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7
귀환 마교관
587화
쉬까앙!
맑은 금속성이 울리면서 바리탄이 튕기듯 물러났다.
그녀가 휘청거리는 틈을 타서 사비강이 빠르게 짓쳐들었다.
쉬이이잇!
바람 가르는 소리에 이어.
쩌어어엉!
다시 한 번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휘리릭!
사비강이 몸을 뒤틀면서 그대로 왼손바닥을 내밀었다.
퍼어엉!
장력이 그대로 바리탄의 복부에 작렬하면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파바바바밧!
바리탄이 연거푸 뒤로 물러나다가 겨우 대나무를 붙잡고 멈춰 섰다.
“쿠우웁!”
바리탄이 허리를 숙이고 한 차례 피를 토하자, 사비강이 천천히 다가왔다.
“미안하군. 내가 여자라고 봐주는 편은 아니라서.”
“그래야지. 그러지 않으면 후회할 테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좀 매력적이기도 하지.”
바리탄이 입매를 말아 올리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다음 순간.
솨아아아아아!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죽림이 춤을 추듯 흔들리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사비강은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얼른 바닥을 박차고는 튀어 나갔다.
“쓸데없는 짓!”
매혹의 악신에게 가호를 받는 바리탄이었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어떤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쒸에에엑!
허공을 가르면서 베르타스가 살기를 품고 날아갔다.
스스스스슷!
스팟!
순간 바리탄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더니 베르타스가 그대로 지나치면서 굵은 대나무를 그대로 뚫었다.
우지끈!
그그그그긍… 쿵!
워낙 커다란 대나무였기에 육중한 소리가 울리면서 쓰러졌다.
찰나.
투타타타타타!
죽림 안쪽에서 수많은 대나무 파편이 예기를 품고 날아들었다.
따다다다다다당!
베르타스를 휘둘러 대나무 파편을 쳐냈다.
한낱 잘려 나간 대나무일 뿐임에도 칼끝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꽤나 묵직했다.
잘려 나간 대나무 줄기에 마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파밧!
사비강이 신형을 날려 죽림 안으로 짓쳐 들어갔다.
쏴쏴쏴쏴쏴아!
슈슈슈슈슈슛!
빽빽한 대나무 사이로 바리탄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비강이 곧장 검강을 일으켜 바리탄에게 날아갔다.
샤샤샤샤샤아악!
구구구구구구웅!
굵은 대나무 줄기가 연신 잘려 나가면서 이리저리 쓰러지고 기울어졌다.
촤자자자자작!
베르타스를 감싸며 솟구쳐 오른 검강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마구 꿈틀거리면서 날아갔다.
피츗! 츠팟! 촤아악!
검강이 연신 바리탄의 신형을 베어냈지만, 그때마다 애꿎은 대나무만 쓰러져 나갈 뿐이었다.
대나무가 워낙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베고, 베고 또 베어도 대나무 줄기가 마구 엉켜서 시야를 오히려 더욱 어지럽히고 있었다.
“인간을 벌레 취급하던 바리탄이 꽁꽁 숨는 꼴이라니. 한심하군!”
사비강의 도발에도 바리탄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비강은 바리탄의 그림자가 드러날 때마다 강기를 쏘아내거나 검기를 폭사시켰다.
솨솨솨솨솨솨솨아악!
수십 갈래의 검기가 마구 날아들면서 시커먼 그림자를 난자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나무만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쪼개지면서 숲속에 휘날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음…?”
대나무 숲 전체에 희뿌연 안개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독무가 아니라면 시야를 가리기 위한 건가?’
이렇게까지 버티는 걸 보면 확실히 바리탄이 꽤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이리라.
그때였다.
스스슷! 스슷!
희뿌연 안개 너머로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거긴가!’
팟!
사비강의 신형이 죽림을 가르면서 날아갔다.
샤샤샤샥!
날카로운 검기에 의해 이번에도 대나무들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마침내 그의 검봉이 그림자의 등에 닿으려는 순간.
“헉, 사부님?”
간발의 차이로 돌아선 자는 다름 아닌 추량이 아닌가?
사비강이 얼른 검을 거두면서 미간을 좁혔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바리탄과 결전을 치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부님을 호위하기 위해 달려왔지요! 이래봬도 제가 호위무사 아닙니까?”
추량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막상 와 보니 아무도 없는 데다 대나무 숲에서 기척이 느껴져서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자 앞에서 대기 중이고요.”
“다른 사람?”
“예, 천멸대와 신생조가 사부님을 돕겠다고 해서 함께 왔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방해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추량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사죄했다.
사비강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바리탄을 찾을 수 있겠나?”
“추종술이라면 저 아닙니까? 천멸대와 신생조가 돕는다면 더 빨리 찾을 수도 있고요.”
“최대한 빨리 찾아. 어차피 무랑도사가 펼쳐 놓은 술법 때문에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추량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휘파람을 휙 불었다.
그러자 천멸대와 신생조가 일제히 대나무 숲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궁주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으니 바리탄부터 찾아라.”
“알겠습니다!”
두 조직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면서 돌아섰다.
그런데.
파바바밧!
쒸에에엑!
천멸대와 신생조가 돌연 몸을 돌리더니 사비강을 향해 살초를 펼쳐 오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추량 역시 살기를 드러내며 사비강을 공격해왔다.
순간 사비강이 실드를 펼치면서 튕기듯 물러났다.
따다다다다당!
천멸대와 신생조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저마다 혀를 차면서 재차 달려들었다.
사비강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역시 가짜였군.”
쑤아아아아앙!
사비강이 검강을 일으키면서 그대로 천멸대와 신생조를 베어 갔다.
서거거거걱!
슈아아아악!
“크아악!”
