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생사 대립 (6)
찰나의 순간에 세 명의 장로가 당한 탓에 남은 사람은 이제 이 장로 한 명뿐이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의 결과로 인해 이 장로는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포원이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처억!
포원의 손아귀가 이 장로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 상태로 포원이 이 장로를 들어 올렸다. 이 장로의 양발이 바닥에서 떨어졌고 그의 얼굴이 금세 시뻘게져 갔다.
철컹―
곧 이 장로가 들고 있던 검이 지붕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포원이 무슨 수법을 쓴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장로는 현재 사지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물론 숨은 여전히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때였다.
퓨뷰뷰뷰뷰뷰븃―
진평에게서 뭔가가 발사되었다. 그러자 다른 건물의 지붕에서 이쪽으로 건너오던 자들이 결국 목적지를 밟지 못하고 허공에서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까 서백풍과 곽승추가 조립해뒀던 쇠뇌, 철혼이 화살을 연발로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즈음 목종림이 포원 곁으로 다가왔다. 목종림의 뒤를 따르던 연소운은 진평 쪽으로 향했다.
포원에게 목을 붙들린 이 장로는 얼굴이 더욱 벌게진 상태였다. 여전히 숨이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는 상태에서 눈에는 실핏줄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포원이 무서운 눈빛으로 이 장로를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네놈을 참 어여삐 여겼었다. 네놈이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지. 물론 네놈뿐만 아니라 방금 전에 죽어 나간 세 녀석들까지 모두를 그렇게 생각했었다.”
포원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네놈들은 무공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 그럼에도 내가 어여삐 여긴 이유는, 네놈들이 장차 청성의 일꾼으로 성장할 재목들임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네놈들은 그렇게 성장을 했고, 장문을 도와 지금까지 잘해왔지. 그런데…….”
그 즈음 이 장로의 입에서는 게거품이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눈동자는 거의 뒤집혀져 있었다.
잠시 말을 멈춘 포원이 다른 손으로 이 장로의 신체 이곳저곳을 두드렸다.
툭툭툭툭!
신속하게 점혈을 마친 포원이 이 장로의 목을 쥐고 있던 손아귀를 풀었다.
털썩!
이 장로가 그대로 지붕 위에 쓰러졌다.
“흐어어어업! 켁켁! 케에엑……!”
드디어 숨통이 트이자 이 장로가 숨을 들이쉬다가 결국 기침을 해댔다. 괴로움 가득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는 옆으로 누운 상태로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포원이 쭈그리고 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네놈들이 변절을 할 줄이야. 네놈들에게는 청성이 그렇게도 만만해 보였더냐? 그렇게도 우스워 보였더냐? 일이 잘못되었을 때의 결과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더냐?”
여전히 마른 숨을 몰아쉴 뿐, 이 장로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자 포원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어차피 변절한 네놈들에 대한 조사야 장문이 알아서 하겠지. 지금은 그걸 조사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들도 많고. 그러니 일단 이쯤 하겠는데, 네놈에게 두 가지는 확실히 약속하마.”
그 말을 끝낸 포원이 이 장로의 아혈까지 짚었다. 아예 입술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윽고 포원이 말했다.
“첫째, 나는 몰려오는 적도들을 물리치고 이곳 청성을 반드시 수호할 것이다. 네놈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게 만들 것이다. 둘째, 이제부터 나는 변절한 네놈들을 결코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변절한 놈들을 한데 모아놓고, 서로가 괴롭게 죽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게 만들 것이다. 변절할 때는 웃었겠지만, 그때는 네놈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되리라.”
그렇게 말한 포원이 누워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의 이 장로를 질질 끌더니, 청성파의 상황이 가장 잘 보이는 높은 곳으로 옮겼다.
그러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그 눈에 확실히 담아두어라. 네놈들이 누구를 적으로 돌렸는지.”
이 순간 포원은 범접할 수 없는 서늘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가 장문인 목종림에게 말했다.
“장문은 이 순간부터 본 파의 누구도 섣불리 믿으면 아니 될 것이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숙.”
목종림이 대꾸하자 포원이 한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야. 이제부터 장문을 보좌해야 할 사람은 너다.”
한설연은 부담스럽다는 기색으로 묵묵히 포원을 응시하자 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안다, 아이야. 지금은 본 파의 운명이 걸린 상황이니 너로서는 부담스럽겠지. 그러나 너무 부담을 가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에 결과가 잘못되어도 그건 본 파의 탓이지 네 탓이 될 수는 없으니까. 우리로서는 다만 네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랄뿐이다.”
포원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옆에 있는 목종림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있었다. 한설연이 결국 대꾸했다.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러자 포원이 이번에는 진평과 연소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 둘이서 장문을 좀 지켜줘야겠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포원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대견하다는 느낌의 미소였다.
두 사람의 실제 실력이, 여태껏 자신이 파악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빼어났기 때문이었다.
고수들 중에도 경지가 높지만 실전에서는 그 경지만큼의 실력을 못 발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험 부족으로 인해 상황마다 빠른 판단과 적절한 대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움직임은 철저하게 실전에 특화되어 있었다. 방금 전에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포원이 볼 때 두 사람은 수많은 실전 경험으로 무장된, 그야말로 전투의 전문가들이었다.
