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합동 임무 (2)
백운, 즉 연소운이 즉시 대꾸했다.
[저는 다만 조장님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내가 언제 그런 지시를 내려?]
[그, 그게 아니라 저희 조장님의…….]
연소운의 대꾸에 선화란이 눈매를 좁혔다. 그러더니 다시금 전음으로 빠르게 물었다.
[아까 내가 첫 번째 도주로로 도망칠 때 그 앞에 있던 게 그대라는 뜻인데, 왜 살기를 드러내며 막았지? 그때 그대가 정체를 알렸으면 애초에 이런 상황에 몰릴 일도 없었을 것 아냐!]
[그 또한 조장님의 지시였습니다. 위험인물들을 한 곳으로 모아서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시간을 최대한 끌라는…….]
선화란의 아미가 또다시 찡그려졌다.
‘이목을 집중시키고 시간을 최대한 끌라고?’
그렇다면 이 순간에 나머지 인원들이 어딘가에서 또 다른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즉 묵룡은 자신과 저 백운을 일종의 미끼로 쓴 것이다.
임무 중에 이런 작전은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지원이 오긴 올 텐데, 늦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버텨야 하는데?]
[시간이 제법 소요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알아서 버티라고만…….]
선화란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인간 같으니.
오래 버텨야 하는 거면 노련한 선임을 붙여줄 것이지, 달랑 묵룡조의 애송이 막내 하나 붙여주고 알아서 버티라고? 이런 고수들을 상대로?
“네, 네놈은 뭐냐!”
놀람이 섞인 어조로 그렇게 말한 이는 남의인이었다.
분명히 저 자리에는 자신의 수하가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인물이 있으니 도통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저, 저는 그러니까…….”
연소운이 가득 난감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꾸하며 말끝을 흐렸다.
순간적으로 남의인과 흑의인, 그리고 장주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굳이 대꾸를 듣지 않아도, 드러난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찰나에 눈빛 교환이 끝났고, 그 순간 네 사람이 움직였다.
샤샤샥―
흑의인 두 명이 빠르게 백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화란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실렸다.
아까도 느꼈지만 두 흑의인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던 탓이다. 두 흑의인들의 검이 당장에라도 백운을 가를 것만 같았다.
선화란의 눈동자에 힘이 실렸다 싶은 순간, 그녀도 지체하지 않고 백운을 향해 움직였다. 그를 지켜야 했다.
그 순간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앞을 막으며 검을 휘둘러왔다. 남의인이었다.
물론 저들은 이미 계획하고 움직였겠지만,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먼저 움직인 건 자신이었다. 남의인이 더 늦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이미 자신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고수는 고수였다.
결국 선화란이 어쩔 수 없이 남의인의 검을 막아갔다.
카앙!
검과 검이 강력하게 맞부딪쳤다.
직접 붙어보니 역시 남의인은 강했다. 자신이 이를 악물고 버텨낸 데 반해, 남의인의 표정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으니까.
그 순간, 선화란의 고개가 뒤쪽으로 홱 돌아갔다.
바로 뒤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슈악―
장주였다. 그의 권(拳)이 등 뒤의 요혈을 노리며 짓쳐들고 있었다.
선화란이 몸을 옆으로 빼며 장주의 권법을 피해냈다.
그 순간, 장주가 선화란이 원래 머물렀던 자리를 빠르게 스쳐 가며 백운에게 달려들었다. 작고 통통한 몸집에서 어떻게 저렇게 빠를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선화란의 눈동자가 커졌다.
‘애초에 저럴 계획이었……!’
두 명씩 짝지어서 백운과 자신을 상대하려는 계획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마도 저들은 비교적 약해 보이는 백운을 셋이서 빠르게 처리한 뒤, 넷이서 협공하여 자신을 생포하려는 계획일 것이다. 생포된 이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백운을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백운과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남의인은 결코 길을 비켜주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남의인은 자신이 일대일로 상대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고수니까.
캉! 캉! 카가강!
남의인과 너덧 차례 검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선화란은 남의인의 어깨너머로 백운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흑의인의 검이 시퍼런 검광을 계속해서 발출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새 거리를 좁힌 장주가 백운의 후방에서 강력한 일권을 찔러 넣고 있었다. 백운은 그야말로 완벽히 포위당한 채로 적들의 일방적인 공격을 감당하는 중이었다.
한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아……!’
백운의 운명이 너무도 빤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저런 고수들을 상대로 그가 얼마나 버틸까.
아마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 최선의 판단은 자신이 홀로 도주하는 일이었다.
둘 다 제압당하는 것보다는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 게 낫다. 그렇다면 살아남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나마 도주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이 자신이기도 했지만, 그런 모든 이유들을 떠나서, 아까 입수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주하려면 딱 이 순간밖에 없는데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직속 부하도 아닌데.
‘이런 제길, 빌어먹을 묵룡 같으니!’
그래. 이 상황은 모두 그 인간 때문이다.
펑! 캉! 카가가가가강! 캉!
갑자기 백운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리며 허공에서 검광이 번쩍번쩍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남의인 너머로 그곳을 바라본 선화란이 두 눈을 부릅떴다.
백운이 사선으로 낮게 도약하며 허공으로 떠오른 가운데, 그를 포위하고 있던 장주와 두 흑의인이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화란의 위치에서는 장주의 머리 위쪽을 넘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백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장주를 포함한 세 사람은 순간적으로 그의 위치를 놓친 것이다.
매우 의외였다. 놀라웠다.
한두 명의 눈을 속인 것이면 몰라도, 대체 어떻게 저런 고수들의 눈을 모두 속일 수 있었던 걸까.
