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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82화 (482/670)

# 482

귀환 마교관

482화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사비강 역시 내심 놀라고 있었다.

사비강은 전생에서 정도맹이 마족들을 상대할 때, 만약상과 거래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정도맹은 만약상으로부터 만년설삼 두 뿌리와 천년설삼 일곱 뿌리를 구입했다.

하지만 공청석유도 구입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때 정도맹은 엄청난 비용을 지출했고, 그 때문에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일 지경까지 갔다.

이번에 만약상을 찾아오면서도 그 정도 수준일 거라고 짐작했다.

한데 이건…

‘그 당시 모든 걸 팔지 않았다는 건가?’

돌연 인간에 대한 환멸감이 들었다.

중원의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도 돈 한 푼의 이기심으로 자멸하는 꼴이라니.

마족들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한심하고 웃겼을까?

“홍염.”

“예, 주군.”

허공에서 홍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은 내가 챙길 테니, 바깥의 물건들을 빠짐없이 맹으로 옮겨라.”

“알겠습니다.”

사비강이 만년설삼을 향해 손을 뻗으려고 할 때였다.

“외람되지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노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사비강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 시종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지?”

사비강이 묻자, 노파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 물건들은 저희의 목숨 값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려줬잖아.”

그때 갑자기 노파가 털썩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이마를 쿵 찧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물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만년설삼 두 뿌리와 천년설삼 다섯 뿌리가 더 있습니다. 그것도 내어 드리지요.”

그 말에 사비강과 매설란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온 것만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한데 여기에 또 숨겨 둔 것이 더 있다니?

사비강이 놀란 감정을 숨기고 물었다.

“그게 전부인가?”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노파의 태도로 보아서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걸 내게 순순히 내놓겠다는 거지?”

“이제부터 주군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매설란은 다시 한 번 당황했다.

사실 노파는 지금 승부수를 던지는 중이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사람을 보는 안목만큼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그녀였다.

그녀는 지금이야말로 사비강의 손을 잡고 미래를 기약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어차피 지금은 난세.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만약 마족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중원인에게 미래는 없을 터.

하지만 강호가 승리한다면, 사비강의 위세는 어마어마한 수준이 되리라.

한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럴 때야말로 도박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자에게 내 모든 걸 걸어 보겠다.’

그녀는 사비강이 아일리드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자라면 걸어 볼 만하다고.

그리고 이런 자라면 결코 흥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먼저 내줘야 한다.

먼저 보여줘야 한다.

이쪽에서 얼마나 간절한지를.

아니나 다를까, 사비강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물었다.

“원하는 게 있을 텐데?”

“이 난세가 끝나면 한 가지만 약조해 주십시오.”

“뭐지?”

“전쟁이 끝난 후 마족들의 유해 일부를 저희들이 취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셨으면 합니다.”

쉽게 말해 전리품 일부를 가져가겠다는 말이다.

매설란은 내심 감탄했다.

지금 상황으로 노파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거래에 들어간 것이다.

앞서 모든 것을 공짜로 내어 줄 위기에 처했지만, 이제는 투자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거기에 ‘충성’이라는 단어를 양념처럼 얹었을 뿐.

하지만 매설란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충성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이런 사람들은 뼛속까지 장사치다.

자신들이 무엇을 내놓아야 원하는 것을 얻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한편 노파는 고개를 조아리며 사비강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잖아도 만약상 내부에서도 더 이상 영약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소환지 토벌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오던 차였다.

복용법이 까다롭고 소화하기 힘든 중원의 영약과 달리, 소환지에서 획득하는 마계 도구들은 복용이 간단하고 소화가 쉬웠다.

뿐만 아니라 마물들의 유해에서는 각종 쓸모 있는 도구들을 수거할 수 있지 않은가?

만약 이 난세가 끝났을 때, 인간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날이 오면 그것을 누가 취하느냐에 따라 강호의 구도가 달라지리라.

그렇게 보면 지금 내놓는 만년설삼 일곱 뿌리는 결코 과한 투자가 아니리라.

사비강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충성은 공짜로 하지 않겠다는 말이군.”

노파가 그 미소를 따라하듯 입매를 틀어 올리며 대꾸했다.

“저는 장사치입니다. 계산은 철저하지요. 고로 조건만 맞는다면 제 충성은 확실할 겁니다. 약속드리지요.”

잠시 후 사비강의 입이 떨어졌다.

“좋아. 그 충성을 사도록 하지.”

**

바리탄은 창밖으로 저물어 가는 석양을 보고 있었다.

금빛 노을이 그의 전신을 물들였다.

존야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을 것 같으냐?”

바리탄이 슬쩍 묻자, 존야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나도 늙어서 주책이구나.’

하지만 정말로 바리탄은 아름다웠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존야가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답했다.

“사비강은 결코 쉬운 자가 아닙니다.”

“아일리드 자작이 실패했을 거라고 보느냐?”

