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0장 (81/199)

 # 80

80.

“건곤패다, 건곤패야! 으아악! 건곤패라구! 교주님이시다, 교주님이시라고!”

능파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가 교주님을 죽이다니… 으아악! 내가 교주님을 죽였어……!”

능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충격에 휩싸였다. 찰나지간이라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건곤패가 나타난 이상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형님, 어서 교주님을 동굴로 모시고 갑시다!”

능혼은 능파에게 말을 하긴 했지만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표영의 몸을 안아 들고 신형을 날렸다.

“그, 그래…….”

능파는 얼굴이 거의 시체마냥 사색이 되어 그 뒤를 쫓았다.

방금까지 죽일 듯 덤벼들던 능혼과 능파가 건곤패만을 보고 천마지체 마교 교주로 단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건 천마지체의 예정된 길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천마지체는 천기의 흐름에 따라 산서성(山西省) 화련산(華蓮山)의 응벽동(鷹壁洞)에 들게 된다.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이 바로 200년 전에 예언된 마교의 후예임과 천마지체임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몇 년간 마교의 독랄한 무공을 수련한다.

다음으로 마지막 수련 단계를 이루기 위해 사천성의 복마산에 있는 천년하수오를 취하러 길을 떠나게 된다. 천년하수오를 반드시 취해야 하는 까닭은 내공의 증진과 더불어 천마신공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마성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그 과정은 하수오를 복용 후 한 시진 안에 응벽동에 안에 있는 ‘흑수담(黑水潭)’안에서 운기행공을 하게 되면 극한 마공을 연성한다 해도 마성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과정이 지나면 마지막으로 신물인 건곤패를 지니고 불귀도로 오게 되어 십절쌍마와의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천극간시공해체대법이 풀리는 것은 건곤패와의 접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능혼이 반드시 교주님이 섬에 있을 것이라며 찾아다녔던 이유도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 즉, 건곤패는 아무렇게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만약 교주가 아닌 사람이 길 가다 우연히 얻은 것이라면 남단 불귀도에 올 수도 없을 터이니 그럴 가능성은 염두에 둘 필요도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동굴로 돌아온 능혼과 능파는 표영의 옷을 허겁지겁 벗겨냈다. 복부에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음을 보고 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중에 교주로부터 어떤 형벌을 받게 될지 암담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능혼과 능파는 표영의 몸을 억지로 앉혔다. 정신을 잃고 고개가 앞으로 축 처진 표영은 힘이 작용하는 방향대로 고개가 이리저리 맥없이 움직였다. 앞쪽에 능혼이 마주 앉고 뒤쪽에 능파가 앉아 동시에 가슴과 등에 장심을 대고 기를 불어넣었다.

‘부디 깨어나소서. 지존이시여.’

‘우린 이제 죽은 목숨이로구나.’

둘은 내력을 주입해 막힌 혈도를 뚫고 손상된 장기의 기운을 북돋았다. 만상이 교차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왜 지존께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일까? 왜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신 걸까?’

표영의 내상은 심각한 것이었다. 여차하면 목숨이 끊어질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동굴 안에서 앉은 세 사람의 머리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능혼과 능파는 죽을힘을 다해 내력을 불어넣는 중이었고 표영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자칫 오판했다면 아예 죽여 놓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았을 터였다.

약 한 시진(2시간) 가량 전력을 다해 내상을 치유하던 둘은 손을 놓고 표영을 조심스럽게 자리에 눕혔다. 능혼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백 년을 기다려 온 내가 어찌 교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손을 주무르고 있는 능파가 당장에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우야, 그런데 교주님은 왜 거지 모습을 하고 계셨을까?”

능혼이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답했다.

“음, 제 짧은 생각으로는 아마 마교도라는 것을 숨기려고 거지 차림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교주님께서는 정말 위대하십니다. 형님, 교주님께서는 마교천하를 이루기 위해 이렇듯 자신을 희생해 가며 천한 모습으로 변장까지 하신 것이 아니십니까.”

어린아이같이 변해 버린 능파가 감동을 받고 끝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감탄했다.

