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4장 (115/199)

 # 114

114.

제갈묘와 교운추는 비로소 자녀임을 알아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키워온 자식들이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자식이 이렇게 험하게 고생을 하고 있었다니……. 이윽고 두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였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왜 이곳에서 거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이냐?”

“이 몰골은 대체 뭐냐. 이 녀석,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기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아버지 앞에 제갈호와 교청인도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비록 고생은 했지만 부모님의 근심이 이렇게 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두 사람이었다. 늘 집안에서는 엄한 모습을 보이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 엄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애 타는 심정의 아버지만 있을 뿐이었다.

이 느닷없는 가족 상봉에 지켜보는 당가인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중 가주였던(?) 당문천의 황당함은 극을 달렸다.

‘뭐, 뭐냐……. 그럼 저 두 거지가 칠옥삼봉 중 제갈호와 교청인이란 말인가? 이… 이런 황당한 일이……. 대체 저 방주라는 작자는 어디서 무얼 하다 온 인간이기에 저렇게 막무가내란 말인가! 천하의 칠옥삼봉 중 둘을 완전히 거지를 만들어 데리고 다니다니……. 허허, 참… 이거 대판 일이 벌어지겠는걸. 난 어쩌면 좋냐.’

하지만 곧 다시 생각해 보니 결코 남 걱정 할 처지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습도 곧 저렇게 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젠장할∼.’

남해검파의 장문 교운추와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묘는 각기 자식의 안부를 확인하자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마음이 안정된 만큼이나 반대로 분노는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감히 어떤 미친놈이 내 딸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이냐!!”

“내 오늘 거지들을 싹 쓸어버리고 말겠다!!”

두 사람의 분노에 함께 온 남해검파의 고수들과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표영과 능파, 능혼을 빙 둘러쌌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표영은 물론이고 능파와 능혼이 주눅 들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도리어 능파와 능혼의 눈이 바르르 떨었다.

‘감히 지존에게 미친놈이라니!’

‘청인과 자갈의 얼굴을 봐서 그냥 넘어가려 했건만 어디가 부러져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로구나.’

만일 밥을 구걸할 때 그 집주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껄껄 웃으며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한판 붙어보겠다는 심사로 내지르는 소리까지 너그럽게 용서할 만한 아량따윈 둘에게 없었다. 둘이 막 분노를 터뜨리려 할 때였다.

“하하하. 제 수하들의 부모님들이시군요. 이렇게 먼 길을 오시다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하하하! 언제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여하튼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표영이 사태의 심각성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태연하게 다가가 껄껄거렸다. 워낙 태연한지라 일순 교운추와 제갈묘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는 괴이한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때는 표영이 천음조화를 화(和)자결을 따라 운용하였기에 순간 주변에 화사하게 꽃이 피어나는 듯 잠시 따스한 분위기가 일었다.

그때 다시 표영이 당문천을 불렀다.

“어이, 거기, 당 분타주!”

당문천이 쏜살같이 표영 앞에 이르렀다.

“네, 방주님, 말씀하십시오.”

표영이 당문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하하, 이렇게 가족 간의 상봉을 맞이한 기쁜 날 술자리를 베풀지 않아서야 되겠어! 파송식에서 할 말은 대충 끝났으니 모두에게 제 할 일을 찾아가라고 하고 속히 주안상을 준비토록 해라. 자, 제갈호, 그리고 교청인, 너희도 어서 아버님을 모셔야지. 자자, 어서들 안으로 드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표영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독존각을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표영이 움직이자 능파와 능혼은 한차례 무리를 훑어보고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랐다.

황당한 것은 제갈묘와 교운추였다. 느닷없이 껄껄거리며 돌아서 버리자 화를 내야 할 기회를 절묘하게 놓쳐 버린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막 분노를 토해내려 할 때 교청인과 제갈호가 얼른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제가 조금 있다가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그 다음에 화를 내셔도 늦지 않잖아요.”

“아버지, 지금 싸워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다 한식구나 다름이 없다구요.”

자식들이 이렇게 나서자 두 아버지도 마냥 고집을 부릴 수만은 없었다. 말투로 보아하니 억지로 잡혀 있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억지로 잡혀 있는 것이라면 어떤 형식으로든 신호를 보냈을 테니까 말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거참…….’

독존각 안으로 들어간 교운추와 제갈묘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간신히 분노를 누그러뜨리고는 있지만 자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언제 활화산처럼 변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서 볼 때도 볼 때지만 지금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자세히 들여다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막 분노 섞인 말을 꺼내려고 할 때 그보다 한발 앞서 표영이 말문을 열었다.

“두 분 다 신수가 아주 훤∼ 하시군요. 역시 수하들의 용모가 빼어난 것은 아버님들을 쏙 빼닮아서였나 봅니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외모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터인데 표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둘의 신경을 갉아댔다. 교운추와 제갈묘의 안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해갔다.

하지만 표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애썼다.

“하하하, 그나저나 두 분의 재주가 아주 대단하십니다그려. 원래 우리 같은 거지 떼들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라 개떼들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여간 찾기가 어려운데 말입니다. 어디 훈련이 잘된 개라도 데리고 다니시는 겁니까? 이래봬도 개에 대해서는 본인도 어느 정도 재주를 갖추고 있답니다.”

