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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49화 (49/200)

49화. 불안한 조력자 (1)

수면 위에서 날아온 수십 개의 검기들은 물속에서 날아온 검기에 비해 훨씬 빠르고 강력했다.

예상치 못했던 종류의 공격이었는지 적들도 약간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검을 들어 저마다 방어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곳은 물속.

뭍이었다면 모두가 검막을 펼치며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실력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행동에 제한이 큰 물속에서 그 수많은 검기를 다 막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명은 멀쩡했지만 나머지 두 명은 각각 팔과 어깨를 부여잡고 있었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시할 수 있는 부상도 아니었다.

그 직후.

푸웅!

갑자기 수면이 일렁이더니 무언가가 네 사람의 중앙을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몸을 꼿꼿이 세워 상반신부터 입수한 단유소였다. 양손을 머리 위로 모아서 쭉 뻗는 형태로 저항력을 최소화한 채였다.

그런데 그냥 그 상태로만 입수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입수할 때부터 횡으로 팽그르르 돌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적들과 가까워지던 단유소가 한순간 양팔을 폈다. 그는 양손에 묵색의 쌍소검을 나눠 쥔 상태였다.

그의 쌍소검에서 초승달 모양의 검기들이 사방으로 계속해서 발출되었다.

정해진 양상 없이 무작위로 날아오니 방어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게다가 여전히 회전력이 살아 있는 상태였기에 속도가 빠른 것은 물론, 위력도 강력했다.

가장 큰 문제는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점이었다.

결국 검기가 하나둘씩 적들의 몸을 베기 시작했다.

두세 명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자 단유소가 회전을 멈췄다.

그러자마자 그가 적들을 향해 검을 쑤셨다.

근거리에서 날아간 검기가 두 명의 가슴을 꿰뚫었고, 이어서 날아간 검기가 한 명의 복부를 찔렀다.

그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남은 한 명은 단유소에게서 빠르게 멀어지는 중이었다.

단유소가 그의 뒤를 향해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쌍소검을 내질렀다. 마지막 순간에 그의 팔과 손목이 강하게 비틀렸다.

슈아아아악―

범상치 않은 힘이 담긴 두 줄기의 기운이 같은 궤적으로 연이어 날아갔다.

달아나던 적이 신형을 비틀며 단유소의 기운을 막아갔다. 아직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피하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커엉!

적이 검을 들어 첫 번째 기운을 막은 순간.

스컥― 푸욱!

두 번째 기운이 검을 관통하더니 그대로 적의 목 아래를 꿰뚫었다.

그 즈음 이미 단유소는 한설연 쪽으로 빠르게 헤엄쳐가고 있었다.

더 이상 숨을 참기 힘든 상황에서도 한설연이 사력을 다해 물살을 거슬러왔다.

서로가 가까워질 때쯤, 단유소가 한설연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단유소의 의도를 눈치챈 한설연이 알아서 그의 위쪽으로 향했다.

단유소가 아래에서 한설연의 양발바닥을 잡더니 수면 위쪽을 향해 강하게 밀어냈다. 강력한 힘에 의해 한설연의 몸이 수직으로 불쑥 솟아올랐다.

파앗!

“푸하! 흐으으읍! 허억! 흐으읍! 허억!”

오랜만에 공기를 마신 한설연이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그녀의 옆으로 단유소가 떠올랐다.

“흐으으읍! 허억! 허억!”

단유소도 숨을 몰아쉬었다.

중간에 수면 밖으로 떠올랐었다고는 하나, 물속에서 단시간에 너무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그도 호흡이 다했던 것이다.

호흡을 고르는 와중에 두 사람은 천천히 헤엄치며 강가로 향했다.

물에서 나오니 자갈밭이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후에 한설연이 말했다.

“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말의 뜻 자체는 책망이었지만 표정과 어조에는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단유소가 희미하게 웃어 보이기만 하자 한설연이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그 백의 사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의 조력자가 아까 그 넷뿐이라는 보장도 없고요.”

