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63화 (663/670)

# 663

귀환 마교관

663화(외전 36)

우지끈!

콰직!

배가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문어를 닮은 녀석은 배를 통째로 휘어 감으며 산산조각 낼 작정인 듯했다.

파밧!

사비란이 재빨리 몸을 날려 뱃머리에서 섬 쪽을 보았다.

‘이 거리라면…!’

생각을 마친 그녀가 난간을 발로 걷어찼다.

콰자앙!

난간 파편이 부서지면서 날아갔다.

갑자기 사비란이 배를 부수기 시작하자, 석검영이 놀라서 달려왔다.

“왜 그러십니까?”

“수상비를 펼치는 것보다는 이게 낫잖아?”

“아…!”

그제야 사비란의 뜻을 눈치 챈 석검영도 얼른 배를 부수며 그 파편을 호수에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사비란이 백화단원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모두 수상비를 펼쳐 섬으로 간다!”

“존명!”

백화단이 일제히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와지끈! 쿠구구궁…!

연체 괴물에 의해 배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나면서 박살나고 말았다.

호수로 뛰어든 백화단원들이 저마다 경공을 펼쳐 섬으로 달려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섬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파편들을 밟으면서 이동했기에 공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덜하단 점이었다.

하지만 물에 떠 있는 파편에 비해서 이동해야 할 인원이 훨씬 많았다.

다수의 무인들은 수상비를 펼치다가 점점 물 아래로 가라앉아 결국 유영을 해야만 했다.

사비란 역시 파편을 밟고 이동하다가 수상비를 펼치며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뀌아아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연체 괴물의 굵고 긴 촉수가 사비란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파밧!

사비란이 그대로 몸을 날리면서 발검술을 사용했다.

단리정에게 배운 발검이었다.

쉬이이이잇, 철컥!

한 줄기 빛이 터져 나왔고, 굵고 긴 촉수가 썩둑 잘려 나가면서 녹색 체액을 뿌렸다.

철퍼덕!

사방으로 호수물이 튀면서 촉수가 가라앉았다.

“이잇! 죽어랏!”

“크아악!”

여기저기 비명과 고함소리가 마구 터져 나왔다.

몇몇 백화단원들은 미처 연체 괴물의 습격을 막아내지 못해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했다.

어떤 이는 촉수에 온몸이 휘어 감긴 채 사지가 찢어져 죽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수상비를 펼치면서 연체 괴물까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 임무에서 소집 대상이었던 자들은 대체로 잘 싸우며 버티고 있었다.

나이가 가장 어린 추소혜 역시 반묘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재빠른 움직임으로 섬까지 달아났다.

그런데 문제는 곡무성이었다.

권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그였지만, 경공술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았다.

수면에 떨어진 난간 파편을 밟으며 몇 차례 이동하는가 싶었던 곡무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커헙! 어푸푸! 푸흡!”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달려드는 연체 괴물을 향해 양 주먹을 휘둘러 가격하는 것을 보면, 과연 권력 하나만큼은 장사였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장사여도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젠장!’

당황한 곡무성이 수면 아래로 조금씩 가라앉아 가는데, 마침 모종의 기운이 그를 수면 위로 쑤욱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곡무성을 비롯해 물속으로 가라앉던 몇몇 무인들이 파도에 떠밀리듯 뭍으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뀌아아아아앙!

먹이를 놓쳐서 화가 난 듯 연체 괴물이 연신 촉수를 휘둘러 오며 괴성을 내질렀다.

촤촤촤촤아아아!

물보라를 일으키며 연체 괴물의 촉수가 빠른 속도로 덮쳐오는 순간.

츄츄츄츄아아앙!

수면이 갑자기 솟구쳐 오르면서 거대한 물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퍽! 퍼퍼퍼퍽!

촉수들이 물의 장벽에 부딪치면서 몸부림을 쳤다.

곧이어.

츄아아아아!

놀랍게도 사람의 형상을 한 물줄기가 나타나면서 거대한 연체 괴물과 뒤엉켜 싸우는 것이 아닌가?

생소한 광경에 백화단원들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저, 저건 뭐지?”

그 순간 사비란이 날카롭게 외쳤다.

“구경할 틈 없어! 빨리 뭍으로!”

“네, 넵!”

백화단원들이 그 틈을 이용해서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밧!

그들은 물수제비처럼 튕기듯 달리면서 가까스로 호숫가에 다다랐다.

그들 대부분이 무사히 안착하자, 연체 괴물과 뒤엉켜 싸우던 물기둥도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허물어지면서 사라졌다.

촤아아아아아!

한 차례 물보라가 일어나고 나서야 연체 괴물 역시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뭍에 올라선 사비란이 제일 먼저 옹수령을 찾았다.

“수령! 옹수령!”

“여깁니다!”

목소리를 쫓아 시선을 돌리니, 곡무성이 옹수령을 업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한달음에 달려가자, 곡무성이 옹수령을 바닥에 눕혔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령아! 정신 차려!”

“하아… 단주님….”

옹수령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물의 정령을 무리하게 다루면서 몸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마공석! 마공석은 어디에 있어?”

“제, 제 품에….”

사비란이 얼른 옹수령의 품을 뒤져 마공석을 꺼냈다.

“이거뿐이야?”

옹수령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마공석은 이제 겨우 하나.

그렇다고 망설일 수 없다.

당장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사비란이 옹수령의 손에 마공석을 쥐어 주었다.

우우웅…!

마공석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옹수령의 손등을 타고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곧이어 옹수령의 전신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한 시름 놓은 사비란이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이야.”

