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42화 (442/670)

# 442

귀환 마교관

442화

꽈자자장!

지축이 뒤흔들리는 충격과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연무장 가득 울렸다.

주변이 자욱한 먼지구름으로 휩싸였다.

휘우우우웅!

한 차례 차가운 바람 줄기가 지나가자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연무장이 드러났다.

“헉, 헉, 헉…!”

옹기승은 심호흡을 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며 서 있었다.

밤샐 각오를 하라고?

밤을 새고도 꼬박 하루를 채워 저녁이 오고 있었다.

옹기승과 검을 맞댄 사비강이 입매를 슬쩍 비틀었다.

“제법이군.”

“아직… 끝 아닙니다.”

말을 마친 옹기승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다시 검을 튕겨내고는 달려들었다.

“이여어업!”

검신을 따라 세찬 칼바람이 일어났다.

쒸이이이잉!

따앙!

베르타스가 옹기승의 검을 막아내면서, 사비강이 팽이처럼 휘리릭 돌았다.

사비강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배후에 나타난 레드 드래곤의 형상도 함께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래야지. 아직은 끝이 아니어야지!”

사비강이 호쾌하게 말을 뱉으며 그대로 맞부딪쳐 왔다.

동시에 레드 드래곤의 형상이 함께 옹기승을 향해서 쇄도했다.

옹기승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생각했다.

‘역시…! 보인다!’

그는 사비강이 레드 드래곤을 보여 준 것이 일종의 위협용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시간이 흐르면서 알 수 있었다.

단지 위협용이 아니라, 자신에게 알려 주고 있다는 것임을.

자신의 배후에 나타난 마령혼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흐아아앗!”

옹기승이 눈을 부릅뜨고는 사비강에게 맞부딪쳐 갔다.

검봉과 검봉이 정확히 마주치는 순간,

쩌어엉!

기파가 사방으로 훅 퍼져나가자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목재들이 마구 부서지며 날아갔다.

레드 드래곤과 마령혼이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옹기승도 온전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잘 하고 있군.”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며 칭찬하자, 옹기승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곧 청출어람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시건방진 허세 하나는 청출어람이군.”

“칭찬으로 듣지요!”

쩌엉!

다시 한 번 격렬한 부딪침이 일어나면서 두 사람이 훌쩍 멀어졌다.

팟!

옹기승은 그대로 사비강을 휘몰아쳐 갔다.

검로 하나하나에 힘이 실렸고, 의지가 실렸다.

‘기분 좋다! 신난다!’

검을 휘두르는 기분을 느끼는 게 언제였던가?

마령혼을 느끼고 나서부터는 언제나 무아지경 속에서 검을 휘둘러 왔다.

한데 그 무의식이 상승무공에 이르렀기에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수면신공 자체가 가진 특성일 뿐이었다.

한데 지금은 또 다른 의미에서 무아지경이다.

그저 몸이 먼저 움직이면서 의지를 담아낸다.

그야말로 몸이 신나게 날아다닌다.

자신의 혼은 그것을 관망하면서 가끔씩 개입하고 있다.

이전에는 마령혼이 깨어날까 봐, 혹시라도 녀석이 제멋대로 설쳐 댈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더욱 눈을 감고 수면신공을 대성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수면신공을 대성하면 마령혼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사비강과 실전에 가까운 비무를 펼치면서 깨달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마령혼과 함께 싸우는 것이 미치도록 즐겁다.

너무 즐거워서 중독이 될 지경이다.

“하아앗!”

옹기승이 경쾌한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쩌어어엉!

파파파파파파파!

다시 한 번 연무장 바닥이 움푹 파이면서 사방으로 기운이 퍼져 나갔다.

분화구 모양의 분지가 더욱 깊어진 것이다.

잠시 떨어진 옹기승이 다시 도약하려고 하는데,

“수고했다.”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갈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어?”

옹기승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까지다. 더 비무를 이어 갈 필요가 없겠어.”

“조금 더 하시죠.”

옹기승은 진심으로 비무를 이어 가고 싶었다.

이 즐거운 순간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까 봐 두려울 지경이었다.

사비강이 옹기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힘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그 힘에 취해서는 더욱 안 된다. 네가 든 검은 양날이라는 걸 잊지 마라. 자칫하면 네가 베인다.”

“아…!”

“어떤 쪽이든 감정의 자극이 지나친 경우에는 네게 이로울 게 없다. 네 몸에는 너뿐만 아니라, 그 녀석도 함께 존재한다는 걸 명심해라. 놈은 호시탐탐 네 육신을 노리고 있을 테니. 자칫 이성을 놓으면 너는 괴물이 되고 마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털썩!

옹기승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절을 올렸다.

사비강이 대충 손을 들어보이고는 걸음을 옮기려는데,

“이제 토벌대에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무슨 소리냐?”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돌아보자, 옹기승이 열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외쳤다.

“저도 토벌대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힘이 되고 싶습니다! 제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평소 옹기승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투지가 넘치는 태도였다.

하지만 사비강의 입에서는 옹기승이 바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토벌대에서는 빠진다.”

“하지만…!”

“토벌대가 최정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럼… 아닙니까?”

“이번에 토벌하러 가는 곳이 강림지가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잔류 세력을 남겨 놓는 거다. 네가 결코 약해서 빠진 게 아니라는 말이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옹기승이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허리를 꾸벅 숙였다.

사비강이 주변을 휘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다? 완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군. 복구하는데 비용이 꽤 들어가겠는데? 알지? 부서진 부분에 대한 복구비용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음? 승아, 어디 간 거냐? 야! 인마!”

