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8화 (18/200)

18화. 의문의 청년 (1)

오필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무섭기까지 한 눈빛을 유지한 채로 단유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위험한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다, 당황하지 말고 가장 눈에 띄지 않을 법한 곳에 숨어서 그 호흡법을…….”

오필이 얼떨결에 대꾸하자 단유소가 다시 물었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해서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호흡법을 운용하는 상태로 은밀히 움직이며 최익 대협의 근처로 이동해야…….”

“그거 절대 잊지 마. 알았어?”

“예? 예…….”

평소와 다른 단유소의 분위기 때문인지 오필이 멍한 표정으로 순응했다.

“무슨 일이오?”

그 즈음, 저만치 떨어져서 자고 있던 두의광과 이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는 두의광의 것이었다.

단유소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곳이 위험합니다.”

잘 자다가 웬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두의광과 이태의 인상도 구겨졌다.

“무슨 말도 안…….”

그런 두의광의 말을 자르며 단유소가 말했다.

“두 분은 최대한 신속하게 돌아다니며 일행을 깨우셔야 합니다. 개인장비를 챙겨서 본진 쪽으로 모이라 하십시오. 외곽 경계조원들까지, 모두.”

단유소의 눈빛이 매서웠다. 여태껏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눈빛이었다.

‘어어? 눈에 힘 들어간 것 좀 보게?’

‘저 인간이 미쳤나?’

두의광과 이태가 인상을 찡그리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단유소가 그에게 다시 말했다.

“두 번 말씀드릴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

팟!

말을 끝내자마자 단유소가 땅바닥을 박찼다.

남아 있던 세 사람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단유소의 몸이 흔들렸다 싶은 순간, 그가 눈앞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음 순간, 단유소는 최익의 야영지에 도착해 있었다.

최익과 구홍립의 야영지는 한설연의 천막 근처였다.

그 주변의 천망단원들은 자고 있었고 두 명이 번을 서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단유소가 갑자기 나타나자 그들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상대가 단유소임을 금세 알아채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밤중에 어쩐 일이시오?”

“모두 깨우십시오, 지금 즉시. 모두 신속하게 개인장비를 챙겨 본진으로 집결하라 하십시오.”

“갑자기 그게 무슨…….”

역시 그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시간 없습니다. 하라는 대로 하십시오! 빨리!”

단유소가 그 말을 남기고 빠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번을 서는 무인들이 반응할 새도 없었다. 이미 단유소가 경신술을 펼쳐 최익이 묵고 있는 곳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단유소가 최익이 묵고 있는 곳에 당도할 즈음, 그는 이미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번을 서던 천망단원들과 단유소가 방금 전에 대화를 나눈 곳은 스무 걸음 밖이었다. 그런데 이미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한 것이다. 과연 절정의 반열에 오른 고수다운 감각이었다.

몸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그의 고개는 이미 단유소가 다가오는 쪽으로 향해 있었다.

단유소가 먼저 말했다.

“단유소입니다, 대협.”

“무슨 일인가?”

“이곳이 위험합니다. 즉시 한 소저와 구 대협께 알리고 일행 모두를 깨워야 합니다. 각자 신속하게 개인장비를 갖추고 본진으로 모이게 해야 합니다.”

최익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의 반응은 앞선 모든 이들과 달랐다. 단유소가 오밤중에 괜히 이럴 사람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최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알겠네. 가서 즉시 알리겠네.”

“저는 돌아다니며 나머지 일행을 깨워서 본진 쪽으로 모이게 하겠습니다.”

최익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일행 모두가 본진으로 집결했다.

집결은 금방 이뤄졌다.

어차피 남은 인원이라 해봐야 오십 명 남짓이었으니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모인 자리에서 단유소를 바라보는 두의광, 이태, 오필 등의 시선이 이전과는 달랐다. 최익에게 가는 길에 번을 서고 있었던 두 천망단원의 시선도 비슷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때 단유소가 보여줬던 경신술은 누가 봐도 고수의 경신술이었으니까.

단유소와 오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그 상태로 한참이나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필의 떨리는 눈동자에는 놀람이, 단유소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는 차분함이 담겨 있었다.

구홍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알아들을 정도로 소수의 인원이었다.

“곧 적습이 시작될 것이다.”

모든 이들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담겼다.

그 상태에서 구홍립이 다시 한번 행동 지침을 주지시켰다.

“만약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되면 바로 퇴각 명령을 내릴 것이다. 그 즉시 산개하여 탈출한다. 모두 알고 있듯 집결지는 공동파다. 여건이 되지 않으면 무림맹 감숙지부, 그마저도 여건이 안 되면 섬서의 종남파나 섬서지부로 향한다. 알아들었으면 고개만 끄덕인다.”

일행 모두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최익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겪어봐서 알겠지만 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특히 독공에 주의하고 혹시 모를 변칙적인 수법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모두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구홍립이 말했다.

“포위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 지금 즉시 이동을 시작할 것이다. 방향은 공동파 쪽이다. 이동!”

포위될 수도 있으니 미리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단유소였다. 최익이 그 말을 듣고 구홍립에게 전한 것이다.

선봉을 맡은 구홍립이 비월단원들과 함께 뛰쳐나갈 때, 이태가 오필에게 말했다.

“업혀.”

일행 중 비전투력으로 분류된 사람은 두 명, 단유소와 오필이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여 빠르게 이동해야 할 시 두의광이 단유소를, 이태가 오필을 업게 되어 있었다. 최익의 지시였다.

