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합동 임무 (3)
그 시각, 선화란도 백운과 전음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제대로 대답 안 해? 뭐냐고, 너! 방금 전에 어떻게 그렇게 한 거냐고!]
허공에서 운신하던 모습이나 낙법을 펼치며 착지하여 자세를 잡는 임기응변까지, 실로 제대로 된 고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놀란 것이다.
[소, 송구합니다, 조장님. 방금 전에는 저들도 들으라고 억지로 그렇게 대꾸했습니다. 통하면 좋고, 안 통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저자들에게 심리전이라도 한번 걸어볼까 해서…….]
선화란의 눈동자가 또다시 이채를 담았다.
뭐? 심리전?
그러니까 방심 얘기를 했던 게, 저들의 내부 분열을 유발하기 위해서였다는 뜻인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까지 다 하다니.
나쁘지 않았다. 제법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통하든 안 통하든 어차피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그리고 적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쩌면 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태껏 지켜본 백운의 모습은 소심하고 여린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동일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백운이 선화란과 서로 등을 마주하는 형태로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일단은 버티는 게 급선무입니다. 저희 조장님께서, 이들을 상대로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늘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제가 실력에 비해 방어하는 쪽으로는 약간의 소질이 있으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후로 일각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선화란은 백운과 함께 적들의 포위 공격을 부지런히 막아내야 했다.
아까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이미 수많은 장원의 무사들이 장원 안채의 마당에 집결하여,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에워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장원도 온통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호각 소리는 아마도 비상사태를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안채의 마당에 집결한 자들 중에는 선화란이 며칠간 장원에서 지내면서 파악했던 이곳의 고수들도 있었다. 즉, 포위망이 더 두터워진 것이다.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화란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표정이 좋다고 보는 게 옳았다.
이유는 역시 백운 때문이었다.
‘뭐야, 이 녀석……?’
그는 대단했다.
그와 함께 싸우다 보니 마치, 단단한 호신 강기를 한 겹 더 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쌍검을 사용하는 그의 방어식은 그 정도로 놀라웠다.
백운은 늘 필요한 자리에 있었다. 마치 그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적들과 얽혀서 싸우다가도, 누군가가 이곳을 막아주면 매우 수월하겠다 싶은 위치에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남의인이나 장주의 결정적인 공격들을 막아낸 것도 대부분 백운이었다. 마치 우연처럼, 그들이 결정적인 공격을 펼치는 자리에 항상 백운이 있었다.
그랬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로만 알았다.
한데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 정도라면 결코 우연일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묵룡조 막내의 실력이라니.
“다행히 제가 실력에 비해 방어하는 쪽으로는 약간의 자신이 있으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까 본격적으로 싸우기 직전에 그가 했던 말이었다.
선화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왠지…….’
백운의 지금 저 모습을 보아하니, 비단 방어하는 쪽으로만 실력이 특화된 것 같지는 않았다.
방어 후에 충분히 위력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철저히 지키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견제 이외의 공격은 아예 펼치지도 않았다. 작정한 듯 수비만 했다.
그리고 묘하게도 지금 저 모습이 백운의 최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육감일 뿐이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그가 매우 든든하다는 뜻.
포위되어 있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와 함께 싸우고 있으니 왠지 검을 휘두르는 맛이 났다.
그렇게 반 각 정도가 더 지났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장주와 남의인을 포함한 네 사람의 손발이 점점 어긋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선화란과 연소운도 버티는 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 즈음, 주변의 상황 중에 변한 게 있었다.
온통 소란스러웠던 장원의 바깥채 쪽이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던 것이다.
싸우면서 보니, 몇 명이 상황을 알아보러 바깥채로 나간 듯했는데, 그들 중에서 돌아온 자들은 없었다. 나중에는 선화란이 파악했던 고수들 중에서도 두어 명이 나갔는데, 그들마저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깥채까지의 거리가 멀면 얼마나 멀기에 여태 한 명도 돌아오지 않은 걸까. 결국 그들은, 돌아오지 않은 게 아니라 돌아오지 못했다고 봐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주와 남의인의 표정에도 심상치 않은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
그 후로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정보는 알아냈나?]
갑자기 귓속을 파고든 전음에 선화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였다. 그 인간, 묵룡이었다.
묵룡이 어디에서 전음을 보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화란이 굳이 그의 위치를 찾으려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묵룡의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전음으로 대꾸할 수가 없는 탓이었다. 그녀 또한 신룡대의 조장이기에, 이 상황에서 묵룡을 찾으려 하는 우를 범할 리도 없었다.
[신뢰할 만한 정보인가?]
이어진 질문에 선화란이 티 나지 않는 선에서 길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매우 그렇다는 뜻.
그때였다.
슈악―
검은 바람 하나가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어서 남의인이 신음을 내뱉었다.
“컥……!”
선화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의 가슴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검극과 검신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남의인의 등 뒤에서 그를 찌른 것이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적들이 깜짝 놀랄 때쯤, 남의인의 신형이 서서히 무너졌다.
다음 순간, 이번에는 장주의 입에서 신음이 들렸다.
“읍!”
그의 신형도 그대로 무너졌다. 다만 그는 남의인처럼 검에 찔린 게 아니라, 점혈로 제압당했다.
