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14화 (514/670)

# 514

귀환 마교관

514화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무인이 동경을 들어 냅다 집어던졌다.

스캉!

베르타스가 섬광을 그리며 솟구치자 동경이 그대로 반토막 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너, 너 이 새끼 뭐야?”

차앙!

무인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방안을 둘러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

“뭐?”

“네가 말했잖아? 욕망에 충실하라고. 지금 내 욕망은 네놈들을 갈가리 찢어 죽이는 거거든.”

“이 미친…!”

무인이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달려들려는 순간,

쏴아아앙!

베르타스가 허공을 가르며 곧장 그의 이마로 날아들었다.

“헙!”

그가 헛바람을 삼키며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무인으로서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보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한 치욕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지 베르타스가 뿜어내는 그 살기에 온몸이 꽁꽁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크읏…”

그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베르타스가 여전히 살기를 뿜어내며 이마에 검봉을 갖다 댄 채 둥실 떠 있었다.

사비강이 자박자박 걸어오더니 대뜸 무인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콱!

“크윽!”

다음 순간,

슈우우우욱, 꽈자아앙!

사비강이 그를 들어 그대로 창문으로 집어던졌다.

창문을 깨부수며 날아간 무인이 마을 광장까지 미끄러지면서 나뒹굴었다.

“크윽…! 제길…!”

그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데,

팟!

“으헉!”

눈앞에 나타난 사비강을 본 그가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사비강이 그의 머리카락을 다시 움켜쥐고는 그대로 주먹을 내다꽂았다.

퍼억!

“커억!”

이가 부러진 무인이 코피를 줄줄 흘리며 축 늘어졌다.

다음 순간, 사비강이 주변을 슬쩍 훑어보고는 사자후를 터뜨렸다.

“다들 기어 나와!”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천지에 벽력이 울리고 땅이 흔들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만 같았다.

사비강의 손에 머리카락이 잡힌 무인은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피를 울컥 토해냈다.

사자후로 인해 내상을 입은 것이다.

“뭐야? 이게? 지진인가?”

“무슨 소리야?”

“누구지…?”

마을 곳곳을 습격해서 약탈과 겁간을 일삼던 무인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비강을 보았다.

마침 개중 한 명이 사비강을 알아보았다.

“엇! 저건… 멸마궁주 사비강이다!”

“저놈이 신천교도를 인질로 잡았다!”

“어차피 놈은 혼자다! 죽여 버려!”

“노옴! 마족의 심판을 받아라!”

“죽어라! 사비강!”

신천교도들이 일제히 사비강에게 몸을 날려 왔다.

순간, 사비강이 바닥을 탁 차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까불지 마라!”

다시 한 번 그의 목소리가 천지에 격동했다.

“크읏…!”

“으윽…!”

몇몇 이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울컥 피를 토해냈다.

사람들이 고개를 꺾어 들고 허공에 뜬 사비강을 보았다.

그 순간,

화르르륵, 콰아아아!

그의 전신에서 불기둥이 치솟는가 싶더니 이내 온몸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손에 들렸던 무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8서클의 마법, 블레이즈 가디언이었다.

일전에 적면인을 상대했을 때 사용했던 마법이다.

온몸이 불덩이에 휩싸인 사비강의 모습은 그야말로 화마(火魔) 그 자체였다.

휘르르륵, 휘르르륵…!

치이이이이익!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불덩이가 바닥에 닿으면서 타들어 가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전신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점차적으로 그의 몸에 흡수되며 붉게 응집됐다.

신천교도들은 물론, 멸마궁의 무인들조차 그 압도적인 모습에 입을 쩍 벌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사비강이 신천교도들을 훑어보았다.

“감히 내게 덤비다니. 너희들은 마족을 두려워하면서 내가 두렵진 않은가보군.”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불길이 넘실거렸다.

“나는 너희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마족들을 한때 발아래에 두었던 존재다.”

“뭐, 뭣들 하느냐! 저 개소리를 언제까지…!”

휘르르르르르륵!

찰나, 사비강의 몸에서 불줄기 하나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날아가더니 소리친 신천교도의 몸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크아아악!”

그 역시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항거 불능!

지금 이 순간 사비강은 그 누구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불길에 휩싸인 사비강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신천교도들을 내려다보았다.

“꿇어.”

“…….”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사비강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자, 신천교도들이 병장기를 버리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빌어라.”

다시 한 번 명이 떨어지자,

“살,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지존이시여! 용서해 주십시오!”

신천교도들이 저마다 소리치며 용서를 빌었다.

정말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기롭게 달려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만큼 사비강의 모습은 위압적이었다.

사비강이 냉소를 지었다.

“내가 너희들을 용서하기 힘든 건 누구보다도 깨끗한 척했던 것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돌아섰기 때문이야. 그런 가식이 도저히 용서가 안 돼. 그리고 지금 내 욕망은 너희들에게 엄벌을 내리라고 소리치고 있거든.”

말을 마친 그가 양손을 활짝 펼치자, 그의 몸에서 수백 가닥의 불줄기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휘르, 휘르, 휘르르륵!

“크아아악!”

“아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신천교도들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갔다.

**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추희룡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탁자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는 사비강과 추량이 앉아 있었다.

