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
시기도 적절한지라 모든 당가인들은 진짜로 뉘우치는 줄로 착각했다. 하지만 사실 당문천이 눈물을 흘린 건 표영의 말 중 ‘네 장로에게 얻어맞기로 작정했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동안 얻어터진 것이 불현듯 떠올라 서러움이 가슴 가득 밀려든 것이다.
‘나쁜 새끼들… 그렇게 세게 때릴 수 있더란 말이냐.’
표영의 말은 계속되었다.
“또한 네 명의 장로들도 마땅히 수하로서 진정 어린 충언을 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에 죄스러움을 느끼고 당문천에게 맞기로 했다. 이리하여 이들은 그동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약 나흘에 걸쳐 서로에게 맞으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진정 앞으로는 지도자로서, 혹은 수하로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말이다. 어떠냐? 장하지 않느냐?”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표영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아직까지도 표영이 두들겨 패고서 둘러대고 있고 저리도 뻔뻔히 시치미를 떼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당문천과 네 장로는 그렇게 단순무식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각기 상념에 잠겼던 당가인들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나흘간의 시간에도 부족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표영에 입을 바라보았다.
“닷새째는 당가인들을 다 모아놓고 치게 하겠노라고 말이다.”
쿠궁!
당문천과 네 장로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하도 얻어터져서 일그러질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더 일그러진 것이다.
‘제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네.’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어무이!’
표영은 감동에 젖은 얼굴로 잠깐 하늘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 또한 여러 날 강호를 다녔지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곳이 처음이다. 필시 하늘조차도 당가를 축복할 것이다. 자, 그럼 지난 나흘간 열심히 해주었던 것처럼 오늘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
뭘 열심히 해주라는 것인지 아직까진 긴가민가한 당가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문천 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자, 시작!”
표영이 말을 함과 동시에 당문천을 노려봤다. 당문천은 떫은 감씹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버터 봐야 더욱 욕만 보게 될 것이 자명한 터였다.
‘에라, 모르겠다.’
당문천이 오른쪽에 있던 모천호에게 날라차기로 발길질을 가했다.
“헉!”
“이런…….”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졌다. 설마 했었건만 이런 해괴한 일이 진짜로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당가인들이었다.
이미 모천호는 철퍼덕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으윽.”
모천호는 맥없이 나자빠지며 간신히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하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맞아 죽어도 쌉니다.”
이제까지 나흘간에 걸쳐 맞고 때리고를 반목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잘못을 시인하는 말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 표영이 반드시 한 대씩 맞을 때마다 그렇게 하라고 단단히 일러둔 덕분이었다. 모천호가 맞아 죽어도 쌉니다, 라고 내뱉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엔 당경의 발이 땅을 스치며 당문천의 다리를 걷어버렸다.
스슥.
흙먼지가 일며 후려 가는 당경의 발길에 당문천은 다리를 채이고 공중으로 붕 솟아올랐다. 그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눈엔 정지된 화면이 천천히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만큼 믿어지지 않았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공중에 잠시 뜬 당문천의 몸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철퍼덕.
“으아악!”
비명에 이어 당문천도 모천호처럼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세게 쳐라. 모든 것이 나의 부덕함이다…….”
아까 들었던 말들은 모두 사실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엔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당가인들 중엔 눈을 비비고 다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허벅지를 꼬집어보고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인하는 이도 있었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당가인들이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장내에는 주먹과 발길질이 거듭됐다.
그때마다 엄청난 주먹질이 교환됐지만 하는 말마다 모두 무슨 큰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사람들 마냥 좋은 소리만 골라서 했다.
“모든 것이 나의 죄다. 으악!”
“죽여주십시오. 까아악∼.”
“꺼억… 이제껏 나는 헛살았다.”
“으윽! 더 세게 때려주십시오.”
그렇게 오십 대씩을 서로 주고받았을 때, 어느덧 힘이 빠진 당문천과 네 명의 장로들의 동작은 현격히 느려져 있었다. 가히 일어서는 것조차 힘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흘에 걸쳐 매일 오백 대씩 도합 이천 대씩을 후려 팼던 상황인지라 몸이 말이 아니었고 기력이 쇠진해 버린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제 다시 오십여 대를 맞자 일어설 힘조차 없게 되고만 것이다. 그때 표영이 나자빠져 있는 당문천과 장로들에게 다가가 조그마한 소리로 소곤거렸다.
“자자, 힘을 내라.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만큼 오백 대를 채우는 것에서 조금 깎아주도록 하겠다. 앞으로 오십 대씩만 서로 주고받고 끝내도록 하자. 하지만 마지막이니 더 열심히 해야 된다. 알겠지?”
그 말은 희망이었다. 끝이 보이고 있었다. 꺼져 가는 등불에 기름을 부어주는 격이란 말은 이런 때를 가리킨 말이리라. 사백 오십여 대가 남아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당문천 등에겐 이건 먼 여정 끝에 목표를 눈앞에 둔 상태가 아닐 수 없었다.
