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9
귀환 마교관
609화
“내가 부상을 입었기로서니… 네놈들을 못 당할까 보냐?”
능운파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웨어울프가 다섯, 오우거가 둘, 사이클롭스가 셋, 고블린이 일곱, 리자드맨이 여섯이다.
“와라!”
능운파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자, 약속이라도 한 듯 마물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르러렁!”
“죽어라, 인간!”
제일 먼저 능운파는 자신에게 날아든 파이어볼을 튕겨냈다.
퍼엉!
불덩이가 소멸되자, 그 사이로 웨어울프의 발톱이 날아들었다.
“크르렁!”
능운파가 몸을 낮게 숙이면서 발톱을 피해내고는 그대로 마력을 원반검으로 만들어 날려 보냈다.
쒸이이이잉!
퍼퍼퍼퍼퍽!
자신에게 달려들던 마물들의 가슴과 배가 갈라지면서 후두둑 쓰러져나갔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주위를 포위하는 마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경.
능운파는 쉴 새 없이 몸을 놀리면서 마력검을 휘둘러댔다.
쉬컥! 퍽! 쉬쉬쉬컥!
그의 일검에 피가 솟구쳐 오르고, 또 다시 일검에 머리가 날아올랐다.
가슴과 배가 갈라져서 쓰러지는 마물, 머리가 날아가고 눈알부터 뒤통수까지 꿰뚫린 채 절명한 마물들이 쌓여만 갔다.
하지만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협곡 사이로 대마괴가 쏟아져 나온 이후로 주변은 온통 마물 천지가 되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대마괴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능운파 역시 악신의 권능을 이용해 어찌어찌 방어는 할 수 있었지만, 저 재앙과도 같은 덩치를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대마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부상을 깊이 입은 상태에서 자신을 포위한 마물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실정.
무아지경 속에서 마력검을 휘두르고 날려 보내던 능운파가 분노의 고함을 터뜨렸다.
“감히 나를 능멸하려는가!”
능운파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이대로 정신이 미쳐 버리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한낱 마물들에게 포위되어 고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누구보다 높은 곳에 머물 존재였다.
모든 만물이 우러러보고, 경배할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한데, 한데…!
“이딴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내게…!”
쒸쒸쒸아아앙!
푸콰콰콰콰콰아악!
“크아악!”
“쿠어억!”
그가 무차별적으로 날려 보낸 마력검에 마물들이 저마다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져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쯤 하지.”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위기감을 느낀 능운파가 급히 몸을 뒤틀었다.
곧이어.
푹!
“커억!”
능운파는 자신의 심장을 아슬아슬하게 비껴서 가슴을 뚫고 나온 칼날을 보았다.
“이런… 죽일…!”
능운파가 울컥 피를 토한 다음 그대로 손바닥을 들어 튀어 나온 칼날을 밀어 쳤다.
파아앙!
순간 칼날이 뒤로 뽑혀 나가면서 능운파가 휙 돌아섰다.
그가 곧바로 일검을 내질렀다.
파지지짓!
이번에도 마력검이 생성되는 것과 동시에 적의 복부를 꿰뚫었다.
한데…
파짓… 치짓…!
마력검에 균열이 생기면서 이내 흩어지듯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뭔…?”
능운파의 눈동자가 커진 순간.
“아무래도 힘이 다 된 모양이군. 반쪽짜리.”
무심히 말을 뱉은 상대는 바로 수호마 중 한 명.
그가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쉬이이잇!
“흐아아압!”
동시에 능운파가 기합성을 터뜨렸다.
그의 전신에서 수십 가닥의 검은 오러가 뻗어 나갔다.
촤촤촤촤촤아아악!
그야말로 눈 깜빡할 순간이었다.
칼날처럼 변한 수십 줄기의 오러가 수호마의 전신을 난자했고, 칼날을 내리치려던 상대는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은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스르르르! 털썩, 털썩!
