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0
귀환 마교관
490화
진백이 낭하를 따라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결코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그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건 그의 신조나 다름없었다.
한데, 지금 그는 분명 서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표정에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이 또한 그에겐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의원의 표정은 언제나 한결 같아야 한다고 생도들에게 가르친 그였다.
의원의 표정이 어두워지면 환자들은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는 늘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신념을 지키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문을 벌컥 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사 관주!”
마침 무랑과 대화를 하던 사비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사비강은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용천관이… 용천관이 습격당했네!”
“용천관이…? 누구에게요?”
“마물들의 습격을 받고 있다는 급보가 맹으로 날아왔네!”
사비강은 잠시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마물들이 용천관을?
그 의문을 해소하려는 듯 진백이 말을 이었다.
“인근 지역에 소환지가 있었던 모양일세. 출입구가 형성되지 않아서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야. 그 소환지가 개방되면서 온갖 마물이 쏟아져 나온 모양일세. 게다가 그 마물들을 통솔하는 마족까지 가세한 모양이야.”
“그렇다면 심각하군요.”
“그렇네! 이제 어쩌면 좋겠나? 젠장!”
진백이 어울리지 않게 거친 말을 쏟아냈다.
그는 정도맹 의신각에서도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용천관에서도 그만큼 오랜 세월을 보냈다.
사비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을 진백과 함께 용천관에서 보냈다.
이 두 사람에게 용천관은 그저 그런 학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사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그러자 진백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딜 말인가?”
“어디긴요. 용천관이지요.”
“지금 말인가? 이제 가봐야 이틀… 아니, 정말 빨리 간다고 해도 하루는 꼬박 걸릴 텐데. 그땐 이미….”
“더 빨리 가도록 해봐야죠.”
진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찾아왔지만, 이제 와서 사비강이 가봐야 그들을 구할 수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사비강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났을 터였다.
마물들이 전멸을 하든, 용천관이 사라지든.
사비강이 무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말씀하신 걸 좀 빨리 써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어떻게든 해보겠네.”
“그럼 저도 믿고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때 매설란과 조문탁이 문을 벌컥 열면서 들어섰다.
“큰일 났어! 용천관이 습격을…!”
다짜고짜 소리치며 나타난 매설란은 실내 분위기를 눈치 채고는 흠칫 굳었다.
베르타스를 챙기는 사비강을 보며 매설란이 물었다.
“뭐하는 거야?”
“가야지.”
“설마… 용천관으로?”
“그래.”
“지금…?”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설란은 물론 조문탁도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정도맹과 용천관이 그리 멀지는 않다지만, 말을 타고 꼬박 이틀은 달려야 할 거리다.
한데 거길 지금 달려가겠다고?
습격당했다는 급보가 이제 날아들었으니, 지금쯤이면 사태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하고.”
사비강의 차분한 대꾸에 매설란과 조문탁은 입을 열지 못했다.
다른 방법?
그런 건 없다.
단지… 이 사실을 사비강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쩌자고 관주실을 찾아온 건지 모르겠다.
혹시 사비강이라면 뭐라도 방법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데 막상 이렇게 간다고 하니 약간의 회의감마저 든다.
‘절대 불가능할 거야. 너무 늦고 말 거야.’
그런 생각이 드는데도 이상하게…
‘저 눈빛만 보면 왠지 다 의지해 버리고 싶다니까.’
결국 매설란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멍청한 질문을 던졌다.
“늦지 않을까?”
당연히 늦겠지!
하지만 사비강의 대답은 달랐다.
“늦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가야지. 그러니 지금 이렇게 잡담할 시간도 없어.”
그러자 조문탁이 불쑥 나섰다.
“관주님! 저도 가겠습니다!”
“네 속도에 맞춰 주진 않을 거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질풍화를 신고 있는 이상 누구보다 빠를 거라고 자신합니다. 게다가 얼마 전 복용한 영약 때문에 내공이 크게 올라서 더욱 빨라졌습니다. 제 동문들을 구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럼 뜻대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볼게.”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잠깐!”
문밖으로 나선 사비강이 돌아서자, 매설란이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조심해.”
“걱정 마.”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다음 순간,
팟!
사비강이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곧이어,
쉬이이이잇!
한 줄기 바람이 그 자리에서 불어 나갔다.
조문탁이 놀라운 속도로 저 먼 곳을 내달리고 있었다.
‘부디 늦지 않기를…!’
진백이 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고 있는 자신이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천세명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온몸이 찢어진 흑귀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끝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연신 어깨를 들먹이면서 씨근거렸다.
그럴 때마다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태풍처럼 휘몰아치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천세명의 시선이 그의 주변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외눈박이 거구들이 목이 돌아간 채로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사이클롭스였다.
“대, 대단하군.”
그는 흑귀의 싸움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이클롭스가 천세명을 공격하려는 순간, 흑귀는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녀석들과 싸웠다.
갑자기 어둠이 확 펼쳐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다른 곳에서 나타나 사이클롭스의 목을 뒤에서 졸랐다.
그렇게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천세명까지 어둠에 완전히 삼켜졌다.