‘고작 오십 대라니…….’
‘곧 끝난다. 곧 끝난다고∼.’
‘정말 긴 시간이었어. 하늘은 날 버리지 않으셨구나.’
‘최선을 다하자꾸나. 당추야.’
‘흑흑흑…….’
불행 중 다행이란 말도 생각났다. 방금까지 흐느적거리던 당문천과 장로들은 벌떡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들의 얼굴엔 세상을 얻은 듯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느 누가 이런 변화를 생각이나 했겠는가. 바라보던 당가인들은 이 기적 같은 현상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당문천이 얼굴 가득 관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날려 발로 당운혁의 가슴을 차버렸다.
“아뵤∼”
희망은 기합 소리마저 기운차게 만들었다. 당문천은 이제까지 강호를 활보하면서 한 번도 낸 적이 없는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아뵤’를 외쳤다.
“으아악∼ 용서하소서!”
당운혁이 가슴을 얻어맞고 이 장여(약 7미터)를 날아 고꾸라졌다. 밀려드는 통증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당운혁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곧 끝난다고!’
지난 나흘간의 고통이 마치 수천 년을 보낸 것같이 느꼈던 그로서는 마냥 기쁘기 그지없었다. 이번에는 모천호가 절뚝거리면서 당문천에게 다가갔다. 모천호는 다리에 심한 타격을 입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터였다.
이윽고 가까이에 이른 모천호가 금나수법을 이용해 당문천의 어깨를 잡더니 업어치기 하듯 들쳐 메고 바닥에 에다 꽂아 버렸다.
철퍼덕-
엄청난 고통이 허리에 이어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당문천은 힘차게 외쳤다.
“으으윽… 당가의… 가주로서 나는 너무 부족했다!”
말속에는 아까와는 달리 기운찬 힘이 담겨 있었다. 당가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서로 치고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있으니 안타까워해야 할지, 아니면 함께 기뻐해야 할지 혼돈스러워진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그렇게 희망에 가득 찬 주먹질과 기쁨이 서린 발길질이 난무한 가운데 어느덧 약속한 오십여 회가 끝을 맺었다. 당문천과 장로들은 그동안 지옥 같았던 오 일간이 지났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대로 장내 한가운데 드러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이젠 드디어 끝난 것인가.’
‘꿈은 아니겠지?’
‘우리가 해낸 것이란 말인가?’
‘그래, 해낸 거야…….’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구나.’
이렇게 끝났다고 생각하자 문득 눈물이 났다. 드러누워 바라본 하늘은 푸르기 그지없었다. 많이 보아온 하늘이었지만 지옥을 다녀온 듯한 당문천과 장로들에겐 새로운 감회로 다가왔다. 그리고 일순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 이루었다. 이젠 끝났다고!”
“해냈다. 해내고야 말았어.”
“만세∼ 만세∼.”
“살아났다. 지옥에서 벗어난 거야∼!”
“흑흑흑… 어머니∼.”
대체 뭐가 만세고 뭘 해냈단 말인가.
퀭∼
주변에서 바라보던 당가인들의 반응은 그저 ‘쾡’이란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떠들어대던 당문천 등은 오 일간의 참혹한 시간들이 끝난 것에 대한 기쁨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가슴 가득 밀려들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당문천과 장로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당혹감이었다. 드러누운 채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모든 당가인들이 처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어서 빨리 오십 대를 채우고 이 지긋지긋한 일이 끝났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용변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가 다르지 않던가.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엔 그보다 작게 느꼈던 일이 큰 문제가 되어 다가오는 법이다.
당문천과 장로들은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가주님의 얼굴을 어떻게 볼까?’
당문천은 당문천대로 가솔들과 장로들 볼 낯이 없었고, 장로들은 그 나름대로 당문천을 대하기가 민망하고 난처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의 귓가로 표영의 박수 소리와 음성이 파고들었다.
“수고했다. 아주 훌륭해.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모습이야말로 협객이라 할 만하다. 모든 당가인들은 이런 모습을 배워 앞으로도 항상 바른 길을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하하!”
표영이 박수를 치자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능혼은 박수를 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지존이시다. 저렇게 서로 싸우게 만들면 늘 견제하게 될 것이고 배반하는 일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박수를 치는 사람은 오직 표영 일행뿐 당가인들은 그저 멀거니 바라볼 뿐이었다. 능파가 그걸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이것들 봐라. 모두들 박수 치지 못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위협하자 당가인들은 저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표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자, 이제 고생했으니 열흘 정도 쉬도록 한다. 열흘 뒤에는 대집회를 열어 당가의 앞으로 나가야 할 바를 정식으로 통보하겠다. 모두들 해산.”
모두들 하나둘씩 흐느적거리며 물러가고 장내에는 덩그러니 당문천 등만이 남았다.
표영은 그들 곁으로 다가가 앉게 한 후 머리를 맞대게 하고 천음조화를 시전하며 말했다.
“고통과 수치를 기억하고 생이 끝나는 날까지 잊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