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화 (1/200)

1화. 신룡대

내가 처음 신룡대(神龍隊)에 차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신났었는지 모른다.

무림맹주 직속의 기밀 임무 수행 단체.

신룡대를 최대한 짧게 설명하자면 그쯤 되겠다.

멋지지 않은가?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맹주님의 직속 수하로서 비밀 지령을 수행하며 강호를 위해 헌신하는 특별한 삶이라니.

아, 참!

신룡대를 더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 하나 더 있다.

현 강호 최강의 소수 정예 비밀 조직.

내가 신룡대원이라서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신룡대의 위상이 그렇다.

그 유명한 천마신교의 흑풍대조차도 신룡대라는 이름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줘야 하는 게 이 강호의 현실이니까.

그런 엄청난 곳에 차출되었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냔 말이다.

실제로 높은 급료는 물론이고, 거기에 생명 수당과 작전 수당까지 더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 맹주님에 대한 충성 서약서도 쓰고 대원의 의무에 대한 서약서도 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

신룡대가 비밀 조직이라는 점에 대해.

그 유명한 신룡대의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몇 명인지, 누가 신룡대원인지에 대한 정보가 왜, 이 강호에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는지에 대해…….

그렇다.

신룡대는 모든 게 기밀인 조직이다.

심지어는 본인이 신룡대원이라는 사실 자체가 기밀이다. 지금도 어머니와 처자식조차 내가 신룡대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건 허풍이 아니다.

서약서에 지장 찍고 맹주님 앞에서 맹세한 내용이라 밝힐 수도 없고 들켜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신룡대원들은 늘 위장 신분으로 살아간다.

이중 신분은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서 삼중, 사중 신분이 될 때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위장 신분은 수시로 바뀐다.

위장 신분의 행정적 절차에 대해서는 맹에서 알아서 처리하니 우리는 때때로 인피면구만 바꿔 써주고, 필요에 따라 가명을 만들면 된다.

어차피 우리의 정체에 관한 자료 자체가 극비이니 그냥 본명을 쓰는 경우도 많다.

처음에는 내 정체를 감추고 위장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멋있고 재미있는 일일 줄만 알았다.

그런데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재미있는 일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답답할 때가 더 많다.

아니, 그 유명한 신룡대의 일원이면 뭐 하느냐는 거다.

사람들이 내가 신룡대원이라는 걸 모르는데.

내가 밝힐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위장 신분뿐인데.

그렇기에 신룡대원으로 살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서약서에 명기된 기간만 만료되면 무조건 이놈의 신룡대를 때려치우겠노라고.

높은 급료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이제부터는 고수로 대접 좀 받으며 어깨에 힘 좀 주고 살겠노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신룡대에 남아 있다.

벌써 서약서의 기한을 세 번이나 갱신했다. 아마 이다음에도 기한을 연장할 것 같다.

맹주님께는 송구스럽지만, 맹주님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무림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사명감 때문도 아니고, 높은 급료에 길들여져서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조장님 때문이다.

신룡대는 오색인 청, 적, 황, 백, 흑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섯 개의 조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용(龍)이 있다.

그중에서 우리 조장님은 흑을 상징하는 묵룡(墨龍)이다. 묵룡은 다섯 용 중 신룡대 최고의 고수로 통한다. 무림의 주요 인사들 정도 되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강호에서 그의 이름이나 정체에 관해서 아는 사람은 맹주님과 우리 묵룡조원을 포함해도 채 열 명이 안 된다.

단유소.

그게 바로 내가 존경하는 우리 조장님의 이름이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우리 조장님을 내가 그토록 존경하는 이유는 비단 그 불가사의한 무공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조장님이 내 목숨을 여러 차례 구해줬기 때문도 아니다.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장님은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틈이 많은 사람이다. 또한, 전장에서 피범벅을 하고 싸우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게 참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조장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게 바로 나를 포함한 묵룡조원들이 신룡대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다.

“부조장님.”

아, 참!

여태까지 내 소개를 안 한 것 같다.

내 이름은 진평. 신룡대 묵룡조의 부조장이다.

묵룡조 안에서의 짬밥으로만 따지자면 가장 오래된 사람이 바로 나다. 심지어는 조장님보다 오래됐다. 내가 묵룡조에 들어오고 나서 약 일 년 후에 조장님이 들어왔으니까.

어쨌거나 이곳은 현재 묵룡조가 사용하고 있는 안가.

무창에 있는 무림맹의 본맹 근처에 위치한 곳이다.

뒤뜰에 다가와서 내게 말을 건 청년의 이름은 서백풍으로 녀석 또한 우리 조원이다.

훤칠한 미남인 서백풍은 아직 젊지만 고수다. 참고로 신룡대원들 대다수가 무림맹에서 키워낸 젊은 고수들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백풍이 옆에 앉았다.

그에게 말했다.

“월향루. 자시초(子時初, 밤 11시)부터 인시정(寅時正, 새벽 4시)까지. 아주 신나게 달리셨다지? 그것도 기녀들을 양옆에 끼고.”

“헉!”

내 말에 녀석이 깜짝 놀라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더니 빠르게 내게 물었다.

“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야 이 자식아, 지금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해?”

“하여간 귀신이셔.”

서백풍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 쓰레기 같은 것아. 인간적으로 문 소저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문주란 소저는 녀석의 연인이다.

외모도 참하고 성격도 좋은 여인인데 서백풍에게 콩깍지가 쓰인 것 말고는 흠잡을 데가 없는 여인이다.

서백풍은 그런 문주란 소저 몰래 허구한 날 기방에 들락거리는 거고.

얼굴값 한다고, 녀석이 딱 그렇다.

