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
똑똑.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은 우마 신발점의 주인 여묵과 점원 호노자였다. 힘없이 침상에 누워 있던 이진구는 고개만 살짝 돌려 바라보았다.
어제 개방에서 다녀간 후 의원이 건넨 약을 두 사발 정도 마섰는데 어찌 된 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마음도 착 가라앉아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온초가 안정제의 성격을 띤 약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우마 신발점 주인 여묵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몸은 좀 나아지셨나요? 대협께 감사드리고자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마 신발점을 경영하고 있습지요.”
이진구는 웬 뚱딴지 칼은 소린가 하고 힘겹게 침상에서 윗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다가 신발 가게는 자신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거늘 무엇이 감사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진구에게 여묵이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대협께서는 잘 모르시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요. 실은 대협으로 인해 우리 가게가 요즘 크게 번창하고 있지 뭡니까. 저로선 큰 은혜를 입은 것이기에 보답 차원에서 선물을 드리려 하는 것이랍니다.”
“무슨 은혜를 입…….”
이진구는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여묵과 호노자가 상자를 신바람을 내며 개봉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안에서는 가죽 신발 10켤레가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진구가 기가 막혀 말하다 말고 아연실색해서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여묵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이건 모두 최고급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대협께선 이번 일로 새 신발이 필요하실 것 같아 넉넉히 가져왔습니다.”
여묵은 직접 한 짝씩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씹어 먹거나 삶아 먹어도 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소화가 잘 되도록 만들었답니다. 저와 직원들이 삼 일 동안 밤을 새가며 얼마나 정성 들여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모쪼록 약소하지만 받아주십시오.”
이진구는 너무도 황당한 일이라 화도 내지 못했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머리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으며 공기마저 순환을 멈춰 버린 것만 같아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진구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여묵과 호노자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럼, 몸도 불편하신데 오래 있으면 좋지 않을 테니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신발에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대협께는 모두 무상으로 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진구는 두 사람이 완전히 문을 나설 때까지도 그저 망연자실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로선 자기 자신이 분명 존재하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어찌 이런 병문안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언제 이런 식으로 취급당해 본 적이나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절망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가죽 신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천월 만두점의 주인 도인경과 점소이 마충이 찾아왔다. 둘은 이진구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속으로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소문이 틀리지 않았구나. 완전히 넋이 나갔지 않은가. 쯧쯧… 불쌍하군.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벌써 돌아 버리다니.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된 만두라도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
사실은 어제부터 이진구가 미쳐 버렸다는 소문이 돈 것이었다. 그 소문은 온초방에 입원해 있던 다른 환자가 퇴원하면서 알려준 소식이었다.
방금 전 방문한 우마 신발점의 여묵이 가죽 신발을 선물한 것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멀쩡하다면 도리어 조롱하는 것이 될 터이기에 이런 선물을 할 수는 없겠지만 돌아 버린 이상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마음을 쓰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두집 주인 도인경이 점소이에게 눈짓을 보내고 하나둘 만두 접시를 꺼냈다. 10접시에 푸짐한 만두가 접시마다 넉넉히 담겨 있었다.
아까의 충격을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있던 이진구로서는 이젠 거의 경악하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졌다.
“좀 더 많이 가져다 드려야 하는데 너무 약소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대협의 그 처절한 생명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만두를 아주 귀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때만두를 먹고도 살아남았는데 우린 고기만두를 먹으면서도 얼마나 불평이 많았나 하며 반성하는 사람마저 있지 뭡니까. 그리고 덕분에 저희 만두 가게에서는 만두가 부족하리만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대협의 공로가 아니겠습니까.”
주인 도인경의 거창한 말에 옆에 있던 점소이가 살짝 끼어들었다.
“헤에∼. 나리. 보아하니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데 미친 사람한테 무슨 말씀을 그리 많이 하세요.”
“에끼. 이놈아, 아무리 미쳤다고 사람이 아니더냐. 다 모두 소중한 것이야.”
‘미친 사람이라고? 때만두를 먹고도 살아남았다고? 처절한 생명력?’
이진구로서는 다른 때 같았으면 고래고래 소리쳤을 테지만 웬일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예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꼼짝도 않고 있었지만 흰자위가 충혈되며 실핏줄이 더욱 튀어나오며 사방으로 뻗치고 있었으며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인 도인경은 점소이 마충에게 야단을 치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해 봐도 더 이상 말해 봐야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것 같아 말을 맺었다.
“대협! 부디 겸양치 마시고 마음껏 드십시오. 혹시라도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대협께는 평생토록 고기를 팍팍 채운 만두를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그럼 부디 완쾌되시길 빌며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만두점 주인과 점소이가 나간 후 이진구의 눈은 이젠 아예 붉은 혈광을 분분히 뿌리고 있었다. 그 눈빛의 밝기는 캄캄한 밤중이라면 따로 등불을 켤 필요가 없으리만치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연거푸 이런 일을 당하게 되자 정말 자신이 정상인지 아닌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복받치는 설움에 가슴을 움켜쥐고 침상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으억… 으억… 으어어억…….”
신경안정탕약을 복용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분노로 온몸이 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진구가 꺼억꺼억 울고 있을 때였다. 다시 삐거덕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들어섰다. 이번에는 추혼루의 주인과 점소이였다.
추혼루는 지난날 모기 눈알을 내오지 않는다고 호통 쳤던 바로 그곳이었다. 추혼루의 주인도 소문을 들었고 안쓰러운 마음에 찾아온 것이었다.
