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3
귀환 마교관
573화
진백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어딘지 이상했다.
묵양제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사이한 기운.
아니, 기운이라고 말하기에는 그 실체가 너무 희미해서 분위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했다.
게다가 두 눈은 몇 날 며칠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진백이 헛기침으로 기척을 내고는 물었다.
“자네가 여긴 어인 일인가?”
묵양제는 진백을 힐끔 보더니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가 곁을 지나치는 순간, 진백이 묵양제의 손목을 낚아채며 잡았다.
“자네, 혹시 술 마셨나?”
찰나,
쉬이이익, 콰악!
“커억!”
진백이 입을 딱 벌리고는 신음을 뱉어냈다.
묵양제의 손이 돌연 뻗어오면서 그의 목을 움켜잡은 탓이었다.
“큭, 커억…! 자, 자네… 컥!”
진백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목에서부터 뻗어 올라오는 핏대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불거져 나왔다.
묵양제가 기를 흘려내는 탓이었다.
다음 순간,
쉬이이이이이이잇!
허공을 가르며 뚝 떨어져 내리는 예기!
휘익!
묵양제가 얼른 진백을 저만치 던져버리고는 튕기듯 물러났다.
카아앙!
그대로 바닥을 때린 검신이 휘청휘청 굽으면서 소리를 울렸다.
휘링휘링…!
쉬리리릿!
두 자루의 연검이 굽이치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매섭게 눈을 치뜨며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매설란이었다.
그는 수련을 계속하려다가 마침 건물 모퉁이 너머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걸 깨닫고는 와본 터였다.
한편 저만치 내던져진 진백은 무릎을 쥐고는 바닥을 보며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커헉, 헉, 헉…!”
목이 부어올라서 한참이나 호흡을 하는데 애를 먹었다.
얼른 기본적인 운공을 하고 나자, 다행히 붓기고 돌아오면서 고통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매설란이 두 자루의 연검을 들고 천천히 기수식을 취하면서 말했다.
“진 당주님은 물러나 계세요.”
“조, 조심하게. 묵 조교에게 지금 다른 힘이….”
하지만 진백이 말을 마저 잇기도 전에,
“계집!”
묵양제가 버럭 일갈을 터뜨리더니 바닥을 차고는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코 앞까지 나타난 묵양제가 빠르게 검을 대각선으로 내리쳤다.
쉬까아앙!
불꽃이 일어나면서 두 사람이 동시에 멀찍이 튕겨 나갔다.
매설란은 얼른 벽을 박차고는 경공을 펼치며 반격에 들어갔다.
쉬이이이잇! 쉬이이이익!
두 자루의 연검이 바람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흐앗!”
묵양제가 기합성을 터뜨리고는 그대로 맞부딪쳐 왔다.
까라라랑! 까라라라라랑!
단 두 합을 섞은 것 같은데, 소음은 연이어 마구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바닥을 차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까라라라라라랑!
연신 불꽃을 터뜨리면서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진백은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정말이지 대단하군…!”
마치 폭죽이 지상에서부터 터지면서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불꽃을 뿜으면서 하늘로 솟아오른 두 사람이 초환당 지붕 위에 안착했다.
따다다다다다다당!
지붕을 밟으면서 밀고 당기면서도 두 사람의 검은 쉴 새 없이 부딪쳤다.
처캉! 처캉!
이따금씩 기왓장이 튀어 오르고, 그 기왓장이 다시 깨지면서 파편이 비수처럼 변해 서로를 공격하길 반복했다.
매설란은 식은땀을 흘렸다.
‘강해! 왜 이렇게 강한 거지? 그간 묵 조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놀랍게도 묵양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 또한 점점 변하고 있었다.
벌겋게 충혈되어 있던 두 눈은 이제 시커멓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짙게 물들어 있었고, 그의 피부 표면으로 불거진 핏대는 거미줄처럼 전신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매설란도 어느 선까지 검을 다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만약 잠깐 홀린 것이라면, 그래도 한때 같은 편이었던 자에게 살검을 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면서 그녀는 곧 그런 배부른 생각을 접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는 순간, 본인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치잇! 그 영단이라도 복용한 상황이라면…!’