단유소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설연이 다시 말했다.

“어서 가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어요.”

한설연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교월이 나를 잊지 않았다니. 이거 황송해서 어쩌지?”

문득 들려온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어른 허리 높이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바위 위에 백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한설연도 놀랐고 단유소도 놀랐다.

하지만 단유소의 놀람이 더 컸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백의 사내는 저곳에 없었다. 그런데 언제 나타났단 말인가. 그가 저러고 앉아 있기까지 어떻게 전혀 알아채지 못했단 말인가.

백의 사내가 단유소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당신 정말 대단하네. 설마 초절정 고수 네 명을 단숨에 골로 보낼 줄이야. 물속이었기에 그들이 본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도,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것도 다 실력이거든.”

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이추와 두진 그 두 늙은이들이 실패한 이유를 알겠어. 진심으로 마주해도 어려운 상대인데, 그 늙은이들은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을 거 아냐? 게다가 방심도 잔뜩 했을 것이고. 안 봐도 빤해.”

백의 사내를 바라보는 단유소의 눈동자는 무심했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그의 말이 맞다.

이추와 두진은 한설연을 너무 탐냈다. 게다가 크게 방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백의 사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백의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건 여유였다.

하지만 방심으로 인한 여유가 아니었다. 강자로서의 여유였다. 그러니 노릴 만한 빈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철옹성 같았다.

백의 사내가 시선을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겪다 보니 이제야 알 것 같군. 이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희생이 너무 컸어.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계획을 완전히 새로 짰을 텐데.”

한설연은 백의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충 단유소의 강함에 대한 말인 것 같긴 한데, 확실치가 않았다.

백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맹주 백리우가 가진 수많은 검들 중에 가장 강력하고 날카롭다는 검. 백리우가 아끼는 보검들 중에서도 가장 완벽하다는 검. 백리우의 가장 충성스러운 검.”

거기까지 말한 백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단유소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바로 묵룡이겠지.”

그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한설연이었다.

‘묵룡……!’

그에 대한 다른 설명은 굳이 필요치 않다. 이 강호에 속한 사람에게는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은 존재가 바로 묵룡이니까.

단유소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백의 사내를 응시할 뿐이었다. 하지만 한설연은 그의 눈빛만으로도 알 것 같았다. 부정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단 공자님이 묵룡이었다니……!’

놀람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단유소가 신룡대의 조장들, 즉 오룡(五龍) 중의 한 명일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오룡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평가받는 묵룡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여겼었다.

아무리 현월곡의 부탁이었다지만 무림맹주가 묵룡을 투입할 이유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검을 왜 굳이 현월곡을 위해 내어주겠는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단유소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단함을 이제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큰 손해를 입었지만 결과적으로 딱히 손해는 아닌 거지. 묵룡을 상대로 그 정도 손해를 입었다면 말이야.”

씩 웃어 보인 백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영입은 포기했어. 무림맹주의 가장 충성스러운 검이 넘어올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잠시 말을 멈췄던 백의 사내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죽여줄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백의 사내가 몸을 튕겼다.

탐색전 따위는 없었다.

백의 사내는 처음부터 강공이었다.

암적색의 강기를 머금은 그의 검은 야수처럼 빠르고 사나웠다. 일말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 검이었다.

그 와중에도 백의 사내는 여유가 있었다. 방심에서 온 여유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와 맞서는 단유소의 장검도 달빛에 반사된 은광을 어지럽게 흩뿌리는 중이었다.

캉! 캉! 쾅! 콰앙! 퍼어엉!

