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37화 (637/670)

# 637

귀환 마교관

637화(외전 10)

강변 마을에 흥겨운 잔치가 벌어졌다.

장 씨네 부부는 옹수령과 사비란에게 연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그들은 사비란이 멸마궁에서 왔다고 하니 더욱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다만 누구도 사비란이 사비강의 딸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의식해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불필요한 말은 삼가게 됐다.

어쨌거나 덕분에 백화단은 모처럼 진수성찬을 즐겼고, 단리혁도 연신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썩한 분위기에 취했다.

늘 진지한 등가휘 역시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면서 모처럼 느긋한 여유를 즐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오늘 숲에서 벌어진 일이 이번에 맡은 임무와 모종의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네가 등부형 교관의 아들인가?”

언제 다가왔는지 옹기승이 그의 곁에 앉으면서 넌지시 말을 건네 왔다.

등가휘가 흠칫거리고는 돌아서서 깍듯하게 인사했다.

“예, 선배님. 등가휘라고 합니다.”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네. 그저 자네와 술 한 잔 하고 싶을 뿐이니.”

옹기승이 부드럽게 타이르고는 자리에 앉았다.

사실 등가휘는 이 자리가 영 불편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가 바로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였다.

대체로 많은 무인들은 아버지의 찬사를 들으며 자란다.

‘네 아버지는 전성기 때 정말 대단했다’거나, ‘네 아버지야말로 만인이 본받아야 할 영웅’이라거나.

물론 등부형은 많은 강호인이 존경하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깊게 아는 자들은 평가가 좀 달랐다.

타락한 교관이었다가 마지막에 개과천선해서 강호를 구한 사람.

등가휘는 그 ‘타락한 교관’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듣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버지가 부끄러워졌고, 아버지에 대한 감정도 썩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 등부형은 그 과거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자리는 늘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자리가 또 이어진 것이다.

“등부형 교관님은 잘 지내시지?”

“네.”

등가휘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더 이상 대화를 길게 이어 가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옹기승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나는 등 교관님과 가까이 지낸 적은 없다. 천멸대가 아니라 신생조였기 때문이지. 하지만 네 아버지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알지.”

등가휘가 쓴 웃음을 지었다.

“뒤늦게나마 마음을 고치셔서 다행이지요.”

“그래서 더욱 존경심을 갖는다.”

“예…?”

등가휘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옹기승을 돌아보았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영웅처럼 치켜세웠다가 이후에는 아버지의 치부를 떠들며 우스갯소리를 이어 갈 줄 알았다.

한데 옹기승은 전혀 다른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사파에 몸을 담고 있었다. 혈사련에서도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서 골칫거리로 분류될 만큼 제멋대로였지.”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확실히 지금의 옹기승을 생각한다면 지어낸 이야기인 것만 같다.

하지만 옹기승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다. 물론 특수한 내 체질 때문에 좀 엇나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부 핑계에 불과하지.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오랜 세월 굳은 습관과 잘못된 생각을 고친다는 것은 나 자신을 한 번 완벽하게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를 한 번 죽이는 것과 같다.”

“나를 죽인다라….”

“그렇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 따르고,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데 네 아버지는 그걸 이루셨다. 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질 때문에 변하기가 쉬웠다. 또한 좋은 사부를 만난 기연도 얻었지. 하지만 네 아버지는 스스로 변하신 거다. 물론, 궁주님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네 아버지의 강렬한 의지가 없었더라면…. 아니, 스스로를 버리고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독한 각오가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네 아버지를 존경한다.”

왁자지껄한 잔치 분위기 속에서 옹기승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고요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이토록 시끄러운데, 그 고요한 목소리가 어쩌면 이렇게도 또렷하게 머리에 박혀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등가휘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늘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강호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것도 보기 싫었고, 아버지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도 싫었다.

한데….

진정으로 강호를 구한 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옹기승은 분명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말투,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옹기승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허참,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떠드는지 모르겠군. 다만… 네 아버지는 그만큼 대단한 분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나는 네 아버지가 강호를 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변하셨기 때문에 더 존경한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거든. 나중에 뵙게 되면 내 안부를 전해다오.”

“…알겠습니다. 반드시 전해드리겠습니다.”

등가휘의 눈이 뜨거워졌다.

갑자기 아버지가 그리웠다.

술을 한 잔 드시면 부끄러웠던 과거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던 그 목소리.

정말이지 가장 듣기 싫었던 그 목소리가 갑자기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옹기승이 빙그레 웃으며 잔을 들었다.

사실 그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지금 말한 내용은 모두 진심이었다.

다만 안부나 들을 생각이었다.