만약 진백이 준 청마기환단을 복용했더라면, 결과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만약’을 따지는 것 만큼 무의미한 짓도 없다.
따아앙!
마침내 한 차례 크게 격돌한 매설란이 온몸으로 진동을 느끼면서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콰차차차창…!
그 바람에 지붕의 기왓장이 날아가면서 기다란 흔적을 남겼다.
다음 순간 묵양제가 비릿한 웃음을 남기는가 싶더니,
슈카카카카카캉!
그가 한 차례 검을 휘젓자 초환당 지붕의 기와들이 조각조각 깨지면서 그 파편들이 비수처럼 변해 날아들었다.
“실드!”
매설란이 얼른 마법을 펼치자,
투타타타타타타타탕!
마치 쇠철판에 콩을 볶는 소리가 나면서 날아들던 기왓장이 조각조각 터져 나갔다.
실드가 깨지는 순간, 그녀는 연쇄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나머지 기왓장을 막아냈다.
타타타타탕…!
그렇게 수십 장의 기왓장들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
타앗!
묵양제가 바닥을 차면서 그녀를 향해 쏜살 같이 날아들었다.
묵양제가 박찬 자리의 지붕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그 아래에서 작업을 하던 의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했다.
그야말로 초환당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치잇!”
쉴 틈 없는 공격에 매설란이 혀를 차고는 얼른 두 자루의 검을 교차하면서 막아냈다.
쉬따앙!
시커먼 검강 줄기를 막아낸 매설란이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후원 한쪽 구석에 처박히면서 미끄러졌다.
콰콰콰콰과아악!
쓰러진 매설란 주위로 널찍한 구덩이가 생겼다.
“매 총관, 조심하게! 저자는 지금 일생의 모든 기력을 한순간에 쏟아 붓는 것이야. 무엇에 당한 것인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그가 가진 모든 걸 토해내는 상황이야!”
그 말은 곧, 평생 나눠 쓸 선천지기마저 모두 끌어올려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보통은 그걸 의식적으로 할 수는 없다.
인간의 본능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본능이 자기 수명을 깎아 가면서까지 힘을 쓰도록 놔두진 않기에.
한데 지금 묵양제는 어이없게도 그런 상황이었다.
진백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손목을 낚아챘을 때 순간적으로 진맥을 해본 탓이었다.
그때 진백은 이미 묵양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갑작스런 공격에 이러한 사실을 알릴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매설란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묵 조교! 대체 왜 이러는 거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울…!”
하지만 매설란은 그 말마저도 마저 맺지 못했다.
쉬이이이잇, 꽈앙!
혜성처럼 날아든 묵양제가 다짜고짜 매설란에게 검을 내려친 것이다.
츠츠츠츠츠츠츠츳…!
매설란이 뒤로 밀려나면서 두 손을 후들후들 떨었다.
어마어마한 강공을 온몸으로 막아냈기 때문에, 그녀가 입은 장삼이 터져 나가면서 여기저기가 찢어져 너덜거렸다.
그 바람에 그녀의 속살이 군데군데 드러나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웨엑!”
그녀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강공을 온몸으로 받아낸 탓에 내상을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묵양제를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 묵양제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가 가진 모든 기력에다가 사이한 기운까지 섞여 있었다.
제법 긴 싸움처럼 느껴졌지만,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났음에도 아직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번개처럼 번쩍번쩍 속전속결로 싸웠다.
우두둑.
묵양제가 매설란을 노려보면서 목을 꺾었다.
이제 그의 전신은 시커멓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작은 혈관 하나하나까지 도드라져 있었다.
알 수 없는 모종의 기운 때문에 그의 체내 기력이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대로면 둘 중 하나다.
매설란이 저 터져 나갈 듯한 기운을 막지 못해 죽거나, 묵양제가 저 모든 기운을 토해내고 죽어 버리거나.
