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3
귀환 마교관
633화(외전 06)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디 강녕하십시오! 소자는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강호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간악한 자들로부터 강호의 환란을 막고, 평화와 번영을 구축하기 위해 몸과 성을 다해서….”
“시끄럽다. 인간이 되어서 돌아 오거라.”
단리정이 단리혁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부드러운 시선으로 사비란을 돌아보았다.
“네가 고생이 많겠구나.”
“아닙니다. 단리 공자는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짐이나 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
그러자 옆에 선 설서린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그래도 우리 자식이에요. 이 아이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지?”
“물론입니다, 어머니. 저는 이 강호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평화와 번영을 이루….”
“란아, 부디 몸조심해라.”
설서린도 단리혁의 번지르르한 인사말을 더는 들어주지 못하겠는지, 사비란을 돌아보았다.
사비란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걱정 마세요, 두 분. 잘 해결될 테니까요.”
“아무렴. 궁주님과 우리 모두의 무공을 전수 받은 네가 아니더냐? 누가 감히 너를 위협할 수 있겠느냐? 걱정 안 한다.”
단리정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쓰이는 표정이었다.
그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비란은 그 따뜻한 마음만 받았다.
단리정이 단리혁을 보며 단단히 일렀다.
“사고 치지 마라.”
단리혁이 뒤에 선 부단주 등가휘를 돌아보았다.
“들었지? 친구. 다음부터는 그 성질 좀 죽이라고. 어디 가서 또 사고치지 말고.”
등가휘는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는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단리정과 설서린은 마을 어귀까지 걸어 나와 배웅해 주었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
단리정의 물음에 사비란이 한쪽에서 백화단원들과 수다를 떠는 단리혁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음…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가볼 생각이에요.”
어딘지 알겠다는 듯 단리정과 설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구나. 그가 사는 곳은 여기서 별로 멀지 않으니.”
“멀진 않지만 외진 곳이지. 난 그런 곳에서는 못 살 거야.”
설서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가서 옹기승 내외에게 안부 전해 주렴.”
“물론이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참, 두 분… 여전히 참 잘 어울리세요.”
사비란의 말에 단리정과 설서린이 서로를 바라보다 슬쩍 얼굴을 붉혔다.
“허허, 녀석. 이젠 입에 발린 소리도 할 줄 아는구나.”
“에이. 그런 것 아니에요.”
“정녕 네가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아마 그 부부를 보면 생각이 바뀌겠지. 그들이야말로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니까.”
“음… 부정할 수 없겠네요.”
사비란의 대꾸에 단리정과 설서린이 모처럼 호쾌하게 웃었다.
**
개양(開陽)의 저잣거리를 두 사내가 걷고 있었다.
그들은 유독 날카로운 눈매였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죽립을 깊이 눌러 쓰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 그들이 어느 기루에 들어섰다.
대낮부터 기루에 들어서는 것이 조금 이상할 만도 하지만, 그런 손님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주변에서는 그들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들. 일찍 오셨네요. 천천히 쉬시다가….”
“빛이 나는 꽃을 찾으러 왔다.”
죽립인 중 한 명이 무뚝뚝한 음성을 흘리자, 마중 나왔던 기녀의 눈빛이 대번에 변했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그녀가 몸을 휙 돌리더니 앞장서서 걸어갔다.
어느 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곧 벽의 어느 지점에 손을 대고 기를 운용했다.
평범한 기녀가 기를 운용하는 것이 놀라울 만도 하건만, 두 죽립인은 태연한 모습으로 기다렸다.
잠시 후.
그그긍…!
벽면이 빙그르 돌면서 통로가 드러났다.
지하로 향하는 통로.
“들어가시지요.”
기녀의 말에 죽립인들이 서로를 한 번 바라본 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하에는 다시 방 하나가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 노인이 온갖 기물들을 상 위에 늘어놓은 채 정리하고 있었다.
사치품으로는 가장 고귀하다는 만색등룡상(萬色登龍狀)부터 시작해서 수라비도(修羅飛刀), 옥황지주(玉皇之珠), 청하신선도(靑下神仙圖) 등 온갖 귀중품들이 즐비했다.
야명주 따위는 이곳에서 기물 취급도 받지 못할 듯했다.
노인이 두 죽립인을 힐끔 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무슨 일로?”
노인은 마치 일면식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들은 초면이었다.
그래도 죽립인들은 다소 건방져 보이는 노인에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노인의 상 위에 주머니 하나를 툭 던져 두었다.
노인이 멈칫거리고는 상에 떨어진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주머니는 절묘하게 기물들 사이에 떨어졌다.
만약 그 주머니가 기물들을 건드려 어느 것 하나 쓰러지기라도 했다면, 노인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스윽.
노인이 주머니 안에 든 것을 꺼내 보았다.
전표였다.
총 삼만 냥.
노인이 입매를 치켜 올리더니 죽립인 둘에게 다시 주머니를 휙 집어던졌다.
엉겁결에 주머니를 받아든 죽립인 하나가 눈썹을 치떴다.
노인이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잖나? 돈이 넘쳐서 그저 주는 거라면 감사히 받지. 하지만 뭔가를 요구할 생각이라면 먼저 말을 해. 우리 만물상(萬物相)은 과거 만약상 때와 달리 묻지 마 선불을 받지 않네.”
