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2화 (2/200)

2화. 단유소

슈슈슈슈슉―

곽승추의 창이 다섯 개의 백광을 쏟아냈다.

날카로운 창기(槍氣)가 환락마종의 좌측 요혈들을 빠르게 찔러갔다.

촤악―

그와 동시에 환락마종의 우측에서 연소운이 검기를 떨쳐내었다.

환락마종의 육중한 몸이 환영을 만들어내듯 빠르게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양손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퍼버버버벙!

기운과 기운이 격돌하며 강력한 폭음을 만들어냈다.

척! 척척!

세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거리를 벌리고 섰다.

환락마종이 한쪽에, 묵룡조원인 곽승추와 연소운이 반대편에.

“후우, 후우, 후우…….”

“헉, 헉, 헉, 헉…….”

곽승추와 연소운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임인 연소운 쪽의 숨소리가 더 거칠었다.

곽승추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연소운은 이미 무복의 목 주변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환락마종이 조소를 머금었다.

“무림맹도 한물갔구나. 겨우 이 정도의 애송이들로 하여금 이 어르신을 상대하게 했다니.”

곽승추는 대꾸하지 않았다.

환락마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어르신이 유명한 사람들 몇을 황천으로 보냈는데 무림맹에서는 그것도 안 가르쳐주더냐? 아니면 알고 있었는데도 객기 한번 부려본 게냐? 도대체 무림맹이 등신인 게냐, 네놈들이 등신인 게냐? 아니면 둘 다냐?”

최대한 호흡을 안정시킨 곽승추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볼 때 등신은 당신이야. 확실해.”

“어린 것의 주둥이가 참으로 방자하구나. 내 친히 네놈의 주둥이부터 찢어주마.”

“우리 뚱땡이 형님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그럴 일 안 생긴다니까.”

“뚜, 뚱땡이? 형님?”

환락마종의 투실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형님이라고 한 거지. 그리고 형님이 뚱땡이인 건 본인도 알잖아. 내가 틀린 말 했어?”

그 말에 환락마종의 붉어진 얼굴이 일그러졌다.

“격장지계를 쓰려던 의도였다면 성공했다. 허나, 덕분에 네놈은 더 잔인하게 뒈질 것이다.”

말을 마친 환락마종이 막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곽승추가 한 손을 뻗으며 외쳤다.

“형님! 잠깐!”

환락마종이 움직이려다 말고 곽승추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곽승추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우리 뒤에 서 있는 분 말이야. 아까부터 서 있었잖아?”

환락마종의 시선이 곽승추와 연소운의 어깨너머로 향했다.

건방진 두 애송이를 따라서 들어왔던 자였다.

그다지 신경 쓰이는 자는 아니었다.

그는 한 번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두 애송이가 자신의 수하들을 모조리 쓰러트릴 때에도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을 뿐이었고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 후에도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저러고 있는 건지 잠깐 의아하긴 했지만, 곧바로 두 애송이와의 싸움이 시작되었기에 그 후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이 시간을 벌고 싶은 모양인데 그것도 성공했구나. 그래, 저놈은 뭐 하는 놈인데 저기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이냐? 연락책이냐? 네놈들이 이 어르신한테 죽으면 얼른 가서 알리는 역할인 게야?”

“어어? 형님, 정말 못 느끼겠어? 내가 확신하는데 저분이 형님보다 훨씬 강하거든. 그런데 형님은 지금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네?”

그 말에 환락마종의 양 눈썹 사이가 좁혀졌다.

훨씬 강하다고?

환락마종이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두 애송이 너머의 인물을 살폈다.

그는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강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조금도. 전혀.

“허! 허허!”

이제는 헛웃음만 나왔다.

애송이들에게 한 번 더 놀아나긴 했지만, 이제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더 놀아날 수는 없으니 빨리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숨만 붙여놓고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주리라.

이 와중에도 애송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주둥이를 나불거리고 있었다.

“진짠데. 안 믿네.”

환락마종이 전신의 기운을 잔뜩 끌어올렸다.

