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34화 (634/670)

# 634

귀환 마교관

634화(외전 07)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네. 사과하지.”

다소 무뚝뚝한 음성이었지만, 죽립인 중 한 명은 제대로 사과했다.

하지만 구강룡은 말 한 마디로 기분을 풀고 말고 할 만큼 가벼운 성격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웬만한 무인들보다도 까칠하고 호전적인 성격이었다.

때문에 이미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 그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사과할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지.”

그가 비아냥거리자, 죽립인이 살짝 입매를 씰룩였지만 곧 침착하게 대응했다.

“다시 한 번 사과하지.”

구강룡은 두 죽립인을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용건은?”

“자네와 거래를 하고 싶네.”

“다짜고짜 거래라… 내가 거절한다면?”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라 생각하네.”

말을 마친 죽립인이 품에서 전표 주머니를 꺼내 휙 던졌다.

툭!

떨어지는 소리부터 묵직한 것이 꽤나 거액이 들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구강룡이 주머니에서 전표를 꺼내 세어 보았다.

총 십만 냥.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큰 금액.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이 많은 돈을 보는 순간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과연 자신에게 이만한 가치를 가진 재물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면 두려움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혹여 목숨을 원하거나, 자신이 절대 이행할 수 없는 어떤 행동을 요구한다거나….

죽립인이 계속해서 이렇게 먼저 돈부터 보여주는 이유도 바로 그렇게 심리를 흔들기 위해서였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만큼 이 죽립인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구강룡은 역시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다.

“꽤나 큰 금액이군. 그래서 뭘 거래하고 싶은 거지?”

“자네가 마공석을 개당 일만 냥에 샀다는 말을 들었다. 한 개를 십만 냥에 사지.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곧 이십만 냥을 준비해서 사러 오지.”

정중한 제안이었다.

굳이 세 개를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었다.

구강룡이 히죽 웃었다.

“일단 태도는 마음에 드는군. 거래를 하도록 하지. 단, 거래 내용을 좀 변경해야겠어.”

죽립인 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가?”

“개당 십만 냥에는 힘들고, 개당 천만 냥으로 팔지.”

“뭐야?”

순간 또 다른 죽립인이 욱하면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서 분명한 노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구강룡은 조금도 개의치 않은 채 말했다.

“적어도 내게 마공석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어떤가? 자네들에게도 그만한 가치가 있나?”

“보자보자 하니까…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보군.”

소리친 죽립인이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이번에는 다른 죽립인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개당 천만 냥이라니.

말로 통하지 않으면 이제 힘으로 빼앗을 수밖에 없다.

다른 죽립인이 한숨을 얕게 내쉬고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조용히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군.”

“이거 어쩌나? 나는 처음부터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 없었는데.”

구강룡이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슈슈슈슈슈슉!

그를 에워싸며 시커먼 그림자들이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죽립인들이었다.

모두 삼십 명.

하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던 건지 구강룡은 놀라지 않았다.

구강룡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묻는다. 최근 마공석을 죄다 긁어모은다는 놈들이 너희들이냐?”

“궁금한 게 있다면… 저승에서 알아보도록.”

말을 마친 죽립인이 수신호를 내렸다.

순간 죽립인들이 일시에 구강룡을 향해 달려 나가려는데.

“구 사부님!”

마침 낭랑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드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출수하려던 죽립인들이 저마다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명령을 내렸던 죽립인 역시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목소리가 나온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는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다다라 상대가 말을 할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못내 걸린 것이다.

뜻밖에도 상대는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한 번 쳐다보면 눈을 떼기가 힘들 만큼 아름다운 여인.

하지만 그녀의 전신에서 은근하게 우러나오는 기도는 과연 예사롭지 않았다.

한편 그녀를 알아본 구강룡이 활짝 웃음을 지었다.

“아니, 이게 누구냐? 비란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느냐?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냐?”

“네, 사부님. 옹 사부님을 뵈러 가던 길이었는데 마침 사부님도 여기 계셨네요.”

“이런, 승아는 보고 싶고,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단 말이냐?”

“그럴 리가요. 실은 옹 사부님보다 옹수령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지요. 그런데 무척 바빠 보이시네요.”

“그러게. 모처럼 손님들이 찾아왔구나. 오늘 무슨 날인가보다.”

“접대가 빠듯하실 것 같은데, 제가 좀 거들어 드릴까요?”

“허허, 녀석아. 이 사부 아직 안 죽었다. 이 정도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거하게 대접할 수 있지!”

이쯤 되자 죽립인들이 서로 눈짓을 보내더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지. 우리 제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말을 내뱉고는 돌아섰다.

그런데 걸음을 미처 옮기기도 전에,

슈슈슈슈슈슉!

또 다시 그들을 에워싸며 한 무리의 무인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새하얀 무복을 갖춰 입은 그들은 바로 사비란이 이끄는 백화단이었다.

죽립인이 흠칫거리고는 사비란을 돌아보았다.

“벌써 돌아가시려고? 하지만 난 손님을 문전박대하면 안 된다고 배웠거든.”

“옳거니. 역시 내 수제자다.”

구강룡이 히죽 웃으며 말을 받았다.

죽립인들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구강룡을 돌아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일렀다.

“정녕 이렇게 나올 거요?”

