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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80화 (480/670)

# 480

귀환 마교관

480화

사비강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이 돈보다 목숨을 택하리라는 것을.

그간 목숨이 두려워 위치를 꽁꽁 숨기고 있던 자들이다.

그러다가 이제 기회를 엿보고 나타난 것이다.

아무렴 정도맹이 약재상의 위치를 마족에게 흘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뭐 이런 꼴통이 다 있지?’

사비강을 보는 노파의 시선은 딱 그랬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노파가 끓어오르는 분을 억누르며 묻자, 사비강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제정신인 게 중요한가?”

“끄음…!”

그때였다.

차차차창! 창창!

계단 위에서 요란한 금속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일단 거래는 잠시 미루도록 하지요.”

노파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온 노파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무슨…?”

칼을 들고 달려드는 자들은 다름 아닌 이웃 주민들이 아닌가?

인근 객잔의 숙주, 아침마다 고기 손질을 하던 백정, 그리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던 행인들까지!

그야말로 평범한 자들이 느닷없이 칼자루를 들고 설치는 게 아닌가?

“침입자가 마족이라 하지 않았더냐?”

“밖에서 십이지신(十二支神)이 상대하고 있습니다!”

십이지신은 만약상을 수호하는 열두 명의 초절정 고수들이었다.

사비강과 매설란이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던 강렬한 살기가 바로 그들의 것이었다.

노파는 빨갛게 물든 눈동자로 앞을 가로막은 행객에게 일장을 날려 버리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과연 대로 복판에서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물…!’

십이지신이 상대하는 것은 덩치가 몹시 큰 괴물 다섯 마리였는데, 바로 오우거와 사이클롭스였다.

하지만 십이지신 역시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

게다가 머릿수에서 밀리지 않으니, 싸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십이지신에게 유리해지고 있었다.

‘제길, 진짜 마족이 쳐들어오다니!’

그녀는 사비강의 말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찌 저런 꼴통이 정도맹에 있단 말인가?

‘그나저나… 고작 이것들이 끝이 아닐 진데.’

주변 이웃들은 물론, 지나가는 행객들까지 이성을 잃고 가게로 쳐들어와 칼부림을 하지 않았나?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존재가 분명 어딘가에 있으리라.

노파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주위를 둘러보는데,

“자네가 이곳 주인인가?”

묵직하면서도 아름다운 남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어느 틈에…!’

노파가 흠칫거리고는 뒤를 돌아보면서 그대로 일장을 날렸다.

파앙!

순간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막혔다…?’

등 뒤에 선 사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몸을 두르며 나타난 얇은 보호막이 그녀가 내뻗은 장력을 와해했다.

실드로 막아낸 것이다.

그는 바로 아일리드 자작이었다.

그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과연 영악한 아이구나.”

‘아이…?’

노파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겉보기엔 새파랗게 어린 사내가 자신을 보고 ‘아이’라고 부르니 어이가 없었다.

노파가 손을 옆으로 불쑥 뻗었다.

다음 순간,

쉬이이이익, 탁!

가게 안쪽에서 기다란 창이 날아와 그녀의 손에 감기듯 잡혔다.

“호오, 잔재주가 제법이군.”

“새파랗게 어린 것이 말투가 맘에 들지 않는구나! 어른을 공경해야지!”

마족의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산다는 사실을 모르는 노파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가 바닥을 차고는 곧장 창을 후리며 달려들었다.

땅! 따당!

아일리드가 검을 뽑아 들고는 노파의 창을 수차례 튕겨냈다.

노파는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을 느꼈다.

도저히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아일리드가 말했다.

“역시 하찮은 인간들이라 그런지 밥 먹고 산 세월을 자랑으로 여기는군.”

“노옴!”

“뭐, 그리 따진다고 해도 너는 내게 한참 아래다.”

쉬잇, 꽝!

“크억!”

슈우우우욱, 콰당탕!

노파가 약재상 안까지 날아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칼을 뽑아 들고 설치던 일반인들이 여기저기 나동그라지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카악, 퉤!”

노파가 피를 한 움큼 뱉어내고는 튕기듯이 몸을 일으켜 다시 대로로 나왔다.

아일리드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하라.”

“뭘 말이냐?”

“하찮은 너희들이 의존한다는 그 영약이 어디 있는지.”

“흥! 고분고분 말을 할 것 같으면…!”

말을 뱉던 노파가 순간 눈을 퀭하게 떴다.

“크읍…!”

그녀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입술을 질끈 씹었다.

상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발설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에 휩싸인 것이다.

만약 얼른 내공을 운기해서 방어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모든 기밀을 까발렸으리라.

거짓과 위선의 악신에게 가호를 받는 아일리드는 인간들의 마음을 홀리는 특기가 있었던 것.

“영약… 영약은…!”

말을 꺼내던 노파가 순간 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내더니 제 허벅지를 세차게 내찔렀다.

“크읍!”

허벅지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굉장한 사술이군. 저자의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되겠다!’

이를 악다문 그녀가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하지만 싸움을 하면서 상대의 눈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했다.

모든 싸움은 눈빛에서부터 시작하는 법.

더구나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아니던가?

아일리드가 입매를 비틀었다.

“역시 순순히 입을 열 생각은 없는 건가?”

