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
귀환 마교관
402화
“이걸 보십시오.”
조강민(趙康民)이 탁상에 화살 한 자루를 조심스럽게 올려 두었다.
혜성문주 정규홍(丁奎虹)과 장로 임천백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화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화살 한 자루였다.
다만, 화살촉이 시커먼 색이었는데, 그 재료가 무엇인지 좀처럼 파악이 되지 않았다.
조강민이 말을 이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화살입니다. 하지만 여기, 화살촉을 보십시오.”
“확실히 묘한 빛깔이군. 짙은 검은 색인데… 재료가 무엇인가?”
정규홍의 질문에 조강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바로 마물의 날개 뼈에서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마물의 날개 뼈!”
“그게 정말인가?”
정규홍과 임천백이 화들짝 놀라며 조강민을 보았다.
한 평생 정도만을 고집하면서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서 마령교나 마물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더러운 것들이었다.
임천백이 기분 나쁜 듯 중얼거렸다.
“어쩐지 요기가 느껴지는 것 같더라니.”
“당장 이 망측한 것을 치우게나. 대체 이걸 왜 가지고 온 건가?
임천백에 이어 문주인 정규홍조차 기분 나쁜 내색을 드러내며 인상을 구겼다.
조강민은 혜성문에서 촉망받는 후기지수였다.
그는 얼마 전 용천관을 수료한 뒤, 지금은 정도맹의 수신각(修身閣)에서 조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실 혜성문은 강호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문파였지만, 한동안 후기지수들을 배출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조강민이 제대로 정도맹과 연을 만들면서 혜성문은 다시 한 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마물의 뼈로 만든 화살촉을 들고 오다니?
기껏 정도맹으로 들여보냈더니, 왜 하필 이런 걸 들고 돌아왔단 말인가?
하지만 조강민은 희미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그걸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문주님, 장로님.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이 화살촉은 피에 닿았을 때 발열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발열한다? 하면 피가 묻으면 절로 뜨거워진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화살을 맞게 되면 적은 화상을 입게 되는 거지요. 아시다시피 작열통이야말로 모든 고통 중에서도 제일 참기 힘든 고통 아니겠습니까?”
임천백이 미간을 좁히며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이건 멸마관에서 만든 겁니다.”
“멸마관에서?”
“예, ‘조신량’이라는 자가 만든 것인데, 사비강 관주가 혈사련에 있을 때 연이 닿았던 자라고 합니다. 손재주가 뛰어나 지금은 신수각주로 지내고 있지요.”
“사파 놈들이 만든 것이렷다?”
“딱히 그렇게 볼 수도 없습니다. 조신량 각주는 무인이 아니니 정사를 구분하기도 애매하지요. 그는 단지 대장장이였습니다.”
“세상이 좋아졌군. 한낱 대장장이가 각주를 지내다니.”
“사비강 관주는 능력만 있으면 출신 따위는 따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조강민의 말에 임천백이 침음을 흘리고는 팔짱을 꼈다.
그 역시 사비강이 용천관에서 교관으로 지내던 시절, 직접 찾아가서 만나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여기 있는 조강민을 부탁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사비강의 특성을 대략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비강이 이렇게 큰 인물이 될 줄은 몰랐다.
감각이 뛰어나되 격식을 따지지 않는 파격적인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조강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문주님. 이젠 앉아서 수양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혜성문이 일어서기 위해서는 남들 보다 한 걸음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아니, 지금도 이미 몇 걸음은 뒤쳐진 셈이지요.”
“자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가?”
“멸마관이 마령교의 소환지를 찾아서 섬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그야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니.”
“예, 바로 이 화살촉은 그 소환지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감이 오지 않습니까?”
“흐음.”
정규홍이 침음을 흘리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은… 그러니까 본문도 소환지 사냥에 나서자는 뜻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소환지에서 출몰하는 마물들은 곧 자산이 될 겁니다. 이제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문주님, 장로님. 이걸 보십시오. 눈앞에 바로 그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정규홍과 임천백의 시선이 상 위에 놓인 화살로 향했다.
임천백이 화살을 집어 들더니 제 팔뚝을 쿡, 찔렀다.
화살촉이 박히자 과연 화끈거리는 열기가 일어났다.
“끄음.”
어찌나 뜨거운지 비교적 내공이 심후한 임천백도 희미한 신음을 흘릴 정도였다.
그가 화살을 내려 두고는 화상 입은 팔뚝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하나 이것이 마물에게도 통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마물의 종류에 따라 통하는 경우도 있고,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흐음.”
“그리고 이걸 보십시오.”
조강민이 이번에는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이건 또 뭔가?”
“멸마관에서 사용하는 치료제입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장로님.”
조강민이 임천백의 팔뚝에 약물을 슬쩍 흘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진물이 나던 상처 부위가 완전히 아물어 버렸다.
“금창약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약물이지요.”
“대단하군….”
“이 역시 마계의 물건이라고 합니다.”
그건 바로 힐링 포션이었다.
말을 마친 조강민이 다시 문주를 돌아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문주님. 이제 본문도 마물 사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가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소환지는 그야말로 보물창고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네. 저번에 사비강 관주가 직접 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발생했다던데.”
“위험을 감수해야 이득도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고 위험, 고 수익입니다, 문주님!”
“맹에서도 그 위험성이 심각할 정도이니, 멸마관을 따로 만들어서 처리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맹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면….”
