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47.
“허허허, 양아치들이 사람이 다 됐어.”
“저것들이 못 먹을 것을 먹었나 왜 저러는지 모르겠군.”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일세.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란 변하는가 봐.”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허운 지역의 사람들은 서서히 양아치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갔다. 양아치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들이었다. 양로원으로 가서는 홀로된 노인들을 위해 공연 행사도 치렀다. 장기 자랑이며 노래 자랑, 그리고 온갖 재롱이란 재롱도 다 떨었다. 게다가 가진 재산을 털어 쌀과 여러 음식들을 창고에 사 나르기도 했다. 하지만 양로원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그런 양아치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무슨 속셈이지? 저렇게 행사를 치르고 재롱을 떨고 나서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잡것들이라니까.’
‘우웩! 덩치가 산(山)만 하고 흉악무도하게 생긴 놈들이 아양 떠는 모습이라니…….’
‘왜 하필 우리 양로원에 와서 난리냐, 난리긴. 재수없어…….’
‘저것들이 쌀 사놓고 나중에 이자를 엄청 붙여서 돈 내놓으라고 할지도 몰라. 내 결코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
하지만 이런 노인들의 염려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바뀌어갔다. 건달들의 태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흉악하던 얼굴 또한 차츰 대하자 그 또한 나름대로 정감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양로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고아원과 장애원 같은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찾아오는 손님들 중 가장 기다려지는 사람 1위로 양아치들을 꼽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장애원의 몸을 움직이기 힘든 아이들도 고아원의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양아치들이 몸을 씻겨주는 등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런 일이 20여 일 정도 지속되면서 양아치들은 점점 마음에 평범한 삶에 대한 기쁨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기쁨의 정체는 예전 양아치 시절 때 삥을 많이 뜯었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정성 어린 노력으로 어느덧 양아치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갈 무렵 완전히 양아치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산불 화재였다.
“불이야, 불!”
“옥운산에 불이 났어.”
옥운산이라면 허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는 곳이며 약수를 떠먹는 곳이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표영은 이 일이 양아치들의 입지를 완전히 쇄신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급히 일각두를 찾은 표영은 지시를 내렸다.
“자, 모든 양아치들을 소집하고 불을 끌 만한 것들을 준비해 옥운산 아래로 집합하라.”
표영은 명령을 내린 후 서둘러 지역의 모든 개들을 소집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옥운산 아래 모였을 때는 아직 관에서는 출동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 주변 주민들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양아치들과 1,000마리가 넘는 개들은 비장한 각오로 눈빛을 불태우며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자, 출동!”
표영의 손이 올라가자 양아치들과 개들은 질풍같이 산을 올랐다. 불길은 거세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양아치들과 개들의 열기는 그보다 더욱 거셌다. 개들은 시냇가에 풍덩 몸을 적신 후 불길을 향해 몸을 굴리며 온몸을 아끼지 않고 불길을 잡았고 양아치들은 옷이며 담요, 그리고 큰 나뭇가지들로 불의 진행 방향을 따라 꺼 나갔다.
양아치들 중 산에서 오래 살아본 몇 명의 건달들은 바람의 방향을 보고 맞불을 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은 곧 모습을 드러내 불길은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불이 다 꺼진 후 수많은 개들과 표영, 그리고 100여 명의 양아치들은 개선장군처럼 산을 내려왔다.
산 아래쪽에서 이제야 출동한 관원들과 많은 주민들은 산 위에서 내려오는 영웅들의 모습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우리 마을에서 이런 영웅들이 살고 있었다니…….”
“저 개들을 보라. 호랑이보다 낫지 않은가.”
“누가 저들을 가리켜 양아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000여 마리의 개 중 200여 마리 정도가 불에 타죽었고 양아치들 중에서도 일부는 몸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신속히 대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모든 산림이 다 타고 산에서 거주하는 이들이 그동안 가꾸어온 작물 등이 모두 다 타버렸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양아치들은 그동안의 인식을 깨뜨리고 온전히 새사람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옥운산 산불 사건 이후 양아치들의 취직은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서로 자기 일터로 데려가려고 경쟁이 치열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성실한 이들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맡길 수 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추혼루는 이진구가 즐겨 찾는 음식점 중의 하나였다. 특히 이곳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모기 눈알 요리’였다.
모기 눈알은 그 맛이 꼬들꼬들하고 뒷맛이 담백한 것이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 값이 비싼 것이라 보통 사람들은 먹기 힘들지만 이진구는 돈이 얼마든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 추혼루를 찾았다. 워낙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2층 창가 끝 좌석은 그의 지정 좌석이나 다름이 없었다.
주루에는 저녁 시간이 되어가는지라 하나둘 손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진구가 자리에 앉은 후 점소이가 냉큼 달려오더니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올렸다. 점소이의 얼굴엔 오늘따라 송구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대인, 오셨습니까.”
“여기 모기 눈알로 한 접시 가져와라.”
