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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03화 (503/670)

# 503

귀환 마교관

503화

저벅…!

문득 등 뒤에서 들린 인기척에 능운파가 몸을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이자준이었다.

“맹주님…?”

그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능운파가 무감한 표정으로 이자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 단주… 왔는가?”

“이건 대체…? 맹주님은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이들은….”

“음… 이건 말이지….”

능운파가 말을 꺼내다가 천천히 검을 말아 쥐었다.

그가 막 움직이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얼마나 혼란스러우셨습니까?”

“음…?”

능운파가 눈살을 구기고는 이자준을 보았다.

이자준이 저벅저벅 다가오며 말했다.

“독향에 감염된 자들 중에서 주화입마에 걸린 자들이 상당수 있었지요. 그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더니, 여기서 이렇게 서로 상잔할 줄이야.”

그러더니 이자준이 떨어진 검 하나를 주워 들고는 자신의 옆구리를 스윽 베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가 곧바로 혈을 점해서 지혈했다.

능운파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건가?”

“보시다시피… 상황 파악 중입니다. 저도 이들에게 당해서 말입니다.”

이자준이 어딘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능운파를 바라보았다.

능운파가 모종의 뜻을 눈치 채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시 맹주님은 대단하시군요. 상처 하나 입지 않으시고 이들을 제압하시다니.”

“자네 역시 훌륭한 무인이군.”

능운파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답하자, 이자준이 충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과찬이십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이들에게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네.”

“이들은 이미 주화입마에 빠진 자들입니다. 오히려 맹주님은 그들에게 안식을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 받아들여 준다니 고맙군.”

그때 다시 인기척이 들리면서 매설란이 나타났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무인들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맹주님과 단주님은 괜찮으세요?”

“독향에 당한 무인들이 주화입마에 빠지면서 서로 상잔했습니다. 저는 옆구리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고, 다행히 맹주님은 무사하십니다. 맹주님이 아니었으면 저 역시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맙소사….”

매설란은 이자준의 말에 별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맹주나 이자준이 아군을 살해했을 거란 생각 자체가 무리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맹독에 당한 자들 중 주화입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들을 매설란 역시 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사비강이 무인들과 함께 나타났다.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그나저나 자네가 제때 나타나 줘서 다행이군. 정말이지 큰 위기였네.”

“맹주님이 지금까지 잘 버텨 주신 덕분입니다.”

대답을 하던 사비강이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고는 슬쩍 눈살을 구겼다.

그의 반응에 이자준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정말 참담하지요. 이들 역시 필살의 각오로 참전했다지만, 같은 인간끼리 칼부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을 텐데.”

“두 분이라도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그러자 능운파가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검으로 이들의 목숨을 끊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요.”

“그럼 우선 돌아가세. 혹시 그 사이에 별 일은 없었는가?”

“아, 마족들이 본격적으로 침공을 해왔습니다. 현재 사천성에서 전투 중입니다.”

“벌써?”

능운파 뿐만 아니라 주위에 모여 있던 다른 무인들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술렁거렸다.

능운파가 미간을 구기겨 물었다.

“자네 생각에 어찌 될 것 같은가?”

“사천은 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밖에 없겠지요.”

“허어, 그래도 사천에는 내로라는 문파가 제법 많은데….”

그 말 그대로였다.

예로부터 사천은 구파일방에 속하는 삼대 문파가 있던 곳이다.

똑똑한 강호인이라면 사천성에서만큼은 몸을 사려야 한다는 강호 속담이 있을 정도다.

“우선 돌아가셔서 총군사님과 대책 논의를 하셔야 할 듯합니다. 상황이 급박합니다.”

“잘 알겠네. 그럼 가세.”

능운파가 사람들을 이끌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은 사비강이 쓰러진 시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침 옆에 있던 매설란이 넌지시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좀 이상해서.”

“뭐가?”

“흐음. 주화입마에 걸린 자들이라고 보기에는… 시체 상태가 너무 깨끗하다고나 할까?”

“그 말은….”

뭔가가 떠올랐는지 매설란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가 곧 손사래를 쳤다.

“에이, 설마. 맹주님의 실력 잘 알잖아? 그분이 마음먹고 나서면 누구도 힘들 거야. 물론 당신은 빼고.”

“그렇겠지. 다만 맹주님의 성품상 마음먹고 수하들을 벨 위인은 아니라는 게 좀 걸리는 점이랄까.”

“많은 사람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보면 때론 독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맹주님에게 있어선 이들을 상대할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렇겠군.”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영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

“하아앗!”

기합성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과 동시에 푸른 섬광이 날아갔다.

쉬이이이잇!

쩌엉!

금속성이 울리면서 달려들던 오우거가 도끼를 들고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 틈을 타서 다른 무인이 재빨리 검을 내질러 갔다.

촤촤촤촤촤촤촤악!

마치 검신이 수십 개로 쪼개지며 비수처럼 날아 박히는 듯했다.

처음 날아든 푸른 검광은 바로 청성파의 검법인 청풍검(淸風劍)의 초식이었고, 두 번째로 날아든 수십 조각의 검편(劍片)은 송풍검(松風劍)의 ‘청풍송엽(淸風松葉)’이라는 초식이었다.

청풍검과 송풍검은 청성파의 검법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송풍검에 당한 오우거는 전신에서 핏줄기를 터뜨리며 그대로 육중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쿠웅!

청성파의 대제자인 장선학(長仙鶴)이 쓰러진 오우거를 보며 이를 빠득 갈았다.

“지긋지긋하군.”

송풍검 초식을 펼쳤던 이제자, 백천운(白天雲)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형, 이대로는 불리합니다. 후퇴해야 할 듯합니다.”