그랬다.
이곳은 만약상의 개양 지부.
하지만 이제는 약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물들까지 취급하면서 ‘만물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노인은 만물상 개양지부주였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죽립인 둘은 잠깐 당황하는 듯했지만 곧 침착하게 말을 뱉었다.
“마공석이 필요하오.”
앞서 그들이 기루에 들어서면서 말했던, 빛나는 꽃이 바로 마공석이었다.
마족이 침입하면서 남긴 흔적.
그러나 이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된 것들 중 하나.
“마공석? 마공석 값치고는 좀 많은데?”
“이곳에 있는 걸 전부 살 생각이오.”
“아….”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마공석 하나 값을 잘못 계산했나보군.”
죽립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에 일만 냥이라고 들었소만.”
“조금 전까지는 그랬지.”
“조금 전까지?”
“그런데 방금 총단에서 지령이 내려왔네. 어떤 놈들이 마공석을 죄다 긁어 가고 있어서 품귀 현상이라나? 그래서 개당 십만 냥으로 올랐네.”
죽립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일 할, 이 할이 오른 것도 아니고, 열 배까지 뛰어오르다니.
하지만 노인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들을 속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죽립인 둘이 잠시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하더니,
툭!
다시 주머니를 던졌다.
조금 전보다 더 두둑했다.
“합해서 십만 냥이오. 우선 하나를 주시오.”
‘호오?’
노인의 표정에 이채가 서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들은 적어도 어설픈 뜨내기들이 아니란 뜻이다.
뒤끝 없고 깔끔하게 거래를 하는 자들이 강호에서는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차라리 질척하게 매달리면서 가격을 흥정하려고 하거나, 억지를 부리면서 실랑이를 부리는 자들은 상대하기가 쉽다.
하지만 노인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안 되네.”
“또 뭐가 문제요?”
말만 하면 뭐든 해결하겠다는 듯 죽립인 중 한 명이 퉁명스레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공석이 없네.”
“뭣이? 분명 이곳에 세 개의 마공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전까지는 그랬지. 한데 간발의 차이로 먼저 사간 자가 있다네. 뭐, 정 급하면 그에게 달려가서 팔아 달라고 하게나. 그자는 개당 일만 냥에 샀으니, 십만 냥을 준다고 하면 분명 내어 주지 않겠나?”
“진작 말을 할 것이지!”
“용건을 말하기 전에 다짜고짜 돈부터 던진 건 자네들이 아니었나? 이곳이 거지 소굴인 줄 아는 게야?”
죽립인 한 명이 욱하는 표정으로 한 걸음 나섰지만, 다른 죽립인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괜히 소란을 일으킬 필요 없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죽립인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는 어디로 갔소?”
“음… 소태산(紹泰山) 쪽으로 갔을 걸세. 그 언덕 너머 강변 마을에 살고 있으니.”
두 죽립인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은자가 두둑이 든 주머니를 휙 던져 주고는 몸을 급히 돌렸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노인은 은자를 세어 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거 공돈을 벌었으니, 오늘은 술판이나 벌여야겠구나. 그나저나 괜히 말한 건 아닌가 모르겠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노인이 다시 기물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
개양의 번화가를 벗어난 구강룡은 이제 막 오솔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그가 한쪽의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는 품에서 보자기에 싸여 있는 물건을 꺼내 천천히 풀어 보았다.
형형한 빛을 뿜는 구슬 세 개.
바로 마공석이었다.
조금 전 만물상을 찾아서 마공석을 개당 일만 냥에 사간 이가 바로 그였다.
“이것이라면 령아가 당분간 편히 지내겠구나.”
그는 자신을 보며 해맑게 웃는 조카를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 아이라면 질색인 그였다.
한데 조카는 달랐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걸음마를 떼었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사실 숙부가 아니라 아빠인 게 아니냐며 놀릴 정도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조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으니까.
자연히 자신도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별로 혼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무공을 잃은 옹기승을 지켜 주기 위해서 의무감에 남은 것도 아니다.
만약 옹기승이 혼인을 하지 않고 농사꾼이 되었으면 모를까?
지금은 그를 지켜 줄 만한 아내가 있다.
옹기승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곤 한다.
“형님도 이제 짝을 찾으셔야지요. 저도 형수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구강룡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지금 이 생활이 좋을 뿐이었다.
다만….
‘녀석, 제 아비를 닮아서 그런가?’
자신의 조카이자 옹기승의 딸인 옹수령(雍洙令)은 특이 체질을 타고 태어났다.
그 체질을 개선해 주기 위해서는 대량의 마공석이 필요했다.
‘그래도 운 좋게 세 개나 구했군.’
구강룡은 내심 만물상 개양지부주가 고마웠다.
이미 총단에서 마공석 값을 열 배나 올렸는데, 이전의 값으로 팔아 준 것이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떤 놈들이 마공석을 그렇게 긁어모으는 거지?’
그때.
“……!”
구강룡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마공석을 보자기에 싸서 품에 넣고는 일어났다.
“나와라.”
무겁게 가라앉은 그의 음성이 떨어지자.
스스슷…!
숲속에서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립을 깊이 눌러쓴 무인들.
조금 전 만물상을 찾았던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