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8장 (3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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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천계의 바쁜 나날들

지상계의 모든 이들이 생각하길 천계(天界)는 날마다 여유로운 시간이 넘치리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아도 한참을 잘못 알고 있음이다. 물론 천계의 일반 시민들이야 나름대로 행복한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천계의 지도부는 그렇지 못했다.

지상계와 마옥(魔獄)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신속히 처리해야 하기에 휴가를 즐길 여유조차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럼 천계의 대신들은 모두들 마지못해서 일하고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든 일을 함에 있어 감사하는 마음과 벅찬 감동으로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신들의 정신 세계가 이미 기쁨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고도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까닭에 불평 따윈 존재할 수도 없었다.

천계의 주된 일은 지상계와 마옥을 관장하는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대부분은 지상계를 살피고 질서를 유지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형벌의 장소인 마옥에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곳은 대천신의 명을 받들고 사명을 다하는 염왕이 굳건히 버티고서 소란이 일 때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곤 했다.

마옥은 과거 500년 전 대역무도한 반란이 일어난 때를 제외하곤 아직까지 크게 소란스럽지 않았다. 그 당시의 사건은 마옥에 수용되었던 십마존(十魔尊)들이 탈출을 기도하고 천계를 정복하고자 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천신과 십사성존이 그 세력이 커지기 전에 일거에 제압함으로써 마옥의 소용돌이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 후 염왕 혼자로서는 무리라는 판단 아래 일곱의 화염검신을 보내 돕도록 했는데 그 뒤로는 별다른 소동이 아직까지 없었다.

이날도 대천신을 위시한 천계의 대신들은 하루의 일과를 점검하고 하루 동안에 처리해야 할 일을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일들은 과거 표영의 어머니 화연실의 기원을 들어 응답하였던 것과 비슷한 성질의 것들이었다. 천하 각지에서 향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오는 사연들 중에는 눈물이 없이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처럼 하늘을 감동시키는 일들에 대해서는 ‘하늘도 그에 감동하였다’라는 성어(成語)가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찬란한 보좌에 좌정한 대천신이 옥색 광채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하북성 남쪽에 있는 금후라는 아이에 대한 조치는 어떻게 되었느냐?”

대천신의 물음에 녹운신이 초록 광채 속에서 공손히 답했다.

“선약실(仙藥室)에서 산삼 제조가 이미 끝났다고 하옵니다. 떠날 채비가 되었으니 바로 출발하면 되옵나이다.”

대천신은 만족한 듯 옥색 광채 속에서 백색 광무를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다. 늦지 않게 어서 가보도록 하여라.”

녹운신은 깊이 허리를 숙이고 초록색 연기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는 떠나면서도 마음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여러 일들 중에 가장 기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효성이 지극한 사람을 돕는 일이었다. 녹운신이 떠난 뒤 대천신은 적운신을 불렸다.

“적운신! 제금선의 위기와 천년거북의 겁난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

적운신이 붉은 기운을 출렁이며 답했다.

“조금 뒤면 바다의 풍랑이 거세져 제 노인은 두 번째 생명의 위험에 놓이게 되었사옵나이다. 그와 상생의 관계에 있는 천년거북 또한 근처에 배려해 놓았으니 서로 도와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하면 되옵나이다.”

“차질이 없도록 하라. 그는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아직도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천하에 가득하니 혼신의 힘을 다해 구해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부터 가서 조치토록 하라.”

대천신의 불꽃 같은 명령에 적운신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대천신님의 크신 자비에 감사드리옵니다. 속하, 지금 떠나도록 하겠나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적운신 또한 붉은 광채가 화르르 타오르며 서서히 장내에서 사라졌다. 이어 대천신의 눈길은 황운신에게 닿았다. 하지만 녹운신과 적운신에게 대했던 것과는 달리 대천신의 음성은 노기를 가득 띤 채였다.

