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청성 괴사 (7)
“공동파를 궤멸시킨 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대규모의 적들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은 데다가 강력한 자들이 끼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도주해야 했습니다. 마침 청성이 가장 가까웠기에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된 겁니다.”
적당히 둘러댄 단유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치밀하고 집요한 자들입니다. 또한 그 수법이 무섭고 잔인한 자들입니다. 문도들에게 각오를 단단히 하라 말씀해주십시오. 또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퇴로도 생각해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럴 일이 없도록 저희들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어디까지나 대비 차원입니다.”
“으음…….”
목종림은 이제야 사안의 심각성이 제대로 와 닿는 모양이었다. 단유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맹 절강지부에도, 인근에 있는 당가와 그 주변 문파들에도 언제든 지원을 올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청하십시오. 맹주님을 통해서 사안을 전하면 협조할 겁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만 있던 포원이 목종림에게 말했다.
“대비를 해서 피해될 일은 없지 않겠는가.”
“사숙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리할 것입니다. 다만 그 전에…….”
목종림이 단유소를 바라보며 말을 줄였다. 그러자 단유소가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편하게 하십시오, 장문 어른.”
“부끄러운 얘기지만, 다른 대원들의 실력은 대강 짐작이 가나, 자네의 실력을 모르겠어서 말이네. 전력을 제대로 파악해야 나도 유사시에 적절하게 대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명분은 그러했지만 솔직히 단유소라는 저 청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게 더 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포원이 말했다.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네, 장문.”
포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단유소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당장 노부와 겨뤄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니까.”
목종림의 입이 쩍 벌어질 때 포원이 바로 말을 붙였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그 정도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포원이 누군가.
백도 칠대고수 중 일인인 투신이자 청성의 자랑이었다.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최상승 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런 포원이 단유소라는 젊은이와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십 대 중반에 불과해 보이는 새파란 청년과 동수일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목종림의 놀람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포원이 입을 열었다.
“나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네.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거든. 그러나 사실이네.”
그러자 목종림이 대꾸했다.
“신룡대가 대단하다는 말이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실제로 이렇게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습니다.”
단유소가 난감함 가득한 얼굴로 대꾸했다.
“지나치게 과장된 평가십니다. 저는 아직 투신 어르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포원과 목종림은 단유소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결국 단유소가 민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던 중에 포원이 뭔가를 회상하듯 말했다.
“두 번째로군. 저렇게 어린 청년과의 대면해서 이토록 놀란 것은.”
모두가 궁금함 가득한 시선으로 포원을 바라보았다. 포원이 말했다.
“한 이십오 년쯤 되었을까? 그땐 내가 지금 장문인의 나이쯤이었을 것이네. 당시에 참으로 오랜만에 무림맹에 들를 일이 있었지. 무림맹주와 만날 일이 좀 있었거든.”
그 당시의 무림맹주라면 전대 맹주였다. 즉, 현 무림맹주 백리우의 부친이다.
“그 전에도 맹주를 만나러 갈 때마다 나는 맹주전 근처에서부터 기척을 죽인 채로 몰래 접근하곤 했지. 맹주의 부탁이었네. 세인들은 잘 모르지만 맹주와 나는 막역한 사이였거든. 맹주는 그런 식으로 맹주전의 보안을 점검하곤 했다네.”
“결과가 궁금합니다.”
단유소의 말에 포원이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당시에도 나는 칠대고수의 반열에 있었네. 체술과 경신술 쪽에 특히 강한 나였던지라 발각되는 일이 없었지. 늘 맹주만이 나를 발견했었네. 물론, 맹주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비밀 수호위들이 따로 있을 거라는 예상은 하네만, 그들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넘어가고. 어쨌거나 맹주 이외의 다른 이에게 발각된 건 딱 한 번이었네.”
“아까 말씀하신 그 청년이었겠군요.”
이번에 대꾸한 사람은 목종림이었다. 그 말에 포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꾸했다.
“달도 없는 밤이었지. 맹주전 건물에 잠입하기 위해서 벽 아래의 음영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잘생긴 두 명의 청년들이 건물을 나서서 마당을 지나가더군. 그중에서 한 청년이 걸어가는 도중에 정확히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네. 의외였기에 잠깐 흠칫했는데, 그는 나를 향해 조용히 미소까지 지어 보이더니 그대로 마당을 벗어나더군. 그래서 그날은 그냥 잠입을 포기하고 걸어 들어갔네.”
“그래서, 그 청년은 누구였습니까, 사숙?”
“맹주에게 방금 나간 두 명의 청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해주더군. 자신의 아들과 제갈세가의 소가주라고.”
“현 맹주와 문상이었군요. 그리고 당시에 사숙을 발견했던 청년은 역시, 현 맹주였을 테지요. 백리우 맹주가 대공자였던 시절이었겠군요.”
“그랬지.”
“백리우 맹주가 대공자였던 시절에 그의 무공 경지가 어느 정도인가에 관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의심의 시선들로, 남들 앞에서 실력을 보일 수 있는 기회에서 그가 늘 회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단한 백리가의 혈통도 이번 대에서 끝날 거라는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지요.”
“그것도 그랬지.”
