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75화 (475/670)

# 475

귀환 마교관

475화

아들러 백작이 흉측하게 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어 보였다.

“여전하다는 그 말씀은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아무렴.”

“애써 주신 덕분에 테라포밍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부족하여 칠죄종에 갇혔던 인간들 중 일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러나? 난 자네가 그들을 일부러 놓아 주었다는 걸 알고 있네.”

아들러가 잠시 바리탄을 응시하더니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역시 바리탄 후작님을 속일 수는 없군요.”

“그리 생각했다면 서운하군.”

“하지만 일부는 사실입니다. 애써 그들 모두를 제거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많이 살려 줄 생각도 없었지요.”

“시행착오는 늘 있기 마련이지. 물론 자네는 그 시행착오도 기회로 만들 자지만.”

“후후후.”

아들러가 웃음을 흘리자, 바리탄이 물었다.

“괜찮은 물건은 건졌나?”

“글쎄요. 좀 더 두고 봐야겠지요.”

“심상을 입은 자가 꽤 될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입니다. 칠죄종의 단계를 거치면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건 심력이 상당하지 않고선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바리탄은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오히려 그 반대일세. 자네는 아직도 인간에 대해 잘 모르는군.”

“무슨 말씀이신지…?”

“심지가 굳은 자일수록 부러지기도 쉬운 법이지. 우리 마족과 달리 인간은 무척 연약하면서도 강한 척하는 존재라네.”

“흐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뭐, 굳이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지. 어쨌거나 칠죄종의 영향을 받아 심상을 입은 자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철저하고 심지가 굳은 자들일 걸세. 오히려….”

말끝을 흐린 바리탄은 사비강을 떠올렸다.

사비강처럼 원리원칙 따위는 무시하면서 사는 인간이 심상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들러 역시 더 이상 말을 기다리진 않았다.

대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제 유충은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자에게 심어 두었습니다. 그가 누군지는 지금부터 보여드리지요.”

아들러가 그 유별난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후.

츠츠츠츳…!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 난 흰색 돌기들이 촉수처럼 점점 자라나는가 싶더니 붉은 빛을 뿜어대는 기둥으로 뻗어 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촉수 끝에 빨판이라도 달린 것처럼 돌기 끝 부분이 기둥에 딱 달라붙었다.

동시에 아들러의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혔다.

놀라운 광경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꿈틀거리던 기둥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튀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람의 얼굴 형상을 만들어 냈다.

마침내 아들러의 입이 열렸다.

“이 세계의 인간들도 소드마스터 급 인물들이 제법 있더군요. 놀라웠습니다. 물론, 이자는 소드마스터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제 유충이 그의 몸에 기생하는데 성공했지요.”

“그렇군.”

“혹시 이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도맹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는 그였다.

“정도맹에서 창신단을 이끄는 ‘이자준’이라는 자다. 맹주와 제법 가까운 자라고 볼 수 있지.”

즉, 아들러의 유충이 이자준의 몸속에 들어간 것.

“맹주라… 맹주가 뭡니까?”

“이 세계의 무인들을 이끄는 수장이라고 볼 수 있다.”

“혹시…”

다시 기둥이 꿈틀거리면서 얼굴 형상을 바꿔 갔다.

젊고 잘 생긴 남자였다.

그를 본 바리탄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이자입니까?”

“그는 아니다.”

“이상하군요. 제가 판단하기로는 이자가 가장 강한 것으로 보였는데….”

얼굴의 형상은 바로 사비강이었다.

바리탄이 그늘 진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그럼, 혹시 이자입니까?”

기둥에 나타난 얼굴의 형상이 다시 바뀌었다.

능운파였다.

바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자다.”

“호오, 이거 재미있게 됐군요.”

“맹주에게도 유충을 심었나?”

“아쉽게도 그에게는 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심상을 적지 않게 입었지요.”

“과연.”

바리탄의 예상대로였다.

심지가 굳고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자일수록 쉽게 부러진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어쨌건 자네의 능력은 볼 때마다 놀랍군.”

“별말씀을요.”

아들러가 허옇게 뒤집힌 눈을 하고서는 히죽 웃었다.

이제 막 강림지로 소환된 아들러가 이렇듯 무인들의 면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를 가호하는 악신 덕분이었다.

마계수(魔界樹)와 기생충을 관장하는 악신.

아들러 백작이 가호를 받는 유일한 상급 악신이었다.

가호해 주는 악신이 단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백작의 작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마족이 이계를 정복할 때만큼은 마계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이 머물고 있는 흑성이 바로 마계수로 이루어지며, 그 마계수가 심어져야 테라포밍, 즉 마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아들러 백작은 지금처럼 마계수의 기억을 흡수해 테라포밍이 진행되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들러가 다시 사비강의 얼굴을 만들어내면서 물었다.

“하면 이자는 누굽니까?”

“나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나 역시 화신을 찾은 지 오래 되진 않았으니.”