“네 이놈! 내 누누이 헛된 약속을 남발하지 말라고 했건만 어찌 그리도 경솔하더란 말이냐! 아직까지 눈가림으로 하늘을 기만하는 이들과 진실로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구별하지 못한단 말이더냐. 고얀 놈 같으니.”

어쩌나 노기가 대단했던지 옥색 광채 속에서 화공이 치솟아 오르며 당장에라도 황운신을 덮칠 것만 같았다. 황운신은 감히 몸 둘 바를 모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기 바빴다.

“속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구허천에게 약조한 것은 저의 크나큰 실수이옵니다. 저의 우둔함을 벌하여 주소서.”

“고얀 놈.”

대천신은 그래도 노기가 안 풀리는지 한참 씩씩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어떠한 약속이든 한번 맺어진 것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가서 그를 돕도록 하라. 네가 그와 약조한 대로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 어서 썩 물러가라.”

황운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가 이처럼 대천신의 분노를 산 것은 삼 년 전에 있었던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그땐 지상계에서 다른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황운신은 외진 산길에서 정성스럽게 기원을 올리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구허천이었다. 황운신은 호기심이 일어 가만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 기원하는 내용이 어찌나 갸륵하고 복된 말들을 하던지 그만 크게 감동을 받고 말았다. 황운신은 그 자리에서 구허천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게 약조를 했다. 그것은 생명의 위기를 넘길 세 번의 기회를 주겠노라고.

하지만 황운신은 구허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구허천이 사악한 점쟁이 도사라는 점이었다. 구허천으로서는 여러 사람을 속이기 위해 하늘을 향해 정성껏 기원을 올리는 시늉을 했던 것이며 암중에 살피는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함이었는데 뜻밖에도 황운신이 걸려든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하늘의 대천신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고의 분별력과 지혜를 갖추었다는 십사성존의 한 명으로서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만큼 삼라만상의 질서를 위해서 지키지 않을 수 없어 대천신은 부득불 황운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지금 그 거짓 점쟁이가 위험에 처해 있어 하늘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천한 속하, 명을 받드옵니다.”

기어 들어가는 소리를 낸 후 스멀스멀 금빛 광채가 옅어짐과 함께 황운신이 천계에서 지상계로 이동해 갔다. 황운신의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대천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저 녀석은 마음이 모질지 못한 것이 흠이야.”

아까 큰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십사성존을 하나같이 자식과 같이 아끼는 대천신이었다.

하늘의 한 공간에서 번쩍 하며 광채가 일더니 녹운신이 허공 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서서히 하강을 했는데 내려오면서 그 모습과 옷차림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지면에 몸이 닿았을 때는 어느새 허리가 구부정한 초라한 노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가 다다른 곳은 시운산의 중턱이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대충 시간을 어림잡아 본 후 중얼거렸다.

“음… 이제 곧 이곳을 지날 시간이 되었구나.”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힘겹게 산 고개를 넘어오는 십오륙 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모습을 나타냈다.

‘저 아이가 금후구나.’

금후라고 불리운 소년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초췌한 얼굴에 몇 날 끼니를 거른 사람처럼 발걸음에 힘이 없어 곧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묘한 빛을 발하면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방금까지 멀쩡하던 녹운신은 자리에 앉은 채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이보게, 젊은이. 날 살려주시오.”

그 소리에 금후는 화들짝 놀란 기색으로 다가오더니 얼른 녹운신을 부축했다.

“할아버지, 어디가 아프신 겁니까?”

“다리를, 다리를 다쳤지 뭔가 으으윽.”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보고 금후는 안쓰러운 표정이 되어 물었다.

“댁이 어디십니까.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자, 일어설 수 있으시겠습니까?”

녹운신은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꼼짝도 할 수가 없네. 자네가 날 업어줄 수 있겠나?”

아까까지 휘청거리던 발걸음을 보이던 금후인지라 자신의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지만 전혀 머뭇거림이 없이 대답했다.

“제 등에 업히십시오.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앉은 채로 등을 보이는 금후를 바라보며 녹운신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젊은이에게 몹쓸 짓을 시키는구먼.”