어쨌거나 장주의 머리 위를 넘고 있는 백운의 모습을 먼저 확인한 건 두 명의 흑의인이었다.
“위!”
흑의인 중 한 명이 짧게 외치며 허공에 있는 백운의 궤적을 예측하여 몇 가닥의 검기를 발출해냈다.
거의 동시에, 또 다른 흑의인과 장주도 백운을 향해 각각 검기와 권풍을 발출해냈다. 두 사람 또한 백운의 궤적을 미리 예측한 공격이었다.
후방에서 날아온 세 사람의 예측 공격이 매우 정확하여, 그대로라면 백운이 영락없이 당할 기세였다.
“위……!”
‘위험’이라고 외치려 했던 선화란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또다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자기 백운의 신형이 허공에서 튕기듯 사선으로 하강했기 때문이다. 빗살처럼 사선으로 하강한 백운이 남의인의 뒤에서 쌍검으로 그의 하체를 찔러오고 있었다.
‘어, 어떻게……!’
방금 전에 백운은 마치 허공을 박찬 듯했다. 저 정도면 상승의 경신술인데, 조장인 자신도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 얼추 비슷하게는 펼칠 수 있어도 저 정도 수준으로 펼칠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선화란도 최대한의 기운을 끌어올려 남의인을 향해 검기를 발출했다.
그녀의 검에서 쏘아진 검기의 다발이 남의인의 전방에 빼곡한 검광을 만들어냈다. 그 하나하나의 검기에 담긴 위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했다.
이미 백운의 공격을 신경 쓰고 있던 남의인의 입장에서는 선화란의 공격까지 막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선화란을 아예 압도하는 실력이었다면 모를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남의인이 몸을 비틀어 횡으로 회전하며 후방으로 뛰어올랐다. 백운이 날아온 방향이었는데, 피할 수 있는 경로가 그쪽밖에 없었다.
상체부터 떨어져 내리던 백운이 두 자루의 검을 한 손으로 움켜잡더니, 나머지 한 팔로 땅바닥을 강하게 치며 낙법을 펼쳤다. 이어서 그의 신형이 땅바닥을 굴렀다.
남의인이 원래 백운이 있던 자리 근처로 하강하고 있을 즈음, 장주와 두 명의 흑의인은 빠르게 이동하며 또다시 포위망을 형성하는 중이었다.
아직 백운은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지만, 그 순간이 선화란의 입장에서는 빠져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찰나였지만 포위망에 틈이 생겼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그녀는 결국 발을 떼지 않았다.
아까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아까는 측은한 마음에 모성 본능이 발동해서였지만, 이번에는 그에게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낙법을 펼친 후 땅바닥을 서너 바퀴 구르던 백운이 선화란의 곁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즈음 장주와 흑의인은 이미 포위망을 다시 구축한 상태였고, 이어서 허공으로 도약했던 남의인도 땅바닥에 가볍게 착지하고 있었다.
포위망을 경계하는 와중에, 곁눈질로 백운을 바라보던 선화란의 입에서 낮은 외침이 흘러나왔다.
“너……! 뭐야……!”
놀란 기색이 다분한 외침이었다.
놀라고 있는 건 선화란뿐만이 아니었다.
다시금 두 사람을 에워싸며 포위한 장주 쪽 인물들의 표정도 그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연소운이 검을 쥔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하. 하하……. 그, 그게 저도 모르게……. 아마도 저분들이 방심을 하셨던 모양으로…….”
연소운의 대꾸를 들은 남의인이 장주와 두 흑의인을 향해 눈을 흘겼다.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의인이 연소운을 확인한 건, 연소운이 허공에서 몸을 튕겨 자신의 후방을 공격할 즈음이었다. 즉, 허공에서 몸을 놀리는 연소운의 신위는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런 애송이 하나 못 잡아서 어쩌겠단 말이오?]
남의인의 전음에 장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방심?
하지 않았다.
[아니오. 방심이라니……. 보아하니 저 애송이의 실력이 범상치가 않…….]
[놈은 장주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소. 결국 장주가 놓친 거잖소!]
남의인의 어조에는 책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떻게 본인의 머리 위로 뛰어오르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느냐는 책망이었다.
남의인은 결국 장주가 방심했다고 단정한 것이다.
[그, 그게 아닌…….]
[내가 장주의 실력을 빤히 아는데, 구차하게 자꾸 왜 이러시오? 되었고,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 방심하지 마시오. 귀찮게 저런 것들을 상대로 우리가 땀 빼야겠소?]
장주가 항변했지만 남의인은 단박에 장주의 주장을 묵살해 버렸다.
장주는 잠시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어쨌거나 남의인의 지위가 더 높았다. 억울해도 맞춰줘야 했다.
‘그래도 저 애송이에게 나름의 한 수가 있으니 조심할 필요는 있는데.’
남의인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장주는 억지로 그 말을 다시 삼켰다. 괜히 그 말을 덧붙였다가 남의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까 두려웠다.
남의인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내가 눈을 세 차례 깜빡이면 바로 저 연놈들을 공격하시오. 수하들에게도 신호를 알려준 후에 바로 시작할 것이오. 그리고…….]
[말씀하시오.]
[저년 몸 성하게 살려서 재미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러다가 손속에 사정을 두어 실수라도 하는 일은 없길 바라오. 저년은 우리 얘기를 들었으니, 어차피 제거해야 할 대상이오. 만약 또다시 실수가 벌어지면, 나도 장주에 대해 윗선에 좋은 얘기를 전해드리긴 힘들 것이오.]
[……알겠소.]
장주가 순순히 대꾸했지만, 못마땅한 표정을 온전히 감추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