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38화 (638/670)

# 638

귀환 마교관

638화(외전 11)

“좋은 곳이야.”

사비란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저 아래에서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단주님.”

옹수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했다.

“단주님은 무슨… 그냥 언니라고 불러.”

“네, 언니.”

옹수령은 스스럼없었다.

강호인이 아닌 데다, 부모님과 함께 외진 곳에 살면서 강호인을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강호의 예법에 얽매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비란은 그래서 더 편하게 느껴졌다.

“처음 봤어.”

“……?”

“정령술을 말이야.”

“아….”

“정말 멋지던데?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니. 물론, 우리도 기를 운용해서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고작해야 물줄기를 비트는 정도일 거야.”

“고마워요, 언니.”

“고맙긴. 내가 고마워해야지. 임무를 함께 해주니.”

“아니에요. 저도 정말 원해서 가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이름도 참 예쁜 것 같아. 잘 어울려.”

“그런가요?”

“그럼. 물을 다스린다는 뜻이잖아. 나 봐. 그냥 대충대충 아빠랑 엄마 이름 한 글자씩 따서 지었잖아. 딸을 대하는 성의가 너무 없다니까.”

“아니에요. 언니도 정말 예쁜 이름이에요.”

“정성이 문제라고. 그나마 사매강이 아니길 천만 다행이지. 까딱 조합 잘못했으면 나는 매강이 되었을 거야.”

“…….”

눈을 멀뚱멀뚱 뜨고 바라보던 옹수령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유쾌하게 웃어젖혔다.

“강호초행이지?”

“네. 강호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걱정도 되고….”

시비란의 물음에 옹수령이 대답했다.

사비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마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험난할 거야. 네 생각보다 훨씬 힘들겠지. 그리고 장담하건데 네 생각보다 훨씬… 멋진 곳일 거야.”

“아…!”

“그러니 우리도 멋지게 날아 보자.”

활짝 웃는 사비란을 보면서 옹수령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눌렀다.

그녀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

**

잔치가 끝나고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능소소는 시커먼 강줄기가 흐르는 강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누구에게 건넨 말일까?

도도히 흐르는 강물 외에는 그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이 한참이나 이어지자.

“나와. 내가 널 다스리진 못해도 소통 정도는 가능할 텐데.”

능소소가 다시 한 번 차갑게 말했다.

평소 그녀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후.

쿠와아아아아아!

강 복판에서 갑자기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더니 용오름을 보이듯 일렁거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이상 현상에 기겁을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으리라.

하지만 능소소는 태연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그 가운데에서 다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볼 수 없는 모습.

그녀 앞에 나타난 푸른빛의 여인.

바로 물의 최상급 정령, 엘레스트라였다.

그녀는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능소소를 노려보았다.

[나를 불렀나?]

“그래.”

능소소는 영적 대화를 하지 않았다.

대신 입 밖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엘레스트라는 다소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한낱 인간 주제에 자신을 마음대로 불러내다니.

“내 딸과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딸을 지켜라.”

[우습군. 계약자도 아닌 그대가 내게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

“부탁이 아니야. 강요니까. 명령이나 협박으로 생각해도 좋아.”

[뭐?]

엘레스트라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곧이어 그녀는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인간이여, 분수를 알고 떠들어라. 나와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화를 당할지니.]

“두 번 말하진 않겠어. 내 딸이 어디에 있든 너는 반드시 그 아이를 지켜야 해.”

정말이지 뻔뻔하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단호한 목소리였다.

엘레스트라가 여전히 노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거절한다면?]

“너를 소멸시켜 버리겠어.”

표독스러운 표정과 말투.

평소 능소소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태도였다.

과연 같은 사람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능소소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그 아이의 소식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설사 그렇다고 한들 그대가 무슨 수로 나를 소멸시킨다는 거지?]

“나는 불가능할지라도 같은 정령이라면 가능하겠지.”

[뭐?]

다음 순간, 능소소가 손을 허공에 휙 저었다.

곧이어.

휘아아아아아아아앙!

느닷없이 강풍이 불어 닥치더니 능소소와 엘레스트라 사이에 거대한 존재가 장엄하게 나타났다.

엘레스트라의 두 배 정도는 됨직한 덩치는 바로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였다.

비록 계열이 다르다지만, 실피드는 엘레스트라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를 보자마자 엘레스트라가 급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공손히 예를 갖췄다.

[바람을 다스리는 왕이시여.]

실피드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거만한 자세로 엘레스트라를 응시했다.

만약 상대가 물의 정령왕이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분명한 신분의 격차가 있었다.