‘동굴에 갇혀 박쥐를 잡아먹었다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렇게도 모기 눈알이 먹고 싶었을까. 그날 어떻게든 구해주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했던 게야. 다른 사람은 왜 그가 동굴에 들어갔는지 모르고 있지만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주인장은 이진구가 모기 눈알을 못 먹게 되자 직접 동굴에 서식하는 박쥐나 박쥐의 똥을 채집하러 갔다가 그만 동굴이 무너져 내려 그와 같은 참변을 당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결국은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으니 작은 위로라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둘은 침상에 엎드려 짐승처럼 신음하는 이진구를 바라보자 죄스러운 마음까지 일었다.
“휴우… 다 내 죄로구나.”
주인장은 한탄을 한 후 모기 눈알 한 접시를 침상 앞머리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대인. 여기 모기 눈알을 가져왔습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그날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박쥐를 잡아서 드실 정도로 모기 눈알을 드시고 싶으셨음을 알고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답니다. 다 저희들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일어난 일이지요. 부디 정신을 차리시고 화를 내도 좋으니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길 빕니다. 그날이 되면 근사하게 제가 한턱내겠습니다.”
이진구는 눈물 범벅이 되었는데 소매로 닦을 생각도 않고 눈을 들어 두 사람과 모기 눈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두 사람이 떠난 후 침상에 놓인 모기 눈알을 본 이진구는 급기야 신경안정탕약의 효과를 뛰어넘어 버렸고 끝내 입에서 거품을 뿜고 쓰러졌다.
“난 이제 어떡해∼ 푸르르르… 으윽…….”
선물 공세는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이 되어 느닷없이 중원표국에서 표물을 전달하러 왔다며 찾아온 것이다.
중원표국의 두 표사 엽장과 무포는 큰 상자 여러 개를 병실로 낑낑대며 옮긴 후 기쁜 어조로 말했다.
“하하, 기뻐하십시오. 어찌 그리도 사시면서 덕을 많이 쌓으셨습니까. 완쾌를 비는 마음을 가득 담은 선물을 각지에서 보내왔지 뭡니까. 저도 표사 생활을 한 지 내년이면 10년째지만 한 분에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전달하게 되는 건 처음 해보는 일입니다. 물건을 옮기면서도 어찌나 마음이 뿌듯하던 지요. 저로서도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은 표행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겠습니까. 대인의 덕망에 그저 감복할 따름입니다.”
엽장과 무포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부러운 시선을 짓고 돌아갔다.
이진구는 어제 받은 충격에서 간신히 헤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의 간사함이란 뒷간을 갈 때와 나올 때가 천양지차(天地之差)이듯 변화무쌍하기 마련인 법.
그는 많은 선물 꾸러미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지만 표사들의 극찬을 듣게 되자 한 가닥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고통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선물이란 그 이름만으로도 괜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지 않던가.
‘내가 처참하게 살아남은 것에 그나마 감동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로구나.’
사실 그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행한 일을 되돌아본다면 택도 없는 발상이었지만 그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상자를 열어갔다. 원래 선물은 하나하나 개봉할 때마다 받은 사람의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진구는 상자를 하나하나 열 때마다 얼굴이 점점 새까맣게 변해갔다.
그 내용물들은 가히 심장을 뒤집어놓고 염장을 가로지르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선물들은 참으로 다양하기도 했다. 죽은 박쥐 열 마리, 대체 어떻게 죽었는지 거품을 물고 죽어 있는 쥐 50마리, 술병에 가득 담긴 오줌물, 때만두, 때국수, 심지어 항아리 가득 배설물을 담아 보낸 것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심장을 멎게 할 만했지만 그보다 더한 괴로움은 선물과 함께 보내진 인사말이었다.
-넌 박쥐를 좋아하니 두고두고 맛있게 먹어라. 개자식아. 하하하.
-쥐새끼 같은 놈! 너와 형제의 의를 맺은 너의 핏줄인 쥐 50마리를 보낸다.
-목마를 때 한 잔씩 따라 마셔라. 갈증을 푸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단다. 참고로 이건 개 오줌이다. 킬킬킬.
-온 가족이 하루 내내 만든 만두이니 사양하지 말기를. 부디 잘 먹고 일찍 죽어주길 기원하는 바이다.
-5일간 모은 똥이다. 더 모으려고 했지만 네놈의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나 염려스러워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제발 죽어주라. 네놈이 살아서 내뱉는 공기를 내가 마실까 두렵다. 이 썩을 놈아.
한마디 한마디가 송곳으로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 약간의 희망을 품었던 마음은 더한 절망으로 뒤덮었다.
‘어떤 놈들이 보냈을까? 대체 어떤 새끼가…….’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누가 보냈는지를 생각했다.
‘지타주 오선교의 짓일까? 양아치들? 삼구절편 고천득? 서완우? 조천행? 목육갑? 한사후? 최인식? 권선웅? 노무각? 류천방?’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그가 사는 동안 함부로 대하고 멸시했던 사람들이었다. 이진구가 누군지를 알아내기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에게 괴롭힘을 당한 자가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표사들을 쫓아가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표물을 맡긴 자가 신분에 대해 비밀을 지켜줄 것을 요구할 경우 표국은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이 있는 것이다. 그건 윽박지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혼란하기만 했다. 여러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끼며 울컥하고 한 모금의 피를 토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그가 이제껏 살아온 동안 힘으로 억눌렀던 모든 사람들의 한(恨)이 그를 덮치고 만 것이다.
중원표국의 일이 있은 후 이진구의 병실 앞에는 새로운 팻말이 붙었다.
‘개방인들 외 면회 금지. 선물 전달 절대 금지.’
온초에겐 이진구의 품행이 어떠했든 전에 어떤 악한 짓을 했든 간에 한 명의 환자이며 귀중한 생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