표영의 이번 말은 언뜻 잘못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 실제로 교운추와 제갈묘는 그와 같은 오해가 풀풀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고 있기도 했다.

‘이 거지 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여기까지 잘 찾아온 것을 보니 우리들이 개 떼 같다고 비웃는 것인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저 자식이 지금 우리와 한판 붙어보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운추와 제갈묘가 활화산 같은 분노를 터뜨리려고 할 찰나에 교청인과 제갈호가 각기 아버지를 바라보고 전음을 날렸다.

-아버지, 오해하지 마세요. 방주님의 말은 다른 뜻이 없고 그냥 하는 소리예요. 그러니 화내시면 안 돼요.

-아버지, 조금 있다가 다 말씀드릴 테니 손을 쓰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교운추와 제갈묘는 급한 전음을 듣고서야 간신히 마음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싸늘하게 얼어버렸고 분노는 화산처럼 꿈틀거렸다.

목을 축이라는 말도 별반 대수로울 것이 없는 것이었으나 그전에 했던 말이 개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이었기에 왠지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교운추와 제갈묘는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터뜨리기 직전의 상태에 돌입했고 능파와 능혼은 지존께서 본격적으로 싸움을 거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순간 내전 안이 찰나지간에 묘한 분위기에 휩싸이자 그 기운을 감지한 표영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표영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본인임을 알지 못하고 능파와 능혼이 심상치 않은 기세로 손님들을 바라보는 것에 기분이 확 틀어졌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표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능파와 능혼에게 호통 쳤다.

“네 이놈들! 감히 어디에다가 눈을 희번덕거리는 거냐! 칼질이라도 할 참이냐?! 멀리서 어렵게 자식을 보겠다고 오신 분에게 공손하게 대하지는 못할 망정 이 무슨 개수작이란 말이냐!”

워낙에 갑작스럽게 호통을 쳤는지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화들짝 놀라 버렸다. 하지만 놀라면서도 교운추와 제갈묘는 마음으로 대비했다.

‘저놈이 이번엔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저렇게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저러다 돌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준비해야 한다.’

능파와 능혼은 지존께서 호통 치시는 것에는 반드시 어떤 계획이 있으리라 믿고 거짓으로 당황하는 척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오산이었음이 드러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장에 표영이 타구봉을 꺼내 들고 능파와 능혼을 패버렸기 때문이다.

파파파팍! 팍팍!

“이 자식들아! 내가 그렇게밖에 교육시키지 못했다는 거냐! 언제까지 말을 안 들을 참이냐. 정녕 머리통이 부서져야 정신을 차릴 셈이냐!”

파파팍! 파파파팍!

“죽어라∼ 이 자식들아!”

지켜보는 남해검파의 문주 교운추와 제갈가의 가주 제갈묘의 안색이 퀭하니 변했다. 처음에는 무슨 수작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뭐냐, 이건. 이러다 사람 잡겠는걸…….’

‘늙은 거지들의 무공이 대단했는데 저렇게 애 다루듯이 패다니… 젊은 녀석이 굉장하구나.’

여전히 계속되는 매질에 아까까지 오해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고 도리어 어색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능파와 능혼은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으윽…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파파팍! 파팍!

“아악! 잘못했습니다, 지존이시여…….”

둘은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뒹굴었고 표영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다시피 하면서 몽둥이를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의 일다경(15분)정도가 지났을 때에서야 표영의 매질은 멈춰졌다.

표영은 땀도 흘리지 않았음에도 소매로 이마를 닦는 시늉을 하고 교운추와 제갈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오랜만에 몸을 풀었더니 상쾌하군요. 한 번씩 이렇게 땀을 흘려줘야 건강에도 좋답니다. 아하하하.”

너털웃음을 지은 후 표영은 여전히 퀭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수하들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아직 거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르장머리가 없답니다. 그럼 이제부터 편하게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자, 우린 나가자꾸나.”

말을 마친 표영은 능파와 능혼을 데리고 독존각을 나섰다. 사실 능파와 능혼이 타구봉에 얻어맞았다고는 하나 중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그저 과장되게 맞는 척을 한 것뿐이라 표영에게 물었다.

“방주님, 저놈들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글쎄…….”

표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계속 걷다가 말했다.

“정 떠나겠다고 하면…….”

능파와 능혼이 신경을 곤두세웠고 표영이 말을 이었다.

“…보내 줘야겠지. 암, 보내 줘야지.”

표영의 심정은 말 그대로였다.

비록 한바탕 소란이 일었지만 당가에까지 이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렵게 찾아온 것에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영의 말을 능파와 능혼이 제대로 이해할 리 없었다.

그들이 표영을 바라보는 관점은 오로지 천마지체를 타고난 잔인무도한 마존으로 생각하는지라 다시 표영의 말을 곡해했다.

‘음… 지존께서는 이미 각오가 선 모양이시로구나. 역시 지존이시다. 크크크… 배반하는 놈들은 영영 하늘로 보내 버려야지.’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구나. 녀석들, 그동안 정들었다만 어쩔 수 없구나. 만약 우리를 떠난다면 지존의 말씀처럼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내 버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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