“거한 대접을 원한 건 그쪽이 아니었나?”

죽립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다음 순간.

“쳐랏!”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곧이어.

촤촤촤촤아아악!

죽립인들이 저마다 살기를 드러내며 구강룡과 백화단을 덮쳐 갔다.

하지만 백화단이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백화단은 강호 제일의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비강과 매설란의 딸이자, 천멸대와 신생조의 제자 사비란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거기에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구강룡까지.

죽립인들도 이미 자신들의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사력을 다했다.

필요하다면 동귀어진을 각오할 태세였다.

“어딜!”

구강룡은 자신을 향해 몸을 던져 오는 죽립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더니.

콰아악! 꽈자앙!

그대로 죽립을 부수며 이마를 쥐고는 바닥에 내다 꽂았다.

사비란은 바람처럼 적들 사이를 누볐다.

쉬까앙! 까강!

수십 자루의 검신이 그녀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갔다.

마치 그녀가 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검이 그녀를 피해 가는 것만 같았다.

샤샤샤샥!

촤악! 촤악!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비명이 솟구쳤다.

“크악!”

“으악!”

그녀를 노리는 검신은 스치는 바람처럼 비껴 갔지만, 그녀가 뿌린 검은 적의 요혈을 단숨에 그어 갔다.

수십 자루의 칼바람이 서로 뒤엉켰다.

죽립인 중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승산이 없는 싸움.

그는 지금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었다.

사실 오늘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우연이었다.

아니, 필연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선택으로 벌어진 필연이다.

하지만 그는 마침 이 자리에 백화단이 와 있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멸마궁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상부에 알려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어떻게든 몸을 빼낼 틈을 찾았다.

그리고 퇴로가 열렸을 때.

파밧!

그의 신형이 전광석화처럼 날아갔다.

“엇! 저놈이?”

구강룡이 흠칫거리며 소리쳤다.

“제가 잡겠습니다!”

사비란이 말을 뱉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쉬쉬쉬이이잇!

그녀를 돌아본 구강룡은 저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녀는 정말이지 빛살처럼 빨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죽립인을 따라잡은 그녀가 허공으로 몸을 휙 날렸다.

그 정점에 다다랐을 때.

“헉!”

그녀를 돌아본 죽립인이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 싸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음을.

그리고 지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적어도 상대를 저승 동무라도 삼으리라!

파밧!

달아나길 포기한 그가 그대로 검을 앞세우며 날아올랐다.

쩌카앙! 촤악!

“커억!”

꽈다아앙!

요란한 금속성에 이어 파육음이 들렸고, 곧 지상으로 추락하며 그 충격음이 숲속을 흔들었다.

죽립인은 가슴이 대각선으로 깊게 베인 채 절명한 상태였다.

적 한 명을 베어 넘긴 구강룡이 단숨에 달려왔다.

“괜찮으냐?”

“네, 괜찮아요.”

“그나저나 대단한 경공이구나. 나는 그런 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이건 문탁 사부님이 가르쳐 주신 거예요.”

“아아, 어쩐지.”

구강룡이 대번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 강호에서 그보다 빠른 자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조금 전의 검법은 연 사부님의 파석비룡 초식이었고요.”

“허허, 패룡단천검까지 익힌 게냐?”

“그래도 연 사부님을 따라가려면 아직이죠.”

“녀석, 그런데 왜 내가 알려 준 건 쓰지도 않느냐?”

구강룡이 짐짓 서운한 표정으로 말하자, 사비란이 빙긋 웃었다.

“원래 필살기는 아껴 두는 법이지 않습니까?”

“뭐라고? 하하하! 녀석, 말이나 못하면.”

구강룡이 기분 좋게 웃었을 때였다.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적들의 기세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은 수장이 죽는 것을 보고 나서 두 번째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비란과 구강룡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전술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사비란 곁으로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부단주 등가휘였다.

“놈들의 눈동자가 붉게 변합니다. 자멸공을 쓰려는 모양입니다!”

구강룡이 혀를 찼다.

“이런 지독한 놈들!”

사비란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방폭진(防爆陳)을 펼쳐!”

“존명!”

대답을 마친 등가휘가 수신호를 내리자, 백화단원들이 일제히 사비란과 구강룡 앞으로 모여들면서 대열을 갖췄다.

다음 순간.

“으와아아아!”

두 눈이 새빨갛게 변한 복면인들이 일제히 백화단을 덮칠 듯 달려들었다.

찰나지간.

“지금이야!”

사비란이 소리치자.

쒸아아아아앙!

수십 개의 실드가 뭉치면서 하나의 커다란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마치 집단을 보호하는 호신강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와 동시에.

꽈꽈꽈꽈꽈아아앙!

죽립인 이십여 명의 전신이 터지면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폭발력도 거대한 실드를 뚫어내지는 못했다.

한 차례 피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사비란이 구강룡을 보며 말했다.

“이건 제가 만든 진법이고요.”

“훌륭하구나. 실드를 이렇게 이용하다니.”

실제로 사비란은 백화단원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마법을 익히게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실드였다.

호신강기에 비해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구강룡이 주변에 널브러진 사체 파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정말 지독한 놈들이다. 이래서는 단서 하나 찾기 힘들게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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