검과 검이 사납게 얽히는 와중에 장력과 장력도 계속해서 격돌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진기의 폭음이 어찌나 강력한지, 지켜보는 한설연이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이미 이백여 합 가까이 주고받은 상태였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반각도 흐르지 않은 시점이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이 싸우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찰나에도 서너 번씩의 공방이 오가곤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단유소는 점점 호흡이 가빠오고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전력으로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백의 사내는 여전히 멀쩡해 보였다. 자신처럼 가쁜 숨을 참고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방어만 하게 된 쪽도 단유소였다. 백의 사내는 그만큼 무시무시한 상대였다. 틈이 없었다. 실수도 없었다.

그는 너무 강했다.

싸움의 양상이 이대로 지속되면 결국 당하는 쪽은 자신이 될 게 빤했다.

그 전에 어떻게 해서든 결판을 내야 했다.

하지만 쉽사리 마지막 한 수를 꺼낼 수가 없었다.

이런 상대라면 그에게도 마지막 한 수가 있을 터였다.

자신의 마지막 수가 상대의 마지막 수에 막힌 순간 모든 게 끝이다. 신중해야 했다.

펑! 카앙! 콰앙!

순간적으로 백의 사내가 연달아 세 번의 공격을 가해왔다. 그 공격 중에서 마지막 공격에 담긴 힘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묵직했다.

그로 인해 단유소의 검이 살짝 밀렸다.

초고수들 간의 격돌에서는 그조차도 틈.

백의 사내가 지체 없이 강기를 발출했다.

막강한 기운이 실린 암적색의 강기가 정확히 단유소의 가슴 한복판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단유소가 몸을 맹렬히 비틀어 그 강기를 피해냈다.

샤악―

강기가 단유소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베인 것은 옷이었다. 강기에 살갗이 직접 닿은 것도 아닌데, 스쳐 지나간 부위가 화끈거렸다.

몸을 비튼 단유소가 빠르게 회전하여 백의 사내를 향해 강기를 발출했다.

강력한 강기였지만 백의 사내는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막아왔다.

콰앙!

폭음이 들린 직후, 단유소가 눈을 부릅떴다.

백의 사내는 분명히 정면에 있는데, 별안간 등 뒤를 파고드는 막강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유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암적색의 기운이 담긴 강기였다.

방금 전에 자신이 피했던 바로 그 강기였다. 싸우는 와중에도 백의 사내가 이기어강의 수법을 쓴 것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경지였다.

슈악―

강기가 날아오는 반대편에서는 백의 사내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피할 수는 없다.

막는다 해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단유소가 즉시 혼원태극공을 끌어올렸다.

그러는 동시에 그가, 날아오는 이기어강과 백의 사내의 중앙에 수평으로 서서 양팔을 뻗었다. 이기어강 쪽으로는 장심을, 백의 사내 쪽으로는 검을 뻗은 채였다.

순간적으로 그의 양손에서 공명이 일어났다.

그의 장심에서는 무지막지한 경력이, 그의 검에서는 날카롭고도 강맹한 기운이 폭사되었다.

쾅! 퍼엉!

폭음이 거의 동시에 들렸다.

단유소는 그야말로 온몸이 저려오는 충격을 느껴야 했다. 혼원태극공을 사용했음에도 그랬다.

폭음이 들린 찰나, 백의 사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단유소가 또다시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 격돌의 여파로 그에게도 약간이나마 충격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다름 아닌 혼원태극공이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오히려 그의 검이 이미 자신의 옆구리를 찔러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백의 사내가 아무리 자신을 능가하는 초절정 고수라 해도, 내공만 가지고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오는 백의 사내의 눈동자에도 놀란 기색이 엿보이긴 했다.

단유소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백의 사내의 검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

순간적으로 단유소의 전신에서 맹렬한 기운이 요동쳤다. 동시에 그의 신형도 믿을 수 없는 빠르기로 움직였다. 곧 그의 몸이 백의 사내를 향해 마주 튕겨 나갔다.

스윽―

단유소의 검이 궤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백의 사내를 베어갔다.

곧 두 사람의 신형이 한 점에서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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