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2장 (2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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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16장 개방의 무공을 전수받다

매일 밤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엽지혼은 표영에게 무공과 무의(武意)를 올 전수했다.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무의(武意)란 무공을 이루는 요체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를 수련하고 실제적인 무공을 닦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잘 들어라. 무공이란 마음가짐에 따라서 익히기 쉬울 수도 혹은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무공을 단지 육체를 강건하게 하여 발전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육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정신이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이 바로 서야만 비로소 그 토양 아래 진정한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무공이란 마음과 몸을 단련하는 것을 말한다. 단지 몸만을 단련코자 하는 사람은 어느 한계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진전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신이 지고한 위치에 오르게 되어 그것을 육체의 단련으로 연결시키면 끝없는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사부의 가르침에 표영은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사부님의 말씀은 솔직히 납득하기 힘들구나. 정말 그렇다면 글을 많이 읽은 학자들은 모두 다 고수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같이 비실비실한 게 전혀 힘을 못 쓰잖은가.’

엽지혼은 제자의 곤혹스런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한마디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현재 강호에 있는 여러 문파들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 주마. 무공을 연마하는 각 문파마다 그 무공이 발생하게 된 데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빨리 죽일 수 있을까를 연구하다가 생겨난 것이 아니란다. 문파마다에는 근간(根幹)을 이루는 바탕 정신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 그만의 정서 속에서 그 특유의 무공이 나오게 된 것이야. 예를 들어, 현재 정파의 기둥으로 있는 천선부(天仙府)나 구파일방의 무당파 화산파 청성파 등은 도가의 깨우침을 중심으로 나아가는 곳이고, 소림파는 불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러니 마땅히 그 무공의 신비한 힘을 깨우치고 터득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되는 정신적 수양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무시한 채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알맹이가 없는 껍질만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소유했다, 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은 것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표영은 온전히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천의 소공공은 말하길‘근본 만성지체는 천하의 기재이나 게으름으로 인해 그 힘을 드러낼 수 없다’ 하였다. 하나 천한 생활을 통해 만성지체의 틀을 깨게 되면 그 힘이 드러난다 하지 않았던가.

“음, 그러니까 사부님 말씀은 마치 망나니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어떤 양아치가 있다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근본에는 집안의 정서나 어릴 적에 가르침, 혹은 심적으로 받은 충격 같은 것에서 기인된 것이 분명하다, 뭐 이런 뜻 아니신가요?”

엽지혼은 표영이 비슷하게 그 이치를 표현해 내자 기특한 마음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녀석 미련한 줄 알았더니 꽤나 똑똑하구나. 하하하!”

그러면서 기쁜 나머지 표영의 머리를 한 대 갈겼다.

-타악

“아, 근데 왜 때리시는 거예요?”

“그냥 한번 때려봤다.”

엽지혼의 말에 표영이 뺄쭘하게 변해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냥이라고요. 기억해 놓겠습니다, 사부님.”

엽지혼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날이 밝을 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헉! 그러고 보니…….’

“난 그냥 귀엽다는 것이지 별다른 뜻은 없었다. 흠흠… 그리고 한 번만 더 낮의 일로 나를 제어하려 들면 용서하지 않겠다. 알겠느냐?”

“사부님도 참…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하시는군요. 제자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잘해주어라. 알겠지?”

엽지혼은 이런 대화가 즐거웠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새로 맞아들인 제자를 통해 희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듯해 더욱 기뻤다. 자신은 죽어 가지만 제자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정신은 이어질 것이다.

그는 무의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나갔다.

“모든 무공의 이치가 그렇단다. 단순히 무공이 강해지려는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 정신과 육체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정신을 수양함에 있어서 육체적인 힘이 따라주어야 하고 그 육체가 더욱 진전되기 위해서는 정신의 깊이가 따라주어야 한다. 소림사의 경우를 설명해 주마. 소림사는 말 그대로 불도를 섬기는 곳이다. 하지만 소림은 구파일방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곳이며 무림의 태산북두로 불리고 있다. 왜 불도를 익히는 곳에서 강한 무공이 창출될 수 있었겠느냐.”