대체 누가, 어떻게 그렇게 한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 다음 순간.
스윽―
선화란의 뒤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 나갔다.
이번에는 누군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백운이었다.
샥―
강렬한 빛무리를 머금은 그의 검이 흑의인을 향해 눈 깜짝할 새에 떨어져 내렸다.
여태껏 보이던 백운의 움직임도 충분히 빨랐지만, 방금 전의 움직임은 선화란으로서도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카앙!
흑의인의 검과 백운의 검이 부딪치며 강력한 기파를 발산했다. 그 즈음 백운의 나머지 검 하나가 그 흑의인의 상체에 닿고 있었다.
푸욱!
검이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린 순간, 그 흑의인의 신형이 무너졌다.
그 즈음, 나머지 한 명의 흑의인은 몸을 빼려 신형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푸욱―
“컥!”
작은 비명이 들림과 동시에, 그의 등 뒤로 또다시 검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그 흑의인이 돌아서자마자 누군가가 그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그는 아마도 남의인과 장주를 제압한 사람일 것이다.
털썩!
마지막 흑의인이 쓰러지자, 정체불명의 인물이 드러났다. 역시나 선화란이 생각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묵룡……!’
선화란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서 본인이 입을 벌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도 망각한 채로.
‘저게……, 묵룡…….’
묵룡이 남의인과 장주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의 흑의인을 처리하는 동안, 자신은 단 한 번도 그의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신룡대 최고의 고수라는 말이야 수도 없이 들었지만, 그가 저 정도로 무서운 고수였을 줄이야.
몸이 떨렸다.
아군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떨렸다.
자신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묵룡은 아득한 경지의 고수였다. 그는 말도 안 되는 고수였다.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저절로, 온몸으로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게 말이 돼? 저런 사람이 겨우 조장이라고? 나와 동일한 지위의?
“괜찮나? 다친 덴 없고?”
백운에게 안부를 묻는 묵룡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선화란의 정신도 현실로 돌아왔다.
“예, 조장님.”
그러자 묵룡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당신도 괜찮나?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예……? 아, 아! 어어…….”
창피했다. 갑자기 잠시나마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 나간 것이다.
그러자 묵룡이 묘한 미소를 짓더니 대꾸했다.
“뭐야? 멀쩡한 게 아닌 듯한데? 이놈들한테 머리라도 한 대 얻어맞은 건가?”
묵룡이 쓰러져 있는 장주와 남의인을 향해 턱짓하며 그렇게 물었다.
아니, 내 머리에 충격을 가한 건 방금 전에 묵룡, 바로 당신이었잖아!
선화란이 속으로 그 말을 외칠 때쯤 단유소가 연소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연소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채에 몰려들어 있던 적들을 향해 질풍처럼 나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몇 명의 인물들이 사방에서 담장을 넘어 안채에 있던 적들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
선화란이 보니 묵룡조와 황룡조의 조원들이었다. 그들의 검에 의해 적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묵룡이 말했다.
“당신은 구경만 할 건가?”
선화란이 채 대답을 할 새도 없이, 묵룡의 신형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선화란도 움직였다.
장원 안채의 상황이 정리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룡대의 두 조가 투입된 싸움이었다.
한 조의 전투력이 어지간한 중규모 문파의 전투력과 맞먹는다는 신룡대였다. 그런데 두 조가 투입되었으니,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안채에 있던 적들 중에서 담장을 넘어 빠져나간 적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거의 빠져나갔다 싶은 순간, 어디선가 날아간 검이 귀신같이 그들의 몸을 꿰뚫었던 것이다.
누구의 솜씨인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경지의 이기어검.
저렇듯 완벽하게 그 수법을 펼칠 수 있는 고수는 이곳에 단 한 사람밖에 없으니까.
* * *
장원 안채의 상황이 다 정리되었을 때쯤, 두 사람이 합류했다.
진평과 곽승추였다. 곽승추는 묵룡조의 쇠뇌인 철혼을 어깨에 멘 채였다.
진평이 단유소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조장님.”
단유소가 고개를 돌려 선화란과 연소운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고생을 가장 많이 한 건 바로 이 두 사람이지.”
그러자 진평이 선화란과 연소운을 향해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황룡조장님. 운이도 고생 많았다.”
선화란이 고개를 끄덕였고 연소운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단유소가 진평과 곽승추에게 물었다.
“뭐, 건진 건 있나?”
그러자 진평이 손에 들고 있던 쪽지 두 장을 단유소에게 내밀었다. 전서구의 전서통에 넣을 만한 크기의 쪽지였다.
장원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진평과 곽승추가 맡은 임무는 전서구가 날아가는 것을 차단하는 일이었다.
전서구를 날리는 곳이 어디인지에 관한 정보는 이미 연소운을 통해서 전해 들었었기에, 장원을 급습하는 과정에서 진평과 곽승추는 그곳을 최우선적으로 제압했던 것이다.
이후에 두 사람은 장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 위에서 대기했다. 전서구 날리는 곳을 제압했지만, 혹시라도 적들이 숨어서 비상용 전서구를 날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기하던 중에 전서구를 발견하여 쇠뇌인 철혼으로 쏘아 떨어뜨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