참고로 쓰레기라는 표현을 쓴 건, 내가 녀석과 워낙 친하기 때문이다.

“건전하게 놀았어요.”

녀석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백풍을 쏘아보자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녀석이 자진해서 혐의를 시인했다.

“아니 뭐……, 아주 건전하지는 않았을 수도…….”

“적당히 좀 해 인마. 내가 아주 문 소저 볼 때마다 속으로 미안해 죽겠으니까. 그리고 그놈의 천박한 아랫도리도 간수 좀 잘하고.”

“알았어요. 알았어.”

대답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믿지 않는다.

조용히 먼 하늘을 바라보던 녀석이 말했다.

“오늘이죠?”

오늘이 조장님의 임무 완료 예정일이다.

대부분 임무는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친 후, 가장 알맞은 시기를 거사일로 잡는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바로 오늘, 환락마종이라 불리는 색마는 죽을 것이다.

놈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한 후 사이한 술법으로 색공을 익힌,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쓰레기다.

문제는 놈이 의외로 강하다는 점이었다. 정사마를 불문하고 고수들 여럿이 이미 당했다.

그 이후로 무림공적이 되어 수배령이 떨어졌는데 결국 무림맹에서 먼저 찾아냈다. 그래서 그를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조장님이 투입된 것이다.

“조장님이 직접 가셨는데 그놈 처리하는 일쯤이야 뭐.”

서백풍이 걱정도 안 된다는 투로 말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정작 신경 쓰이는 건 역시, 나흘 후에 있을 조장님의 주선연이네요.”

주선연(周旋聯).

남남이었던 청춘 남녀가 지인을 통해 소개로 만나는 일을 요즘은 그렇게들 부른다. 주선자가 연결해주는 만남이라 해서 주선연이라나 뭐라나.

언젠가부터 강호에서 먼저 쓰이기 시작한 말인데 근래에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진 것으로 안다.

집안의 어른이나 매파를 통해 이뤄지는 맞선은 서로에게 어렵고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밖에 없다. 집안과 집안의 체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주선연은 부담이 훨씬 덜하다.

당사자들끼리 마음에 들면 계속 만나면서 연인으로 발전해갈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중하게 거절하면 되는 식이니까.

서백풍의 말마따나 나흘 후가 바로 조장님의 주선연이다.

생사가 걸린 조장님의 싸움은 전혀 걱정이 안 되는데, 조장님이 여자를 소개받는다니 걱정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조장님이 무공은 고수지만 연애 쪽으로는 전무후무한 하수이기 때문이다. 그게 조장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뭇 여인들 앞에서는 유쾌하고 활달한 사람인데, 연애 감정이 생긴 여인 앞에서는 그 특유의 장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조장님이다.

외모라도 볼품없으면 말도 안 하겠다.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연애에는 그 모양이니 곁에서 응원하는 우리가 다 애처로울 지경이라는 거다.

상황이 그러하니 묵룡조에서 짝이 없는 사람도 조장님이 유일하다. 조원들은 모두 혼인을 했거나 최소한 연애라도 하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제발 좀 잘되셨으면 좋겠네요. 우리 앞에서 외롭지 않은 척하는 조장님 모습, 갈수록 처량해 보여서 마음만 아프니까. 요즘 들어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끼시는 모양이더라고요.”

서백풍의 말마따나 나도 안쓰럽다.

“절강 쪽에 사는 처자랬지?”

“예. 승추 녀석이 신경 많이 쓴 모양이던데.”

곽승추도 묵룡조의 조원이다. 지금 조장님과 함께 임무에 투입되어 있다.

이번 주선연의 주선자가 바로 곽승추다. 무림맹 절강지부 쪽의 지인을 통해 주선했다고 들었다.

“뭐 하는 소저라든? 승추한테서 들은 거 없어?”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그쪽 무슨 상단에서 일하는 소저라던데.”

“그건 괜찮네. 일단 강호의 여인은 아니니.”

참고로 우리 조장님의 꿈은 평범한 연애를 하다가 평범한 가정을 꾸려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를 해도 강호의 소저보다는 민간의 평범한 소저들과 하고 싶어 한다.

강호의 여인을 만나면 자신이 신경 써야 할 강호도 그만큼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평생 사람 상대로 칼질하며 살기는 싫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의아했었다. 그 대단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 평범한 삶을 꿈꾼다니. 무공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장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신룡대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보다 깊숙이 보고 겪은 이 강호는, 적어도 내 자식에게도 추천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내 자식이 무림인으로 살겠다면 반대하고 싶은 강호니까.

“외모는?”

“승추 녀석 얘기로는 상대 쪽 주선자의 안목도 믿을 만하다던데, 저야 모르죠. 조장님이 문제죠. 너무 참하고 다소곳한 느낌만 좋아하시니까.”

녀석의 말이 맞다.

조장님의 이상형이 솔직히 고지식하긴 하다.

“그렇지. 여자는 자고로 성격인데 말이야.”

“아니죠. 여자는 자고로 몸이 칠(七)이고 얼굴이 삼(三)이죠.”

“예라이! 너 같은 종자들이나 그렇지 이놈아!”

“제가 조장님한테 지속적으로 조언을 해드렸다니까요? 근래 들어서는 조장님도 제 의견에 납득하는 분위기셨고요. 그러니 이번엔 잘되실 거예요.”

“이 중요한 시점에 그 한심한 소리를 또, 전해드리기까지 했어? 잘한다, 아주.”

그러자 놈이 자리를 뜨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조장님은 여자를 보는 안목뿐만 아니라 여자를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이번엔 잘될 거라니까요.”

그래, 네놈의 그 시답잖은 조언이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우리 조장님 이번만큼은 잘되셨으면 좋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