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96화 (596/670)

# 596

귀환 마교관

596화

콰콰콰콰콰콰아앙!

멸마궁 주변으로 연신 폭발이 일어났다.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진동했다.

피비린내도 섞여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끔찍한 외모를 가진 괴물들이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멸마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무인들 중에는 마물들을 처음 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자들은 무섭게 몰려오는 적들을 보면서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라! 실전이다! 저것들에게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살육의 본능에 취한 마족과 마물을 보고 있노라면 모골이 송연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멸마궁은 애초에 높은 방벽으로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성벽보다도 높은 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쿠웅! 쿠웅! 쿠우웅!

파충류만큼이나 두꺼운 피부를 가진 마물들은 거대한 쇠막대를 들고 궁문을 두드려댔다.

만약 조신량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관장치가 아니었다면, 궁문은 진작 부서졌으리라.

“기름을 부어라!”

“불을 붙여라!”

“와아아아!”

방벽 위에서 수장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기름을 붙고 불을 붙이고, 바위를 밀어 떨어뜨려도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더 암울한 것은 마족 기사들은 아예 저만치 물러선 채로 본격적으로 쳐들어오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다리를 대고 방벽을 오르거나, 갈고리를 던져 기어오르는 것들은 전부 이성이 거의 없는 마물들이었다.

녀석들은 공포를 몰랐다.

동료의 시체도 아무렇지도 않게 밟으면서 끊임없이 몰려왔다.

심지어 동료의 시체로 언덕을 쌓아서 방벽을 오르기도 했다.

“궁!”

방호단주(防護團主) 천세명이 소리치자, 시커먼 갑주를 착용한 궁수들이 일제히 방벽으로 다가와 섬전궁을 겨누었다.

처처처처처처척…!

“조준! 쏴라!”

투두두두두두투웅!

섬전궁에서 폭시가 연사되어 날아갔다.

쒸쒸쒸쒸쒸에에엑!

하늘이 새카맣게 물들자, 밀물처럼 밀려들던 마물들이 고개를 꺾어들고 쏟아지는 폭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쿠콰콰콰콰콰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사방팔방 온갖 파편들이 튀어 올랐다.

“쿠와아악!”

“크아아악!”

마물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져 갔다.

하지만 궁수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더 화살을 장착한 그들은 살아남은 마물들을 하나하나 조준 사격을 했다.

투둥! 투두두둥!

“쿠와악!”

“크아악!”

마물들이 연신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역시 적의 머릿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멸마궁 바깥은 온통 마물로 버글거리고 있었다.

이 세상이 마물로 뒤덮였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멸마궁이 유일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마침 저만치 마물들을 헤치면서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의 보법이 워낙 빠르기에 마물들이 미쳐 그를 낚아채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물들이 휘두른 검이 그의 몸을 스치기도 했다.

몸에서 피가 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공력을 오로지 경공술에만 집중했다.

그러지 않으면 적진에 갇혀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마물들 사이를 바람처럼 누비던 그는 어느 순간 마물들의 어깨와 머리를 밟으면서 이동했다.

그렇게 한 달음에 방벽 앞까지 도착한 그가 허공답보를 펼치면서 빠르게 날아올랐다.

휘리리리릭, 탁!

공중에서 한 바퀴 제비를 돌면서 바닥에 착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문탁이었다.

원래 경공술이 무척 뛰어난 그였지만, 질풍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찌 됐는가?”

천세명이 다가와 묻자, 조문탁의 표정에 분노가 서렸다.

“살아남은 자들이 없습니다. 인근 마을은 전부 불에 탔고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아녀자들을 겁간하는 마족들도 더러 보였습니다.”

“이런 젠장!”

천세명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 질렀다.

조문탁이 숨을 몰아쉬고는 말했다.

“적의 머릿수가 너무 많습니다. 하마터면 저도 이곳까지 돌아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적당히 상대하시다가 내궁으로 피신하는 게 좋겠습니다.”

“당치도 않는 소리. 그간 우린 ‘방호단’이라는 명분으로 전장에 나서지도 않은 채 편히 지냈다. 이제 그 보답을 할 차례지. 이럴 때일수록 우린 물러나지 않고 싸울 거다.”

“뜻이 정 그러시다면 더는 말씀드릴 수 없군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일단 내궁으로 가서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알았다.”

조문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날렸다.

그가 빛살처럼 달려 나가자, 천세명이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의 임무는 방벽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선 이 자리가 최전선이자, 최후방이다! 우리가 설 자리는 언제나 바로 이곳이다! 그 누구도 우리의 허락 없이 궁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

“우와아아아아!”

방호단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는 사이 마침 궁수들의 화살이 바닥났다.

“폭렬탄을 준비하라!”

“폭렬탄 준비하라!”

천세명의 명령을 수하들이 일제히 복창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궁수들이 썰물처럼 물러나자 붉은색 무복을 착용한 무인들이 앞으로 나서더니 폭렬탄을 꺼내 던지기 시작했다.

쉭쉭쉭쉭쉭쉭!

솔방울처럼 생긴 폭렬단이 긴 호선을 그리며 방벽 바깥으로 날아갔다.

꽈앙! 꽈과과과과과앙! 꽝!

연신 폭발이 일어나면서 방벽을 오르려던 마물들과 궁문을 부수려던 마물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져 갔다.

싸움은 길었다.

무인들의 체력이 조금씩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지긋지긋한 것들! 끝이 없잖아!”

