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48장 (149/199)

 # 148

148.

“아니야! 사부∼ 그대는 위선자일 뿐이다! 난 당신을 저주해! 그럼 당연하지! 난 영원히 당신을 저주할 거다!”

노위군은 온몸으로 살기를 뿌리며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그런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천선부주 오비원은 노위군이 두 명의 수하를 향해 살수를 전개하자 곧바로 조치를 취하려고 하다가 이어 소리 지르는 말에 주춤했다.

‘천상신개 엽 방주가 위선자라니! 게다가 그는 사부를 왜 저주한단 말인가!’

취중 부지불식간에 진담을 말하게 되고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면 잠재된 의식이 외부로 표출됨을 오비원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엽지혼의 실종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오비원은 다른 이들이 혹시나 나설까 봐 손을 쳐들고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노위군의 광기는 계속되었다.

“으하하! 사부! 아직 죽지 않은 것이오? 그럼 다시 한번 죽여주지! 이젠 독을 타지 않아도,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내 힘으로 당신을 죽일 수 있어! 자. 덤벼라!”

노위군은 어지럽게 손과 발을 움직이면서 연신 허공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흐흐흐, 천상신개라는 별호가 아깝구나. 도망만 다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덤벼보란 말이다!”

장력을 뻗었지만 환상으로 보이는 엽지혼은 스슥 뒤로 피하면서 여전히 그의 눈앞에 어른거리자 노위군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하지만 그의 말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게 했다.

“아니, 어떻게……!”

“그럼 엽 방주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살해된 것이란 말인가?”

“미, 믿을 수가 없구나.”

그때 오비원이 한 마리 학처럼 날아 노위군의 전면에 내려앉으며 맑은 기운을 담아 소리쳤다.

“노위군! 그대는 정녕 사부를 해쳤는가?”

오비원이 금환신공 중 청(淸)자결을 따라 음성을 발한 고로 그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또렷하게 들릴 뿐 아니라 머리가 맑아지게 했다. 하지만 우사신공의 역류로 혼돈에 빠진 노위군의 정신을 돌아오게 할 순 없었다.

“흐흐, 사부로군.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오늘은 확실히 목을 끊어주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위군이 쌍장을 쭉 뻗어 오비원을 공격했다. 정신은 온전치 못했지만 위력만큼은 엄청난 것이었다.

오비원은 방심하지 않고 그대로 밀려오는 힘에 맞서 쌍장을 뻗었다. 오비원은 금환신공을 발휘했기에 그의 손목 부근에서는 금빛 고리 두 개가 신비스럽게 떠올랐다.

퍼펑!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의 신형이 뒤로 물러났다. 노위군은 다섯 걸음을 물러난 후 다시 여진에 못 이겨 두 걸음을 더 물러난 후 멈췄고, 오비원은 그 자리에서 한 걸음만을 물러섰을 뿐이었다. 만일 노위군이 정상적이었다면 솔직히 오비원이 이처럼 표시나게 승기를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우사신공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똑똑히 말해 보아라. 너는 그를 어떻게 한 것이냐?”

오비원은 노위군이 간신히 몸을 추스를 상태일 때 공중으로 솟아올라 금조수로 그의 오른쪽 어깨를 잡아갔다.

노위군이 오른쪽 다리를 살짝 뒤로 하여 힘을 받치고서 손을 빙글 돌리며 짓쳐들어오는 손목을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오비원의 금조수는 허초에 불과했다.

손을 거둬 반격하는 기세를 그대로 흘려보내고 몸을 꺾어 왼쪽 어깨에 일장을 먹였다.

파팍!

“으윽!”

노위군이 어깨를 부여잡고 비칠거렸다. 이번 충격은 꽤 컸는지 그의 눈은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변해 있었다.

“사부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노위군은 오비원을 보면서 엽지혼으로 착각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오비원을 보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내가 죽이라고 시켰지만 사실 내가 직접 손을 쓴 것은 아니었잖습니까?”

그 말에 조바심을 내고 있던 혈곡의 곡주 단천우의 마음이 뜨끔했다.

‘기어코 입을 열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그는 아까부터 불안불안했기에 쳐 죽이고 입을 봉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비원이 나서는 바람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급박했다.

노위군의 두려움에 가득한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제발, 제발 다가오지 마세요. 사부, 용서를…….”

“좋다. 너를 해치진 않겠다. 대신 나와 함께 내려가도록 하자.”

오비원의 목소리에는 자애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노위군을 천선부로 데리고 가 자세한 내막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헤에.”

노위군이 바보같이 웃었다. 그때 왼쪽에서 한 신형이 솟구치더니 그대로 노위군을 향해 짓쳐들었다.

“용서할 수 없다!”

오비원이 황급히 손을 들어 막으며 소리쳤다.

“누구냐!”

퍼펑!

오비원의 황금빛 장력과 상대의 핏빛 장력이 거세게 충돌했고 공중에 떠 있는 채 장력을 날리게 된 핏빛 장력의 주인공은 뒤로 세 바퀴를 돌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단 곡주는 왜 갑자기 손을 쓰는 것이오?”

노위군을 죽이려고 한 이는 혈곡의 곡주 단천우였다. 그는 오비원이 미친 노위군을 데리고 가 모든 내막을 알게 될 것이 두려워 여기서 입을 봉해 버릴 생각으로 달려든 것이었다.

