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소수의 후예 (2)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심소옥이 저런 미소를 보이면서 저런 말을 할 때면 정말이지 무섭고 오싹하다.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금만 족쳐보면 범인은 금방 나오거든.”
“그쯤 해둬, 소옥.”
단유소가 주의를 주듯 말하자 심소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쭉 지켜보니 심소옥은 단유소의 말만큼은 잘 따르는 모양새였다.
단유소가 말했다.
“당신도 대강 예상하고 있겠지만 소수궁은 일인전승이야. 그리고 소수마후라 불린 존재들의 강력함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전승 방식의 특이함에 있어.”
“특이함이라면…….”
“사조, 사부, 제자의 삼대가 공존하는 체제 속에서, 일정 시점이 되면 일대가 삼대에게 모든 공력을 전수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거든. 그 후에는 삼대가 일대를 모시고, 일정 시점이 되면 이대는 제자를 찾으러 강호에 나서는 거야. 그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거지.”
“아아.”
“내공 때문에 당신도 실제 나이에 비해 예닐곱 살은 어려 보이지. 소옥이도 마찬가지야. 다만 어린 시절에 너무 막대한 내공을 전수받아서 정도의 차이가 심할 뿐.”
단유소가 말을 마쳤을 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심소옥이 말을 보탰다.
“거기에 소수마공의 특성이 더해진 것도 있어. 여인에게 특화된 무공이라서.”
거기까지 듣고 난 한설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사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부는 소수마공이 어디에선가 비밀리에 전수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여인에게 특화된 무공이라는 사실 모두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자 심소옥이 다르게 보였다.
그녀가 싸우는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수많은 훈련과 실전으로 다져진 움직임이었다.
소수마공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공이 많다고 하여 누구나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다.
상응하는 피나는 노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단유소처럼.
‘그나저나 단 공자님은 어떻게 소수마후라 불리는 여인들과 알고 지내는 걸까?’
그저 안면만 있는 게 아니라 상당히 친밀해 보이는 관계라는 게 신기했다.
‘하긴, 조금만 깊이 알면 누구라도 좋아할 사람이 바로 단 공자님이니까.’
한설연이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심소옥이 단유소에게 물었다.
“어쨌든 이쪽 일행은 숙부의 몸이 나은 후에야 움직일 수 있겠네? 상처가 아물려면 최소한 며칠은 걸릴 거고.”
“응. 어지간히 괜찮아졌다고 생각되면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한 소저를 안전한 곳까지 호위하여 인계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바로 임무에 투입될 것 같거든. 아마도 사천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대꾸한 단유소가 바로 심소옥을 향해 물었다.
“넌 어떻게 할 건데?”
“이왕 나온 길에 사부님이 심부름 시킨 것도 있어서, 빨리 볼일 마치고 돌아가긴 해야 해. 숙부도 깨어났으니 조금만 더 상황을 보다가 돌아가야지. 어차피 내 입장에서 이 강호의 싸움에 굳이 말려들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러자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지금 이 강호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은 상당히 위험한 자들이야. 아직 드러나지 않은 힘이 더 거대할 수도 있어. 아무리 너라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숙부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 정도면 놈들도 제법이라는 거겠지.”
“돌아갈 때 꼬리 밟히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응. 알았어, 숙부.”
“누님이 계시니 큰 걱정은 안 한다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는 거, 알지?”
한설연이 볼 때 단유소가 말한 ‘누님’이란 심소옥의 사부인 것 같았다.
심소옥도 저렇게 강한데 그녀의 사부는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게다가 두 명의 소수마후라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단유소의 말뜻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알고 있어.”
심소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단유소가 옆으로 누웠던 몸을 돌렸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누운 상태에서 그가 연소운을 보며 말했다.
“소운.”
“예? 예, 조장님.”
“표정을 보니 아까부터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모양새던데.”
“아, 아닙니다, 조장님.”
그러자 단유소가 표정 없는 얼굴로 가만히 연소운을 바라보았다. 그 상태가 지속되자 연소운이 움찔하며 대꾸했다.
“그, 그게 심 소저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너무 무리한 부탁이 아닌가 하여…….”
“호오! 부탁? 뭔데, 꺼벙이?”
“소옥.”
심소옥이 흥미롭다는 듯 연소운에게 묻자마자, 단유소가 나직한 음성으로 그녀에게 주의를 줬다.
“알았어, 숙부.”
단유소에게 대꾸한 심소옥이 바로 연소운에게 물었다.
“아무튼 너, 부탁하고 싶은 게 뭔데?”
그러자 연소운이 심소옥의 시선을 피하며 단유소를 향해 말했다.
“조장님이 잘 아시겠지만……, 저는 강한 상대를 만나면 공포를 이기지 못하여 한심한 꼴만 보이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시, 심 소저께서 도와주시면 제 한심한 공포증을 조금이라도 극복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소옥이를 통해서? 어떻게?”
“저는 사실, 아직도 심 소저가 두렵습니다. 그러니 심 소저를 직접 상대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그러자 한동안 연소운을 유심히 바라보던 단유소가 이윽고 고개를 돌리더니 심소옥에게 물었다.
“저렇다는데, 어쩔래?”
심소옥은 매우 흥미롭다는 눈빛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처음 봤을 때, 쟤는 버릇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 거의 공황 상태였어. 본인이 한심하다고 하니까 하는 말인데, 내가 보기에도 한심했지. 대체 정체가 뭘까 궁금했어. 저런 사람이 숙부의 동료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정말 동료였더라구. 그래서 나도 마침 궁금하던 차였어. 숙부가 왜 저런 사람을 동료로 받았을까 하는 점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대놓고 막말을 쏟아낸 심소옥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숙부가 괜히 그랬을 리는 없지.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테니, 내가 한번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마침 심심하던 차였고. 나는 늦어도 모레 새벽 전에는 떠나야 하는데, 그 전까지라도 괜찮다면 상관없어.”
