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49장 (150/199)

 # 149

149.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밥은 잘 먹고 다닌 거냐?”

어머니의 마음은 다 이러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식의 더러움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다시 품 안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요 기쁨인 것이다.

비록 지금 표영의 몸에서는 개방의 방주답게(?) 질식할 것만 같은 역겨운 냄새가 풍겨나고 있었지만 화연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개의치 않을 정도가 아니라 세상 그 어떤 향수보다도 더욱 맡기 좋은 냄새로 여기고 있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이렇듯 자녀가 보잘것없는 몰골을 하고 있어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식들은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여 허리가 굽고 주름이 가득한 모습, 가끔씩 깜박깜박하는 정신 상태를 보고 부끄러워하진 않을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명을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겠으나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깊이 면에서 실로 큰 차이를 보일 것은 분명하리라.

화연실은 달려와 표영을 안았지만 표영이 떠날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품에 안을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너무 커버린 표영이었다.

표영은 어머니의 말씀과 흰머리가 꽤나 많이 덮인 머리를 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렸다.

“제가 조금 늦었죠?”

거의 십 년 만에 이르러 돌아온 것이었다. 그 기간에 비교해 볼 때 돌아와서 한 첫 마디치고는 기막힌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표영 나름대로의 깊은 배려가 담겨 있었다.

조금 늦었다, 라는 말속에는 비록 집을 떠나 있었던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실제로는 큰 고생 없이 지냈기에 아주 짧은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었음을 나타내 주는 말이었다.

원래 사람들은 큰 고난을 겪으면 비록 그 고난이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마치 억겁의 시간을 지낸 것처럼 길게 느끼게 된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 참으로 기뻐하는 일을 할 때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든지 할 경우엔 수일이 지나도 마치 하루나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표영의 말은 단순했지만 어머니 화연실에게는 작은 위로로 다가왔다.

“많이 컸구나. 어디 우리 아들 얼굴 한번 자세히 볼까?”

그녀는 추레한 모습의 안쪽에 자리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이 맑게 빛나고 있었고 생기가 넘쳐 나는 것이 보였다.

‘정말 많이 컸구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느꼈었는데 지금 보니 그런 표현으로는 부족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태에서 아이를 낳고 바로 그 순간 아이를 바라보듯 그녀는 그렇게 표영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에는 입이 달린 모양이다. 잔잔하게 꿈벅임도 없이 눈은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다.

-얼굴이 너무 상했구나.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 거냐?

-밥은 굶지 않았니?

-이렇게 돌아와 줘서 고맙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다. 이제 다시는 널 멀리 보내지 않으마.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제갈호와 교청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동안의 기다림과 애타는 마음이 전해져 온 것이다.

한편 그 옆에 서 있던 능파와 능혼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표영을 만나고 거지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이런 인간적인 정을 표현하고 또 바라보는 데는 아직 어색하기만 했다. 둘은 표정을 어찌 관리해야 할지 몰라 그저 먼 하늘만 빈둥빈둥 쳐다보며 딴청을 피웠다.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파랗네.’

‘방주님의 집은 엄청 부자군. 근데 거지 왕초라니… 허허.’

둘은 어색함을 달래려고 최대한 딴청을 피우는 데 주력했다.

첫째 표숙은 아버지 곁으로 가 의젓하게 서 있었고 운학 노인을 비롯한 가복들도 눈물로 그 광경을 반겼다.

그렇게 우울함에 젖어 있던 표가장에는 표영이 십여 년 만에 돌아옴으로 기쁨이 넘실거렸다.

표영은 자신을 기다려 온 부모님을 위해 깨끗이 목욕을 했다. 그 덕분에 함께 온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까지 덩달아 목욕하게 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특히 교청인의 기쁨은 다른 이들에 비할 바 없이 컸다. 근본 꽃다운 처녀인데다가 표영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당연지사 그녀로서는 표영의 부모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차였다.

비록 처음엔 말로 형용하기 힘든 추잡스런 모습으로 첫인상에 남았겠지만 반전의 극대화로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목욕은 요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물을 갈아도 새까맣게 변해 나온 까닭에 하인들의 고생은 말로 하기 힘들었다.