“오호, 영명하신 교주님이시도다. 교주님 만세, 만세, 만만세.”

그러자 능혼도 얼른 몸을 일으키고 따라서 외쳤다.

“교주님 만세, 만세, 만만세!”

마교의 법칙상 누군가가 교주님에 대해 만세를 외치면 반드시 옆에 있는 이도 따라서 외쳐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던 까닭이다.

제3장 마교의 후예들 모이다

손패는 정오가 되어 배를 몰고 나왔다. 그의 뒤로 진개방의 새로운 임원들이 따가운 시선으로 노려봤지만 손패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거지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손패는 배를 진행시키며 어젯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진 것을 떠올렸다. 그러자 훗 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거지 녀석 꽤나 고생했을걸. 그 녀석 이렇듯 비가 많이 오리라 생각지도 못하다가 봉변을 당했겠지.”

손패는 지금 실실거렸지만 정작 단 하루 사이에 불귀도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바보 같은 녀석, 지금쯤 괜한 호기심으로 불귀도로 찾아간 것을 후회하고 있으렷다.”

손패는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불귀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나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이런, 거지 녀석이 더러운 것만 아니라 지독히 게으르기까지 하구나. 분명 어제 폭우로 잠을 설쳐 지금쯤 퍼질러 자고 있겠지. 정말 귀찮은 놈이로군.”

손패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배를 돌릴 수만은 없었다. 만일 혼자 돌아갔다가는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거지들이 무슨 꼬장을 부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귀찮은 것만은 사실인지라 그는 표영을 찾아 데려가기로 했다.

‘내 아무리 사명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에는 절대 거지들은 불귀도에 데려가지 않으리라.’

그는 툴툴거리면서 배를 정박시켰다. 어젯밤 폭우로 발자취가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모래사장을 살폈다. 여기저기 흔적을 찾아다니던 그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그리고 이내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뭐지, 이 발자국들은? 하나, 둘, 셋… 세 사람인데. 기이한 일이로구나. 불귀도에 따로 들어온 사람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건 세 사람의 발자취였다.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의아함에 뒤섞인 채 발자국을 따라갔다.

기대감은 이제껏 그가 염원하던 예언의 성취에 관한 것 때문이었고 의아함은 도무지 거지와 예언은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걸음을 옮기면서 손패의 얼굴은 더욱 긴장으로 물들었다. 발자국은 그에게 더욱 긴장하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발자국을 알아내기도 힘들었겠구나. 젖은 땅에도 어찌 이렇듯 옅은 흔적만을 남겼단 말인가.’

발자국은 초절정의 고수들이 섬에 있음을 나타내 주었다. 잔뜩 긴장에 휩싸여 걸음을 옮기던 손패는 이윽고 동굴들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췄다. 흔적은 여기저기 보였으나 그중 동굴 제일 중앙 쪽에 가장 많이 몰려 있었다.

‘저곳인가.’

그렇게 손패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접근하려 할 때였다. 시야로 뭔가 거무스름한 것이 다가온다 싶더니 어느새 목이 탁 막혔다.

“컥……!”

놀라운 신법이었다. 손패는 그런대로 무공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렇게 맥없이 잡힐 사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자신의 생각을 산산이 깨 버렸다.

‘어, 어떻게…….’

그는 단지 흑영(黑影)이 접근한다고 느끼기만 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멱살이 잡혀 몸이 둥실 떠 있는 신세가 돼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놀란 송아지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니 여기저기 헤진 흑의를 입은 청수한 노인이었다. 노인의 입에서 벼락같은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뭐 하는 놈이냐!”

흑의노인은 능파였다.

능혼은 혹시나 표영의 내상을 치료할 약재가 있는지 살피러 나갔고 능파만 동굴에 남아 교주(?)를 지키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침입자의 기운을 감지하고 번개같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건 말 그대로 번개라고 할만 했다.

“커어억… 다, 당신은 누구시오……?”

영원히 냉정함을 잃지 않을 것 같던 손패의 입이 더듬거렸다.