“음… 혹시 절에 술 먹고 깽판 치는 사람들을 혼내주려고 익히게 된 것은 아닐까요?”

기가 막힌 지 엽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녀석하고는……. 잘 들어라. 처음 무공을 익히게 된 목적은 더욱 더 불도에 전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러다가 몸을 보(補)하고자 하는 것이 점점 발전하면서 여러 절기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소림칠십이절기가 형성되게 되었지. 그럼 소림에 있는 모든 승려들이 다 소림의 절기를 터득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란다. 그 무공들 하나하나에는 불도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 만일 그것을 깨우치지 못한 상태에서 절기만을 익히려들면 자칫 화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만약에 불도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는 더 이상 진보가 없게 된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근골이 있다 할지라도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지.”

“사부님, 그럼 개방의 무공은 어떤 정신에서 출발한 거죠? 설마 하니 더욱 거지같아질수록 무공이 더 발전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하하, 그렇다. 녀석, 계속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구나.”

“흐흐흐… 그럼 정말 사부님 말씀대로라면 무공을 익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로군요.”

“맞아, 식은 죽 먹기보다 더욱 쉽다고 할 수 있지.”

“이렇게 쉽다면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겠는걸요?”

“하하하, 그렇지만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단다. 그 간단한 이치를 많은 사람들은 무시하고 있거든. 무공을 익히다 보면 마음이 다급해지고 단순히 무학의 원리만을 철저히 깨달으려 하고 그 구걸만을 이해하려 들게 된단다. 무림인들은 그 함정에 스스로 빠져 좀체 벗어나지 못해. 다들 마음을 정진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흐흐… 무림인들은 모두들 눈 뜬 소경이로군요.”

“맞다, 그 표현이 적절하구나.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눈앞에 있으나 보지 못하고 먼 이상을 꿈꾸며 복잡한 길을 가려 하는 것이거든.”

엽 노인은 표영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진리란 땅에 떨어져 있기에 고개를 숙인 자만이 주울 수 있는 거란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목이 너무 뻣뻣해.”

표영은 진리라는 말에 묘한 감동이 일었다. 마음 한 귀퉁이에서 알 수 없는 울림이 일었다. 다시 엽 노인의 음성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보자꾸나. 어떤 사람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 다른 문파의 비급을 훔쳐 냈다고 하자. 그는 과연 그 비급의 무공을 익힐 수 있을까? 답은 ‘절대 그럴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마음의 깨달음이 무공의 뜻과 일치하지 못한다면 아주 초보적인 단계밖에는 이를 수 없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소림의 달마역근경을 훔쳐 냈다고 치자. 음… 소림의 달마역근경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어쨌든 광세절학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역근경을 훔친 자는 과연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겠느냐?”

“당연히 안 되겠죠.”

표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익힐 수 있겠느냐?”

“그에 걸맞은 불도를 닦아야 한다는 말씀이신 가요?”

“하하, 그렇지. 잘 말했다. 그것은 불도를 심득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익힐 수가 없게 되어 있단다. 단지 구걸에만 얽매이게 되는 자에게는 그저 몸에 좋은 체조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게 되지. 그러나 만약에 그가 불도를 깊이 깨달은 후라면 또한 마음에 악의가 사라질 테니 달마역근경을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고, 심지어는 무공에 대한 인간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불법에 깊이 파고들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 이래저래 훔친다 해도 익힐 수 없게 되는 셈이지 않겠느냐. 그런 것은 소림뿐만이 아니라 무당이나 화산파, 곤륜파 등의 모든 문파에도 마찬가지다. 도가의 무공 또한 도가의 이치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마음에 그 이치를 담지 못한 그릇은 매초부터 극강한 고수가 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표영은 사부님의 가르침이 너무 쉬웠다. 무공의 무(武) 자도 배우지 않은 표영은 백지 상태와 같았기에 그저 수용할 뿐 자신의 마음에 합당한 것만 골라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을 듣더라도 이미 무공에 대해 고정관념이 박힌 자들이었다면 아마도 엽지혼의 말뜻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 사부님, 사파들의 무공은 사악함에서 출발한 건가요? 그들은 더욱 사악해질수록 무공이 높아져 가겠는걸요?”

