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합동 임무 (5)
선화란은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이었지만 단유소는 특유의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선화란이 단유소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는 우리 조원들이 있는 자리라서 내색하지 않았는데, 솔직히 많이 창피했어. 당신네 막내, 쌍검을 쓰는 백운 말이야. 그와 함께 장원에 잠입해 있던 지난 며칠간, 그가 나보다 한참 하수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무시했었거든. 위험성이 높은 잠입 작전의 특성상, 당신이 그런 친구를 내게 붙여준 것에 대해 불만도 많았었고.]
선화란이 먼 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전음을 보냈다.
[왜 그의 원래 실력에 대해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지고도 싶지만, 그건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 그렇다고 치자구. 그가 고수여서 나한테 해로울 일도 없고.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선화란은 장원에서의 전투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보니까 그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였어.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막내뿐만이 아니었어. 아까 보니 창을 쓰는 엽풍이라는 자도 엄청난 실력자던데.]
백운은 연소운, 엽풍은 서백풍이다.
지금 선화란은 그 두 사람이 본인과 비슷한 실력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조금 과장되게 말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녀의 경지가 적어도 한 끗발은 더 높다. 신임 조장이라 해도 괜히 신룡대의 조장, 즉 오룡의 일인인 게 아닌 것이다.
단유소에게서 여전히 대꾸가 없자 선화란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단유소를 똑바로 바라보며 전음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뭐야?]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단유소가 오랜만에 대꾸했다.
[뭐긴? 당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 묵룡이지. 당신과 같은 신룡대의 조장이고.]
그러자 선화란이 눈매를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볼 때 당신은 아무리 낮춰 잡아도 백도 십대 고수 안에 충분히 들 만한, 어마어마한 실력자야. 그런 경악할 만한 수준의 초고수가, 겨우 나와 같은 신룡대의 조장일 뿐이라고?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그렇다니까.]
그러자 단유소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화란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다른 조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전투력. 그리고 수장인 당신의 그 말도 안 되는 경지. 가뜩이나 상부에서 당신을 총애한다는 건 신룡대 안에서도 공공연한 사실로 통하고. 혹시 당신……, 신룡대주야?]
선화란은 더없이 진지한 눈빛이었다.
단유소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이자 선화란이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상부에서는 대주나 부대주 자리가 공석이라고 했지만, 그 중요한 자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공석으로 둔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도 않고.]
[그럴듯한 추론이긴 한데, 안타깝게도 너무 넘겨짚으셨어. 우리 부조장이야 나보다 오래 묵룡조에 있었으니 논외고, 나머지 세 명은 당신이 신입들을 선발한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선발한 거거든. 가뜩이나 저 세 친구들을 차출할 때, 나는 지명권에서 모두 최후 순번이었다고.]
그 말에 선화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룡대의 각 조에서 신입을 선발하는 방식은 바로 조장의 지명이다.
신룡대의 훈련생들이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치면, 교관들의 평가에 의해 그중에서 열 명만이 최종적으로 남게 된다.
일단 이 배수를 뽑아놓는 것인데, 그 십 인 안에 든 훈련생들을 후보생이라 한다.
조장들은 후보생들을 직접 보고 적절한 인재를 선발한다. 그러면 그 후보생이 신입 조원이 된다.
신룡대는 다섯 조이니, 나머지 다섯 명은 선발에서 탈락한다.
선발에서 탈락한 후보생들은 일정 기간 동안 예비 대원으로서 따로 훈련을 받으며 대기하다가, 혹시 모를 결원이 발생했을 시에 충원이 된다. 예비 대원은 보통, 이전 기수까지 포함해서 열 명가량이 상시로 유지된다.
보결 인원을 선발하는 방식도 역시 조장의 지명이다. 그때에도 선발이 되지 못하면, 일정한 대기 기간이 지난 후, 자동적으로 맹의 다른 조직에 발령이 난다.
어쨌거나 선화란이 듣기로, 교관들이 후보생들을 평가한 순위는 거의 틀리는 법이 없다고 했다. 뛰어난 인재들은 대부분 상위 서너 명 안에 몰려 있다는 게, 인수인계를 받을 때 전 조장이 해줬던 말이었다.
그런데 묵룡은 본인이 늘 최후 순번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다른 조장들이 쓸 만한 후보생을 차출해 간 후에, 항상 남은 여섯 명 중에서만 신입 조원을 골랐을 것이다.
남은 후보생 여섯 명의 실력은 그만그만하다고 보면 된다.
즉, 그런 후보생들 중에서 저렇게 엄청난 조원들이 나왔다는 뜻이자, 다른 조장들은 매번 저런 인재들을 못 알아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짜로 세 번 다 최후 순번이었다고? 어떻게 세 번 다 최후 순번을 줄 수 있어?]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로 선화란이 그렇게 묻자 단유소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하긴, 당신은 아직 조장 경력이 오래되지 않았으니 잘 모를 수도 있겠군. 지명권을 주는 순서는 상부에서 판단하는 각 조장의 실력에 따른 역순이야.]
[아…….]
선화란이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룡대의 다른 조장들조차도 인정하는 최고의 실력자가 바로 묵룡이니, 그가 항상 최후 순번을 받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해는 갔지만 선화란의 표정에는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단유소가 물었다.
[이전 지명에서 최우선 순번이었던 모양이군? 시기를 보아 하니 조장이 되자마자 신입 조원을 지명하러 갔을 것이고.]
그 말 그대로라는 듯 선화란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단유소가 다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당신은 아직 조장된 지 일 년도 안 됐다면서? 신임 조장의 첫 지명은 늘 최우선 순위거든.]