그게 실전 경험의 중요성이다. 그래서 무인들이 늘 실전 경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에 조장님으로부터 똑같은 지시를 받은 참입니다, 태상장로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평이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포원도 마주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상대하기에 강시는 너무 버겁지. 죽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그 불쌍한 육신들을 내가 가서 좀 쉬게 해줘야 할 것 같구나.”
그 말을 마치자마자 포원이 지붕 위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설연이 조용히 목종림의 곁으로 다가갈 때, 목종림이 뒷짐을 지고 먼 하늘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었지만, 사제들은 내게 있어 친형제보다 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이 사제, 네가 갖는 의미는 더 컸지. 너와 나는 어린 나이에 청성에 들어와서 오십 년을 함께해온 사이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호칭이 사형, 사제일 뿐, 누구보다도 서로 의지하는 벗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목종림의 눈빛에 상실감이 가득했다. 물론 지금 그가 말을 건네고 있는 대상은 뒤쪽에 쓰러져 있는 이 장로였다.
“내가 이 사제 너를 특별히 아꼈다는 걸 너도 알고 있겠지. 너만 너무 편애한다며 다른 사제들이 종종 내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할 정도였으니까. 장문이 된 후에는 공정함을 보여야 했기에 자제했지만, 그 전까지 나는 어떻게 해서든 우선적으로 너를 챙기려고 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벗이니까.”
거기까지 말한 후, 목종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안타까운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 네가 내게 칼을 들이밀었구나.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네게 그런 일을 당할 정도로 잘못한 게 있었나 싶어서 말이다. 내게 서운한 게 있었거든 토로를 하지 그랬느냐. 혹여 힘든 일이 있었거든 일단 말을 하지 그랬느냐…….”
목종림이 여운을 남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너도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 네 대답은 차후에 듣겠다. 그러나…….”
잠시 말을 멈췄던 목종림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청성의 식구가 같은 식구의 등에 칼을 꽂은 사실이 정당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청성이 변절자들을 용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끝내며 목종림이 눈을 떴다.
이제 그의 눈동자에서는 더 이상 상심이나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결연하고 단호할 뿐이었다.
목종림이 옆에 있는 한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소저, 말해주시게. 지금 내가 알아야 할 것들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한 소저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참고할 것이네. 민감한 사안이면 전음으로 해도 좋고.”
그러자 한설연이 목종림을 향해 공손히 읍한 후에 전음을 보냈다.
[보고 계시다시피 강시가 등장한 탓에 방어선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로라면 조만간 우리는 좁은 공간 안에 모조리 포위되고 말 거고요. 그 상황에서 적의 시체가 폭발하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목종림이 고개를 끄덕였고 한설연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이런 추세라면 지원 전력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기가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이제는 진지하게 탈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기도 해요. 지원 전력이 오는 방향으로 혈로를 뚫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안타깝게도 그 경우, 생포한 변절자들까지 챙기기에는 무리가 있을 테고요.]
[만약 탈출을 하지 않고 이곳에서 버틴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예?]
의외의 질문이었기에 한설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목종림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대답해주게. 한 소저가 생각하는 현실 그대로.]
그 말에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한설연이 이윽고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강시, 변절자 등의 변수가 너무 많아서 확언을 해드리기는 쉽지 않아요. 이런 추세라면 잘해야 한 식경(30분가량) 정도일 거예요.]
목종림의 양미간이 좁아질 때 한설연이 전음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건 태상장로님과 단 공자님이 이곳에 없었을 경우의 예측이에요. 두 분이 본격적으로 강시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나선 게 방금 전부터이니, 아마도 반 시진(1시간) 이상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조금 더 늘어날 수도 있고요.]
목종림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숙과 단 공자가 있어도 그 정도밖에 버틸 수 없다는 말은 역시 저들의 시체가 폭발한다는 가정을 했을 때겠지?]
[예.]
[만약 시체가 폭발하지 않거나, 우리가 청성의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항전을 계속하며 버틴다면 어떻겠는가? 지금 오고 있는 지원 전력이 합세한다면 끝까지 청성을 지켜낼 가능성도 있겠는가?]
청성산은 큰 산이다. 그리고 청성파는 산 전체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본산이긴 하나 본산 안에 더 높은 봉우리들도 있다. 당장 장문인의 처소만 해도 이곳보다 조금 더 높은 봉우리에 있고, 그보다 더 높은 봉우리에는 청성의 유적지들도 있다.
목종림은 지금 그곳으로 후퇴하며 버티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한설연이 대꾸했다.
[그 경우에는 지원 전력의 질이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그들 또한 온전히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들 중에도 변절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다분한지라…….]
그러자 목종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청성의 문도들을 이 정도로 변절시켰을 정도면 다른 문파나 세가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잠시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던 목종림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만약에 말이네. 이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믿을 만한 정예 고수 오십 명 가량이 아군에 추가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예라 하심은…….]
[절정 고수 이상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