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41화 (441/670)

# 441

귀환 마교관

441화

쉬이익! 쉬익!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춤을 췄다.

쉭쉭쉭!

시간이 흐를수록 검세는 더욱 매서워졌다.

텅 빈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자는 다름 아닌 옹기승이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기류에 따라 검을 뿌려댔다.

최대한 전신에 힘을 풀고 기가 흘러가는 대로 그저 손을 얹어 놓는 느낌으로….

쒸에에에엑!

‘좋아!’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를 넘어 심검합일(心劍合一)의 상태!

마음이 가고 의지가 흐르는 곳에 검이 날아가고 검기가 흐른다.

그렇게 무아지경 속에서 얼마나 검무를 추었을까?

점점 격해지던 검류는 이제 노도(怒濤)가 되어서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기 시작한다.

후아아아앙!

검신에서 서너 장 떨어진 곳까지 검풍에 휘말리면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발출했다.

찰나,

“……!”

편안하게 잠에 빠진 것만 같던 옹기승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젠장…! 또!’

그는 심연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고는 미간을 구겼다.

수면신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옹기승은 눈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휘두르는 검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이미 수면신공은 눈을 뜬 순간부터 흔들린 것이다.

한데 심연에서 치고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은 더욱 요동을 치고 있었다.

자연히 검세가 격해지면서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쉭쉭!

처음 검을 휘두를 때는 기류에 따라 검류가 이어졌는데, 지금은 검류가 한 발 앞서고 기류가 뒤를 따르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

수면신공 초입 단계에 나타나는 현상이 대성을 앞둔 옹기승에게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젠장!”

결국 옹기승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그와 동시에 검세는 더욱 거칠어져 갔다.

쒸에에엥! 쒜에에엑!

‘그만! 멈추라고!’

옹기승이 미간을 험악하게 구기며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그의 몸을 따라 휘돌고 있는 기운은 제멋대로 설치고 있었다.

결국 옹기승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친 기운이 순간 방향을 잃으면서 연무장 한쪽에 세워진 정자로 날아가 검격을 뿌렸다.

꽈자아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정자가 대각선으로 잘려 나가면서 기울었다.

쿠르르르르… 쿠웅!

한밤중에 난리가 났지만, 연무장으로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따금씩 무공을 수련하면서 이 정도 소음은 일어날 때도 있었기에 다들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었다.

“헉, 헉, 헉…!”

한순간에 공력을 터뜨려내듯 격발시킨 옹기승은 무릎을 쥐고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젠장! 또…!”

제어하지 못했다.

심연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놈을!

털썩!

옹기승은 그대로 큰 대자로 뻗어 버렸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들쑤셨지만,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그놈’이 다시 설레발을 칠 것이다.

마음이 격해질수록 놈은 빈틈을 노려 온다.

‘썩을…!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하늘을 향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러는 자신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옹해인으로부터 수면신공을 익힌 후로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였다.

그야말로 호수 아래에 가라앉은 바위처럼 지냈다.

주변이 풍파로 휩쓸려도, 그의 마음만큼은 물속에 가라앉은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한데 요즘은 다르다.

자꾸만 욕망이 우글거리고, 아쉬움이 마음을 괴롭힌다.

조금 전에도 그랬다.

수면신공을 펼치던 중,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정도맹 본단으로 떠났던 사비강은 며칠 전 매설란 총관에게 전서를 보내 토벌대를 조직하도록 명했다.

전서에는 토벌대에 참여할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맹가숙과 유송령, 석탄강도 포함된 명단이었는데, 자신은 빠져 있었다.

‘어째서? 왜?’

이런 의문이 들면서 검세는 점점 격해졌고, 심연 속에 파묻혀 있던 그놈이 슬금슬금 기어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놈은 불만과 불평을 먹고 자란다.

겨우 그 정도 생각을 떠올렸을 뿐인데….

‘혹시 내가 이 녀석을 제어하지 못해서 토벌대 명단에서 빠진 건가?’

이번 토벌대는 그야말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마령교가 지난 수년 동안 벼르고 별러 왔던 강림지를 급습하는 것이었으니까.

그에 더해 납치당한 무인들을 구하는 임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데 그런 중요한 작전에 자신이 빠졌다는 것은 역시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빠드득.

어금니를 가는데,

“자면서 이 가는 버릇도 생긴 거냐?”

낯익은 목소리에 이어,

쒸에에에엑!

느닷없이 날아드는 비수 한 자루!

옹기승이 얼른 팽이처럼 휘돌면서 일어났다.

까앙!

그가 검을 부려 비수를 쳐내자,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짝. 짝. 짝.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비강이었다.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야심한 시간에 자지 않고 뭐하는 거냐?”

“오셨습니까? 관주님.”

“그래, 어딜 좀 들렀다 오느라 늦었어. 그런데 먼 길을 다녀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태도치고는 뭔가 석연찮아 보이는군.”

“딱히…”

옹기승이 눈을 감고는 시선을 외면했다.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절이 잘 안 되나?”

“……!”

“네 속에 든 그 녀석 말이다.”

“그걸 어떻게…? 역시 그럼 제가 토벌대에서 빠진 것도 마령혼을 제어하지 못….”

스르르릉!

사비강이 옹기승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베르타스를 뽑아 들었다.

순간 옹기승은 사비강이 뿜어내는 위압감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었다.