“…물론 위대하신 존재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히 미천한 저의 의견을 물으신다면, 그분 역시 어려울 것이라 봅니다.”

바리탄이 스윽 돌아서더니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 역시 너의 생각과 같다.”

애초에 정보가 정도맹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것이었다.

분명 사비강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상 아일리드 자작은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조차도 사비강은 꽤나 까다로운 상대였다.

해서 그를 제거하기보다는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고.

하지만 아라니우스 공작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는 마왕께 충성심을 돋보이고 싶어서 안달난 자란 말이지.”

그 빈틈을 이용하면 분명 기회가 생기리라.

바리탄이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 사비강이라는 자는 참으로 기이한 존재란 말이지. 한낱 인간으로서 어찌 그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흥미로워.”

그 순간 존야의 눈빛에 아주 잠깐 씁쓸한 감정이 스쳤다.

놀랍게도 그것은 질투였다.

바리탄이 사비강에게 그런 흥미를 가진다는 것조차 샘이 난 것이다.

이토록 순수한 질투심이 생긴다는 것 자체에 존야는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리탄은 여전히 예의 그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가자꾸나. 공작과 만날 시간이 다 되었다.”

**

“역시 본모습이 보기 좋군.”

아라니우스가 마주 앉은 바리탄에게 무의미한 인사를 건넸다.

“덕분입니다.”

바리탄은 최대한 공손한 자세를 보였다.

“덕분은 무슨. 내가 뭘 한 게 있겠나? 다 폐하의 뜻이었지. 어쨌든 축하하네.”

사실 그는 바리탄이 육신을 되찾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던 마족 중 한 명이었다.

결코 바리탄의 본래 모습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그에게 속내를 꺼내 보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자신이 관할하는 임무는 바리탄이 쌓아올린 공로를 가로채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더는 몰아붙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참에 중원에 먼저 머물며 실정을 파악했던 바리탄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바리탄이 빙그레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공작님이 절 미워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자네를 왜 미워하겠나? 아, 자네의 지난 과오에 대해서는 유감이라 생각하지만, 이미 삼백 년이나 지난 일이지. 인간들에게 삼백 년은 내세를 기약해야 할 만큼 긴 세월이지.”

말을 마친 아라니우스가 입매를 슬쩍 틀어 올렸다.

‘자네를 잘만 이용한다면 마왕께 나의 충성심을 더욱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미워할 이유가 없지.’

한편 바리탄은 그런 아라니우스의 속내가 빤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용해 보시오. 마음껏.’

바리탄이 속마음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아직 소식은 없습니까?”

“아직일세. 하지만 별 문제야 없겠지.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될 것 같네.”

바리탄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다행이군요.”

아라니우스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한낱 인간들에게서 영약을 찾아오는 일이 무엇이 그리 어려울까?

그런데 그때였다.

“공작님.”

허공에서 탁한 목소리가 휘몰아치듯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서부터 이미 불길함이 깃들어 있었다.

바리탄은 입매가 말려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무슨 일인가?”

아라니우스가 불편한 표정으로 묻자, 탁한 목소리가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아일리드 자작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뭣이?”

순간 아라니우스가 벌떡 일어났다.

정말이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주 잠깐 바리탄을 의심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흑성을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아들러 백작이 밖에 나가 있을 뿐이었다.

‘설마 아들러 백작이…?’

의심은 곧바로 질문이 되어 튀어나왔다.

“아들러 백작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현재 정도맹의 본단 쪽으로 나가 있습니다.”

“끄음.”

그렇다면 아들러 백작도 아니다.

한데 대체 누가 아일리드를 쳤단 말인가?

“흉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을 테지?”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영약은?”

“수거되지 않았습니다.”

“제길!”

콰작!

아라니우스가 주먹을 내려치자 탁자가 거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나갔다.

아라니우스가 이를 빠득 갈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딴 짓을….”

그때 바리탄의 입이 열렸다.

“아마 사비강이라는 자일 겁니다.”

“사비강…?”

아라니우스가 우뚝 멈추고는 고개를 뻣뻣하게 돌렸다.

바리탄이 진중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보며 말했다.

“제가 강림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사사건건 방해했던 자지요.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닙니다. 인간인 주제에 만만찮은 무공 실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걸 왜!”

버럭 고함을 내지르던 아라니우스가 뒤늦게 이성을 되찾으며 잔뜩 억누른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제야 말하는 건가?”

“저도 여기까지 그가 나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게다가 이미 제 손을 떠난 임무라서… 그 이상은 관심을 꺼 두고 있었습니다. 괜히 제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개입을 하게 되면 공작님께 실례가 될 듯하여.”

아라니우스가 입술을 쿡 씹었다.

“그렇다면 그 사비강이라는 자부터 없애야겠군!”

“쉽지 않을 겁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래봤자 한낱 인간이 아니던가?”

“그럼….”

바리탄이 더욱 무거운 표정이 되어서는 아라니우스를 바라보았다.

“뭔가?”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드리지요.”

바리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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