“감히 자신의 사부를 죽인 놈을 어찌 살게 한단 말이오? 건곤진인은 어찌 노위군을 비호하려는 것이오?”

오히려 오비원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수작이었다 오비원이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옳은 말이긴 한지라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때 다시 노위군의 발작이 시작되었다.

“으하하하… 으하하… 사부, 그대는 잘 죽었지. 아무렴. 으으으… 제발 날 용서해 주시구려, 사부. 제발…….”

노위군은 한바탕 크게 웃다가도 다시 덜덜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이윽고…….

퍼억!

질퍽한 소리와 함께 노위군이 미소를 지은 채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이미 그의 오른쪽 머리는 부서진 채였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결국 천하제일 방파의 우두머리를 꿈꾸고 천하제일의 고수를 꿈꾸던 노위군은 진모산 백일봉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알 수 없는 허무에 휩싸였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노위군의 머리에서 아직도 흐르는 있는 피를 보며 얼어붙은 듯 잠시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16장 집으로 돌아가다

표만석은 언제나처럼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 호젓하게 정원을 거닐었다.

그는 앞을 바라보면서도 가끔 부정기적으로 대문 쪽을 흘깃거렸는데 그런 그의 얼굴엔 그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기이하게 보일 만한 것이었지만 표만석의 그런 행동과 표정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가 그러한 행동에 많은 시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표만석이 그리도 자연스럽게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은 둘째 아들 표영 때문이었다.

그는 비록 무당파에 가 있는 첫째 아들 숙으로부터 둘째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지만 직접 본 것은 아닌지라 지금도 솔직히 마음을 놓을 순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은 어떤 부모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녀가 곁에 있을 때는 되려 쑥스러워 표현하지 않지만 자녀가 없을 때는 얼마나 애타하는지 모른다.

‘그 녀석은 지금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의 입가에서 한숨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올라 힘겹게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으응?”

또다시 고개를 돌려 대문을 바라보던 표만석의 눈동자에 색다른 광경이 들어온 것이다.

“거지?”

추레하기 이를 데 없는 거지였다. 게다가 그 거지는 보통 거지가 아니었다. 아니, 절대로 그 거지는 보통 거지가 될 수 없었다.

시선에 가득 잡힌 거지는 바로 꿈속에서도 기다렸던 둘째 아들 표영이었기 때문이다. 자식이 아무리 거지 차림을 했다 할지라도, 그리고 얼굴 가득 땟구정물로 범벅이 돼 있다 할지라도 부모로서 못 알아볼 리 만무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표만석은 곧바로 김빠진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피식∼.”

그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며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뒷짐을 진 채로 거닐었다.

그는 왜 그토록 기다려 왔던 둘째 아들을 보고서도 쓴웃음만 짓고 있단 말인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로선 솔직히 아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환각을 한두 번 봐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이란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면 꿈에서나 길을 갈 때나 오로지 그것만 떠오르는 법이다. 바둑에 빠지면 꿈에서조차 바둑판이 떠올라 한 수 두 수 바둑을 놓게 된다.

또한 길을 걸을 때도 백발노인을 보면서는 바둑판의 흰 알로 보이고 젊은 사람들의 머리는 검정 알로 보이게 될 지경에 이른다.

그뿐인가. 낚시에 한번 미치게 되면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해도 오직 그 앞에는 강과 바다가 놓여 있을 뿐이다.

바로 표만석의 경우가 그러했다. 대문으로 들어서는 둘째 아들 표영의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던지라 태연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피식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나타난 환상에 그는 거의 날다시피 달려가 얼싸안았는데 알고 보니 운가장의 첫째 아들 운천화였다. 그 후로도 표만석은 느닷없이 환상을 볼라치면 눈이 등잔만 하게 변해 달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난처한 지경에 빠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저 미소 짓는 것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 터였다.

“아버지!”

표만석의 귓가로 맑은 음성이 울렸다.

표만석은 이젠 모습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들리자 스스로에게 놀랐다.

‘허허… 이젠 환청까지 들리는 것인가? 이런 것도 발전을 하는군.’

그로선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너무 집착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젠 나이가 들어 몸과 정신이 쇠약해진 것인가.’

표만석이 그 소리를 무시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길 때 또 다른 음성이 그의 귀로 파고들었다.

“아버지! 영이가 왔습니다.”

표만석의 정신이 번뜩 뜨였다.

‘이건… 숙이의 목소리가 아닌가.’

첫째 아들의 목소리까지 잘못 들을 리는 만무했다. 몸을 돌려보자 첫째 아들과 추잡한 몰골의 둘째 아들, 그리고 그 뒤로 여러 거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주위로는 어느새 가복들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그는 실로 믿기 힘들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요즘 꿈은 너무도 사실적이구나. 희한하기도 하지. 허허.”

그는 꿈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해 손을 허벅지에 대고 꼬집어보려고 하다가 손을 거두었다.

‘아니, 아니야. 혹시 만에 하나 이게 꿈이라면 너무 빨리 깨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이미 표만석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것이 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그를 바람처럼 지나쳐 가는 한 사람을 본 것이다.

신도 채 신지 않고 뛰어가는 이는 부인 화연실이다. 그녀는 달려가 표영을 안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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