사비강은 진심으로 검을 들고 있었다.

그 말을 달리 해석하면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는 뜻이리라.

옹기승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사비강이 자신을 일대일로 가르쳐 주려는 마음이 변하기 전에 악착같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쳇, 언제 이렇게 거리가 벌어진 건지….’

분명 혈사련에서 지내던 시절, 사비강은 잘만 하면 혼쭐을 내고 쫓아 버릴 수도 있는 정파 무인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감히 범접하기도 힘든 절대 고수가 되어 있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강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강호에서 과연 그를 꺾을 자가 있을까?

자신이 아는 한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마령교주?

모르긴 해도 사비강의 적수는 되지 못할 거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옹기승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고는 기수식을 취했다.

그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자, 사비강이 불쑥 말했다.

“이제 그만 깨어나라.”

“…예?”

“넌 애초에 수면신공을 대성할 수 없는 상태다.”

“하면…?”

“사람이 언제까지 잠만 자면서 살 순 없지. 이제 그만 깨어나서 똑바로 마주보아라. 널 괴롭히는 그 녀석을.”

“하지만 그러면….”

“두려움도 떨쳐내라. 자신감이 힘의 원천이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해봐야….”

타앗,

쉬이이이잇!

찰나, 사비강이 바람처럼 날아왔다.

“헛!”

옹기승이 헛바람을 삼키며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쩌엉!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면서 기파가 사방으로 훅 퍼져 나갔다.

우지끈…! 쿠르르릉!

결국 부서진 채로 기울어 있던 정자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폭삭 내려앉고 말았다.

사비강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쉭쉭쉭! 쉬이이잇!

깡깡깡! 까가가강!

두 사람 사이에서 연신 불꽃이 터져 나왔다.

‘뭐가 이렇게 빠른 거야!’

옹기승은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검을 막았다.

얼굴 표정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사비강의 표정은 상대적으로 평온하기만 했다.

‘제길! 봐주는 게 이 정도란 말인가?’

그야말로 넘볼 수 없는 벽이 버티고 선 기분이다.

까라라라라랑!

사비강은 점점 더 빠르고 매섭게 치고 들어왔다.

“대충 대할 생각은 그만 둬라.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찰나, 사비강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흐업!”

옹기승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그 살기에 맞섰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렬한 살기!

찰나,

꿈틀…!

“……!”

왔다.

그놈이!

꿈틀…! 꿈틀!

“……!”

옹기승이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제어가 안 된다!

자연히 검세가 격렬해지면서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사비강이 버럭 소리쳤다.

“눈 감지 마! 자신감이다! 쫄지 말고 덤벼!”

쒸에에에엑!

베르타스가 허공을 가르면서 옹기승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순간 옹기승은 깨달았다.

‘죽는다…! 이걸 막아내지 못하면 죽는다!’

벼랑 끝에 서게 되자, 나무뿌리라도 잡아야 한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이 순간 옹기승에게서 튀어나온 나무뿌리는 바로 그 녀석이었다!

그놈과 손을 잡아야 살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흐아카아아아앗!”

괴성이 터져 나오면서 옹기승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되어 쏟아져 나왔다.

후우우우우웅!

마침내 옹기승의 배후로 커다랗고 거뭇한 기운의 존재가 형상화됐다.

뿔이 달린 악마의 형상이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

사비강이 두 눈에 힘을 주자,

휘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휘몰아치듯 일어나더니 레드 드래곤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는 옹기승과 달리 사비강의 의지로 만들어낸 기운의 모양일 뿐이었다.

천해경에 이르면서 그는 기를 뿜어내어 형상화하는 것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옹기승은 실제로 마령혼이 기의 형태로 현신한 상황이었다.

“크아아아아!”

옹기승이 괴성을 터뜨리며 검을 곧장 찔러 왔다.

마치 화살 같은 움직임이었다.

쩌어엉!

사비강이 검을 앞세우면서 막아내자, 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아직은 무린가?”

퍽!

사비강이 옹기승을 발로 걷어차며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팍!

블링크 마법을 펼치자, 그의 신형이 눈 깜빡할 사이에 옹기승 뒤에 나타났다.

“정신 차려!”

꽈아앙!

그대로 내려찍은 베르타스가 옹기승이 소환해낸 마령혼의 등에 박혀 들었다.

쩌적…! 쩌어억!

마령혼의 형상에 금이 생기는가 싶더니,

사르르르르르!

거짓말처럼 마령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쿠웨엑!”

그 자리에 엎드리면서 검붉은 피를 토한 옹기승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관주…님?”

“다시.”

“예?”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린 옹기승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샐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아니, 이틀 밤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미 주변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으니 염려할 건 없다. 네가 그 녀석을 다스릴 때까지 수련은 끝내지 않을 생각이니까.”

“……!”

“그놈 다시 꺼내라.”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내밀고는 다시 한 번 기를 뿜어냈다.

휘오오오오!

사비강의 배후로 레드 드래곤이 넘실거렸다.

옹기승의 눈동자가 떨렸다.

“알겠습니다!”

그가 곧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탓!

찰나지간, 사비강이 날아갔다.

쩌어엉!

요란한 금속성이 터짐과 동시에 옹기승의 전신에서 또 한 번 마령혼이 튀어나왔다.

휘오오오오오!

그날 밤 연무장에서는 몇 번이나 벽력이 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령혼이 소환되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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