“사부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숲 곳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기합과 비명, 괴성이 어우러졌다.

그나마 인간과 마족의 싸움이었기에 적아의 구분은 명확했다.

하지만 산기슭에서 일어난 싸움이다 보니 아군의 자세한 위치까지는 알아내기 힘들었다.

“지금 이곳에 아미파와 사천당가도 함께 싸우고 있다. 본문이 먼저 후퇴를 한다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거다.”

“그렇다고 그들을 따라 우리도 전멸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제자의 반박에 장선학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싸움은 불리했다.

두정산의 마족 출현 소식을 듣고 너무 성급하게 나선 게 문제였다.

세 문파는 앞뒤 가리지 않고 두정산으로 모였다.

하지만 마족들의 기세가 생각보다 강했다.

“일단 사부님부터 찾아보자.”

“알겠습…!”

쉬이이이잇, 서컥!

백천운은 말을 마지막까지 잇지 못했다.

촤아아아악!

매끄럽게 잘려 나간 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고, 목의 단면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면서 장선학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장선학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운아!”

피를 뒤집어 쓴 그가 절규하듯 외쳤다.

백천운 뒤에는 시커먼 기운을 풀풀 휘날리는 마족 기사가 서 있었다.

웬만한 사람보다 머리 두어 개는 더 얹어도 될 만큼 큰 키에 육중한 덩치, 악마를 형상하는 뿔이 달린 투구, 그 안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한 갑옷.

사제를 잃은 장선학은 손을 가늘게 떨면서도 그 자리에서 꿈쩍할 수 없었다.

슬픔이나 절망, 분노보다도 먼저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 가득 차올랐다.

눈앞에 나타난 마족의 모습은 그야말로 죽음의 사자와 같았다.

저벅…!

마족 기사가 한 걸음 내디뎠을 때, 장선학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간,

탓!

마족 기사가 도약하는 것과 동시에 검을 곧게 내질러 왔다.

“이익…!”

아무리 공포에 질려 있다지만, 그래도 청성파의 대제자였다.

그가 얼른 왼손으로 풍뢰장(風雷掌)을 펼쳐 맞받아 쳤다.

짜르르르릉, 쩌엉!

벽력이 내리치는 소리가 울리면서 검과 장력이 부딪치며 튕겨 나갔다.

마족 기사가 휘청거리는 순간, 장선학이 이번엔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을 펼치며 날아갔다.

쒸이이이잇!

붉은 검기가 주변을 자욱하게 물들이면서도 검신을 에워싼 강기만큼은 푸른빛을 뿜어냈다.

‘됐어!’

하지만 검봉은 마족 기사의 몸에 닿기 직전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치면서 속절없이 튕겨 나가는 게 아닌가?

따앙!

“크읏!”

실드에 대해서 알 리 없는 장선학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눈을 휘둥그레 뜰 뿐이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이성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더 공격을 했더라면, 이번만큼은 통할지도 몰랐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적의 실드가 산산이 깨져 나갔기에.

하지만 장선학은 마족 기사가 마치 불사지체(不死之體)처럼 보일 뿐이었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그가 당황하는 사이 마족 기사가 재빨리 검을 사선으로 베어 들어왔다.

쒸에에에에엣!

‘제길! 내 운명도 여기까지구나!’

한때 청성파의 떠오르는 샛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그래도 자만하지 않았다.

문 내에 틀어박혀 열심히 수련을 하다가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가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청성파의 명성을 다시 한 번 전성기 때만큼 돌려놓겠노라 다짐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마족의 출현으로 모든 게 다 엉망이 됐다.

이렇게 이름도 모를 마족 기사에게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줄 누가 알았으랴.

‘사제, 미안하이. 곧 따라가겠네.’

장선학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한 줄기 바람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쉬이이잇! 푸우욱!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정적이 찾아들었다.

장선학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것이 죽음인가?

생각보단 고통이 없다.

마족에게 당하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그럴 리가.

지금껏 마물과 싸우면서 입은 자잘한 상처에서는 분명 통증이 있었다.

하면 죽었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장선학이 천천히 눈을 떴다.

“헛…?”

그는 자신을 내리치려던 마족 기사가 검을 치켜든 채로 돌처럼 굳어 버린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족 기사의 복부에 기이한 형태의 강기를 쑤셔 박고 있는 사내.

그가 뒤를 돌아보더니 히죽 웃었다.

“좀 늦었소.”

“당신은… 누구요?”

“나? 아, 사비강 관주님의 수제자, ‘추량’이라고 하오. 이제 막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온 길이오.”

‘폐관수련’이라는 단어에 유달리 힘을 주어 말한 추량이 마족 기사의 복부에 쑤셔 넣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쩌적… 촤촤촤촤촤악!

마나검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그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마침 마족 기사가 있는 쪽으로 모여들던 마물들이 그 파편에 맞으면서 몸을 뒤집고 쓰러졌다.

뿐만 아니라 복부에 마나검을 쑤셔 박고 있던 마족 기사는 배가 터져 나가면서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장선학은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추량이 그런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사람들 구하러 갑시다. 일단 전세가 불리하니 천천히 물러나면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것 같소.”

“그, 그럽시다.”

장선학이 얼떨떨한 얼굴로 대꾸하자, 추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반묘!”

그러자 그의 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쏙 튀어나오더니,

- 크르러엉!

한 차례 울부짖음과 동시에 호랑이처럼 변하는 게 아닌가?

“가자!”

- 크르렁!

추량과 반묘가 달려가는 모습을 장선학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맙소사…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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