하지만 이대로라면….
‘내가 먼저 죽어 버릴 것 같아.’
예전 같으면 이 상황에서 사비강을 찾았으리라.
그가 나타나서 구해 주길 바랐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적어도 저 괴물이 사비강에게 가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이 희생해서라도 저 재앙 같은 존재를 이곳에서 끝내 버리고 싶었다.
자신을 벗어나 누구도 다치게 만들지 않고 싶었다.
저런 괴물이 사비강 앞에 나타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 묵양제는 옷자락이 여기저기 찢어진 매설란을 보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온통 시커멓게 물든 눈동자에서마저도 그 더럽고 추악한 욕망이 이글거리는 게 보였다.
그야말로 지금의 묵양제는 악랄한 욕망의 덩어리 같았다.
“하아악!”
묵양제가 거친 호흡을 내쉬며 그대로 매설란에게 달려들었다.
매설란이 이를 악물고 보법을 밟았다.
사사검법을 사용하는 그녀가 이만한 강공을 정면으로 받아서는 승산이 없었다.
최대한 흘려내고 배후를 치는 방법으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쉬이이잇!
‘이런 말도 안 되는…!’
순간 그녀의 표정에 절망감이 스쳤다.
묵양제의 공격이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서 그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아주 짧은 순간 일어난 보법을 그대로 쫓아오고 있었다.
이젠 정말 그 공격을 막아내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연검 두 자루를 교차하면서 강기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쩌어어어어엉!
허공을 찢을 듯 요란한 소리가 울리면서 두 사람이 격돌했다.
천지가 떨리고, 초환당이 흔들리면서 무너졌던 일부 천장이 더욱 균열이 가면서 무너져 내렸다.
검을 맞댄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이 닿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크읍!”
매설란은 다시 솟구쳐 오르는 핏물을 한 움큼 흘려냈다.
‘더 이상은… 힘들어.’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였다.
“으야아아아압!”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갑자기 하늘에서 그림자가 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퍽!
“악!”
묵양제가 매설란을 발로 차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묵양제가 서 있던 자리에 칼 한 자루가 떨어져 내렸다.
쉬까아앙!
바닥을 때린 칼이 웅웅 진동했다.
“헉, 헉,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사람은 다름 아닌 등부형이었다.
그가 묵양제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묵 형!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하지만 전신이 시커멓게 변해 버린 묵양제는 등부형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미간만 잔뜩 구길 뿐이었다.
“묵 형! 제발 정신 차리시오! 아무리 영약을 우리만 빼고 줬다지만 초환당을 찾아와 이렇게까지…!”
팟!
“컥!”
다음 순간, 등부형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어느새 바로 앞에 나타난 묵양제가 등부형의 목을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묵양제가 그대로 등부형을 바닥에 내려꽂았다.
꽈다아앙!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묵양제는 단 한순간에 만신창이가 된 등부형을 노려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콰악!
“보낼 수 없소. 묵 형… 제발 정신을 좀…!”
묵양제가 내려다 보니, 등부형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묵양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발을 휘둘렀다.
슈우우우욱, 콰당탕!
담벼락까지 날아간 등부형이 그대로 무너지는 잔해 더미에 깔리면서 기절하고 말았다.
“아…!”
묵양제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매설란은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묵양제는 지금 폭약 같은 존재였다.
마침내 묵양제가 매설란 앞에 섰다.
그의 표정에 섬뜩한 광기가 보였다.
그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검을 들어올렸다.
매설란이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를 죽여도 당신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거야!”
찰나, 묵양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가 싶더니,
쉬이이이익!
매설란은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칼날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검신이 목에 닿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푸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뜨끈한 피가 튀었다.
그 피는 매설란을 흠뻑 적셨다.
매설란이 미간에 힘을 주고 보니, 묵양제의 가슴을 뚫고 튀어 나온 베르타스가 보였다.
곧이어 그립고 그리웠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늦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