“니미럴! 무슨 개미떼도 아니고 도대체 뭐냐고!”

무인들의 공격이 조금씩 둔해지기 시작했다.

마물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마물들은 처음과 지금이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꾸준히 끝없이 몰려올 뿐이었다.

해저물녘이 되자 마물들도 방벽 위까지 오르는데 성공했다.

“이 빌어먹을 것들 반드시 막아라!”

“전부 조져 버리자!”

“누구 마음대로 여길 기어 올라온 것이냐!”

“우와아아아!”

무인들이 저마다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방벽 위로 올라선 마물들에게 병장기를 휘둘러 갔다.

채채챙! 까강! 채앵!

금속성이 난잡하게 어우러지면서 여기저기에서 불꽃이 튀었다.

곧 비명소리와 함께 피가 튀어 올랐다.

“크아아악!”

“아악!”

무인들이 하나 둘 당하기 시작하자, 방벽 위에는 마물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천세명은 적의 틈을 종횡무진하면서 정신없이 칼을 휘둘러 갔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운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기도 했다.

‘오늘 내가 여기서 죽겠구나.’

천세명의 눈빛이 깊어졌다.

본능처럼 검을 뻗어내면서 그는 지나온 세월을 회상했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삶이었다.

적어도 사비강을 신경 쓰기 전까지는 그랬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가?

그 좁디좁은 곳에서 대장 행세를 하며 겉멋만 잔뜩 들어서 지냈다.

한데 쥐죽은 듯 지냈어야 할 사비강이 작은 반란을 일으키고 나서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자신이 지금 이 방벽 위에서 마물들에게 칼부림을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그리고 자신이 사비강을 믿고 따르는 입장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후회는 없다.

다만 안타깝다.

조금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것이.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조금만 더 일찍 깨우쳤더라면.

사비강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그는 비단 생도들만을 계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계도된 것이다.

사비강은 그처럼 영향력이 큰 존재였다.

‘사 궁주! 고맙소! 이제라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어서! 나는 오늘 이곳에 뼈를 묻겠소!’

내심 각오를 다진 천세명이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적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압!”

그가 든 검에서 강기가 솟아났다.

쒸아아아앙!

검강이 한 차례 방벽 위를 휩쓸자, 마물들이 괴성을 터뜨리며 우수수 쓰러져 나갔다.

막간을 이용해서 주변을 얼른 둘러보았다.

암울한 상황이었다.

너무나 많은 방호단원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천세명이 입술을 쿡 씹고는 외쳤다.

“모두 들어라! 이곳은 내가 지킬 테니, 내궁으로 물러나라! 지금이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수하 하나가 옆으로 다가와 섰다.

“실망이군요… 단주님.”

어딘지 나른한 목소리.

천세명이 눈살을 슬쩍 구기고는 돌아보았다.

“뭐라?”

“혼자 멋있는 척하시면… 안 되지요.”

깡마른 체구에 장신의 사내가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중얼거렸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천세명이 흠칫거리고는 사내를 다시 보았다.

“자네는…?”

사내가 히죽 웃었다.

“이제 절 기억하십니까?”

“그래, 분명 상필지 교관이 이끌던 낭아반의 노치은 생도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자네도 방호단원이었나?”

“예. 일전에는 저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서운했습니다.”

“허어, 그랬군.”

천세명은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담소나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천세명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물의 머리를 두 갈래로 쪼개 버리면서 말했다.

“자, 자네도 어서 피하게!”

“그럴 수는 없지요. 저는 이미 궁주님이 한 번 구해 주신 여벌의 목숨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젠 이 강호를 위해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야지요.”

정말이지 과거 그의 행동을 떠올려보면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었다.

하긴.

자신이라고 이렇게 강호를 위해 희생할 순간이 오리라 생각이나 했던가?

노치은이 싱긋 웃어 보이더니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렁차게 외쳤다.

“저 또한 방호단원!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겁니다!”

“저희도 단주님과 함께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겠습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설 자리입니다!”

“우와아아아!”

다시 한 번 방호단원들이 사기를 끌어올렸다.

누구도 내궁으로 달아나지 않았다.

그들 모두 마지막까지 마물들에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천세명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 인간의 무서움이란 바로 이런 거다.

‘사 궁주! 내가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반드시 당신을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소! 당신은 내게 있어서 은인이나 다름없는….’

다음 순간 천세명은 생각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등골을 찌를 듯 날아든 이질적인 기운 때문이었다.

순간 전신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이건 뭔…?’

천세명이 뻣뻣하게 돌아섰다.

그곳에 낯선 존재가 서 있었다.

바로 마족들의 총사령관을 맡은 트라잔 공작이었다.

그가 무심한 눈빛으로 천세명을 응시했다.

그 눈빛만으로도 온몸에 구멍이 나버릴 것만 같았다.

“웨, 웬 놈….”

“네가 리더인가?”

“리… 뭐?”

천세명이 반문했지만, 트라잔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듯하군.”

다음 순간.

파짓!

천세명은 눈앞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세상이 기울어진다고 느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무슨 수에 어떻게 당한 것인지도 모른 채 목을 잃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천세명의 머리가 눈을 한 번 끔뻑이더니 눈동자에서 완전히 빛을 잃었다.

츄아아아아!

목을 잃은 그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났다.

트라잔이 목을 우두둑 꺾고는 돌아섰다.

“무서움을 가르쳐 주라는 폐하의 말씀을 깜빡하고 말았군.”

그가 무심히 중얼거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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