능소소가 다시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내 딸을 반드시 지켜.”

[…….]

엘레스트라는 굳은 표정으로 능소소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상호 계약한 상태였기에 그녀가 옹수령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낱 인간의 명을 듣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존심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바람의 정령왕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실피드는 정령들 중에서도 유독 까칠하기로 유명했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결국 그녀가 고분고분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지. 어쨌거나 그녀는 나와 계약한 상태니까.]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엘레스트라가 욱하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실피드의 무서운 눈초리를 느끼고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다.]

“좋아, 그럼 믿어 보겠어.”

능소소가 말을 마치자, 엘레스트라가 순식간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아마 그녀는 이제 수중 깊은 곳 어딘가에서 혼자 온갖 성질을 부리며 분을 삼키고 있을 지도 모른다.

상황이 정리되자, 실피드가 돌아서서 능소소를 보았다.

[곤란한 요구를 하는군.]

“왜? 겁나? 엘퀴네스라도 나설까봐?”

엘퀴네스는 물의 정령왕이었다.

자존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실피드가 미간을 팍 구겼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럼 문제 될 것 없잖아. 당신에겐 곤란한 요구일지라도,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진지한 일이야. 내 딸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테니까. 그 어떤 일이든.”

말을 뱉는 능소소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글거리고 있었다.

실피드조차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는군.]

능소소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게 ‘엄마’라는 거야.”

물론, 실피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다음 행선지는 어디냐?”

구강룡의 질문에 사비란이 싱긋 웃었다.

“목 사부님을 뵈러 가려고요.”

그러자 구강룡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옹기승과 능소소를 돌아보았다.

그 두 사람의 표정 역시 구강룡과 다르지 않았다.

“거길? 정말 괜찮겠느냐?”

“언젠간 찾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긴 하다만… 차라리 소집령을 내리는 게 어떠냐? 물론 궁주님의 명으로.”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일일이 다 찾아다니라는 부모님의 명령입니다.”

“그랬구나….”

구강룡이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내심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사비강은 일부러 그랬을 것이다.

간단히 소집령을 내리는 것보다, 자신의 딸이 직접 찾아다니면 훨씬 더 공부가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을 테니.

강호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키우는 건 무공이 전부가 아니다.

바로 돈 주고도 얻지 못할 경험들이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껴야 한다.

원래 무공의 발전은 그렇게 뜻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그릇만 닦다가 득도를 하듯이 말이다.

어쩌면 이는 사비강보다 매설란의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 다양한 경험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지.’

그렇다곤 해도….

“역시 그곳은… 조심스럽구나.”

사비란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네, 그래서 더욱 조심하려고 합니다. 말 한 마디도. 행동 하나도.”

“그래,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구강룡의 시선이 옹수령에게 향했다.

아직은 너무나 나약해 보이는 아이.

옹수령은 이제 막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나눈 직후였다.

“커험, 험! 령아.”

“네, 숙부.”

옹수령이 구강룡에게 다가왔다.

구강룡은 눈시울이 잔뜩 붉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제 밤을 샐 정도로 고민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이지 목숨처럼 사랑하는 조카딸이었다.

금은보화보다도 소중하게 여긴 아이였다.

그 아이가 험난한 강호에 나간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호에 갈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만 수십 개를 떠올렸다.

한데,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옹수령을 보고 있자니.

‘제길… 머릿속이 하얘져 버렸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 꺼낸 말은….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

“네, 걱정 마세요.”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만약 집으로 돌아오고 싶거든 언제든 연락 주려무나. 내가 직접 널 데리러 가마.”

구강룡은 마치 세 살 아이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옹수령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러는 사이 옹기승은 사비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형님이 이미 주의를 주었지만, 그곳에서는 조심해라. 요즘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하더구나. 네가 고생을 좀 할 것 같구나.”

“각오하고 있답니다.”

“그래. 그들에게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하길 바란다. 사실 삶이라는 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나 또한 그들이 그런 사이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지. 그러니 남의 일에 내가 함부로 말하지는 않겠다.”

“네,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 부디 조심해라.”

옹기승 내외와 구강룡은 마을 어귀에서도 한참이나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세 사람을 두고 멀어진 사비란은 다음 장소를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마침 그녀의 곁으로 단리혁이 뚝 떨어져 내렸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지금 우리가 갈 곳은 섬검목가(創天延家) 아닌가?”

“맞아.”

“그런데 왜들 저러시지? 그곳에 가면 뭐가 어떻기에?”

“흐음….”

사비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길고도 복잡한 그들의 사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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