수십 조각으로 갈라진 수호마의 육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마침 모여든 수호마들이 서로를 보다가 살기를 한껏 피워 올리면서 능운파를 노려보았다.
“하찮은 반쪽짜리가… 감히…!”
“닥쳐라…! 보았느냐…? 훅, 훅…! 이몸의 힘을…!”
능운파가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조금 전의 일격으로 그는 많은 마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몸이 멀쩡한 상태라면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지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성을 잃고 설치는 바람에 적들에게 빈틈을 노출하고 말았다.
그리고 치명상을 두 군데나 입었으니 이렇게 두 다리로 버티고 선 것만으로도 용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아니, 자신에게 무릎을 꿇을 존재는 다름 아닌 저들이었다.
자신은 저들의 주인이 되었어야 했다.
모든 이가 두려워 마지않는 존재!
“나는 그런 존재가 되었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일갈을 터뜨린 능운파가 바닥을 차고는 날아올랐다.
후아아앙!
허공으로 솟아오른 그가 수십 줄기의 오러를 뻗어냈다.
촤촤촤촤촤아아악!
동시에 지상에서 허공을 올려다보던 수호마들이 일시에 검을 휘두르며 날아올랐다.
피츗! 츄츄츄츗!
그들은 아래로 떨어지는 오러 줄기를 피한 채 그대로 능운파에게 쇄도했다.
마침내 그들이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그들은 마치 이런 싸움을 오래 전부터 준비한 듯 합일된 움직임을 보였다.
촤촤촤촤아악!
다섯 줄기 빛이 저마다 능운파의 신체를 난자했다.
“커억!”
피를 울컥 토한 능운파가 그대로 힘을 잃은 채 지상으로 추락했다.
츄아아아아!
추락하는 동안 그는 많은 피를 뿌렸다.
콰다앙!
바닥에 떨어진 능운파는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입 밖으로 울컥 피가 토해졌다.
그는 비척거리면서 일어나다가 쓰러지길 반복했다.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는 다섯 명의 수호마들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조금의 감정도 서려 있지 않았다.
“징한 것들…! 하다못해 이 몸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웠다면 조금은… 기뻐하란 말이다.”
말을 마친 능운파가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냈다.
마지막이 가까웠다.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싸울 힘은 없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나?
그렇다.
지금 자신에게는 군사가 필요하다.
언제나 자신 곁에서 총명한 지혜로 보필해 주었던 군사.
늘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던 군사.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었던 그 군사가 필요하다.
“군사, 군사여…! 내 군사는 어디에 있는가?”
능운파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다시 비척거리며 쓰러지곤 했다.
찢어진 날개는 점점 줄어들더니 완전히 사라졌고, 시커멓게 물들었던 그의 피부는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이제 수호마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미 능운파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군사여, 나의 군사는 어디에 있는가!”
능운파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의 두 눈에는 피눈물이 고여 있었다.
수호마 중 한 명이 천천히 다가서며 이죽거렸다.
“모든 존재들 위에 군림하는 자여. 어찌 그리 애타게 수하를 찾는가? 나 홀로 왕이시여?”
그러자 다른 수호마가 툴툴거리며 웃었다.
감정이 아니었다.
그저 약한 것을 비아냥거리는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
마침내 능운파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서 있을 기력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선 수호마의 입매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수호마가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마침내 그가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서걱!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수호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낯선 감각이 목에서부터 옆구리까지 대각선으로 이어졌다.
“이건 뭔…?”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는 순간.
스르르륵.
몸이 대각선으로 갈라지더니 그대로 피를 뿌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츄아아아!
그의 뒤에 서 있던 수호마들도 동시에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헬무트를 비롯한 기사단원들이 서 있었다.
능운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희뿌연 시야 너머로 또렷한 얼굴을 가진 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헬무트와 그 기사단이 다른 곳으로 달려간 후에도 그는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능운파가 그를 알아보았다.
바로 구윤이었다.
“맹주님….”
“오, 군사!”