어둠 속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주변이 밝아졌을 때는 사이클롭스 두 마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흑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나타나길 반복했다.
손발이 구속되어 있었지만 그에게 큰 지장을 주진 않았다.
흑귀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저 검은 기운이 그를 삼켰다가 뱉어내곤 했다.
‘과연 사술은 사술인 건가? 그도 아니면 마계의 술법인가?’
하지만 흑귀가 마족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저것이 저자의 내공을 억누르고 있던 기운일지도….’
만물쌍두에게는 기를 펴지 못했던 흑귀가 갑자기 이리 나설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마물들이 발산한 마력이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위험해지자 일종의 각성 상태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지금 흑귀의 전신에서 굉장히 기묘한 기운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천세명이 흑귀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흑귀는 연신 어깨를 들먹이며 씨근거렸다.
“출혈이 심한 것 같은데, 일단 내가 지혈하고 금창약 좀 발라 주겠네.”
“크르르!”
“늘 말하지만 자네를 해칠 생각은 없네.”
천세명이 얼른 혈을 점해 지혈했다.
잠깐 흠칫거렸던 흑귀는 곧 침착함을 되찾고는 천세명이 하는 행동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천세명이 금창약을 바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문제로군. 저들을 구해야할 텐데.”
조금 전에 대적한 사이클롭스는 정말이지 무서운 녀석들이었다.
최소한 일류 고수 이상은 되어야 이런 녀석들과 겨우 대적할 수 있고, 절정은 넘어야 이길 승산이 있을 터였다.
한데 용천관은 다수의 생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물론 명문가의 뛰어난 후기지수들도 있으나, 생전 처음 본 마물들을 상대로 그들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다들 관주전으로 일단 피신했을 테지.’
관주전에 모인 교관들은 저 마물들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리라.
“자네,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은밀히 저기까지 접근… 음?”
천세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보게! 자네 어디에 있나?”
하지만 흑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천세명은 그저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다시 용천관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
구오오오오…!
은기륭이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리자 장삼이 부풀어 오르며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매섭게 여며진 눈길로 전방에 포진한 마물들을 훑어보았다.
리자드맨, 고블린, 사이클롭스, 웨어울프, 오우거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마물들이 운집한 채로 숨 막힐 듯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들이 뿜어내는 마력은 마령교가 뿜는 마기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비린내가 난다고나 할까?
마침 관주전에서 주유천이 달려 나와 보고했다.
“말씀하신 대로 기관을 작동해서 모든 창문을 철창으로 막았습니다. 이제 이곳 정문만 지킨다면 문제없습니다.”
“수고했소.”
주유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차앙!
그의 전신에서도 살기가 우러나왔다.
대부분의 생도들을 관주전으로 피신시켰지만, 몇 명은 저들의 발아래에 처참히 짓밟힌 채 목숨을 잃었다.
교관들도 여럿 죽었다.
물론 그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생도들을 구하지도 못했으리라.
마침 상필지도 옆으로 다가와 섰다.
“도대체 이놈들이 왜 본관을 친 걸까요? 마치 이건 처음부터 노렸다는 느낌이 강하군요.”
주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상 교관과 같습니다. 어째서 이놈들이 본관을 친 것인지….”
“이유야 아무렴 어떻소? 어차피 이 세상에서 박멸해야 할 마족이오. 불청객이 무단 침입했으니, 우린 응징을 할 수밖에.”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나저나 저들은….”
은기륭의 시선이 마물 사이에 섞여 있는 몇몇 이들에게 향했다.
바로 아라니우스 공작과 그의 심복 자베린 그리고 카시스 남작이었다.
마물들 사이에서도 유독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은기륭은 다른 어떤 녀석들보다도 그 세 명이 강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주유천의 표정이 굳었다.
“저들이 바로 저 짐승 같은 마물들을 이끄는 마족 같군요.”
한편 그들 맞은편에 서 있던 자베린이 아라니우스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송구합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전부 처리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아라니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들을 전부 처리해 버리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
“오히려 느긋하게 즐겨라. 베르타스를 취할 때까지는 이렇게 한곳에 모아 놓고 압박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군요.”
어차피 목표는 이들을 인질삼아 베르타스를 가진 사비강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때문에 아라니우스는 지금 이 상황 자체만으로도 만족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 누가 먼저 저들에게 마족의 위엄을 보여주겠는가?”
자베린이 나서려는데, 그보다 먼저 카시스 남작이 한 걸음 나섰다.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저 무지한 인간들에게 확실한 공포를 심어 놓겠습니다.”
아라니우스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경에게 맡기겠다.”
“감사합니다.”
카시스 남작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유천이 전음을 흘렸다.
[마치 인간 같군요.]
[저들이 인간의 모습을 한 건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소. 저들의 내면이 악이라는 게 중요할 뿐.]
그때 상필지가 나서며 말했다.
“제가 막아 보겠습니다.”
은기륭과 주유천이 그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상필지가 검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맡겨 주십시오.”
은기륭도 걱정 대신 고개를 끄덕여 믿음을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