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45화 (545/670)

# 545

귀환 마교관

545화

사비강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잘 생각해라. 너희 마족들은 충성을 맹세하는 순간, 많은 제약이 따르게 될 테니.”

그랬다.

실제로 마족들은 충성을 서약하는 순간, 마율(魔律)에 의해 그들의 주인에게 많은 권한이 자연적으로 주어진다.

헬무트가 이들에게 사용했던 콤펠로가 대표적인 경우다.

고르모스가 주먹을 손바닥에 펑펑 치며 말했다.

“생각해 볼 게 뭐가 있습니까? 일단 제안을 받아들이고 저 녀석을 묵사발 내지요!”

하지만 지크는 신중했다.

우선 헬무트가 사비강에게 고분고분 복종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단순히 미친놈이 아닐 거야. 뭔가 있다.’

그런 지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고르모스가 말했다.

“만에 하나 저놈 말대로 우리가 저 녀석 하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충성 맹세를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 한 마디가 지크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과연 그렇다.

어차피 마족 기사는 강함을 쫓는 본능이 있다.

만약 사비강이 자신들을 모두 상대해서 이긴다면?

그럼 주인으로 섬기지 못할 게 뭔가?

애초에 헬무트 기사단의 기사들은 헬무트가 인간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도 충성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기사단에 비해 마족 특유의 우월의식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지크의 입이 열렸다.

“좋다, 받아들이지.”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며 히죽 웃었다.

“마율에 따라 맹세할 수 있겠나?”

“맹세한다.”

지크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잘 생각했다. 그럼 지금부터 군기를 잡아 볼까?”

말을 마친 사비강이 지상으로 착 내려섰다.

지크는 사비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도대체 저 인간이 어떻게 단신으로 천 명이나 되는 마족을 상대하겠다는 건지 궁금했기에.

마침내 사비강이 양팔을 활짝 펼치더니 말했다.

“나와라, 나타스!”

다음 순간,

쑤아아아아아앙!

그의 쇄골 사이에 박힌 해골에서 강렬한 빛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넝마를 걸친 해골기사 나타스가 나타났다.

- 죽음을 다스리는 악령, 나타스가 그대의 부름에 답했다.

갑자기 나타난 나타스를 보고 지크와 고르모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째서 저놈이 타락한 악신을 부릴 수 있는 거지…?’

그러는 사이 사비강은 나타스에게 뭐라고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나타스가 몸을 돌리더니 소리쳤다.

- 일어나라! 나의 병사들이여!

곧이어 그가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낫을 한 차례 휩쓸 듯 휘두르자,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이 비척비척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르모스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이런…! 이 녀석들 죽음의 군단입니다! 아무리 베어도 다시 움직이는 녀석들 말입니다!”

결국 쉽지 않은 상대라는 뜻.

지크가 이를 빠득 갈고는 소리쳤다.

“인간!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분명 단신으로 싸우겠다고 한 것 같은데?”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원래 인간이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걸 모르고 있었나?

“뭣이?”

“하지만 걱정 마. 일단 지금은 약속을 지켜 줄 테니.”

“무슨…?”

“이 녀석들은 싸우지 않는다. 다만, 나와 싸우다가 도망갈 녀석들을 베어 버릴 용도다. 한 마디로 경계를 만들어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 뿐이야.”

그제야 지크와 고르모스는 나타스가 일으킨 죽음의 군단이 자신들에게 곧장 달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신 그들은 사비강의 말대로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서서 기사단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이제부터 여긴 임시 비무대다. 이 비무대를 벗어나서 달아나는 녀석은 저들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일 거다. 그러니 허튼 생각은 하지 말도록.”

지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미친 놈… 정말 단신으로 싸우겠다는 건가?’

지크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비강은 목을 우두둑 꺾어 보이고는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자, 덤벼라. 맨손으로 때려눕혀 줄 테니.”

사비강의 입매가 히죽 치켜 올라갔다.

**

꽈자자장!

“크아악!”

“으악!”

마족 기사들이 여기저기 튕겨 날아갔다.

지크와 고르모스는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한 기분으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저건… 인간이 아냐! 괴물이다!’

사비강은 결코 허세를 부린 게 아니었다.

나타스를 이용해서 죽음의 군단이 포위한 것도 마족 기사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마족 수백 명이 한꺼번에 덤볐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론, 사비강은 마족 기사들을 단숨에 죽이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덤빈다고 해도 사비강 한 사람을 동시에 공격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사비강이 언제까지 막아내며, 어디까지 반격할 수 있느냐였다.

한데…

“미친…!”

입가에 피를 흘리는 고르모스가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저만치 사비강에게 덤비는 마족 기사들이 연신 튕겨 나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전투 불능 상태가 된 마족들이 사비강 근처에 겹겹이 쌓여 갔다.

상처투성이가 된 지크가 마지막 일격을 명했다.