한편 곡무성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옹수령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맙소, 옹 소저! 소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물귀신이 되었을 거요! 이 은혜 평생을 두고 갚겠소!”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에요.”

“그 할 수 있는 일이 내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소.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오!”

곡무성은 진심을 담아 사례했다.

마침 등가휘가 사비란에게 다가와 말했다.

“부상자는 열일곱, 사망자가 스물둘입니다.”

“칫….”

사비란이 혀를 차고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피해였다.

분하지만 복수를 하겠다고 호수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바보 같은 짓.

“우선 부상자를 살피고, 전력이 재정비되면 다시 이동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등가휘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돌아갔다.

한편 곡무성은 자신의 장삼 겉옷을 벗어 옹수령의 몸에 둘러주었다.

“대충의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소. 정마혼맥지체라고….”

옹수령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쓸데없이 손이 많이 가는 몸이죠.”

“전혀 그렇지 않소. 옹 소저가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서 부모님을 뵙지 못했을 거요.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 주시오.”

“죄송해요.”

“아, 뭐… 나에게 사죄할 일은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옹수령이 부상자들을 돌보는 백화단원들을 보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금처럼 정령술을 크게 사용하게 되면 체내에서 대량의 마나를 필요로 해요. 그걸 그때그때 채워 주지 않으면 기력이 쇠해서 걷는 것도 힘들어지죠.”

“하면 매번 이렇게 정령술을 사용할 때마다 마공석으로 보충해야 하오?”

“반드시 그렇진 않아요. 정령술의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하지만 정령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역시 마공석으로 마나를 보충해 줘야 해요.”

“그럼 대체 얼마나 많은 마공석이 필요한 거요?”

“제 체질의 특성상 평생 마나를 흡수해야 하니… 많을수록 좋겠죠.”

“허어….”

곡무성이 착잡한 심정으로 탄식했다.

중원에는 공기 중에 마나가 없다.

그래서 내공을 마나로 치환하거나, 마공석으로 흡수해야 한다.

하지만 옹수령은 정마혼맥지체다.

이 경우에는 스스로 내공을 생성해서 마나로 치환하는 게 불가능하다.

내공과 마나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순수하게 마나만을 흡수해야 하는데, 마공석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문제는 중원에 존재하는 마공석은 이제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곡무성의 눈길이 이제 빛을 바랜 마공석으로 향했다.

그 시선을 느낀 옹수령이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어떻게든 되겠죠. 항상 늘 마지막에는 또 다른 방안이 생기고는 했으니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잖아요?”

한편 부상자를 훑어보고 돌아온 사비란에게 추소혜가 다가와 말했다.

“단주님. 반묘가 더 이상 길을 알려 주지 않아요. 아무래도 더 이상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확실히 반묘는 더 이상 앞장서서 가려고 하지 않았다.

사비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지금부터는 저 붉은빛 기둥만 보고 가도 충분할 것 같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붉은빛 기둥은 섬 어디에서든 보일 만큼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굉장히 사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 그렇겠네요.”

추소혜가 대답하며 다시 작아진 반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정비할 시간을 가진 사비란은 다시 백화단을 이끌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땅은 점점 거뭇해졌고, 주변의 나무와 풀잎들도 썩어 가는 듯한 악취를 풍겼다.

호수를 건너면서 보던 모습과 다르게 숲은 음습하기 짝이 없었다.

눅진한 땅바닥에 퀴퀴한 냄새, 서늘한 공기, 이따금씩 들려오는 이름 모를 벌레 울음소리.

기분 나쁜 숲을 얼마나 걸었을까?

“단주님.”

등가휘가 사비란에게 다가왔다.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아. 나도 느끼고 있었어.”

“진법일까요?”

“글세….”

사비란이 말끝을 흐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혹시 몰라서 지나간 자리의 나무 기둥에 칼집을 내놓았지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다시 온 기분이다.

사비란이 걸음을 멈추고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법 같진 않은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그러자 단리혁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이래서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은 연륜과 경험이 많아야 한다니까. 나처럼.”

그러자 등가휘가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쪽이 나이는 오히려….”

“아, 난 경험이 많지.”

하지만 등가휘는 콧방귀만 낀 채 더 이상 보지 않았다.

사비란은 담진우를 불렀다.

그는 백화단에서 군사 역을 맡은 자였으니, 이럴 때 가장 의지할 만했다.

“어떻게 생각해?”

사비란의 물음에 담진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제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마계지식총서 삼십칠 장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마계수가 뿌리를 내린 지역은 인근의 땅이 거뭇하게 변하고, 썩은 내가 진동하며, 동식물이 괴이하게 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지대 전체가 살아있는 생명처럼 봐도 무방하다. 그런 만큼 멀쩡한 길도 미로가 될 수 있다.”

그러자 듣고만 있던 곡무성이 나서며 물었다.

“그럼, 설마 이 섬에 마계수가 있다는 거요?”

단리혁이 불쑥 나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마계수가 있다는 거야? 그건 삼십 년 전이나 가능한 이야기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이라고.”

담진우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난 그저 마계지식총서에 적힌 내용을 말했을 뿐이오. 판단은 단주님께서.”

이제 모두의 시선이 사비란에게 향했다.

사비란은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우린 마계수 지역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도록.”

“헐, 정말이야?”

“진심입니까?”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리고 들었다시피 모든 환경이 너무 비슷하니까.”

그때였다.

“엇! 저기 좀 보세요!”

추소혜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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