저녁 만찬과 다과를 나눈 후 늦은 시간 표영은 과거 자신이 머물렀던 방으로 들어갔다. 침상에 누우니 잊고 있었던 옛날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후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게으름도 그런 게으름이 없었단 생각이 들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스런 것도 있었다.

게으름 때문에 늘 곁에서 시중들어 주던 운학 노인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주름은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났지만 옛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아 좋았다.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집에서 떠나게 되어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먼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게으름으로 시작된 여정,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속에 깨달은 것은 결코 적다 할 수 없었다.

‘보고 싶군요.’

개 사부를 비롯해 무공을 전수해 준 친구 같던 사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지가 되어야만 만성지체를 깨뜨릴 수 있다는 청의인의 말.

녹분타주를 따라 아무 생각도 없이 길을 나섰던 때.

그러다 갑작스럽게 일이 생겼다며 홀로 찾아가라고 했다.

이리저리 뒹굴다 개방 제자를 만났고 개방제자는 개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한다 하여 2년여 동안 개 사부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쌓았던 일.

다시 찾아갔을 때 개를 다루는 것으로는 개방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져 쫓아갔었다.

그리고 그때 도중에 만난 엽지혼 사부.

낮에는 형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달라붙어 웃음 짓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만 하다.

하루 중 짧은 시간을 통해 전수받은 개방의 무공들. 사부의 마지막 당부와 그 모습도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개방제자가 되고 그 후 쫓겨나 불귀도로 갔던 일.

그때부터 시작된 기묘한 인연.

당가의 오대독관문과 살수들과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 결전의 순간에 본 노위군의 처절한 비명 소리.

이 모든 것이 하나둘 쌓이고 쌓이면서 표영의 만성지체를 깨뜨렸고 비천신공을 발전시켰다.

걸인의 삶은 마음을 움직이고 내기를 조정해 새로운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해주었고 더불어 강력한 힘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에 있어서도 표영은 아직 비천신공을 완성치는 못했다. 마지막 그 무엇인가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날을 돌아보던 표영의 마음에 오늘 낮에 본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단을 두르고 있다 해도 그 안에 초췌해진 모습을 감출 수는 없었다.

얼마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이제까지 표영은 비천한 삶을 통해 애환과 고통을 바탕으로 깨닫고 성장했었다. 애환과 고통을 겪어 나가면서 비천신공은 발전해 갔고 만성지체의 틀도 깨어져 가지 않았던가.

그 가운데 마지막 빈자리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그리고 영원한 것.

아름다운 꽃은 그 향기와 고운 빛깔이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놀랍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시들어 버리고 만다.

또한 순수의 결정체인 아기의 미소는 어떠한가. 그 순결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온 세상의 시름마저 다 잊을 것 같은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아기의 미소도 시간이 지나면 세파에 찌들어 거친 피부와 주름으로 뒤덮이고야 만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가히 하늘의 높음과 같고 땅의 넓음과 같아 끝을 알 수가 없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처음과 끝이 같아 장성했다 할지라도 언제나 어린아이로 보이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을 그 사랑에 표영은 감당키 어려운 깨달음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온몸이 그에 반응해 신공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표만석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들이 돌아온 것만으로 따지자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아들의 상태가 떠나기 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첫날 목욕을 마친 후 잠자리에 들어서는 삼 일째가 되어서도 여전히 잠만 자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원래 만성지체는 걸인의 길을 가게 됨으로 인해 그 틀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목욕을 하고 난 뒤에 이렇게 되었으니 평생 거지처럼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실제로는 표영이 비천신공의 마지막 단계를 향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표만석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첫째의 말을 들어보면 저 녀석이 개방 방주가 되었다고 한 것 같은데 정말인지 의심스럽구나. 첫째가 거짓말을 할리는 없고… 거참.’

그는 스스로도 근심되었지만 그보다 부인이 더 걱정스러웠다.

만에 하나 또다시 하늘에 기원을 올려야겠다고 할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얼굴에 근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밤이 되어 침상에 오른 표만석은 혼잣말인 듯 태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녀석이 고생을 심했는지 잠을 많이 자는구려. 며칠 지나 보면 강호에서처럼 부지런해지겠지.”

약간 과장되게 껄껄거리기까지 하면서 말하고 그는 슬그머니 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크게 문제 삼지 않은 듯 보였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으면 저리 잠들까요.”