맹주가 반색하며 소리 질렀다.
그 바람에 기혈이 뒤틀리면서 다시 한 번 울컥 피를 토해냈다.
“맹주님!”
화들짝 놀란 군사가 얼른 달려가서 능운파를 부축했다.
미우나 고우나 그에게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주인이었다.
구윤의 팔에 기댄 능운파가 툴툴 웃었다.
“군사, 내 꼴이 우습게 됐군.”
“맹주님….”
“자네 생각에는 이 상황을 어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가?”
“…….”
“총명한 자네라면 분명 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을 알고 있을 테지. 내게 알려 달라. 내가 지존이 된 후에 자네를 각별히 챙기겠다.”
“맹주님 어째서….”
그 순간 마침 마물 하나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촤아아악!
거짓말처럼 나타난 비령이 마물의 목을 단숨에 그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본 맹주의 두 눈이 번쩍였다.
순간 그의 몸이 다시 시커멓게 물들면서 눈동자도 노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군사! 방법이 있다! 저년을…! 저년의 공력을 내게 바쳐라! 그렇게만 하면 내가 이 잡것들을 쓸어버리고…!”
“맹주님…!”
“지존이 되어 자네를 챙기겠다! 군사! 저년에게 당장 내게 공력을 바치라 명하라! 난 저년의 공력을 흡수하…!”
“맹주님, 제발!”
구윤이 전에 없이 큰 소리로 버럭 외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능운파도 움찔거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군사…?”
“맹주님. 이제 제발 그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어째서… 어째서 스스로를 절벽으로 내모십니까?”
구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간곡한 진심이 전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순간 능운파의 표정이 멍하니 변했다.
구윤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녕 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시간을 완전히 잊으셨습니까? 처음 맹주님과 제가 만났던 그날도 정녕 잊으신 겁니까?”
“…….”
“자네의 순수한 총기와 나의 부러지지 않을 의협심으로 강호의 평화를 이루세. 바로 그날 맹주님이 제가 하셨던 말씀이지 않습니까?”
“군사….”
“맹주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런 분이십니다. 맹주님, 제발…!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좀 더 일찍 맹주님께 가까이 가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구윤은 아예 목 놓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이 야속했다.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후회투성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흐느끼는데, 문득 주름진 손길을 느끼고는 눈을 떴다.
“맹주님…?”
놀랍게도 능운파의 외형이 인간이었던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주름 진 이마와 눈가.
그가 힘없이 웃었다.
“기억하다마다….”
“맹주님!”
“자네의 순수한 총기는 여전한데… 나의 의협은 이미 오래전에 부러졌군.”
“아아….”
당황한 구윤이 황급히 비령을 돌아보았다.
“비령! 어서 맹주님께…!”
“아니. 부디 그만두게.”
“맹주님….”
능운파가 주름진 손으로 품에서 비수를 꺼내 구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을 겨누게 했다.
“이곳일세.”
“맹주님?”
“마족은 심장을 찔러야 확실히 죽는다네. 부탁하네. 내가 마지막으로 인간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구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맹주님!”
“군사여, 군사를 믿네. 내 마지막을 군사에게 맡기고 싶군.”
“어째서 제게 그런…!”
“군사… 자네가 내 군사여서… 참으로 다행이네.”
구윤의 손을 맞잡은 능운파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구윤의 손이 벌벌 떨렸다.
“저도… 맹주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군사 어서엇!”
능운파의 눈빛이 다시 노랗게 물들려고 했다.
마침내 구윤이 손에 힘을 주었다.
“흐아아아압!”
절규에 가까운 기합성이었다.
푸우욱!
비수는 그대로 능운파의 심장에 박혀 들었다.
치이이이익!
다음 순간 능운파의 전신이 검게 물들었다가, 이내 잿더미처럼 변하면서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구윤이 고개를 꺾어 들고 절규했다.
비령이 말없이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산 정도맹주 능운파의 마지막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