“으아악!”
사비강의 거침없는 공격에 천멸대와 신생조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부상을 입고 신음하는 이들은 정말이지 진짜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비강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크아악!”
마지막으로 추량까지 벤 그가 마침 저만치 안개 너머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고 몸을 날렸다.
쒸에에에엑!
찰나.
“헉! 사, 사부님! 접니다! 추량!”
이번에도 사비강의 검이 추량의 이마에서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멈췄다.
“너는 진짜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이런 장난이 재미있나?”
“무슨 말씀을….”
쉬컥!
순간 한 줄기 섬광이 추량의 목을 그으며 지나갔다.
추량은 두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머리가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츄아아아아!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는 추량의 몸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사비강이 시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추량은 반묘랑 항상 같이 다녀.”
찰나.
쒸이이이이잇!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사비강이 반사적으로 돌아서며 강기를 일으켰다.
쩌어어어어엉!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고막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금속성이 울렸다.
동시에 사방으로 기풍이 확 퍼져 나가면서 대나무들을 우수수 눕혀 버렸다.
기풍이 잦아드는 순간, 사비강은 반사적으로 공격을 이어 갔다.
쒸에에에엑!
쩌어엉!
다시 한 번 터져 나온 마찰음.
검을 쥔 바리탄이 매혹적인 미소를 짓더니.
“하아아앗!”
그녀가 날카로운 기합성을 터뜨리자,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폭사하면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운이 하나의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찰나, 바리탄이 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존재 역시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왔다.
그 막강한 기운에 사비강이 얼른 바닥을 차며 물러났다.
쿠콰아아앙!
천지가 격동했다.
사비강이 대나무를 밟으면서 재빠르게 솟구쳐 올랐다.
바리탄은 그대로 검을 횡으로 그었다.
쒸아아아아앙!
강기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마력이 날아가자, 대나무들이 우수수 잘려 나갔다.
동시에 거대한 존재가 손을 휘둘러 수많은 대나무를 움켜쥐더니 사비강을 향해 내려찍었다.
거대한 대나무 줄기는 그 자체로 죽창(竹槍)이 되어서 사비강에게 위협적으로 날아들었다.
쿠콰콰콰콰콰콰앙!
“크읏!”
사비강은 연신 튕기듯이 물러나면서 방어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자신을 향해 대나무로 내려찍는 존재에게 정면으로 부딪쳤다.
쩌어어어엉!
베르타스와 거대한 존재가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크읍!”
사비강은 온몸이 덜덜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사비강은 자신이 그저 그런 마족과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리탄은 모든 걸 쏟아내는 중이었다.
파바밧!
순간적으로 물러난 사비강이 블링크를 이용해 눈 깜빡할 사이에 거대한 존재의 배후로 이동했다.
곧바로 바리탄을 공격한다면 더 좋겠지만, 거대한 존재가 바리탄을 지키고 있었기에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사라져라.”
쑤아아아앙!
검강을 머금은 베르타스가 그대로 거대한 존재의 뒷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파밧!
거대한 존재가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반사적으로 돌아섰지만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비강이 이맛살을 찌푸리는데.
촤아아아아아악!
다시 한 번 마력을 잔뜩 머금은 거대한 죽창 수백 자루가 쏟아지듯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일순 기합성을 끌어올리면서 강기를 일으켰다.
“흐아아아압!”
짜르르르르르릉!
검강과 죽창이 서로 부딪쳤는데 마치 천둥이 치는 소리가 울렸다.
“하아아앗!”
사비강이 다시 한 번 기합성을 터뜨리자.
후아아아아아앙!
그의 전신에서도 붉은 기운이 우러나오더니 거대한 존재를 뿜어냈다.
바로 레드 드래곤이었다.
팟!
사비강이 그대로 바닥을 차면서 안개를 뚫고 날아갔다.
쏴쏴쏴쏴아앙!
다시 한 번 죽창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 쿠아아아아아!
사비강이 등지고 있던 거대한 드래곤이 그대로 날아가면서 입을 쩍 벌리더니 죽창을 한입에 물어뜯었다.
와지끈!
마침내 바리탄을 찾아낸 사비강이 그대로 검을 내질러 갔다.
“그만 끝내자!”
바리탄도 눈을 부릅뜨고는 검봉을 내질러 왔다.
두 자루의 검봉이 정확히 마주치는 순간!
쩌어어어어엉!
“크웃!”
“큭!”
격렬한 진동을 온몸으로 느낀 사비강이 얼른 내공을 다스렸다.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졌다간 그대로 기혈이 뒤엉켜서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
레드 드래곤과 악신의 형상이 부딪치면서 사방으로 기파가 터져 나갔다.
쿠두두두두두두!
근방의 대나무들이 뿌리째 뽑히면서 날아갔다.
드래곤과 악신의 형상이 사라지자, 바리탄이 바닥을 차고는 대나무 줄기를 밟으며 물러났다.
사비강은 그대로 바리탄을 공격했다. 줄기를 밟으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휘청거리는 대나무 줄기 위에서 두 사람이 춤을 추듯 전투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한 차례 강렬한 공방을 주고받은 다음에 이어지는 이 싸움은 무척이나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대나무의 출렁임에 따라 둘의 검술도 미묘하게 변해 갔다.
하지만 이 부드러움 속에는 단숨에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생각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동녘이 밝아졌고, 해가 중천을 지나 다시 서산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 달이 떠올랐을 때도 둘은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했다.
그렇게 떠오른 달도 서서히 기울어가던 시각.
쉬이이이잇!
푸욱!
“악!”
마침내 먼저 빈틈을 보이고 만 바리탄이 비명을 내지르며 대나무 줄기 위에서 추락했다.
동시에 사비강의 눈빛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