“하하, 부인은 염려 마시오. 저래 봬도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개방의 방주가 아니오. 늘 잠만 자서는 방주가 될 수 없는 법이라오. 음… 그래도 돌아온 것만도 얼마나 기쁘오. 이젠 게으르든 말든 그냥 내버려 둡시다 그려.”

“하긴 그렇겠죠?”

침상에 누워 부인 쪽으로 이불을 덮어주며 표만석은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함께 온 이들 중에 교청인이라는 아이를 어찌 보시오?”

그 말에 화연실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표만석은 듣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목욕을 하고 난 후에 보니 미모가 빼어납디다. 당신을 보면서도 어머님 그러면서 잘 따르는 것이 영이와 천생배필 같던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표만석은 교청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고서 부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화연실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설혹 벼락이 내리꽂혀 지붕이 날아간다고 해도 아마 멍한 눈만 끔뻑거리고 있을 듯한 표정이었다.

표만석은 왜 그런가 싶어 부인을 바라보았다. 한참 빤히 바라보는 탓에 그제야 눈길을 의식한 화연실이 살짝 미소 지었다.

“왜 그러세요?”

표만석은 부인이 멍하니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예전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험험… 부인,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영아는 강호 활동에 지쳐 잠시 피곤한 것일 뿐이니 과거처럼 기원을 올린다든지 그런 일은 하지 말구려. 알겠소?”

“그럼요.”

화연실은 크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뱉어낸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다른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모르게 하늘에 빌어야겠구나.’

옥색 광채에 휩싸인 채 천계의 대천신은 다급한 음성을 토해냈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대천신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옥색 광채 속에 백광이 사방으로 뻗었다가 움츠러들었다. 지금 대천신이 당황스러워함은 표가장의 안주인 화연실의 마음속 다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5천 번의 기원을 올렸던 전례가 있던 여인인지라 한다면 끝내 하고야 마는 것을 대천신은 잘 알고 있었다.

또다시 그 애타는 기원을 날마다 들을 순 없었다. 그랬다간 가슴이 저미는 경험을 나날이 해야 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표영이라는 아이는 사실 지금 부모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 신공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단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뿐이건만 그것을 오해하고서 기원을 올리려고 하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대천신의 말에 모든 대신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대천신이 손을 쭉 뻗어 청운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펼친 부분에서 옥색광선이 햇살처럼 뻗어 청운신에게 닿았다.

“청운신! 대천신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은 지 오래이옵나이다.”

청운신이 허리를 숙이며 말하자 대천신이 옥색 광채를 출렁이며 말했다.

“네가 표가장에 가주어야겠다. 너는 곧바로 만년암으로 나아가 생옥과의 과실 하나를 따고 그것을 표영에게 먹이도록 하여라.”

생옥과라 함은 천계에서는 그리 특이할 것도 없는 흔하디흔한 과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 천계의 가장 보잘것없는 것도 지상계의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옥과는 영생 불사하는 효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용할 시 내공이 수배 갑자 얻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정과 신과 기를 안정시켜 주는 것으로 현재 표영처럼 깨달음을 통해 신공을 완성하려는 입장에선 심력을 도와 시간을 짧게 단축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보통 사람이 먹는다면 약간의 몸을 보하는 역할을 하겠으나 무림고수가 된다든지 하는 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 할만 했다.

“분부대로 따르겠사옵나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행해야 할 것이 있다. 이번에 지상계의 표가장으로 내려가면 능파와 능혼을 보게 될 것이다. 너는 그 둘을 잘 살펴보고 내가 때를 맞춰 지시함을 따라 그들에게 행하도록 하여라.”

대천신의 음성과 기운에 자비가 들어 있음을 본 청운신이 푸른 빛을 발하며 답했다.

“자비로우신 대천신님의 보살핌에 그저 감사를 돌릴 따름이나이다.”

그러자 다른 대신들도 모두 입을 모아 칭송했다.

“대천신님의 보살핌에 감사를 돌리옵나이다.”

대천신이 천둥소리를 발하며 명했다.

“이제 가라. 그리고 행하라.”

그 말과 함께 청운신이 바닷물이 출렁이듯 푸른 빛깔을 물결치며 천계의 내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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