더욱 난처한 기색으로 변한 점소이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대인, 저… 실은 마침 오늘 모기 눈알이 다 떨어져 남은 게 없지 뭐겠습니까. 아마도 삼 일 후면 공급이 이루어질 것 같으니 그때까지…….”
“뭐라고?!”
이진구가 벼락같이 소리를 내질렸다. 그의 심기는 일각두와 양조포, 그리고 양아치들로 인해 편치 못한 상태였다. 보잘것없는 녀석들이 구지경외자를 묻어버리라고 했더니 느닷없이 착한 일을 하며 취직을 해버린 것이다. 그로선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양아치들을 혼내주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는 먼저 구지경외자를 자신의 손으로 매장시켜 버린 후에 양아치들마저 본래로 돌려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지금 기분 전환도 하고 앞으로 한 시진(2시간) 후에 만날 더러운 구지경외자를 위해 입을 씻어둘 요량이었건만 모기 눈알이 없다니……. 그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뭣이 어째! 왜 하필이면 내가 시킬 때 모기 눈알요리가 떨어졌다는 것이냐. 네놈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따위로 대접한다는 말이냐!”
이진구는 인간이 치졸한지라 어지간해서는 사람의 말을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점소이가 없다고 한 것은 분명 거짓말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는 특급 손님을 위해서 귀한 것은 일정 부분 남겨놓았다가 내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인, 대인께서는 저희 집의 단골이신데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시고 이해해 주십시오.”
사실 모기 눈알은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규칙적으로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지라 가끔씩 이런 날이 있게 되는 것이다. 원래 모기 눈알은 구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그 방법은 참으로 기기묘묘한 데가 있었다.
그 방법이란 이랬다. 실제 일일이 모기를 잡아서 눈알을 빼낸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과 더불어 영양가도 조금 처지는 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릿집은 박쥐를 통해 모기 눈알을 구한다. 박쥐는 주로 모기들을 잡아먹는다. 그렇기에 박쥐가 싸놓은 배설물을 동굴 주변에서 대량으로 수집하고 그것을 물에 헹구어 그 가운데 소화가 되지 않아 그대로 나온 모기 눈알을 추출해 내는 것이었다. 박쥐의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나온 것이야말로 박쥐의 기묘한 힘까지 받아낸 것이라는 생각에 그 값어치는 더욱 컸던 것이다.
이진구는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나는 이곳에서 그동안 수많은 모기 눈알을 먹으며 너희들의 배를 불려주었다! 그런데 너희는 날 대체 어떻게 여기길래 이따위로 대접하더란 말이냐! 내가 거지로 보이느냐?!”
탁자를 치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에 저녁을 먹으러 들른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하지만 이진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 주인장 어디 갔어?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어쩌나 소리가 크던지 추혼루의 주인 막문걸이 뛰어왔다.
“대인, 무슨 일이십니까?”
“흥, 너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렷다. 여기 돈이 있으니 어서 모기 눈알을 내오란 말이다.”
허리춤에서 한 움큼의 은전을 탁자에 내려놓은 이진구에게 주인 막문걸은 허리를 굽신거렸다.
“저희들이 어찌하여 대인 같은 분을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모기 눈알이 떨어져서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달라는 말은 이진구의 좁쌀만 한 마음을 콕 찔렀다.
“흥! 네놈들이 숨기는 것이 없으면 어찌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이 고얀 놈들 같으니라구.”
이진구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탁자와 의자를 부숴 버리고 난동을 부렸다. 그에 놀란 다른 손님들이 모두들 놀라 허겁지겁 나가 버렸고 아직도 분이 덜 풀린 이진구는 다른 탁자들까지 다 박살 내고 있었다.
주인 막문걸과 점소이는 어이가 없었다.
‘개방의 고수라면 고수답게 굴 것이지. 정말 못돼 먹은 놈이군. 벌써 이게 몇 번째야.’
‘내 점소이 생활 10년에 저런 새끼는 처음 본다. 더러운 모기 눈깔에 환장을 했나. 난 자식아, 돈 있어도 안 먹는다. 거지새끼!’
한동안 깨부수던 이진구는 이제야 분이 좀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멈춰 섰다.
“내 오늘은 그만 가지만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자, 여기 이 돈으로 파손된 기물을 사도록 해라.”
주인장이 굽신거렸다.
“네네,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다음번에는 꼭 어김없이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미친 새끼! 우리 주루의 점수를 다 깎아먹은 값은 생각지도 않지. 바보 같은 녀석!’
주인과 점소이가 뒤에서 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진구는 태연한 기색으로 추혼루를 빠져나왔다. 모기 눈알은 먹지 못했지만 힘을 썼더니 기분은 조금 나아진 것이다.
‘이제 소하산 중턱 곤천암 쪽으로 서서히 이동해 볼까.’
그가 소하산의 곤천암으로 가고자 함은 그곳에서 구지경외자 표영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