“감히 한 말씀 올리자면, 이건 눈치 싸움입니다. 본문이 출몰한 도적떼를 잡아 죽일 때마다 맹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마물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만약 맹에서 이를 막아선다면, 그건 분명 소환지에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목적이겠지요.”
“으음.”
정규홍이 침음을 흘렸다.
옆에 앉은 임천백 역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맹이 나서서 발표하지 않았다.
이럴 때 오히려 먼저 움직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도문처럼 위험에 빠진다면….”
“그 시골 방파와 어찌 혜성문을 비교합니까? 게다가 이미 다른 문파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소환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조강민이 다시 한 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정규홍은 임천백과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임천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규홍 역시 마음을 굳혔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겠네. 본문도 소환지를 찾아 나서도록 하지. 맹에 머물면서 또 다른 소식이 들린다면 언제든 연락하게.”
“알겠습니다. 문주님.”
조강민이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
강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큰 문파 몇 곳만이 소환지를 찾아서 소탕하겠다고 공언하더니, 이제는 지역의 중․소 방파들마저 소환지를 소탕하겠다며 설쳐대고 있었다.
정사마 대전이 일어난 이후, 다시 한 번 강호에 혼돈의 시기가 도래하는 중이었다.
사비강은 우선 매설란에게 멸마관을 맡기고는 정도맹 본단으로 향했다.
그가 본단에 도착하자마자 정도맹은 수뇌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미 그곳에는 정도맹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형 문파들의 수뇌 인사들이 함께 자리한 상태였다.
사비강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당장 소환지 사냥을 중단해야 합니다.”
“이유가 뭐요?”
다짜고짜 따지듯이 물어온 사람은 바로 패월당주 조적상이었다.
그는 일전에 사비강의 슬립 마법에 당하면서 그대로 숙면을 취한 적이 있던 자였다.
때문에 내심은 사비강을 몹시 증오하고 있었다.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제가 멸마관 생도들을 이끌고 들어섰던 곳은 평범한 던전… 그러니까 평범한 소환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면?”
맹주 능운파의 물음에 사비강이 대답을 이어 갔다.
“그곳은 제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보겠나?”
“제단이 마련된 곳은 특별히 위험합니다. 그곳에서 희생된 자들은 모두 제물로 쓰이기 때문이지요. 제단이 마련된 소환지에는 가장 깊은 곳에 석실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 석실에는 수장 마물이 머물고 있습니다.”
“하면 그 수장 마물이 소환지를 점령한 거라고도 볼 수 있나?”
“그렇습니다. 문제는 섣불리 그런 소환지에 들어섰다가 희생이라도 당하면 희생자가 제물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석실의 마물이 더 강성해질 수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섣불리 토벌에 나섰다간 오히려 마물의 배만 불려서 더욱 상대하기 어려운 적으로 만들게 될 겁니다. 이번에 멸마관에서 첫 실전을 어렵게 치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습니다.”
능운파가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북도문의 멸문이 바로 그 석실의 주인을 배불렸다는 셈이군.”
“그렇습니다.”
그러자 듣고만 있던 조적상이 코웃음을 쳤다.
“흥!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소환지에 들어섰다가 제물이 되는 것보단, 강호 무인들이 나서서 토벌해 버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소?”
“옳은 말이오. 이번 첫 실전에서 멸마관이 실패를 한 셈이나 다름없으니, 언제까지나 멸마관만 믿고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오.”
동의를 하며 나선 사람은 바로 장로회주 욱청풍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한에서 올라온 신월문주 남운평이 맞장구를 치며 나섰다.
“사실 이대로 멸마관이 소환지를 독점하다시피 한다면, 세간에서는 그 저의를 의심하는 말들이 떠돌게 될 겁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오.”
여기저기에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미 정도맹의 수뇌 인사 상당수는 각 지역의 문파들과 유지들에게 사주를 받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조적상의 의견을 지지했다.
실제로 그들은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봐야 마물 따위’라는 생각이 그들의 의식 저편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마물을 사냥하면 돈이 되고 힘이 된다는데 마다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기저기서 소리치며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며 구윤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정말이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
머지않아 마족이 침공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자신들의 문파 이익만 챙기려고 하다니.
마물이나 마령교에 맞서겠다는 이유 따위는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바로 경쟁하는 문파보다 본문의 상대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즉, 인간끼리의 경쟁심과 권위욕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사비강은 목청껏 떠드는 수뇌 인사들을 가만히 둘러보기만 했다.
‘이게 인간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눈앞의 이익에만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이지.’
사비강은 이런 인간들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지난 생에서 지켜보았다.
물론 자신도 그런 인간들 중 한 명이었고.
그래서 이번만큼은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사비강의 시선이 조적상에게 향했다.
누구보다도 권한이 막강한 자였으며, 지금 가장 목청이 큰 자이기도 했다.
“자신 있소?”
사비강이 불쑥 묻자, 조적상이 이맛살을 구겼다.
마구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일순 조용해지며 사비강과 조적상을 번갈아 보았다.
사비강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자신 있냐고 물었소.”
“뭐, 뭘 말이오?”
“만약 당주께서 소환지에 들어간다면 살아 돌아올 자신이 있소?”
“흥! 적어도 누구처럼 정신을 잃고 행방불명이나 되진 않겠지.”
사비강을 겨냥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긁어 주면 다루기가 편하지.’