“하하, 좋은 질문이다. 사파에서 절대적 강자가 나올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망치게 되고 마에 사로잡히게 되지. 자기 자신을 악마에게 팔아넘기고 마는 것이란다. 자신의 자아가 사라진 후에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미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뒤인데 말이다.”

표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무공이란 것이 별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엽지혼은 그런 표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개방의 뿌리에 대해 알려주마. 개방은 너도 알다시피 거지들의 집단이다. 거지들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들이라 할 수 있지. 그래서 슬픔도 많고 설움도 많아. 하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자유스럽더냐. 가지지 않았기에 걱정할 것이 없고 어디든 구름처럼 바람처럼 다닐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밑바닥 인생의 애환, 그리고 무한의 자유로움, 외향은 더럽기 그지없으면서도 그 어떤 욕심도 갖지 않는 순순함, 무욕의 세계, 이것이 바로 개방 무공의 근원이다. 그래서 개방의 무공에는 그런 정신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성취가 달라진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방의 정신을 잃어버린 후에는 진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껍질만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똑같은 무공을 펼치더라도 그런 정신적인 사상의 바탕 위에 펼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는 그 위력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란다.”

표영은 사부의 가르침 속에 등장하는 애환과 무한의 자유로움, 순수함, 무욕의 세계라는 말에 마음이 청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을 비운 자에게 있어 모든 세상은 그의 것이 되는 것이다. 엽지혼의 말이 이어졌다.

“…개방의 무공 중에 가장 위력적인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타구봉법과 강룡십팔장이지. 타구봉법이라 함은 방주만이 익힐 수 있는 것으로 개를 때리는 몽둥이 법이라는 뜻이다. 거지 생활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거지들의 가장 곤란한 숙적은 바로 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들을 어떻게 하면 잘 다루느냐, 혹은 잘 후려 패느냐가 거지 생활에서는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탕 위에 만들어진 타구봉법은 점점 발전해 가면서 실제 개가 아닌 세상 속에 개 같은 인간들을 응징하기 위한 무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자신들은 지고한 인격체인 것처럼 꾸미면서도 개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런 위선적인 패악을 제거하는 몽둥이질로서 발전하면서 더욱 위력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란다. 그리고 강룡십팔장은 구파일방 중에 아마도 이보다 더 극강한 무공은 없을 것이다. 왜 그토록 강할 수 있는가 하면 무한의 자유로움과 무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기에 강해질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이란 욕심이 생기면 마음이 허해지고 힘이 분산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을 쓰다 보면 몸을 사리게 되고 자유롭지 못하게 되니 본연의 힘을 다 쏟지 못하게 되는 거란다.”

“하하하, 어머니께서 제가 개방에 들어가 거지가 되길 바라신 것은 저에게 딱 들어맞는 무공들이 있기 때문이었나 보네요.”

표영은 개방의 무공이 마음에 들었다. 거지 노릇만 하면 되는 것이니 이보다 더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엽지혼은 약 한 달간에 걸쳐서 무공에 대한기본적인 철학을 전수하는 데 전력했다. 워낙에 거지같은 생활을 해온 표영인지라 그 모든 무의는 마치 물이 솜에 젖어들 듯 표영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 누구보다도 표영은 개방의 무공을 익히기엔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되기 전에 이 아이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엽지혼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무공을 알려줄 수 있는 기간이 더욱 단축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엽지혼은 근래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와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엽지혼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무공의 바탕이 되는 사상에 대해 개방의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주기 위한 가르침이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을 표영이 이해했다고 생각될 때 엽지혼은 비로소 무공구결을 전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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