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7
귀환 마교관
507화
“헉, 헉, 헉…!”
유자양은 검을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리마저 후들거렸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어찌 이럴 수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을 쥔 혜현사태 역시 땀을 흠뻑 흘리면서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당무열은 상대적으로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그 역시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명불허전이로다. 이협에게 듣긴 했지만 사 관주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비무가 시작된 후, 세 사람은 동시에 합공을 펼쳤다.
따로 합격술을 맞춰 본 적은 없었지만, 세 사람 모두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약속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절로 합이 잘 맞아 들어갔다.
검기가 날아다니고 강기가 번쩍일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숨 막힐 듯한 공격이었다.
비록 정공이라지만 세 사람이 사비강에게 퍼붓는 공격은 하나 같이 목숨을 위협할 만한 살초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사비강의 대응이었다.
강기와 검기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막아낸 사비강은 천해심보를 이용해서 세 사람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 기이한 보법에 모여든 사람은 물론, 세 명의 장문인들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스무 합을 버텼다.
이제 남은 서른 합.
사비강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도 좋겠소?”
세 명의 장문인이 뜨악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면 지금까진 본격적이지 않았다는 건가?
유자양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 관주, 그대의 무공이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그런 허세는 보기 좋지 않구려.”
“그래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기회를 드리죠. 우린 그저 당장 필요한 자금만 빌려도 충분합니다.”
혜현사태가 말을 받았다.
하지만 사비강은 예의 그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 내가 충분하지 않소.”
“이런 답답한!”
유자양이 노호성을 터뜨리더니 바닥을 차고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쒸이이이잇!
시퍼런 검강이 곧장 사비강을 향해 쏘아졌다.
쩌엉!
베르타스가 검강을 막아내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사비강이 그대로 몸을 회전하면서 베르타스를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헛!”
유자양이 헛바람을 삼키며 얼른 몸을 뒤틀어 검을 돌려세웠다.
까앙!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어 올랐다.
유자양이 휘청거리는 순간,
탁! 탁탁!
사비강이 빠르게 손을 내지르며 점혈을 하는 것이 아닌가?
“크읏!”
유자양이 깜짝 놀라면서 비명을 터뜨렸다.
검에 베인 것도 아니고, 점혈을 당하다니!
초절정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상황이 나온 것이다.
마혈이라도 점한 것인지 유자양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려서 더 이상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사비강이 그를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당무열을 향해 쇄도했다.
“헛!”
당무열이 헛바람을 삼키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동시에 그가 양팔을 활짝 펼쳤다.
촤촤촤촤촤촤촤촤아악!
순간 수백 자루의 암기들이 빛살을 쪼개며 허공 가득 쏟아져 내렸다.
“오오! 당가의 절기, 만천화우다!”
“암기술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구경꾼들이 저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 암기가 너풀거리듯 쏟아져 내리니 사비강으로서는 마땅히 몸을 피할 곳도 없어 보였다.
때문에 그들은 사비강이 막강한 내공을 앞세워 호신강기를 펼쳐 막아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데 놀랍게도 사비강은 쏟아져 내리는 암기 사이로 몸을 내던지는 게 아닌가?
만천화우가 일반 암기술보다 무서운 점은 던져진 암기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암기가 꽃잎이 흩날리듯 아무렇게나 움직이며 떨어져 내리니 그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한데 천해심보를 펼친 사비강은 무수히 흩날리는 꽃잎 사이를 유유히 휘젓고 다니는 한 마리 벌과 같았다.
구경꾼들이 저마다 입을 딱 벌리고는 감탄했다.
“대, 대단하다. 당가의 만천화우를 저렇게 피하다니!”
“당가의 만천화우를 직접 보게 돼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피하는 진풍경을 보게 될 줄이야!”
“도대체 사비강 관주님의 한계는 어디까지지?”
만천화우를 펼친 당무열 역시 내심 놀라고 있었다.
‘과연 이협이 반할 만하구나! 놀랍다! 우리 세 사람의 합공을 지금까지 버틴 것도 모자라 이렇게 궁극의 기술마저 파해하다니! 하지만 나 또한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은 없소. 사 관주!’
당무열이 재빨리 내공을 끌어올리면서 손의 모양을 바꿨다.
그러자 만천하의 꽃비로 쏟아져 내리던 암기들이 마치 수백 마리의 나비 떼처럼 변하면서 사비강에게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야말로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만천화우에 이어 사천당가의 절기인 추혼비접(追魂飛蝶)을 연환식으로 펼친 것이었다.
애초에 던져 버린 암기를 이렇듯 이기어검술처럼 연환식으로 펼치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경지라고 볼 수 있었다.
구경꾼들은 이제 감탄도 지쳤는지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지켜보기만 했다.
순간 사비강이 다시 한 번 천해심보를 펼치며 손을 어지럽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풍을 쏘아 날아드는 암기들을 모두 쳐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무당의 태극권처럼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내더니 무수히 날아와 박히려는 암기들을 기로써 다스리는 게 아닌가!
투타타타타타타타…!
수백 자루의 암기가 사비강 앞에서 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서로 부딪쳐 연신 불꽃을 터뜨렸다.
이윽고 크고 둥근 공처럼 뭉친 암기들이 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전히 갇혔다.
한 마디로 당무열이 날린 수백 자루의 암기가 사비강의 수중에 들어간 셈이었다.
당무열이 두 눈을 찢어지도록 부릅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강호명숙들 사이에서도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당무열이었다.
한데 이래서야 원….
‘어른과 아이의 수준이군!’
때마침 지켜만 보던 혜현사태가 날카로운 기합성을 터뜨리며 검을 내질러 오는 것이 아닌가?
바로 아미파의 절기인 멸절검(滅絶劍)이었다.