하지만 옹기승은 그새 어디로 간 것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사비강이 씨근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어딜 갔다가…!”

사비강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다 말고는 우뚝 멈췄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매설란이었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글거리는 눈으로 입매를 틀어 올렸다.

“먼 길 다녀오자마자 요란하게 난장을 부려 주셨군요. 관주님.”

“아… 그게, 이건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옹기승 이 자식 어디 간 거야?”

“아무리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서라지만 굳이 관내 연무장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복구비가 상당할 것 같은데.”

사비강은 매설란의 이마에 핏대가 서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가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매섭게 쏘아보던 매설란이 이내 피식 웃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효과는 좋았어?”

“무슨?”

“이렇게까지 난장을 부린 효과 말이야.”

“아, 뭐. 오랜만에 교관 노릇 좀 했다고나 할까?”

사비강이 조금은 긴장을 풀고 대답하자, 매설란도 더는 따지지 않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전서 내용대로 토벌대 구성은 끝마쳤어. 이번에는 정말 큰 전쟁을 하는 거지?”

“아마도.”

“서화평원 대전만큼이나?”

“그럴 거야. 아니지. 아마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야.”

사비강은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전했다.

자운룡이 배신을 하고 여곤이 강림지에 대해 모두 까발렸을 거라는 걸 마령교에서 모를까?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마령교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할 것이다.

이번에도 강림지가 가짜라면 자신들은 함정에 더욱 깊이 빠질 것이고, 강림지가 진짜라면 더욱 철저한 대비를 하고 기다릴 것이다.

매설란이 사비강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심란해 보여.”

“그렇게 보여?”

“응. 왠지 생각이 많은 것 같아.”

“그냥 좀. 아무래도 큰 싸움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 것이다.

크고 중요한 싸움.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마왕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고, 진다면 더 힘든 싸움을 이어 가야 한다.

매설란이 사비강의 손을 살짝 잡았다.

“당신답지 않아. 그런 표정은.”

“지금 내 표정이 어때서?”

“글쎄. 뭔가 걱정이 많은 표정이야. 확신이 없는 얼굴.”

“그렇군. 역시 난 거짓말을 못하는 순수한 성격인가 봐.”

“그건 아니고.”

두 사람이 잠깐 멀뚱히 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웃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사비강은 자신이 왜 이런 기분이 되었던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껏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마계의 대공이 되어 목숨 건 전쟁을 앞두었을 때도 지금과 같은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런데 이젠 알 것 같았다.

‘내게도… 소중한 것들이 생겼군.’

사비강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자, 매설란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물었다.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잘 부탁할게.”

“뭘?”

“멸마관.”

“왜 이래?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그럴 리가.”

“걱정 마. 멸마관은 내게 맡겨 두라고.”

“너무 혼자 애쓰진 마.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옹기승을 예의주시해. 유사시엔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뭐, 아직은 양날의 칼이기도 하지만.”

“알았어. 내가 잘 이끌어 줄게. 옹기승뿐만 아니라 모두를.”

“오, 믿음직스러워.”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오늘은 빨리 자. 바로 출발할 거라며. 내일 출정식 마치고 먼 길을 다시 떠나야 하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옆에 두고 일찍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또 이런다.”

매설란이 눈을 흘기면서도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

이른 아침 새 소리를 들으며 매설란은 눈을 떴다.

일어나 앉아 보니 사비강은 벌써 밖으로 나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떠나는 날이네.’

기분이 묘한 아침이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어젯밤 사비강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었다.

오랜만에 서로에게 충실한 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도 벌써 달콤한 추억 같다.

매설란은 얇은 옷자락을 걸쳐 입고는 창가로 걸어갔다.

멸마관 내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순간 기분 나쁜 기억도 떠오르는 바람에 나직이 탄식을 흘렸다.

그건 어젯밤에 꾼 꿈이었다.

사비강과 나누었던 황홀한 시간들과 달리, 어젯밤에 그녀가 꾼 꿈은 지독한 악몽이었다.

꿈속 사비강은 저 아래 대연무장에서 토벌대를 모아놓고 출정식을 하고 있었다.

그때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하늘에서 검은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온갖 잡귀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멸마관을 불태우고, 교관들과 조교, 생도들을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

모두 비명과 피를 뿌리며 한 줌 재가 되고 말았다.

사비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착같이 싸우던 사비강은 결국 잡귀의 수장으로 보이는 악마의 손에 붙잡혀 사지가 찢어져 죽었다.

매설란은 울부짖으며 사비강에게 달려갔지만, 온몸이 꽁꽁 묶여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꿈은 한동안 이어졌는데, 자세히 기억나진 않았다.

사비강이 죽는 꿈.

처음으로 꿔 본 꿈이었다.

언젠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렇게 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한데 왜 그런지 오늘따라 사비강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그보다 강한 자가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매설란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생각하지 말자!’

한낱 꿈일 뿐이다.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저 기분 나쁜 꿈은 자신의 불안감을 대신해서 나타난 것일 뿐이리라.

사비강은 강하다.

그 사실 하나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마침 저 아래에 걸어가는 사비강이 보였다.

매설란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신은 언제나처럼 또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올 거야. 그리고 난 그런 당신을 환영하겠지. 걱정 말고 다녀와. 당신이 없는 동안 멸마관은 흔들리지 않도록 지키고 있을 게. 아니, 더 강하게 만들어 놓겠어.”

사비강은 들을 수 없겠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약속했다.

가만히 걱정만 하지 않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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