“그렇군요. 참으로 희한한 일이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

“딱히… 다만 이자가 칠죄종 단계를 겪으면서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이곳 세계에서도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더러 있더군.”

“그렇군요. 상당한 수준으로 보이긴 했습니다만… 그에 대한 기록이 희미해서 자세히 파악되진 않는군요.”

이럴 경우 원인은 둘 중 하나다.

그가 사용한 마법이나 검술이 지나치게 패도적이어서 마계수에 새겨진 기록마저 파괴되었거나, 마계수가 완성될 때쯤에는 공격을 하지 않고 달아나기만 해서 기록되지 않았거나.

아들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봐야 한낱 인간이지요.”

츠츠츠츠츳…!

마침내 아들러의 얼굴에서 가득 뻗어 나갔던 촉수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다시 흰색 돌기처럼 자리를 잡았다.

아들러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훨씬 쉬워질 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바리탄이 묘한 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렸다.

방을 나온 그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언제나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비강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그런 것 같군. 그걸 확인했으니 된 거다.”

바리탄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

고요한 밤.

정도맹 본단으로 복귀한 창신단주 이자준은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동안의 여정은 그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그는 지금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키릭…!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어깨에 감아놓은 천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칠죄종의 단계에서 입은 상처를 천으로 감아 놓은 것이었다.

마침내 천이 칼로 그은 것처럼 찢겨 나가더니 그 사이로 하얗고 기다란 벌레 한 마리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녀석은 이자준의 어깨를 따라 기어가다가 목을 타고 올라가서 콧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크음…!”

이자준은 잠결에 코를 실룩이고는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리며 불거지더니 피부 속에서 기어가는 그것은 곧 뇌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크업!”

이자준이 눈을 번쩍 뜨고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꿈을 꾼 건가?’

그는 자신이 왜 갑자기 깨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얼른 기감을 펼쳐 주변을 확인했다.

다행히 주변에서 감지되는 기는 없었다.

한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털썩 누워 버렸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려는데,

“헉…!”

이자준이 헛바람을 삼키며 다시 벌떡 일어났다.

단전이 터질 것처럼 뜨거웠다.

“크으읍!”

그는 갑자기 일어나는 신체 변화에 몹시 당황했다.

주화입마에 걸려 본 적은 없지만, 만약 걸린다면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얼른 내기를 일주천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해졌다.

“크으윽! 제기랄…!”

전신의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물들더니 이제는 아예 거무죽죽하게 변하고 있었다.

“끄으으으으…!”

그는 배를 잡고 그대로 고꾸라진 채로 나뒹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 속에서 그는 한참이나 허우적거렸다.

**

정도맹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채워진 자리보다는 빈자리가 더 많았다.

수뇌 인사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토벌대에 참여했다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 어느 때보다도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곤륜에서 온 청허진인과 공동에서 온 현진도장이 함께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마족이 강림한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강호에 이 사실을 알린 다음 정사를 막론하고 힘을 합해 그들을 물리칠 수밖에 없겠지요.”

청허진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현진도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옳습니다. 이제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욱청풍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하나 우린 마족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자칫 사전 준비 없이 무턱대고 전쟁을 치르다간 이번과 같은 참패를 면치 못할 겁니다. 게다가…”

“무엇입니까?”

청허진인이 물어보자, 욱청풍이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 정사연맹이 참패를 면치 못하면서 강호 장악력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입니다. 과연 강호인들이 잘 따라와 줄지….”

이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갈 문제였다.

그때 능운파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장로회주께서 말씀하시는 요지가 무엇이오?”

어딘지 까칠한 말투에 욱청풍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번 전투의 패배는 본맹으로선 실로 뼈아픈 실책입니다. 생존자가 전력의 일 할도 채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강호에 파다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그들이 본맹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와 주길 바란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지요. 그러니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테면?”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마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급선무겠지요. 그것을 바탕으로 철저한 준비가 갖춰진다면 사파를 비롯한 강호인들도 본맹의 뜻을 쫓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자가 맹주의 자리에 오르면 되겠군.”

불쑥 튀어나온 능운파의 목소리에 장내가 잠시 술렁거렸다.

욱청풍 역시 깜짝 놀라서 맹주를 바라보았다.

“맹주님…?”

“하시려는 말씀이 그것 아니었소? 결국 본맹이 참패한 이유는 마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었고, 그걸 보완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역시 마족에 대해 잘 아는 맹주를 새로 추대하는 것.”

욱청풍의 표정이 순간 사색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장내의 모든 무인들이 경직된 얼굴로 맹주와 장로회주를 번갈아 보았다.

구윤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짓는데, 욱청풍이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어찌 그런 오해를 하십니까?”

“아니지. 오히려 내가 회주님의 의중을 제대로 찌른 것 아니오?”

이쯤 되자 보다 못한 사비강이 슬며시 나섰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주님의 뜻은….”

“사비강 관주는 가만히 계시오. 언제부터 그대가 맹주와 회주의 대화에 끼어들 위치까지 오른 거요?”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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