“하아아아앗!”
그 순간, 사비강이 기의 흐름으로 허공에 가둬 두었던 암기들을 일제히 날려 보냈다.
촤라라라라라라라락!
“크읏!”
혜현사태가 얼른 검을 휘두르며 날아드는 암기를 마구 쳐내며 물러갔다.
따다다다다다다앙!
한편 그 모습을 보면서 당무열은 경악한 표정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맙, 맙소사…! 저건…!’
그는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사비강이 사용한 암기술은 분명 당가의 것이었다.
하지만 당가의 무공이 아니기도 했다.
‘만천화우와 추혼비접을 섞어 버리다니!’
그랬다.
만천화우와 추혼비접을 연환식으로 펼친 것만으로도 세간에서 놀랄 일인데, 사비강은 그 두 가지 암기술을 완벽하게 섞어 버린 것이다.
수백 자루의 꽃잎이 흩날리는 것과 동시에 그 사이를 마구 누비며 날아가는 나비들!
흩뿌려지는 암기들은 분명 그렇게 나뉘어져 있었다.
결국 혜현사태는 날아드는 암기들을 완전히 쳐내지 못했다.
피츗!
“큿!”
암기 한 자루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을 때,
쉬이잇, 팍!
파파파파팍! 팍팍!
뒤이어 날아든 암기가 그녀의 발아래에 떨어지더니, 곧 다른 암기들이 그녀의 발을 둘러싸면서 연이어 내려 꽂히기 시작했다.
암기들은 앞뒤로 날카로웠기에 혜현사태는 섣불리 발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암기가 새싹처럼 돋아난 땅에 완전히 갇혀 버린 형태였다.
혜현사태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날아드는 암기를 쳐냈다.
“흥! 겨우 어깨를 스친 정도로 날 제압했다고 하진 않으시겠지!”
따앙!
마지막 암기를 쳐낸 혜현사태가 사비강을 빤히 노려보았다.
사비강이 불쑥 말했다.
“멸절검.”
“뭐요?”
“방금 사용한 초식은 분명 멸절검일 터.”
“그렇습니다만?”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기수식을 보고 알아봤소.”
“흥! 기수식을 보고 멸절검을 알아맞힌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순간 혜현사태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건…?’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우연일까?
혜현사태는 지금 정확히 멸절검의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우연이 아니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정확한 기수식이다.
어째서?
미간을 잔뜩 구기고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던 혜현사태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발끝의 방향이…!’
달라졌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분명 달라졌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그 차이를 눈치 챌 수 없을 정도지만, 혜현사태는 분명한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비수를 튕겨 냈을 때를 떠올리고는 그와 똑같은 자세를 취해 보았다.
“……!”
흠칫 몸을 떠는 혜현사태를 보며 사비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지금처럼 무게 중심이 일 푼 정도 앞으로 실려야 하고, 발의 각도가 종이 한 장 차이만큼은 틀어졌어야 하오. 그걸 고친다면 아마 대성할 수 있을 거요.”
혜현사태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모멸감이나 수치심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얻지 못한 해답을 얻은 것에 대한 기쁨에 더 가까웠다.
초절정 고수가 기수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서 검법을 대성하지 못했다고 하면 웃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극강의 고수일수록 본인만의 고집이 생겨 나쁜 버릇이 그대로 굳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게 좋은 방향일 때는 새로운 무공 기법과 연결이 되고 시류를 만들지만, 나쁜 방향일 때는 끝내 대성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되고 만다.
게다가 이처럼 미세한 차이라면 어지간한 고수도 찾아낼 수 없기에 대성을 이루지 못하는 원인을 끝내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혜현사태는 초절정의 영역에 올라 있었지만, 멸절검만큼은 대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데 이런 단순한 문제였다니!
더 놀라운 것은 문제점을 이런 방식으로 알려 주다니!
‘도대체 사비강… 저자는 어디까지 날 놀라게 할 셈인가?’
사비강은 얼어붙은 혜현사태와 당무열을 그대로 두고는 마혈이 짚인 유자양에게 다가갔다.
사비강이 그의 등에 손을 대자, 유자양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무, 무슨 짓이오?”
“기의 흐름을 도울 따름이오.”
무뚝뚝하게 말을 마친 사비강이 손끝으로 내공을 불어넣었다.
“헙!”
유자양은 전신혈맥을 따라 휘도는 내공을 느끼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공의 질이 달라진 느낌이다! 가만… 이것은…?’
유자양이 생소한 느낌을 받자, 사비강이 설명을 덧붙였다.
“마나라는 것이오. 청성파의 무공은 이 마나와 상성이 좋아서 내공에 한 줄기 마나만 섞어도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을 거요. 지금부터 내가 운기를 도울 테니, 그 방식을 잘 기억하고 매일 한 번씩 해주시오.”
유자양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사비강이 운기해 주는 느낌을 기억했다.
잠시 후 사비강이 손을 떼고 물러나자, 유자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을 느꼈다.
커다란 벽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벽이 일시에 무너진 기분이었다.
이번엔 당무열이 얼른 달려왔다.
“조금 전에 보여주신 그 암기술은 대체 뭡니까? 어떻게 하는 겁니까?”
“당가의 만천화우와 추혼비접을 동시에 섞은 거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여쭙는 겁니다.”
“패배를 인정하면 가르쳐 주겠소. 총 이십사 수. 이대로면 내가 이긴 비무가 되겠는데… 어떻소?”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다음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장문인들이 포권하며 소리쳤다.
“사비강 궁주님께 한 수 배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비무에 진 자가 형식상 하는 말이 아닌, 그들 모두 진심으로 우러나와 소리친 것이었다.
“우와아아아!”
연무장 주변으로 함성이 가득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