그 말이 끝난 후, 한동안 심소옥의 시선을 응시하던 단유소가 이윽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됐네. 소운이가 모처럼 크게 각오를 한 것 같으니 가서 거칠게 다뤄줘.”
거칠게 다루라는 말에 연소운의 눈동자가 커졌다.
심소옥이 대꾸했다.
“알았어, 숙부. 사내의 각오를 욕되게 할 수는 없지.”
연소운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할 즈음, 이번에는 단유소가 입을 열었다.
“이왕 할 거면 철저하게 해.”
“내가 얼마나 철저한 여잔지는 숙부가 더 잘 알잖아.”
“암. 철저하고말고. 게다가 가차 없기도 하지.”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표정으로 심소옥이 서너 차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마침 이 아래 공간이 있으니 그곳이 적당할 것 같아. 다치게 했다고 나중에 혼내지나 마, 숙부.”
“혼내긴. 본인이 각오한 일인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심소옥이 먼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문을 연 그녀가 연소운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얼른 와, 동생. 가서 이 누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야지?”
그 즈음 연소운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이, 이, 이렇게 서, 서두르실 필요까지는…….”
그 말에 심소옥이 한 손을 들었다. 손가락 세 개가 펼쳐진 채였다.
그 모습을 보여주자마자 심소옥이 손가락 하나를 굽혔다.
연소운이 고개를 갸웃할 때쯤 심소옥의 손가락 하나가 더 굽혀졌다.
그제야 의중을 파악한 연소운이 빠르게 심소옥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연소운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심소옥의 마지막 손가락은 이미 굽혀진 후였다.
한껏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인 심소옥이 빠르게 손을 뻗어 연소운의 귀를 잡아당겼다. 연소운이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심소옥이 연소운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한 번만 더 늦으면 이 누나가 매우 난폭해질 것 같은데, 동생 생각은 어때? 한번 시험해볼래?”
“아, 아, 아, 아닙니다, 심 소저.”
“누나.”
“그, 그, 그래도 조, 조장님의 지인을 그렇게 부를 수는…….”
“누나.”
“예에……, 누, 누나…….”
그제야 사악한 미소를 거둔 심소옥이 또다시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더니 연소운의 등에 업혔다.
“그럼 가자, 동생!”
이윽고 두 사람이 문을 닫고 사라졌다.
닫힌 문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한설연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정말 저대로 괜찮겠어요? 행여나 저러다 연 공자님이 다치시기라도 하면…….”
“절대 안 다쳐.”
단호한 어조였고 확신에 찬 어조였다. 단유소가 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 소운이는 아마도 소옥이한테 좀 당할 거야.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소옥이의 의도 자체는 때리는 게 아닐 거거든.”
한설연이 고개를 갸웃하자 단유소가 말을 이었다.
“소옥이는 수공에 한해서는 강호 최고의 반열에 있는 고수야.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미세한 힘 조절까지 가능한 고수지. 굳이 소수공을 쓰지 않더라도 말이야. 즉, 소운이는 맞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실상 소옥이는 혈도를 자극할 수 있을 정도로만 녀석의 몸을 두드릴 거라는 뜻이야.”
“아……!”
한설연은 그제야 단유소와 심소옥의 의도가 이해가 되었다.
“맞을 당시에는 많이 아프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소운이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물론 소운이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겠지. 공포심은 정신적인 부분이라서 단시간에 극복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중요한 건,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는 사실 자체야. 이미 소운이는 알아서 나아가기 시작한 거야.”
“결국 연 공자님에게 도움 되지 않을 게 없으니 흔쾌히 승낙하신 거군요.”
“그렇지. 아마 소옥이도 내 의중을 대강은 눈치챘을 거야. 소운이를 돕는 게 결국 나를 돕는 길이기도 하니, 떠나기 전까지 뭐라도 해주고 싶은 거겠지.”
여태까지 알던 심소옥은 강한 만큼이나 건방지고 안하무인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녀에 대한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생각도 깊고 배려도 많이 하는 그 모습이, 어쩌면 단유소와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기에 한설연이 말했다.
“단 공자님이 쓰러져 있을 때 연 공자님이 쌍검술을 쓰는 모습을 봤어요. 정말 대단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의 연 공자님은…….”
“무의식 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느낌이었겠지.”
“역시, 알고 계셨군요.”
“초창기에 우연히 봤어.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마침 소운이랑 둘이 있을 때였지. 그때 소운이의 가능성을 본 거고.”
“아…….”
한설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단유소가 말했다.
“그보다도 한 소저.”
“네.”
“나한테 뭘 먹인 거야?”
“그냥……, 원기를 북돋워 주는 약이었어요.”
한설연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딱히 밝히고 싶지 않았다.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로 인해 단유소가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자 단유소가 가만히 한설연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지속되었다.
결국 한설연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단유소는 제대로 된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기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사실, 감춘다고 해서 감춰질 일도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단유소 본인이 스스로의 몸 상태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 그래요. 뭐, 귀하다면 귀한 약이긴 한데 딱히 또 뭐 엄청나게 귀하다거나 하지는…….”
“후. 이 정도면 영약 수준은 될 법한데.”
그 말에 한설연이 눈을 감더니 또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때의 단 공자님은 맥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고 체온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상태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으니 당황스러워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찰나에 마침 제가 지니고 있던 게 떠올랐을 뿐이에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곡에서 특별히 제조하는 좋은 약들이 있어요. 그냥 그중 하나예요.”
이 정도면 원하는 대답을 들려준 것 같은데도 단유소는 말없이 한설연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