녹운신은 힘겹게 금후의 등에 업히며 말을 이었다.

“저기 옆의 산을 타고 내려가세나. 고맙기 그지없네그려.”

“고맙다는 말은 감당키 어렵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만일 제가 이런 곤경에 빠졌으면 할아버지께서도 그냥 지나치진 않으시지 않았겠습니까. 더욱이 저 또한 몸이 아프신 어머니가 계시니 남 일 같지 않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녹운신은 가슴 가득 보람을 느꼈다. 그 사이에 금후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고 넘어지려고 했는지 모른다.

“할아버지, 조금 불편하시죠? 그래도 제가 책임지고 모셔다드릴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녹운신은 금후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고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개의 언덕을 넘어 세 번째 언덕을 넘어서려 할 때 금후는 몸을 휘청하더니만 그만 주저앉아 혼절하고 말았다.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산을 뒤지고 있었던 터라 금후의 상태는 가히 최악이었다. 거기다 혼자의 몸도 힘든데 녹운신까지 업고 언덕배기를 넘었으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초인적인 정신력이라고 할 만했다. 녹운신은 언제 다리가 아팠냐는 듯 굳건히 선 채 쓰러져 있는 금후를 바라보았다.

‘대천신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니 역시 대단한 아이로구나. 이러니 하늘이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금후는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 소리와 함께 가느다랗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소자가… 산삼을 구해서 돌아가겠습니다…….”

녹운신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느끼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선약실의 산삼이여.”

작게 말하자 손 위에서 새하얀 광채가 일면서 사람의 형상을 지닌 산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너의 정성과 효심에 감동하여 주는 선물이다.”

그는 산삼을 금후의 눈 앞쪽에 곱게 놓은 후 다시 손을 뻗어 금후의 이마를 만졌다. 손바닥에서 초록 광채가 피어나면서 머리를 감싸더니 곧 이어 온몸으로 퍼져 나가 구석구석 회오리치듯 몸을 휘감았다. 금후의 몸을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아이의 몸도 회복되고 천년산삼도 자리에 두었으니 일은 끝난 셈이로구나. 금후야! 부디 이제까지의 효성을 잃지 말고 늘 하늘이 함께함을 마음에 간직하거라. 너의 마음은 대천신님을 비롯해 모두를 기쁘게 했고 천계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고 있단다.’

녹운신은 한차례 따스한 눈빛으로 금후를 바라보다가 한줄기 초록 광채로 화해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랐다.

한편 또 다른 명을 받은 적운신은 바다 속으로 진입해 있었다. 약간은 어두운 바다 속에서 적운신은 붉은 광채 덩어리에 휩싸여 있었는데 지나는 여러 고기들과 어울려 묘한 신비함을 뿌리고 있었다. 적운신은 서서히 붉은 광채 속에서 이동하다가 사람 몸집의 두 배 정도 되는 큰 거북 앞에 섰다.

바다거북은 적운신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입을 벙긋거렸다.

“하하하, 그래. 나는 너의 겁난을 풀어주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너는 그리 염려하지 말아라.”

적운신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바다거북의 발놀림이 요란스러워졌다.

“허허, 녀석. 기쁜 게로구나.”

적운신이 껄껄대자 붉은 광채가 출렁댔다.

“너는 원래 겁난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 겁난에 당하면 너의 천 년 세월의 도(道)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오로지 피할 길은 겁난을 풀어줄 사람을 만나 그를 돕는 것뿐이다. 이미 전생에 너는 그에게 못할 짓을 하였던 터라 겁난이 예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에 대해 이미 마음을 풀었으며 지상에서도 선행을 베풀고 있다. 너는 오로지 온 힘을 다해 그를 구해야 할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다면 겁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어 있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되면 넌 어쩔 수 없이 도를 이루지 못하고 마옥에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겠느냐?”

바다거북은 알아들었다는 뜻인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잠시 후면 풍랑에 의해 노인 제금선이 이곳으로 떨어질 것이니 마음을 소홀히 품지 말고 최선을 다해 그를 육지로 옮기도록 하여라.”