찰나,

쉬이이이잇!

아일리드가 바람을 가르며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다랐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려던 노파가 얼른 시선을 거두고는 창을 뻗었다.

피츗! 푹!

하지만 그녀가 내뻗은 창은 아일리드의 옷깃만 스쳤을 뿐이었다.

오히려 아일리드가 뻗은 검이 그대로 노파의 어깨를 관통하고 말았다.

“크읍!”

촤아악!

아일리드가 검을 뽑아내면서 대각선으로 베어냈다.

노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물러나자, 순식간에 다가선 아일리드가 노파의 턱을 잡고 올렸다.

순간 노파의 시선이 아일리드의 붉은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쳤다.

‘크읍!’

아일리드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자, 말하라.”

“크읍…! 영약은… 이곳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장원… 기관 장치는…”

노파는 안간힘을 써서 저항했지만, 그녀의 입은 의지와 상관없이 진실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쯤에서 거래를 재개해 볼까?]

갑자기 사방에서 소리가 웅장하게 울리는 것이 아닌가?

짧은 순간 아일리드의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그 바람에 노파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아일리드가 미간을 구기고는 소리쳤다.

“웬 놈이냐?”

[너하곤 할 말 없으니 입 닥치고 있어라. 어때? 거래를 계속할 마음이 생겼나?]

다시 사방에서 들려오는 웅혼한 목소리.

목소리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도록 만드는 육합전성(六合傳聲)이었다.

노파가 입술을 꾹 씹었다.

‘이제 와서 구해 주는 척을 해봐야….’

고마울 것도 없다.

그야말로 날강도 둘이 찾아와서 땡깡을 부리는 게 아닌가?

다만 다른 게 있다면….

한쪽은 목숨을 보장할 테고, 다른 한쪽은 목숨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

살면서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눈앞의 이 마족은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으니.

결국 그녀의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 조건… 받아들이겠소.”

[현명한 결정이다.]

목소리가 답하자 아일리드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소리쳤다.

“이것들이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못할까!”

그는 한낱 인간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크게 분노했다.

그때,

휘이잉.

한 차례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바로 앞에 젊은 사내가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일리드가 흠칫거리자,

“그렇게 원하면 나타나 줘야겠지.”

사비강이 시큰둥하게 읊조리고는 베르타스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피츄웃!

“크읏!”

재빨리 물러난 아일리드는 턱을 찢고 지나간 검신을 보며 미간을 팍 구겼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낱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검상을 입히다니!

“너 이 새끼… 뭐하는 놈이냐?”

아일리드가 이맛살을 팍 구기며 묻자, 사비강이 시종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오랜만이군. 아일리드.”

“……!”

아일리드의 눈이 커졌다.

잠시 후 그는 분노를 담은 시선으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네깟 놈이 어떻게 나를…!”

“당연히 알지. 네놈은 내 아래였으니까.”

“뭣이?”

“인간의 몸으로 전무후무하게 마계대공의 자리까지 올랐던 나였으니까.”

“무슨 미친 소리를…!”

“어차피 죽을 목숨. 궁금증은 그만 접어 둬라. 아, 내가 왜 너희들에게 만약상의 위치를 흘렸는지 아나?”

“……?”

“이들과 거래를 용이하게 이끌어낼 심산도 있었지만, 이렇게 네놈들을 하나씩 끌어내서 처리할 의도도 있었지.”

“이런 미친 인간이 보자보자 하니까…!”

팡!

순간 아일리드가 바닥을 차고는 사비강을 향해 쏜살 같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사비강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쒸이이익!

그대로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검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에 서 있던 사비강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그의 등 뒤에서 예의 그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이익…!”

쉬이이잇!

쩌엉!

냉큼 돌아서며 후린 검이 그대로 베르타스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샤아아아…!

아일리드는 순간 베르타스에서 뿜어지는 기운을 느끼고는 몸을 흠칫 떨었다.

“이, 이건…!”

틀림없다.

이건 베르타스가 아닌가?

모양이 달라서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다.

한데 검을 맞대고 있는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왕의 검, 베르타스!

어째서 베르타스를 이런 인간이 들고 있단 말인가?

“궁금한 게 많은 얼굴이군.”

사비강이 차갑게 조소하더니 그대로 힘을 주었다.

촤아악!

“크아악!”

아일리드가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사비강이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이, 이건 무슨…!’

아일리드는 사비강의 압도적인 기도에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처음에는 분노가 솟구쳤지만, 지금은 두려움과 공포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었다.

“혹시 알고 있나? 지금 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희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개 고생한 보람을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거든.”

“크으…!”

아일리드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하찮은 인간을 상대로 뒷걸음질을 치는 자신이 한심할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몸은 본능에 충실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인간은 강하다.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음 순간, 아일리드의 눈이 붉게 물들면서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저놈을 찢어발겨라!”

순간 거리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붉게 물든 눈으로 사비강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노파가 소리쳤다.

“저분을 지켜라!”

“존명!”

마물들을 제거한 십이지신이 일제히 사비강 주위를 호위하듯 내려섰다.

사비강이 귀신처럼 입매를 찢으며 웃었다.

“그럼 오랜 세월의 한을 풀어 볼까!”

팡!

그가 혜성처럼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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