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9
귀환 마교관
599화
쩌어어어엉!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추량이 뒤로 튕겨 나갔다.
“크아아아아압!”
그가 기합성을 터뜨리자, 단전에서 공력이 용솟음치면서 두 발이 땅바닥 깊숙이 파묻혔다.
츠츠츠츠츠츠츳!
트라잔의 검이 마나방패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밀어내는 순간, 당이협이 날았다.
촤촤촤촤촤촤앗!
그의 품에서 수천 자루의 비수가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면서 날아올랐다.
만천화우!
마치 하늘 가득 메우며 수만 꽃잎이 흩날리듯이 쏟아져 내리는 비수들.
그 화려함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목숨을 잃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트라잔이 아무리 여유가 넘친다고 해도 그 정도로 사리분별을 못하진 않았다.
파바바바밧!
그가 신형을 날리면서 자신에게 날아드는 만천화우를 연신 쳐냈다.
까라라라라라라랑!
흩날리던 꽃잎은 이제 만 마리의 나비가 되어서 트라잔을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사방팔방에서 쇄도해 왔다.
까라라라라라라랑!
트라잔의 주변으로 연신 불꽃이 일어나면서 시끄러운 마찰음이 이어졌다.
제아무리 트라잔일지라도 사천당문의 기재라 불리는 당이협이 모든 내공을 쏟아 펼친 일격이었다.
때문에 그로서도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천!”
당이협의 외침에 무천이 양손을 활짝 펼쳤다.
펄럭!
장삼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끝에서 수백 가닥의 은잠사가 거미줄처럼 펼쳐지면서 날아올랐다.
촤아아아아악!
곧이어 서래향이 바닥을 차더니 양손을 쭉 내밀면서 장풍을 쏘아냈다.
콰아아아아앙!
두 사람 역시 자신이 가진 최고의 절기를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한순간에 쏟아내는 순간이었다.
“제법 까부는구나!”
일순 트라잔이 고성을 내지르면서 몸을 팽이처럼 회전했다.
투타타타타타타탕!
놀랍게도 은잠사가 한낱 실낱처럼 끊어져 나갔고, 무겁게 짓누를 듯 떨어져 내리던 서래향의 장풍은 그대로 허공에서 터져 나가면서 와해됐다.
하지만 은잠사와 장풍에 실린 독공만큼은 그에게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일순 트라잔의 몸이 굳은 것처럼 둔해진 것이다.
그 찰나지간을 놓치지 않고 위검종과 자운룡이 바닥을 차며 날아갔다.
두 사람이 곧바로 검강을 일으키면서 트라잔의 몸을 베어 갔다.
쒸쒸아아아앙!
두 줄기의 검강이 트라잔의 목과 가슴을 가르려는 순간.
파밧!
“헛!”
두 사람은 눈을 번쩍 뜨면서 강기를 회수했다.
다음 순간.
촤아아아악!
“크으읍!”
“아악!”
어느새 배후에 나타난 트라잔이 그대로 검을 휘둘러 자운룡과 위검종의 등을 동시에 베어내는 것이 아닌가?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날아간 두 사람이 바닥에 무참히 나뒹굴었다.
그 순간.
“음…?”
트라잔은 순간 왼쪽에서 귀신처럼 불쑥 나타난 그림자를 보고 황급히 물러났다.
하지만 찰나지간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더니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지는 것이 아닌가?
촤아아아악!
“큭!”
트라잔의 등이 베이면서 그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진심으로 놀란 듯 매설란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인간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그것도 한낱 암컷이!
내내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분노가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감히….”
“훅, 훅…!”
한편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매설란은 내심 낭패감에 젖었다.
이번 일격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었다.
한데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칫! 조금 더 빨랐어야 했어!’
아니, 더 빨랐어도 죽이진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이런 존재들을 상대로 어찌 강호가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강호의 모든 무인들이 다 덤벼들면 모를까!
반면 등에 부상을 입은 트라잔은 극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감히 내게!”
그가 마치 포효를 하듯 큰 소리를 내지르자, 사방으로 마력이 파도처럼 뻗어 나갔다.
후아아아아아아앙!
“크읏!”
“큽!”
그를 공격했던 여덟 명이 저마다 양팔을 교차하면서 가까스로 버텼다.
다음 순간.
으드드드득. 꾸드드득!
마치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막강한 기운이 트라잔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의 신체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이마에서는 두 개의 뿔이 솟아났고, 덩치는 웬만한 성인 세 배만큼 커졌으며, 양 팔의 길이는 성인 키 정도로 자랐다.
“공포는 집어치우고, 죽음을 가르쳐 주마!”
**
‘노곤하군.’
사비강은 물속에 몸을 푹 담갔다.
뜨끈한 온천수에 온몸이 녹아 버리는 듯했다.
촤라락.
물결이 일어나면서 누군가 물안개를 뚫고 다가왔다.
뽀얗고 부드러운 살결, 향긋한 살 내음. 예쁜 얼굴과 작은 어깨.
그녀는 바로 매설란이었다.
“많이 피곤했지?”
“좀.”
“좀이 아니야.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그래, 그랬지.”
사비강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
무엇을 위해서?
진정 복수를 위해서였나?
그래, 처음에는 분명 복수를 꿈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복수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대신 다른 목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눈앞의 매설란을 잃지 않기 위해서.
회귀를 하고 나서 최대한 냉정한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했지만, 알게 모르게 정이 생기고 다시 또 소중한 이들이 생겨났다.
오히려 전생보다 더욱 많은 인맥이 엮여 버리고 말았다.