[아, 그런 거였어?]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선화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당신이 최우선 지명권을 행사한 조원은 현재 그 조에 없는 것 같은데…….]
그녀의 표정이 조심스러웠다.
임무 중에 사고가 발생하여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대원도 있고, 아예 사망하는 대원도 있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일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내 경우에는 조장이 된 후로 일 년 남짓이 지나서 처음으로 조원을 지명하게 됐지. 하지만 그때는 신룡대에 이미 내 후임 조장이 들어온 후였어.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이미 최후 순번이었고.]
당시에 지명했던 조원이 바로 서백풍이었다.
단유소의 말을 들은 선화란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커졌다. 그의 말인즉 조장이 된 후로 일 년 만에, 상부에서 판단하는 최고의 조장이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쳇. 괜히 유명인인 게 아니었다는 건가.]
단유소가 희미하게 미소만 지어 보이자 선화란이 물었다.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지명은 참여 안 한 거야?]
[그때는 아직 우리 막내가 한 명의 신룡대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했거든. 보호가 필요했지.]
[보호가 필요했다고? 그렇게 뛰어난 친구가……?]
[애초에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해서 선발하긴 했지만, 녀석이 실제로 그렇게 된 건 근래의 일이었거든. 오래 걸렸지. 어쨌거나 녀석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후임을 받아주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라 생각해서.]
그래서 이전 지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
단유소가 바로 다시 전음을 보냈다.
[이제는 녀석도 제법 믿을 만해졌으니 슬슬 신입을 들여야겠지. 예비 대원들 중에서.]
단유소가 그렇게 말하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선화란이 전음을 보냈다.
[나중에 신입 선발할 때 참고하려고 물어보는 건데 말이야. 혹시 당신이 뽑은 조원들이 후보생일 때, 석차가 각각 어느 정도였는지 알려줄 수 있어?]
그러자 단유소가 묘한 미소를 지은 채로 선화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너무 많은 걸 알아내려고 하는군.]
이에 선화란이 애원하는 표정을 섞어서 대꾸했다.
[그러지 말고 좀 알려줘. 나만 좋겠다고 이러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성적순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더 좋은 안목을 가지고 대원을 선발하면 신룡대 전체에도 더 좋은 거잖아.]
단유소가 또다시 뜻 모를 미소를 보이더니 이윽고 대꾸했다.
[엽풍은 그 기수 후보생들 중에 차석이었어. 최후 순번으로 갔을 때 교관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조장들이 그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뺀질뺀질함이 너무 과하기 때문이었다더군. 아마도 통제하기가 피곤하겠다는 판단을 했겠지. 그런 성격은 조의 단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고.]
[그런데 당신은 왜 차출했지? 역시나 묵룡답게 감당할 자신이 있었던 건가?]
[아니.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어.]
[하……!]
의외의 대답에 선화란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반응하자 단유소가 대꾸했다.
[신룡대의 특성상 조원들과는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잖아. 그런 때에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줄 인물이 한 명쯤 있으면 전체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녀석은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잘하고 있고.]
그럴싸했다. 다음에 대원을 선발할 때 충분히 고려해봄 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두 번째로 받은 조원은?]
[금추, 그 녀석인데…….]
금추는 곽승추였다.
[노력도 가장 많이 하고 성격도 원만한데, 결정적으로 자질과 감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친구였어. 그 기수 후보생들 중에서 성적은 팔 위였고.]
[역시 성실함을 보고 뽑은 건가?]
[어떤 상황에서든 묵묵히 본인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꼭 필요한 사람들이고, 많으면 많을수록 단체에 도움이 되지. 내가 특히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거든. 우리 부조장도 그렇고, 그 녀석도 그렇지.]
선화란이 본 그의 모습도 묵룡조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막내는?]
[녀석의 석차는 십 위였어.]
[턱걸이였네.]
[교관들도 의아해하더군. 아무리 봐도 강할 것 같지 않은데, 꾸준히 지켜보면서 평가를 하다 보니 실력 자체가 나쁘지는 않더라는 거야. 종합 평가에서도 십 위 안에 들긴 했는데, 소심하고 겁 많은 녀석이라서 원래는 떨어트릴 생각이었대. 신룡대 생활을 버티지 못할 것 같더라나.]
선화란은 당시에 교관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룡대의 임무 중에는 위험한 임무가 많다. 괜히 어설프게 들어왔다가 잘못되면 죽거나, 크게 다쳐 불구가 되기 십상이다. 앳된 청년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그런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공정성 문제가 있으니 결국 후보생으로 선발을 하긴 한 거야. 어차피 후보생이 돼도 그런 친구를 차출할 조장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다른 조장들은 교관들의 예상대로 그를 차출하지 않았겠지. 아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야. 마지막에 당신이 교관들의 예상을 깬 것이고. 그런데 당신은 왜 그를 차출한 거야? 가뜩이나 석차도 후보생들 중에 꼴찌였는데. 당시의 그는 보잘것없었을 텐데.]
[그땐 마침 시간도 남고 해서, 남아 있는 여섯 명의 후보생들을 각각 불러서 한 번씩 다 대련을 해봤어.]
조원을 차출할 때, 조장들은 후보생들의 석차를 보고 그중에서 눈에 띄는 두세 명 정도를 따로 불러서 직접 대련을 해본다. 조원이 되면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될 테니, 눈으로 확실히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대련을 하는데, 녀석은 그때도 엄청나게 긴장을 했더라고. 그래서 나도 내심으로는 녀석을 뽑지 않으려고 마음을 정했었지. 대련을 하던 마지막 즈음에 녀석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확실하게 밀어붙였어. 녀석이 나중에라도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언젠가는 그 공포를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지. 그러면 녀석에게도 앞으로 나아갈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에.]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