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4
귀환 마교관
664화(외전 37)
쿠드드득…!
꾸득…! 까드득…!
주변의 나무들이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움직였는데,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관절이라도 달린 것처럼 이리저리 마구 꺾였다.
그렇게 툭툭 끊어지듯 움직이던 앙상한 나무들은 마침내 잘 깎아 놓은 조각상처럼 변해 있었다.
고목들은 이제 하나 같이 노인이나 노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거지?”
“나무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잖아?”
“아니, 그전에 이것들 나무가 맞긴 한 거야?”
무인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사비란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어쩌면 단리혁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한 조직의 수장은 연륜과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는 말.
물론 그 대상이 단리혁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생소한 현상이 벌어지자, 무인들은 저마다 기도를 날카롭게 가다듬고는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고목들로 빽빽한 숲이었던 만큼 주변은 조각된 노인과 노파들로 빽빽해졌다.
다음 순간.
“퀴아아아아!”
“크아아아아!”
노인과 노파로 변한 고목들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괴성을 내지르더니 양팔을 쭉 뻗어내는 것이 아닌가?
촤촤촤촤촤아앗!
팔로 변한 나뭇가지들은 예기를 뿜어내며 거침없이 무인들을 습격해 왔다.
“엇! 막앗!”
“피해랏!”
무인들이 재빨리 무기를 뽑아 들면서 날아드는 가지들을 쳐냈다.
까앙! 까가강!
“퀴아아아! 죽인다!”
“크아아아! 죽어라! 인간!”
늙은이로 변한 고목들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연신 공격해 왔다.
마침 나뭇가지 하나가 칼날처럼 뻗어 오면서 옹수령을 노리자.
“이 썩어빠진 것들이!”
어느새 곡무성이 나타나 그대로 일권을 내질렀다.
꾸과앙!
폭음에 가까운 소리가 터지면서 날아들던 나뭇가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괜찮소?”
“네? 아, 네.”
옹수령의 대답을 들은 곡무성이 이를 빠득 갈더니 바닥을 차고 달려갔다.
“네놈들은 이 땅의 것이 아니로구나! 전부 없애 주마!”
우렁찬 포효를 터뜨린 그가 마구 권력을 내질렀다.
콰쾅! 퍼엉!
어찌 보면 아무 초식도 없는 주먹질 같았지만, 이는 곡보옥이 독자 개발한 ‘천도비권(千刀飛拳)’이라는 무공이었다.
사비강을 만나기 전에는 도를 주로 다뤘던 그였기에 권법에 도법의 장점을 녹여 만든 무공이었다.
그 명칭답게 곡무성의 주먹은 천 개의 도신이 되어서 마구 휘둘러지는 듯했다.
천도비권만의 특징이 있다면, 허초와 변초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직격으로 날아든다.
하지만 이 난무하는 권력은 알아도 막아내기 힘들다.
내공이 매우 심후한 자가 아니라면, 일단 피하고 볼 일이다.
게다가 무공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상대라면, 이 천도비권만큼 강맹한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무인들을 공격하는 목인(木人)들은 무자비하게 날아드는 천도비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콰자자자장!
일권에 열 가닥의 나뭇가지가 박살이 났다.
다만, 목인들의 팔은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촤촤촤촤앗!
목인들은 더욱 매서운 속도로 곡무성의 전신을 노리고 공격해 왔다.
콰콰콰콰앙!
곡무성의 시원시원한 주먹질에 목인들의 팔이 계속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끝없이 재생되는데다 빠르게 파고드는 몇 개의 팔은 그도 미처 막아낼 수 없었다.
푸욱!
“크윽!”
호신강기를 뚫은 나뭇가지 팔 하나가 곡무성의 옆구리를 찔렀다.
곡무성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그대로 주먹을 내리쳐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땡강!
분명 나뭇가지임에도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금속 같았다.
‘제길!’
옆구리가 화끈거리는 걸 느낀 곡무성이 이를 빠득 가는데.
촤르르르륵!
쇠사슬 소리가 들리면서 그를 향해 날아들던 수십 가닥의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절단되는 것이 아닌가?
눈 깜빡할 사이에 나뭇가지 수십 가닥을 베어내며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석검영이었다.
그가 사슬낫을 움켜쥐고는 물었다.
“괜찮소?”
“괜찮소. 그나저나 이 녀석들 이래서야 끝이 없겠는데….”
곡무성이 주변을 둘러보니 무인들마다 제법 잘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끝없이 재생되는 나뭇가지를 언제까지 막아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지칠 테고, 사상자가 나오리라.
“하앗!”
카차차앙!
나뭇가지를 쳐낸 사비란이 외쳤다.
“다들 달려!”
그녀 역시 곡무성과 같은 생각을 하던 차였다.
끝없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면 차라리 피하는 게 낫다.
“제가 앞장서서 길을 뚫겠습니다!”
등등등이 금빛 창을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붉은빛 기둥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린다!”
“존명!”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앞장 선 등등등이 금빛 창을 정신없이 휘둘렀다.
쒸아아아아앙!
쿠차차차차창!
그가 일창을 휘두를 때마다 목인들 수십이 그대로 상반신이 터져 나가거나 팔이 잘려 나가면서 부서졌다.
츠츠츠츠츠츳!
하지만 목인들은 이번에도 끝없이 재생됐다.
제일 뒤쪽은 석검영이 사슬낫을 휘두르면서 견제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 눈앞에 보이는 협곡으로 접어들려는 순간.
드드드드드…!
지면이 떨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무인들이 흠칫거리고 전방을 주시하자, 희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협곡 가득 뭔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 저건…?”
앞장 선 등등등이 눈살을 구기고는 말했다.