거기엔 두려움이 잔뜩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잔뜩 불편해 있던 능파의 심사를 들끓게 만들었다.

실상 손패가 무슨 다른 말을 했어도 똑같은 자극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긴 했다. 어쨌든 능파로서는 교주를 상하게 한 후 극한 우울함에 휩싸여 있던 차에 제대로 화풀이 대상이 걸려든 셈이었다.

“이 자식, 너 때문에 지존께서 화를 당하신 것이 아니냐!”

정작 표영에게 중상을 입힌 당사자는 능파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 본 손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손패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죄라면 단지 이 시간, 이곳에 있다는 것뿐이리라. 허나 손패는 귓속을 파고드는 말 중 ‘지존’이라는 단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존이란 말은 경우에 따라서는 무림방파 중에서 누구에게나 호칭할 수 있는 것이겠으나 불귀도에서 듣는 지존의 호칭은 그에겐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뭐라고 말을 꺼낼 여지가 없었다. 어느새 능파의 주먹이 손패의 복부에 꽂힌 것이다.

퍼억!

“우우욱…….”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더군다나 멱살이 잡힌 상태라 숨 쉬기는 더욱 곤란해 입을 벌리고 붕어처럼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능파의 손이 손패의 어깨를 잡았다.

‘헉!’

손패의 눈이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뚜득… 뚜뚝.

“으으윽…….”

손패의 오른쪽 팔이 어깨로부터 탈골되어 덜렁거렸다. 다시 땅에 내려놓은 능파는 고통에 겨워 허리를 숙이고 있는 손패의 등을 팔꿈치로 내리꽂았다.

퍽!

즉시 손패는 팽개쳐진 개구리처럼 바닥에 뻗어버렸다.

“만일 지존께서 깨어나지 않으시면 넌 그날이 곧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이 개자식아!”

손패는 파르르 떨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복부와 어깨, 그리고 등 쪽으로부터 지독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한없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통증은 기대감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만 했다.

지존이라는 단어는 그의 숙원이 이루어지는 말이며 꿈에서도 그리던 단어가 아니던가.

만일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는다면 이 노인은 200년 전 마교 고수인 십절쌍마 중 한 명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지존께 무슨 문제라고 생긴 것인가? 그리고 그 거지 놈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때 능파가 보따리짐 들듯이 손패를 집어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지라 구석지에 아무렇게나 팽개쳤다.

철퍼덕.

손패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젖혀 지존을 찾았다.

‘이제야 지존을 뵙게 되는 것인가.’

그의 가슴으로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솟구쳤다.

손패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능파의 등이었다.

“지존이시여, 어서 깨어나십시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흑흑흑…….”

능파가 어린아이처럼 울먹이자 손패의 눈에서도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역시 그렇구나. 천마지체를 타고나신 교주께서 현신하신 것이다. 아… 드디어 200년의 기다림이 이렇게 결실을 맺는가.’

손패는 어서 빨리 지존의 옥안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능파의 등에 가려 볼 수 없게 되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떤 분이실까? 전설의 천마지체를 타고나신 분이시라면… 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구나.’

그때였다. 능파가 손패의 염원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능파가 몸을 옆으로 살짝 틀었고 그 사이로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지존의 얼굴이 드러났다. 말로 할 수 없는 감동과 기대감으로 희열이 들끓었다.

하지만 이내 손패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거걱!’

하마터면 경악에 찬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지존이 누워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이 데리고 온 떨거지가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어, 어떻게……!’

손패는 원래 눈을 뜨기조차 힘겨운 상태였지만 지금의 눈 상태는 왕방울만 하게 부릅떠져 있었다. 그만큼 그가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마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닐는지. 그는 머리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지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손패가 본 것은 당연히 표영이었다. 손패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복잡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능파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존이시여… 마교의 영광은 어찌하고 이렇듯 누워만 계시나이까.”

능파는 표영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대뜸 몸을 일으켜 손패에게 다가가 삿대질을 했다.

“네놈 때문에 지존께서 아프시다! 아프시단 말이다. 이놈아!”

능파의 발길질이 사정없이 손패의 온몸을 가리지 않고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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