그의 장포가 세차게 펄럭였다.

곽승추를 향해 막 보법을 펼치려던 환락마종의 눈동자가 갑자기 부릅떠졌다.

주변에 떨어져 있던 모든 검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싸우다가 죽은 수하들의 검이었다. 거의 스무 자루였다.

그 모든 검들이 땅바닥에서 수직으로 서서히 떠오르는 광경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아마도 계속해서 감탄하고 있었을 것이다.

허공에 떠오른 검들의 검극이 모두 환락마종 자신에게 향해 있지만 않았다면.

더 큰 문제는 검 하나하나마다 담긴 기운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점이었다.

“마, 말도 안…….”

환락마종은 채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허공에 떠 있던 약 이십 개의 검이 일제히 튕기듯 그에게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크으으윽…….”

환락마종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 비대한 몸에 십수 개의 검이 꽂혀 있었다. 검이 꽂힌 자리에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애초에 그 많은 검들을 다 막는다는 게 무리였다.

환락마종이 막거나 피해낸 것은 겨우 다섯 개에 불과했다.

환락마종이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청년에게 말했다.

“너……, 너는 누구냐.”

그의 입가를 타고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단유소.”

짧은 대답이었다.

“단유소……. 뭐 하는 놈이냐? 무림맹에 너 같은 젊은 고수가 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신룡대.”

괴로워하면서 어렵게 말을 이어가던 환락마종의 말을 자른 사람은 곽승추였다.

환락마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에서도 우리 조장님이 바로 묵룡이야, 형님.”

“묵룡……!”

신룡대라든가 묵룡이라든가, 그 모든 게 무림맹에서 전략적으로 흘린 허상이라고 여겼었다. 소문일 뿐이라고 치부했었다.

실제로 정파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신룡대고 나발이고 직접 본 적도 없고 겪은 적도 없으니까.

그런데 진짜로 존재한다니.

게다가 이런 괴물이라니.

곽승추가 다시 말했다.

“조장님은 우리 키워주시려고 억지로 보고만 있으셨던 거야. 부하들 경험 쌓으라고. 형님 같은 고수를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잖아.”

“허허……!”

그 말인즉 전투 중에 애송이들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는 처음부터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 정도의 고수를 자신이 전혀 못 알아봤던 거고.

내가 등신인 거, 맞구나.

환락마종이 실소를 지을 때, 곽승추가 옆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며 마지막 말을 했다.

“뚱땡이 형님, 지옥에 가서도 벌 받아. 다음 생애에도 벌 받으며 살아. 아무리 적이라도 죽는 마당에는 좋은 소리 해주는데 그게 안 되네. 형님은 너무 악질이거든.”

곽승추의 검이 환락마종의 두꺼운 목으로 떨어졌다.

“수고들 했다.”

“수고는 조장님이 하셨죠.”

곽숭추의 말에 단유소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돌파하면서 모든 적들을 처리한 건 곽승추와 연소운이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이미 수십 명의 만만치 않은 적들을 상대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수인 환락마종까지 상대한 것이다.

그게 부하들을 단련시키는 단유소의 방식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도 고수를 상대하게 하여 최악의 상황에서도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다. 물론 단유소가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였다. 오늘이 그랬다.

단유소가 연소운에게 물었다.

“소운이는 어때? 좀 나아졌어?”

그러자 연소운이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아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까도 긴장이 너무 돼서……, 많이 떨었습니다.”

현재, 몇 안 되는 묵룡조원 중에서 무공 실력이 가장 처지는 조원이 바로 연소운이었다. 물론 묵룡조원들 사이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연소운도 고수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충분한 실력자였다. 괜히 신룡대원이겠는가.

다만 연소운의 문제점은 성격이었다.

그는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았지만,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고수 앞에서 너무 겁을 먹고 얼어붙기 일쑤였다. 그러니 가진 실력을 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때문에 연소운 본인의 고민이 매우 컸다. 조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같다며 늘 미안해했다.