“산짐승 무리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협곡을 가득 메우면서 달려오는 것들은 짐승이었다.
한데 평범한 짐승은 아니었다.
얼핏 보면 들개와 멧돼지처럼 보였는데, 덩치가 두세 배는 됨직했다.
거기에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고, 피부는 썩어서 너덜거렸다.
등등등이 낭패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이상 전진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길, 그야말로 진퇴양난이군!”
단리혁이 혀를 차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방에는 변이된 짐승 떼가 들이닥치고 있었고, 주변에는 목인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끝없이 공격해 왔다.
그때 옹수령이 나섰다.
“제가 해볼 게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단리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방법이 있겠소?”
“어차피 저 나무들도 수분이 있어야 살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정령술을 사용한다면….”
“안 되오! 이제 마공석도 없지 않소?”
“그래도 지금은 방법이 없잖아요.”
옹수령의 말에 곡무성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는 입술만 질끈 씹었다.
옹수령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괜찮아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은 저를 엄호하면서 시간을 벌어 주세요.”
그러자 사비란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서며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요. 그 정도로 죽진 않아요.”
옹수령이 애써 웃음을 짓자,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절대 죽게는 안 둬.”
“그럼 시작해요.”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령을 내렸다.
“모두 옹수령을 엄호한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존명!”
말을 마친 무인들이 옹수령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둘러싸더니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츳!
두두두두두!
마침내 짐승 떼가 코앞에 닥쳤다.
“이 귀찮은 것들!”
패패패애앵!
단리혁은 화살을 날려 달려드는 짐승 떼를 죽였고, 적비는 빛살처럼 몸을 날려 짐승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적비의 검술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촤촤촤촤촤앗!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짐승의 피가 솟구쳐 올랐다.
거기에 독기를 가한 것인지, 붉은 눈동자였던 짐승들이 녹 빛으로 물들면서 하나 둘 쓰러져 가기 시작했다.
사비란 역시 짐승 떼를 막으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했다.
그녀는 힘이 약해진 부분이 눈에 보이면 단숨에 날아가 연검을 날려 전력을 보강했다.
등등등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화려하게 싸웠는데, 그만큼 강맹한 무공을 선보였다.
마침내 옹수령을 향해 훌쩍 뛰어오른 짐승을 본 곡무성이 재빨리 몸을 날려 녀석의 목을 움켜잡았다.
빠각!
케엥!
쿠웅!
바닥에 그대로 떨어진 곡무성이 일권을 내질러 짐승의 머리를 박살냈다.
퍼억!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들어 올린 그가 옹수령을 돌아보았다.
“괜찮소?”
하지만 옹수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양손을 펼치고는 뭔가에 잔뜩 집중하는 듯했다.
곡무성이 얼른 고개를 돌리고 전황을 살폈다.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유난히 사비란의 무공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놀림은 말 그대로 군더더기가 없었다.
깔끔하고 담백하다고 해야 할까?
일검일살.
더 이상의 적을 죽이진 못했지만, 한 번 검을 휘두르면 반드시 하나는 죽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싸우는 사람은 추소혜였다.
그녀는 반묘의 도움 덕분인지 마나검과 마나방패를 이용해서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물론, 아직 어린 만큼 어설픈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빈틈이 나타나면, 반묘가 벼락처럼 나타나 그 빈틈을 메우면서 적의 공격을 막거나 되받아쳤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지만, 무인들이 지쳐 가는 모습은 역력했다.
벌써 백화단원 중에는 부상을 입고 뒤로 빠진 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커억! 으아악!”
“아악!”
칼날처럼 뻗어 온 나뭇가지에 요혈이 찔려 사망하는 백화단원이 발생하고 말았다.
‘치잇, 옹 소저…!’
곡무성이 마침 빠르게 뻗어 오는 나뭇가지 팔을 박살내고는 옹수령을 힐끔 돌아보았다.
옹수령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무인들이 뭔가를 꾸민다는 것을 눈치래도 챈 것일까?
- 크르러렁!
마침내 반묘가 포효를 터뜨리는 순간.
츠츠츠츠츠츠츳!
- 쿠아아아앙!
목인들과 짐승 떼가 동시에 살기를 뿜어내며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섭게 달려들었다.
“이 빌어먹을 것들! 와라앗!”
“우아아아아!”
백화단원들이 저마다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기도를 끌어올렸다.
바로 그때.
“하아아앗!”
옹수령이 눈을 번쩍 뜨며 양손을 뻗었다.
곧이어.
츠츠츠츠츳…!
- 크르르르…!
무인들을 일제히 덮쳐 오던 나뭇가지들이 바싹 말라 가더니.
쩌적… 쩌억…!
마르고 갈라진 나뭇가지가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이내 모래처럼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푸스스스…!
- 크르르…!
짐승 떼도 마찬가지.
비쩍 말라 버린 짐승 떼가 비실비실 쓰러지더니 이내 잿더미처럼 부서져 내렸다.
휘이이이잉!
한 차례 바람이 불자, 먼지가 되어버린 목인들과 짐승 떼가 허공으로 자욱하게 흩어졌다.
“끝, 끝인가…?”
“이, 이겼다! 이겼다!”
무인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사비란은 얼른 옹수령에게 날아왔다.
“괜찮아?”
“조금… 힘들어요.”
옹수령이 솔직히 대답했다.
그녀가 비틀거리자 곡무성이 얼른 부축해 주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그의 말에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덕 너머를 바라보았다.
붉은빛 기둥이 멀지 않았다.
“가자. 저곳으로 가면 마공석 하나라도 구할 수 있겠지.”
모두의 눈동자에 붉은빛 기둥이 꽉 들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