 됩니다.”

서백풍 특유의 구등분법이 간만에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