“전부 죽을 각오로 놈을 쳐라!”

“흐아아아앗!”

마족 기사들이 투기를 끌어올려 사비강에게 불나방처럼 날아들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불나방이었다.

꽈자자자장! 퍼퍼펑!

사비강이 주먹을 휘두르면 천지가 격동하는 굉음이 울렸고, 장을 뻗어내면 하늘이 무너지듯 뇌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때마다 마족 기사들이 속절없이 튕겨 날아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실 사비강이라고 할지라도 단신으로 천 명의 마족 기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여전히 힘이 넘치고 있었다.

여기에는 추량이 데려온 반묘의 영향이 컸다.

일성검문에서 관망하고 있는 추량 곁에서 반묘가 꾸준히 사비강의 기운을 버프해주는 것과 동시에 마족 기사들에게는 디버프를 건 것이다.

지크가 혀를 차고는 소리쳤다.

“치잇! 고르모스!”

“갑니다!”

고르모스가 바닥을 차고는 사비강에게 날아갔다.

그는 이제 여분의 힘을 전혀 남겨 두지 않았다.

이번 일격으로 사비강을 완전히 끝장낼 셈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한낱 인간 하나에 마족 기사 천 명이 추풍낙엽처럼 나뒹굴다니!

“흐아아압!”

고르모스가 먼저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사비강에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고르모스는 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사비강이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을.

‘웃어…?’

쒸에에에에엑!

그의 주먹이 마력을 담아서 쏘아져 나갔다.

쩌어엉!

마력이 일순간 폭발하면서 사비강의 안면을 강타했다.

‘됐다!’

하지만 그는 곧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르모스의 커다란 주먹은 사비강의 손바닥에 막혀 있었다.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고는 말했다.

“그러게 혼나기 전에 알아서 꿇었어야지.”

쉬이이이익!

사비강의 주먹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꽈아아아앙!

마치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울리면서 육중한 덩치의 고르모스가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쿠당탕탕…!

결국 그는 눈을 허옇게 뒤집고는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고르모스의 뒤를 바로 이어서 달려들려고 하던 지크는 그 자리에서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애초에 고르모스가 달려든다고 해도 사비강을 제압하긴 어려우리라 짐작했다.

다만, 고르모스가 적당히 위협만 주었을 때, 자신이 빈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한데 이건 뭐….

‘아예 상대가 안 되잖아?’

마침 사비강이 몸을 돌려 지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지크.”

‘날… 알아?’

지크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비강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오래 전 죽었던 너를 다시 만나는 건 감회가 새롭군.”

“대체 무슨 소리를….”

“아, 너에게는 미래가 되겠군.”

지크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나를 따른다면 그 미래도 바뀔 테지. 혼란스러울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만하면 너희들에게 나를 증명한 것 같은데. 어떤가?”

지크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여 명의 마족 기사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다.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

사비강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결국 지크가 무너지듯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졌다.”

마율에 따라 헬무트 기사단이 사비강에게 완전히 복속되는 순간이었다.

**

전각 지붕 위에 사비강과 헬무트가 나란히 서 있었다.

무랑의 술법에서 깨어난 후, 헬무트는 지금까지 별 다른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짧은 순간 그는 미래를 경험했다.

동시에 과거이기도 했다.

시간이 혼재하니 머릿속까지 멍한 기분이었다.

사비강과 헬무트는 의식 세계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돌아온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사비강으로서는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꿈처럼 느꼈던 이 시간이 진짜 현실이라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깨워 준 매설란이 더 없이 고마웠다.

털썩!

돌연 헬무트가 사비강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 바라보자, 헬무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뭐가?”

“제가 그분을 상처 입혔습니다.”

그제야 사비강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매설란에 대한 이야기다.

의식 세계에서 헬무트는 아라니우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한데 아라니우스가 사실은 매설란이었다.

때문에 매설란은 실제로 꽤나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다행히 무랑이 재빨리 조치를 취한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지금 그녀는 지객당에서 휴식하면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너는 나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

“하지만 저 때문에….”

“지나간 일을 자책해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앞으로가 중요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헬무트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더라면 정말이지 이상한 광경이었으리라.

불과 반 시진 전만 해도 사비강을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던 헬무트가 아니던가?

한데 저렇게 갑자기 변하다니!

하지만 의식 세계에서 십 년이 넘도록 충성을 해온 헬무트에게는 이런 자신의 각오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사비강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한 시진 전이 후회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사비강이 헬무트를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이번엔 너의 충심을 믿어 보지.”

헬무트가 감격한 눈으로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의식 세계에 있던 지난 십 년간, 사비강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사비강은 끝내 자신을 믿지 않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럴 터였다.

한데…

지금 사비강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사비강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말했지? 실패하면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성공하겠다고. 이제부터 마왕을 사냥할 시간이다.”

“예, 주군!”

헬무트가 충심을 담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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