호리호리한 오필이 덩치 좋은 이태의 등에 신속하게 업힐 때 두의광이 단유소를 바라보았다. 단유소에게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단유소가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그의 경신술을 직접 목격했으니 두의광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중진을 맡은 한설연이 뛰어나갔다. 월혼대원들이 줄줄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어서 두의광과 이태 그리고 단유소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단유소의 바로 뒤를 따른 사람은 후미를 맡은 최익이었다. 그를 따라 천망단원들도 일제히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약 일각쯤 달렸을까?

단유소가 뒤에서 따라오는 최익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대협, 전방에 적입니다.]

최익의 양미간이 좁아졌다.

단유소의 바로 뒤에서 달리고 있는 자신의 감각에는 아직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이미 알아챈 것이다.

단유소가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있을 것이라는 점이야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예상치를 더 높게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단유소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숫자가 제법 많은 듯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행로가 공동파임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한 모양입니다. 뒤에서도 적이 쫓아오고 있으니 각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교전이 시작되면 혼란스러워질 테니, 저는 따로 은밀히 움직이며 활로를 열겠습니다.]

활로를 열긴 열어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열어야 한다. 뒤에서 쫓아오는 적이 당도하면 자연스럽게 포위되는 형국이 될 것이고, 그러면 앞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최익은 단유소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혼자서 위험하지 않겠는가?]

[이런 경험이 없지 않습니다. 게다가 비밀감찰단원은 은신술도 필수입니다. 만약의 상황이 되어도 제 한 몸은 빼낼 수 있으니, 곧바로 일행과 합류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를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지켜봐 온 단유소라는 청년 자체가 왠지 믿음이 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결국 최익이 수긍했다.

[알겠네. 조심하게나.]

그 즈음 선두에서 달리던 구홍립의 외침이 들렸다.

“전방의 적습에 대비하라!”

선두에서 달리던 구홍립은 이제야 적의 존재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즉, 단유소의 무공 경지가 구홍립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익에게 있어 단유소가 더 믿음직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구홍립의 외침이 한 번 더 들렸다.

“숫자가 많다!”

그 즉시 최익이 뒤따르는 천망단원들을 향해 외쳤다.

“서둘러 가자! 선봉을 도와야 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최익과 천망단원들이 속도를 높이며 단유소를 지나쳐 갔다.

스윽―

일행의 최후방에 남자마자 단유소가 주변의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일행과의 거리가 적당히 벌어진 순간, 그가 수풀 사이로 은밀하게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챙! 챙! 카앙! 채쟁!

잠시 후, 멀리에서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각종 고함과 함성, 비명 등이 뒤를 따랐다. 전투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 즈음 단유소는 전장을 크게 돌아 적 진영의 측면에 도달해 있는 상태였다.

외곽을 돌면서 확인한 결과, 모두가 흑의복면인들이었다. 이전에 습격했던 자들과 복색이 같았다.

아직 적의 정체는 모르지만 이들이 의도적으로, 조직적으로 일행을 노리고 있다는 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다.

‘이삼백 명?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눈대중으로 확인한 숫자였다. 적 개개인의 실력은 이전에 습격해 왔던 자들과 비슷해 보였다.

남은 일행이 아무리 최정예들이라 해도 이들을 상대하고 나면 반 이상은 죽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뒤에서 쫓아오는 적들까지 합류한다면?

일행은 거의 전멸할 것이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적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단유소가 이윽고 적 진영의 측면을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적과 조우한 단유소의 검이 몇 차례 백광을 쏟아내었다.

슈슈슈슈슉―

그때까지도 흑의인들은 단유소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

푹푹푹푹푹!

다섯 명의 흑의인이 어떻게 당한지도 모르고 검기에 찔렸다.

그들의 몸이 채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단유소의 검이 또다시 백광을 토해냈다.

검기가 흑의인 네 명의 몸을 관통했다.

그제야 처음에 당했던 다섯 명의 흑의인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쯤 되어서야 주변에 있던 적들이 단유소를 인식했다.

그런데 복면 안으로 드러난 그들의 눈동자는 무심할 뿐이었다. 단유소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황하거나 놀라지도 않아?’

다만 그들은 반사적으로 단유소를 향해 창검을 찔러올 뿐이었다.

오히려 놀란 건 단유소였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저 눈빛들이라니.

‘게다가 단 한 명도 비명이나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있다.’

모두가 저런 식이었다. 인간인 건 분명한데 결코 정상적인 인간들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전의 습격이 있었을 때에도 이들은 조용했던 것 같다. 그때는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그 생각이 났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

대체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단유소가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흑의인들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대부분 단유소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단유소의 움직임이 그만큼 빨랐던 탓이다.

어떤 때는 적의 도검이 단유소의 몸을 찌르거나 벤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빠르기도 빠르기지만, 수많은 적의 공격을 그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피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수 특유의 간결한 움직임.

물이 흐르는 듯 부드러운 연계 동작.

거기에 수많은 실전을 통해 축적된 임기응변까지.

적진의 중앙을 향해 나아가는 단유소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어느 정도는 적진의 중앙에 근접한 느낌이었다.

단유소가 빠르게 회전하며 검을 횡으로 긋자 반달 모양의 검기 두 개가 양옆으로 발출되었다. 미세한 시간차가 있었지만 두 개의 검기가 거의 동시에 발출된 것처럼 보였다.

스아아악―

단유소의 근처에 있던 적들 중에 열 명 가까운 인원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전투가 멈췄다.

흑의인들은 여전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저절로 주춤하고 있었다. 단유소가 풍기는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인해.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흑의인들이 빠르게 단유소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단유소는 최소한 칠팔십 명 이상의 적을 베었다. 일일이 세지는 않았지만 그쯤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상의 적들이 단유소를 겹겹으로 에워싸는 중이었다.

단유소가 가만히 선 상태로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흑의인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아직까지는 그들의 피부색이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휘릭― 척!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단유소가 들고 있던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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