“지금이야 그가 얼마나 대단한 무인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때에도 역시 그는 완전히 다른 무인이었던 것이군요. 어쨌거나 사숙께서는 지금의 단 공자가 당시의 백리우 맹주에 필적한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목종림이 말을 줄였다.
아무리 단유소가 젊은 나이에 빼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백리우와 비교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포원이 단유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저 아이도 이곳에 등장하자마자 내가 있는 곳을 보더군. 그러면서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데 정말 깜짝 놀랐네. 그래서 그때의 일이 떠올랐던 거고.”
목종림이 다시 한번 놀랄 때, 포원은 눈동자를 빛내며 단유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낌이 묘하게……, 비슷하단 말이야.’
그 즈음 젊은 도인 한 명이 차를 내왔다.
“이(李) 장로님께서 장문인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합니다.”
“알았다. 내 미리 적어둔 게 있으니 너는 가서 이것을 이 장로에게 전하거라.”
제자가 목종림의 서찰을 받아들고 방을 나서자마자 단유소가 말했다.
“공연히 저희들로 인해 온 청성에 민폐를 끼치는 듯하여 송구합니다.”
“우린 괜찮으니 이 일로 신경 쓰지 말게.”
그 말에 단유소가 목종림을 향해 공손히 읍했다.
포원이 목종림에게 말했다.
“아까 장문이 말하길 근래 본 파에 약간의 사정이 있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겐가?”
그러자 목종림이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숙께서도 아시겠지만 본 파는 방문객에게 호의적인 편입니다. 당연히 무림맹의 동도들에게도 호의적이었지요. 근래에는 특히 무림맹의 명패를 보여주고 본 파에 방문했던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포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목종림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요 근래 어느 때부턴가, 본 파의 주요 인사들이 자신들의 거처 근처에서 자꾸만 알 수 없는 기척을 느낀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할 때에 저 또한 세작으로 의심되는 기척들을 감지한 바 있습니다.”
“허어……! 그래서?”
“한데 정작 잡으러 나가보면 그 기척들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말 감쪽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림맹의 동도들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그 후, 세작을 색출하기 위해 문도들과 방문객 모두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겁니다. 무림맹에서 방문한 동도들만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그 직후에 보고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외곽 경계조원들 중 일부가 죽었다는 겁니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목종림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이 사라진 게 불과 이틀 전의 일이었습니다. 방문 명부에 있던 그들의 신상을 적어서 무림맹 측에 확인을 요청한 상황입니다.”
포원이 물었다.
“답신은?”
“전서는 일단 사천지부로 보냈는데, 사천지부에서는 확인이 어려워 무림맹 본맹으로 이송했답니다. 확인하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나저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로군.”
“본 파 문도들의 무림맹에 대한 당장의 감정이 좋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제 잘못이 큽니다, 사숙. 아직 확인된 게 없으니 지금의 감정은 확인될 때까지 접어두라고 확실하게 주지를 시켜뒀어야 했는데…….”
포원을 향해 그렇게 말한 목종림이 단유소 일행을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문도들이 자네들에게 실수를 범한 건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일세. 그러니 너무 감정 상하지 말게나.”
“아까도 말씀드렸듯,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장문인께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던 포원이 입을 열었다.
“아무렴 무림맹의 동도들이 그랬겠는가. 불온한 세력이 이간질을 시키려고 수작을 부렸겠지.”
“저희들 수뇌부에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너무 빤히 보이니까요. 다만, 저희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 문도들은 감정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그 부분은 제 과오입니다.”
그러자 단유소가 말했다.
“저희들이 지금껏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정사마를 불문하고 이 강호의 많은 이들이 적들의 세력에 포섭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파의 이름난 전대 고수들도 목격했고, 무림맹에도 그런 인사들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보고한 상태입니다.”
포원과 목종림이 동시에 놀랐다.
“대체 누가……!”
“민감한 문제인 만큼 맹의 수뇌부에서도 조심스럽게 조사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단유소가 그렇게 말하자 놀란 기색을 진정시키며 포원이 대꾸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조금의 실수라도 있으면 자칫 동료들끼리 서로 의심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이 거대한 연맹이 와해되는 것도 순식간일 테니까. 그러면 결국 적에게만 좋은 일을 하는 꼴이 아닌가.”
그러자 목종림이 심각한 표정으로 단유소에게 물었다.
“자네의 말인즉, 이곳 청성에도 혹시 모를 변절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겠군?”
단유소는 대꾸하지 않았다. 답변을 주저하는 눈치였다.
이에 목종림이 말했다.
“자네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네. 청성의 장문인인 내 앞에서 청성 문도의 변절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말하는 게 조심스럽겠지. 그러나 괜찮네. 자네가 말한 내용으로 인해 내가 자네에게 기분 나빠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네. 청성 장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그쯤 되어서야 단유소가 입을 열었다.
“아까 세작 사건을 들으니, 이곳에도 변절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말해보게.”
“청성의 주요 인사들이면 모두가 내로라하는 고수들입니다. 그런 분들 사이에서 세작 일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그 세작의 실력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거나…….”
포원이 단유소의 말을 받았다.
“아니면 내부 조력자가 있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