그 말을 끝으로 적운신은 번쩍 하고 붉은빛을 뿌리더니 사라졌다. 바다거북은 순간을 억겁처럼 느끼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일 식경(30분) 정도가 지난 후 적운신의 말과 같이 한 사람이 바다에 빠지며 기포를 이루었다. 바로 이 사람이 예정된 이임을 알아본 바다거북은 입으로 그의 옷자락을 물고 물 위로 떠올랐다. 일단은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지라 곧 이어 힘껏 치켜올려 그를 목 윗 언저리로 올려세웠다. 풍랑이 워낙 거세어 구조하기엔 힘든 여건이었다.

하지만 바다거북은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 일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거북의 삶을 마치고 천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 천계의 저주로 인해 거북으로 살아온 지 어언 천 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가. 거북과 등에 업혀 있는 제금선은 모두 전생에 천계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거북은 천계에서 그를 시기하여 해쳤다. 하지만 이제껏 쌓아온 공로가 적지 않아 마옥으로 보내지 않고 일단 지상계로 보내 거북으로 살게 하며 회개의 기간을 갖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북에게는 커다란 위험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지조화로 인해 닥쳐 올 겁난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우주 대자연의 기운이 덮쳐 올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천운이 따랐던지 제금선 또한 지상계로 보내지게 되었고 천계에서 해쳤던 일을 보상할 기회를 대천신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니 어찌 힘을 다해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다거북이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제금선을 이동시킬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거세던 폭풍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진 것이다.

-아, 나에게 미칠 천겁이 풀리는 징조로구나. 하늘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되면 구조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곧 이어 육지에 도달한 바다거북은 어둠을 틈타 마을 가까이에 노인 제금선을 내려놓고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하늘에서 황금빛이 회오리처럼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황금 물줄기가 사방으로 튀듯 빛이 비산하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황운신이었다. 황운신의 귓가로 큰 음성이 들려왔다.

“하늘이시여. 저를 살려주십시오. 저는 평생에 걸쳐 하늘을 두려워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게다가 삼 년 전 저에게 말씀하시길 생명의 위협이 있을 때 구해준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부디 도와주소서.”

황금빛을 뿌리며 황운신은 소리가 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서서히 그 모습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채 일곱 발자국을 딛기도 전에 그의 모습에서 찬란한 황금빛은 온데간데없고 어느덧 초라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산에서 약초나 캐는 노인장의 모습이었다. 황운신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이미 천계에서 대천신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던 터라 살려달라는 소리에도 벅찬 기대 따위는 없었다. 이제껏 선한 이들을 구하러 수없이 다녔지만 이렇게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사명을 받들고 온 이상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함은 잊지 않았다.

“구허천, 내 지금은 당신을 구하겠으나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오.”

그는 흔잣말로 중얼거리고는 절벽가에 이르렀다. 절벽은 거의 100여 장(약 300미터)에 이를 만큼 높았는데 만약 떨어진다면 살아날 가망성은 없을 것 같았다. 고개를 삐죽 내밀어 보니 절벽 위쪽에서 약 2장 정도(약 6미터) 밑에 불쑥 튀어나온 돌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매달린 50대 중반의 남자가 간절히 하늘을 부르짖고 있었다.

‘구허천, 그때나 지금이나 뻔뻔스럽게 자신을 감추고 하늘을 찾는 것은 여전하구나.’

가증스럽게 느껴졌지만 행동까지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초라한 노인으로 변장한 황운신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이보시오. 여기 사람이 왔소이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되었소이까. 정말 생명이 경각에 달렸구려.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넝쿨 같은 것으로 밧줄을 만들어 당신의 어려움을 구해드리겠소이다.”

하지만 밑에서 매달린 구허천의 얼굴에서는 기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리어 그 지경에서도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힘겹게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당신은 그냥 가던 길이나 계속 가도록 하시구려. 난 따로 구해줄 사람이 있소이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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