실제로 묵룡조원들도 연소운에게 신룡대 말고 다른 진로를 찾도록 조언도 했었다.

무엇보다 연소운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니까.

그가 헤쳐 나가기에 신룡대는 너무 위험한 곳이니까.

그런 상태였던 연소운을 신룡대에 잡아놓은 건 단유소였다.

연소운 본인에게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며 극복해보자는 식으로 말한 모양이지만, 다른 조원들에게만 따로 얘기한 바는 달랐다.

“소운이는 뛰어난 무인이 될 거야.”

그 후로 연소운은 벌써 이 년간 묵룡조원으로 살고 있다.

“아까 보니까 많이 좋아졌어.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만 하면 돼.”

단유소의 말에 연소운의 표정이 환해졌다.

“예, 조장님!”

그러자 단유소가 곽승추와 연소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가자. 가서 천망단에게 알려야지. 그러고 나서 거하게 한잔하자.”

천망단은 무림맹 본맹 외의 각 지부에 배치된 무사들로 조직되어 있었다. 지부의 일 외에도 무림맹 본맹에서 협조 요청을 보내오면 돕게 되어 있었다.

신룡대가 임무를 마치고 나면 뒷수습을 맡는 것도 바로 천망단이었다.

곽승추가 단유소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그건 소운이에게 맡기시죠. 서둘러 가셔야 합니다.”

“아, 맞다! 조장님 주선연 잡혀 있으셨죠? 얼른 가보셔야죠.”

옆에서 연소운도 한마디 했다.

그러자 단유소가 여태까지와는 달리 난감함 가득한 기색을 보이며 곽승추에게 말했다.

“그거……, 꼭 가야 하나? 갑자기 별로 안 땡기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한테 주선연 자리 만들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신 분이 바로 조장님이십니다. 이미 잡힌 약속입니다. 제 지인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성사된 일이라고요. 그 사람한테 저는 뭐가 됩니까.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모시고 가야겠습니다.”

곽승추가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연소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천망단에는 제가 가서 알리겠습니다. 승추 형님이 조장님 모시고 얼른 출발하세요.”

연소운까지 거들고 나서자 단유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놈의 술이 웬수지. 그때 술기운에 괜히 감성적으로 돼갖고선. 어차피 해봐야 십중팔구는 안 될 게 빤한데. 괜히 시간 낭비에 돈 낭비인데.”

“거, 말씀 한번 잘하셨습니다. 일단 십(十)이 있어야 그중 팔구(八九)가 안 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일이(一二)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겠죠. 이번 소저는 느낌이 좋다니까요? 지인이 믿어보라고 했다고요. 그러니 다른 말씀 마시고 얼른 가시죠.”

“졌다. 내가 졌어.”

단유소가 결국 항복했다.

* * *

나흘 후. 절강의 여수현.

굽이돌아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다루의 이 층 창가에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단유소였다.

곽승추의 도움을 받아 머리 모양도 깔끔하게 정리했고 의복도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들로 사 입었다.

상대가 상단 쪽에서 일하는 소저이니만큼 최대한 ‘있어 보이게’ 꾸며야 한다는 게 곽승추의 의견이었다.

오늘 나오는 여인은 과연 어떤 여인일까?

곽승추도 무림맹 절강지부의 지인을 통해 일을 성사시킨 것이라, 오늘의 주선연 상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절강지부 지인의 말에 따르면 충분히 괜찮은 소저라고 했단다.

외모나, 능력이나, 성품이나.

주선연을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믿어보라는 주선자의 말을 진짜로 믿었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체험적 결론이다.

어차피 오늘도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설령 마음에 안 드는 소저여도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해주고 가자. 승추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래야겠지.’

속으로는 계속해서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일말의 기대감을 계속해서 갖게 되는 이 간사함이라니.

단유소가 창밖을 바라보며 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문득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단유소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이십 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서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단유소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살짝 커졌다가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최익 대협의 소개로…….”

그 말에 단유소가 얼른 의자에서 일어서며 대꾸했다.

“아! 소저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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