한데,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를 부끄러워하는 등가휘의 모습을 보고는 충동적으로 말을 내뱉은 것이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버린다는 것, 욕망과 유혹을 물리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역시 잘 알기에.

“자, 좋은 날이다. 마시자.”

“예, 선배님.”

“내 딸을 잘 이끌어 주길 바라네.”

등가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막 잔을 들이켰을 때였다.

“승아! 승아!”

구강룡이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오면서 난리법석을 피웠다.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옹기승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큰일이다! 령아가 보이지 않는다! 수령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허어, 오늘 같은 날은 좀 즐기십시오. 어디 근처에서 산책이라도 하겠지요.”

“잔치를 두고 갑자기 왜 산책을 한단 말이냐?”

“이제 곧 떠날 아이지 않습니까? 마을을 한 번 둘러볼 수도 있지요. 평생 살아온 곳이니까요.”

“아무래도 내 예감은 다르다! 뭔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허허, 형님. 이제 그만 그 아이를 좀 놓아 주십시오. 누가 보면 형님 딸인 줄 알겠습니다.”

“령아는 내 딸이나 다름없다!”

“알지요. 압니다. 그만큼 령아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하지만 이젠 그 아이도 많이 컸습니다. 언제까지 울타리에 가두시겠습니까? 이번 일을 통해서 령아는 더욱 성장할 겁니다. 자자, 그러지 말고 여기 앉아서 저와 오랜만에 술이나 마십시다. 형님과 술잔을 기울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참, 이 듬직한 청년이 등부형 교관의 아들이랍니다.”

옹기승이 얼른 등가휘를 소개했다.

구강룡은 아무래도 옹수령이 신경 쓰였지만 옹기승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가 술잔을 들고는 말했다.

“내가… 그 임무에 따라가면….”

“형님. 과보호를 하면 아이가 약하게 자랍니다.”

“끄음….”

단호한 옹기승의 반응에 구강룡은 눈을 질끈 감고는 술잔을 들이켰다.

“크으으!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버릴 테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옹기승이 껄껄 웃으며 잔을 채웠다.

하지만 옹기승의 웃음에는 어딘지 아련한 서글픔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역시 아버지로서 몸이 성치 않은 딸을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신경 쓰이는 것이리라.

두 사람은 짐짓 과장된 웃음과 함께 그렇게 술잔을 기울여 갔다.

**

어두침침한 공동 안쪽.

한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에게서는 오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정공이나 사공을 구분하기도 애매한 종류였다.

어느 순간 그의 뒤로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흑립을 깊이 눌러 쓴 사내였는데, 그 역시 오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가 탁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멸마궁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사내가 눈을 천천히 떴다.

마치 실명한 사람처럼 회색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딘지 섬뜩한 인상을 풍겼다.

사내가 입매를 치켜 올리고는 중얼거렸다.

“이미 예견된 것. 놀랄 일은 아니지.”

“백화단이 직접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 천멸대와 신생조의 자녀들이 합류할 것으로 파악됩니다.”

“조금 서둘러야겠군. 물건은?”

“팔 할 이상 확보했습니다. 조만간 거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만간이라….”

흑립인은 사내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서 모종의 불만이 있음을 눈치 챘다.

그가 얼른 시정했다.

“두 달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한 달.”

“명 받들겠습니다.”

흑립인은 일절 반박하지 않았다.

사내가 한 달이라면 한 달인 것이다.

그건 진리요, 법이다.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무탈합니다. 거사 일에 맞춰 최상의 상태를 유지 중입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이루는 일만 남은 것이다.

“수고했다.”

사내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멸마궁이 나선다고 해도 이젠 신경 쓸 단계가 아니기에.

지금은 어떻게든 마무리를 확실히 해야 할 단계다.

흑립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사내가 고개를 모로 돌리고는 물었다.

“할 말이 더 있는가?”

흑립인이 잠깐 멈칫거렸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교주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사내가 입매를 비틀며 대답했다.

“그래, 그저 따르라. 그리고 의심하지 마라. 그들은 강호 역사를 백 년이나 앞당겼다. 그 사실을 잊지 마라.”

“존명.”

다음 순간, 흑립인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내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유난이 반짝였다.

“나는 그 이상을 이루리라.”

**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바위에 옹수령이 앉아 있었다.

그는 마주쳐 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떠난다.

평생 머물렀던 이곳을.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강호는 어떤 곳일까?

무섭고 험난한 곳.

어려서부터 숙부에게 들은 강호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강호에 나갈 생각을 하니 피가 끓고 기분이 들뜬다.

부모님의 사랑이 지겨워진 것은 아니다.

단지 그저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싶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 보고 싶다.

그래, 이번 임무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침 그녀는 등 뒤에서 느껴진 기척에 몸을 돌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그곳에 사비란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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