사비강은 매설란을 지객당에 머물도록 했고, 한동안 혈사련과 인연이 있었던 추량만을 대동했다.

사비강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오는 길에 쓰레기가 보여서 청소 좀 했습니다.”

“허허, 어딜 가나 지저분한 것들이 꼭 널려 있지요.”

“호남은 상태가 더 심하더군요. 혈사련에서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언중유골을 눈치 챈 추희룡이 넌지시 말을 돌렸다.

“허허허, 아시겠지만 이젠 힘없는 골방 늙은이일 뿐이라서 말입니다.”

“그럴 리가요. 감히 혈사련주님을 누가 무시한단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일로 바쁘셨던 건 아닌지요?”

“제가 다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글쎄요. 저 같은 사람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지도 모르지요.”

“재미있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요즘은 그저 몸 사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마령교보다 더 무서운 마족이 설쳐대는 세상 아닙니까?”

“련주님은 몸을 사리실 게 아니라, 마족을 섬멸하기 위해 앞장을 서 주셔야지요.”

“물론, 정도맹과 멸마궁에는 적극 협조해 드릴 겁니다. 오늘은 무슨 볼일로 이 먼 길을 오셨는지요? 전서를 보내셔도 궁주님의 부탁이라면 제가 거절할 리는 없을 텐데.”

“오랜만에 직접 뵙고 싶었습니다. 지난번의 일에 대해 감사도 드릴 겸.”

“지난번의 일…? 아아, 멸마관 말씀이시군요.”

사비강이 찻잔을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멸마관이 위기에 처했을 때, 추희룡이 혈사련 무인들을 파견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그제야 추희룡의 안색이 조금 밝아지며 손사래를 쳤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궁주님과 저 사이에 그런 정도로 따로 인사 나눌 일은 아니지요.”

“그렇습니까?”

사비강이 빙그레 웃으며 되묻자, 추희룡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사비강이 저렇게 이유 없이 친절한 웃음을 지을 땐 늘 뜻하지 않는 말이 튀어나오곤 했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련주님께서는 직접 오시지 않았습니까?”

다짜고짜 쿡 내질러 온 질문에 추희룡이 잠깐 당황했다.

‘역시나 이 자의 화법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군.’

온갖 예의는 다 갖추는 척하다가 또 이럴 땐 곤란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던지지 않나?

“허허, 하필 그 즈음 총타에 손님이 온 터라….”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즈음에 혈도사괴(血刀四怪)가 혈사련을 방문한 터였다.

그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혈사련 총타에 남아 추희룡의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혈도사괴는 강남에서는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초절정의 고수들로, 성정이 잔혹하고 괴팍한 것이 특징이었다.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짐짓 날카로운 눈빛으로 추희룡을 응시했다.

“그럼… 련주께서는 그날 멸마관에 오시지 않은 게 확실하군요.”

“그렇습니다만.”

“하면 멸마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대략의 사정은 전해 들었습니다. 전각들이 모두 전소되었다고. 그리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옹기승도 그날 죽었습니다.”

사비강이 불쑥 꺼낸 이야기에 추희룡이 흠칫거렸다.

하지만 굉장히 미세한 반응이었기에 사비강이 눈치를 챌 정도는 아니었다.

추희룡이 차분하게 반문했다.

“그렇습니까?”

“예. 한데 최근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차를 한 모금 들이킨 사비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구강룡 말입니다.”

이번만큼은 추희룡의 반응을 사비강도 눈치 챘다.

찻잔으로 향하는 손끝이 멈칫하는 짧은 순간을.

추희룡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찻잔을 들었다.

“구강룡… 기억합니다. 본련에서 한때 살풍단을 이끌었지요. 정말이지 대단한 무인이었습니다. 옹기승의 친형이었다지요.”

“예, 그가 호남에서 옹기승을 봤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추희룡이 눈을 크게 뜨면서 찻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 반응이 워낙 자연스러웠기에 사비강조차도 그가 진심으로 놀라는 것인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봤다는 겁니까? 호남이라면 본련이 이 잡듯이 뒤질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수하들을 통해 샅샅이 수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목격한 장소가 파괴된 상황이더군요.”

“저런…!”

“정말 이해할 수가 없지요. 옹기승은 그날 죽은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혹시 구 대협이 잘못 본 건 아니겠습니까?”

사비강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이상한 게 많습니다. 그 낡은 사당은 왜 산산이 부숴 버렸을까요?”

“흐음. 옹기승을 본 장소가 사당이었군요.”

“그렇다고 합니다. 그 안쪽에 비밀 공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비강이 찻잔을 완전히 비웠다.

추희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옹기승이 어째서 그런 곳에 있었을까요? 듣기론 대폭발에 휘말려….”

“마령혼의 기운이 그를 살렸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의식을 잃은 옹기승을 누군가 옮긴 것일 수도.”

“하지만 그랬다면 그곳에 흔적이 남지 않겠습니까?”

“그럴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흔적이 없다는 건….”

사비강이 추희룡을 빤히 응시했다.

“흔적 없이 그를 데려갈 수단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흔적 없이… 말입니까?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가령 마계의 기물을 이용했다든지요.”

사비강과 추희룡의 시선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뒤엉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