그런가?
결국 인간의 강함이란 서로가 의지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촤르륵.
사비강이 물속으로 머리끝까지 담갔다가 다시 얼굴을 살며시 내밀었다.
“이대로 그냥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군.”
“멈출 수 있을 거야.”
“그렇겠지. 여긴 꿈이니까.”
“알고 있구나?”
“알지.”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알고 있다.
자신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지독한 고통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는 것까지.
하지만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지금의 이 편안함이 너무 좋다.
중독되어 버릴 것만 같은 안락함.
이대로 자신이 현실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대로 자아는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다.
이렇게 편안한 죽음이라면.
모든 것을 잊고 이 자리에서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은 모른 채.
굳이 현실로 돌아가 그 고통과 그 지옥 같은 상황을 악착같이 뚫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때였다.
촤르르르륵!
매설란이 돌연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굴곡진 몸매가 눈앞에 여실히 드러났다.
한데 뭔가 좀 이상했다.
매끈하게 빠진 다리 뒤로 뭔가가 살랑거렸다.
‘꼬리…?’
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니 가슴과 팔, 배와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괴이한 문신이 새겨진 여인.
“서큐버스?”
과연 그녀는 몽마 서큐버스였다.
마계에 있을 때, 그녀를 몇 번 본 적이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순간에 그녀가 나타날 거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서큐버스가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흥. 꿈이라는 걸 다 알고 있으면서 날 보고 놀랄 건 없을 것 같은데?”
“별로. 놀란 건 없지.”
“그렇군. 그나저나 이런 곳에서 뭐하는 거지? 자각몽을 꾸는 자에게는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나?”
“조금만 더 이곳에 머물고 싶군.”
“불가. 현실과 꿈의 경계에 머무는 자는 용납할 수 없어. 당장 돌아가도록.”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왜 굳이 나를 깨우는 거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텐데.”
“글쎄. 그저 단순한 변덕이라고 해두지.”
서큐버스가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웃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그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서큐버스는 장난이 심하긴 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명 그녀가 자신을 깨우려는 이유가 있으리라.
‘뭐, 당장은 알지 못하더라도… 언젠간 알게 될 테지.’
어쨌거나 서큐버스가 개입한 이상 자신이 이 몽계에 계속 머물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정 그렇다면 물러가야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이곳의 주인은 엄연히 나니까.”
“그래봐야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몽마 주제가 아니던가?”
“시끄러워. 썩 꺼지라고.”
그녀의 말을 끝으로 온천수가 솟구쳐 올랐다.
촤아아아아!
**
“으음.”
사비강이 눈을 떴다.
다행히 지독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이상이 없군.’
다행이다.
죽진 않은 것이다.
영약을 모두 소화한 것일까?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보았다.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식을 잃은 동안 어지간히도 발작을 일으켰나 보다.
사방팔방 난자한 자국이 가득했다.
만약 무랑과 조신량이 합작해서 만든 결계와 장치가 아니었더라면, 이미 이곳은 무너지고도 남았으리라.
지하실 한쪽 구석에는 뱀이 허물이라도 벗은 것처럼 피부 껍데기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옷가지는 갈기갈기 찢어진 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비강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또 한 번 환골탈태한 것임을.
과연 몸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럼 드디어 만해경에 이른 것인가?’
사비강이 얼른 가부좌를 틀고 내공을 일주천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대로 운기를 하다가 허공으로 떠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렇게 소주천과 대주천을 끝낸 사비강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두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형형한 빛을 뿜었다.
‘만해경을….’
그 순간.
쿠우우우웅!
후드득.
육중한 진동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천장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고개를 꺾어 들었다.
‘우선 나가야겠군.’
**
“끄으음.”
매설란은 신음을 흘리면서 괴물 같은 트라잔을 노려보았다.
놈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죽음을 가르쳐 주겠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트라잔의 전신은 뜨거운 불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으로 만들어진 불길이었기에 모든 것을 다 태우는 것이 아니다.
의지의 불길.
즉, 그가 태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타오르게 된다.
게다가 그 불의 열기를 스스로 조절할 수도 있었다.
트라잔이 손을 불쑥 뻗었다.
다음 순간.
슈우우우욱, 콱!
“컥!”
매설란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트라잔의 손아귀에 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녀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 고통스러워하자, 당이협이 버럭 소리쳤다.
“노옴! 당장 그 손을 놓지 못할까?”
쒸에에엑!
그의 손에서 비수가 떠나갔지만.
따앙!
트라잔이 가볍게 휘두른 손길에 비수는 힘없이 튕겨 날아갔다.
트라잔이 히죽 웃었다.
부우우우욱!
순간 그가 손을 들어 매설란의 앞섶을 찢어냈다.
그녀의 가슴골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옷이 찢어졌다.
“아무래도 너는 우리 애들이 죽음보다 먼저 가르쳐 줄 게 있겠군.”
성노리개로 던져 두겠다는 말.
치욕을 느낀 매설란이 뭐라고 말을 뱉으려는 순간이었다.
쉬이이이이익! 서컹!
“……!”
찰나지간 트라잔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매설란의 목을 쥐고 있던 자신의 팔이 어째서 싹둑 잘려 나간 것인지.
무엇에 당한 것인지.
분명한 것은 떨어지는 매설란과 함께 자신의 팔 역시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털썩!
“콜록, 콜록!”
바닥에 떨어진 매설란이 목을 움켜쥐며 기침을 했다.
곧이어, 여전히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트라잔의 귀에 사비강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내 여자 건드리면 죽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